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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어떻게 생겼을까
8pm on Mar. 20 엄마 11pm on Mar. 20 소녀 꿈 7am on Mar. 21 선택 8am on Mar. 22 10pm on Mar. 23 나의 제자리 8pm on Mar. 24 3am on Mar. 25 6am on Mar. 25 에필로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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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나는 소녀의 나이였지만 불행하게도 소녀라 불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이해해. 누구라도 내 모습을 보면 ‘소녀’라는 단어를 연상하긴 쉽지 않았을 테니까. 난 그냥 못생긴 계집애였지. 비쩍 마른 데다 피부 빛깔은 거무튀튀하고 까마귀 털처럼 까만 머리칼은 푸석푸석했어. 그래서 까만 멸치가 별명이었는데, 가끔 도시락 폭탄이라고 부르는 애들도 있었어. 거친 말을 싫어하는 애들은 나를 네모난 액자라고 불렀고. 왜냐하면 내 얼굴은 내가 봐도 지나치게 네모났거든. 거기에다 주걱턱이 삐죽 나와 있었고……. 못생겼다고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았어. 못생긴 게 전염되는 것도 아닌데.---p.94
돈을 있는 대로 긁어 떠나면서 엄마는 아들에게 닥칠 이 모든 상황을 예견했을까? 아닐까? 엄마가 새로 벌여놓은 미래에 내 자리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단 두 번의 사랑. 한 번은 유부남과의 불륜. 두 번째는 연하남과의 위험한 도피. 대체 왜, 엄마는 세상의 테두리 안에서 사랑하지 못한 걸까. 나는 엄마의 사랑을 탓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나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 두 번에 걸친 엄마의 사랑은 모두 내게 치명적이었으니까. 엄마의 첫 번째 사랑으로 나는 평생 아빠 없이 살아야 했고, 두 번째 사랑 때문에 내 남은 삶이 모조리 깨어지게 되었으니까. 나는 엄마의 두 번째 사랑이 자신의 남은 삶과 아들까지 걸 만큼 완전한 것이길 진심으로 바랐어. 그리고 엄마가 다시 불행해지지 않길 빌었어. 엄마에 대한 원망의 마음으로 말이야.---p.175 모든 걸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싶었을 뿐이야. 제자리? 전에 보여줬잖아, 내 사진……. 자, 여기 있어. 다시 보고 싶으면 그러도록 해. 그래, 예쁘지? 나도 알아. 아무 생각 없이 활짝 웃는 눈이랑, 수줍은 소녀처럼 부드럽게 미소 짓는 입이랑, 꿈꾸는 듯 해사한 표정이랑.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그래. 내 삶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던 때야. 난 그때 뭐든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어. 마치 딴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내가 그 세계에 속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지금은 나도 자꾸 헷갈리지만 말이야.---p.223 눈부신 미래를 배 속의 아기 때문에, 그것도 사실 내 아이도 아닌 미숙한 생명 때문에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내 결정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생각되었어. 다시 돌아가는 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에 내내 시달렸어.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겁이 났고. 네가 오기 직전까지도 나는 결정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리고 네가 내게 바다에 가자고 말했을 때, 그때 알았어. 나는 이미 선택을 했던 거야. 다만 그 대가가 두려웠을 뿐.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배운 게 그거야.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존재 방식이라는 것. 그러니까 나는 너를 따라온 게 아니야. 난 그저 나의 길을 온 거지. ---pp.244~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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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그래서 자꾸만 다리가 꺾인다면 어쩌겠는가. 다시 한 번 일어서려고 애쓰는 수밖에…… ―김이은, 「작가의 말」 중에서 서로를, 그리고 인간을 알아가는 여정의 기록 이 소설에는 쓸쓸하고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오로라는 성형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얼굴을 바꾸고 인생 역전을 이룬 여자다. 쇼핑몰 모델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턱이 뒤틀리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그녀의 삶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교진은 엄마가 남긴 엄청난 빚더미로 인해 사채업자를 피해 다니며 대리주차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는 사채업자 이철세를 피해 도주하던 중 여배우 H의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만다. 그렇게 삶의 벼랑 끝에 몰린 두 남녀는 우연히 편의점에서 만나게 된다. 교진은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 중인 신세이고, 오로라는 재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다. 교진은 저도 모르게, 마치 운명처럼 오로라에게 말을 건넨다. “바다 보러 갈까?” 비틀어진 턱을 제대로 맞물려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떨꺽떨꺽 소리가 났다. 오로라가 살아온 지난 삶들이 모두 저리 떨꺽거렸을까. 절박한 저 오류를 오로라는 무엇으로 여태 버텨내고 있는가. (…)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로라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교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바다 보러 갈까?” ―본문 53페이지.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삼월, 품속을 파고드는 추위를 뚫고 두 남녀의 4박 5일간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서로의 쓸쓸한 과거의 비밀들을 하나둘 풀어놓는다. “소녀였지만 소녀라 불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못생긴 얼굴 탓에 학교와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결국 목을 매달아야 했던 오로라의 아픈 기억들. 그리고 교진의 쓸쓸한 출생의 비밀, “단 두 번의 사랑. 한 번은 유부남과의 불륜. 두 번째는 연하남과의 위험한 도피”를 자행한 엄마에 대한 교진의 기억까지도……. 혼자서는 차마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화려한 배경과 스펙으로 사랑할 수 없다. 쓸쓸한 출생의 비밀과 품속을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 연인의 얼굴은 빛난다. 이 소설은 세간의 눈에는 그저 사기꾼들처럼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그리고 인간을 알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허윤진 문학평론가 내 것이 아닌 얼굴로 살아가기를 요구받는 이 시대의 일그러진 형상들 이 소설이 연재될 때 제목이 ‘플라스틱 라이프(plastic life)’였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루키즘(lookism)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시선을 읽을 수 있다. “못생겼다고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았어. 못생긴 게 전염되는 것도 아닌데…….” 여주인공 오로라가 못생긴 얼굴 때문에 학교와 사회에서 내몰리고 결국 자살을 감행해야 했던 참혹한 장면은 결국 우리 시대의 실풍경일 것이다. 내 것이 아닌 얼굴로 살아가기를 요구받는 시대, 외모가 곧 경쟁력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가. 뿐만 아니다. 돈 때문에 아이를 죽이는 엄마, 반대로 돈을 주고 아이를 사는 엄마, 또한 돈 때문에 환자를 비웃는 의사와 같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형상들이 소설 곳곳에 등장하여 날카로운 주사기처럼 우리들의 눈을 찌른다. 김이은의 약한 손가락은 우리가 읽고 싶지 않은 세계의 구석구석에 자꾸 밑줄을 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아야 하는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우리는 길을 잃은 어린이들처럼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자꾸 따라가게 된다. 진정한 이야기의 모험이란, 이 소설에서처럼 부정할 수 없는 두려운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것이기 때문이다. ―허윤진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