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 009작가의 말 · 333주 ·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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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靜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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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 속에서 살해한 그 남자,아버지가 오늘 죽었다1981년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열기를 외면한 채 작품 집필에 몰두하던 소설가 배문하에게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였던 그는 장례식에 가지 않으려 하지만, 엄마에게 떠밀려 결국 장례식이 치러지는 안동으로 향한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아내는 그에게 유품인 일기장을 건네주고, 일기장을 펼치자 뜻밖에도 그 안에는 1943년 10월부터 1945년 6월까지 남태평양 전장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젊은 시절 아버지의 기록이 담겨 있다. 아버지의 전쟁 일기를 모두 읽고 난 그는 집에 돌아와 평생 삼켜왔던 질문을 드디어 엄마에게 꺼낸다. 그 남자가 정말 내 아버지가 맞느냐고.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학도병과 위안부들의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그린 실화 소설『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아버지의 과거를 파헤치던 아들이 어느덧 엄마의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 속에 학도병과 일본군 위안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소환한다. 주인공 화자인 소설가 배문하는 고교 시절 아버지로부터 “너는 쪽발이를 닮았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출생을 의심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으며 엄마는 왜 가족사에 대해 침묵한 것인지, 읽는 내내 독자의 관심을 붙잡는 한 가족의 미스터리는 주인공이 우리 역사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순간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들 가족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운데서 일제강점기 말부터 6·25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1950년대, 6·3 항쟁이 일어난 1960년대의 사회상 등까지 우리 역사의 질곡을 함께 그려낸다.무엇보다 이번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큰 의미는 그동안 대중매체가 잘 다루지 않던 조선인 병사들의 처절하고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를 그린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는 남태평양에 끌려간 조선인 징병자,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위안부들의 이야기와 접목시킴으로써 일제에 의한 전쟁 피해는 남녀를 구별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한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도 서로 연대하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해방 후 귀국할 방법이 없어 머나먼 섬에 고립된 동포를 구출하는 데 나서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에는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겨 있다.‘소녀’ 또는 ‘할머니’로만 그려지던위안부 피해자들의 또 다른 삶의 단면을 조명하다한편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기록과 증언,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그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흔히 전쟁터에 끌려갔을 당시의 소녀 모습 또는 노인이 된 지금의 모습으로만 그려지던 위안부 피해자는 이 소설에서 단순히 피해자의 순수성을 강조하거나 타자화시키는 그간의 관습적인 문법에서 벗어나 한 시민으로, 여자로, 엄마로 나타난다. 귀국 후 가족에게도 돌아가지 못한 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소설 속 엄마의 삶은 또한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가족을 책임졌던 다른 모든 어머니들의 삶과 교차되면서 우리에게 시대의 아픔을 오롯이 전하는 동시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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