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며 / 김성희
1 변화를 위한 질문: 페스티벌 봄 사회 안에서 예술의 역할 / 프리 레이선 오늘을 멀리 보기, 미래를 가까이 보기 / 김성희 질문들 / 김성희 ‘다원예술’의 재명명 혹은 재발명 / 김남수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엘리트란 없다. 사회에서 예술은 불편한 대위법이 되어야 한다.” / 프리 레이선, 쿤스텐페스티발데자르 임직원 일동 안무적 사물 / 윌리엄 포사이스 우리는 왜 움직이는가? / 서현석 연극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리미니 프로토콜 / 게랄트 지크문트, 플로리안 말자허, 옌스 로젤트, 미리암 드라이세, 한스티스 레만 이메일들 2009~2010 / 제롬 벨 프리 레이선을 위한 찬사 / 로메오 카스텔루치 페봄 키드 / 고주영, 구자하, 서영란, 정진새 2 아시아를 다시 보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이제는 아시아가 서로를 바라볼 때 / 김성희 전 지구에 공명하는 고래의 노래 / 김남수 아시아의 눈, 역사와 사회를 향한 삐딱한 응시 / 이경미 지도 그리기와 호랑이, 그리고 연극성 / 다키구치 켄, 호추니엔 열병의 방 / 사사키 아츠시,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아시아라는 세계 / 마티아스 릴리엔탈 아시아의 동시대 공연예술, 그 씨앗 / 야마구치 마키코 도깨비의 탄생 / 마크 테 월경과 혼재 / 요우미 응시, 투영, 신화 / 헬리 미나르티 「해변의 아인슈타인」에 관한 시공간의 단상들 / 서현석 3 사유하는 공동체: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1세기 매트릭스 그 안에서 예술하기 / 이경미 동쪽의 새로운 흐름! / 마리 소르비에 황혼과 여명 사이에서 / 서현석 왜 / 김지선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 / 아너 테레사 더케이르스마커르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 / 엘 콘데 데 토레필 역사의 서사에 누락된 각주 달기 / 남선우, 로이스 응 석화된 현실에서 경험된 초현실로 / 장크리스토프 브리앙숑 미술관에서 공동체를 재발명하는 것이 대체 가능하기는 한 걸까? / 최승희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 르네 폴레슈 4 불가능을 상상하기: 옵/신 페스티벌 축제라는 항해, 그리고 우리 앞에 떠오른 것들 / 김신우 장(場)에서 벗어난, 춤을 지운 춤 / 이경미 필요 / 마텐 스팽베르크 리얼 픽션 / 빅토리아 페레즈 로요 단단하지 않은 공간 / 카린 할트, 메테 에드바르센 예술과 노동 / 보야나 쿤스트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 마텐 스팽베르크 우리의 몸은 우리가 실제로 가진 전부다 / 엘 콘데 데 토레필 ‘지금 아님-여기 아님’을 향한 연극 / 오카다 도시키 다원이라는 질문들, 단상들, 그리고 문장들 / 성용희 실재하는 달-두꺼비가 사는 상상의 정원 / 임고은 바닥에서 황혼까지 / 허명진 페스티벌의 알파벳 / 팀 에철스 나가며 / 프리 레이선 부록 다원예술 아카이브 저역자 소개 |
Gerald Siegmund
고주영의 다른 상품
김남수의 다른 상품
김성희의 다른 상품
Romeo Castellucci
로이스 응의 다른 상품
Marie Sorbier
Mark Teh
Marten Spangberg
Matthias Lilienthal
Mette Edvardsen
메테 에드바르센의 다른 상품
Miriam Dreysse
Bojana Kunst
보야나 쿤스트의 다른 상품
Victoria Perez Royo
서현석의 다른 상품
Anne Teresa De Keersmaeker
El Conde de Torrefiel
Jens Roselt
Toshiki Okada,おかだ としき,岡田 利規
오카다 도시키의 다른 상품
요우미의 다른 상품
William Forsythe
이경후의 다른 상품
Jean-Christophe Brianchon
정진새의 다른 상품
조효진의 다른 상품
Karin Hald
Tim Etchells
Frie Leysen
Florian Malzacher
Hans-Thies Lehmann
허명진의 다른 상품
Helly Minarti
호추니엔의 다른 상품
이경미의 다른 상품
|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강요하고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사회를 바라보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하지 못하는 이 역할을 특정한 집단에게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 사회를 대신해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또 비판하고, 또 우리가 지금 있는 세계로부터 다른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줄 수 있는 다른 비전들을 고안해 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술가들입니다. 진짜 예술가들입니다.”
--- p.16, 「프리 레이선, 「사회 안에서 예술의 역할」」중에서 “‘다원예술’의 위태로운 태생과 불안정한 정의를 빌미로 그것이 지시하던 새로운 방법론들을 무화하는 것이야말로 학술적인 태만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었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촉매제가 되어 어떤 새로운 가능성들을 견인했는가의 문제이다. […] 다원예술은 때로는 불가능한 가능성들이다. 다원예술은 불가능을 지시하고 수행하는 실천이다. 불가능한 범주의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 p.19, 「김성희, 「오늘을 멀리 보기, 미래를 가까이 보기」」중에서 “우선 다원예술은 태도의 문제라고 보여진다. 장르 간 혼합이라거나 기능적인 다원주의적 실험이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다원예술은 세계관의 문제다. 예술의 종합이 시도되는 지점에서 ‘예술의 완성도를 제련하자’가 아니라, ‘예술 실천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굵은 질문을 재발명하는 것이다.” --- p.19, 「김남수, 「‘다원예술’의 재명명 혹은 재발명」」중에서 “안무와 춤은 서로 너무나 다른 별개의 실천이다. 안무와 춤이 일치하는 경우에 안무는 춤을 추고자 하는 욕망의 분출 경로로 기능한다. 그렇기에 혹자는 안무적 경험의 본질은 오직 신체에 머무른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무가 신체를 빼놓고, 이를테면 ‘안무적 사물’을 통해서 자신의 원칙에 대한 자율적인 표현을 생성할 수는 없을까?” --- p.40, 「윌리엄 포사이스, 「안무적 사물」」중에서 “그들은 저널리스트나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진짜 목소리를 찾는다. 아르헨티나의 잡역부, 바젤의 미니어처 기차 모델 조립가, 벨기에의 연설 작가, 취리히의 심장 전문의 등 실존하는 사람들을 경청하고 (‘프로토콜’을) 기록한다. 작업 과정에서 그들이 맡는 역할은 연출가보다는 관객의 위치에 가까울 지경이다. 이야기는 이미 발생한 상태다. 문맥을 부여하고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관객이 자신들만의 해석적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말이다.” --- p.48, 「게랄트 지크문트, 「연극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리미니 프로토콜」」중에서 “무용수들은 작업의 모든 면에 책임을 지고, 저는 제 이름으로 콘셉트를 제시하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제 이상이에요. 그들이 무용수로서 춤으로 된 주석을 달아 작품의 이야기를 끌어가고, 저는 그들이 안무 텍스트를 써내려 가는 과정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는 형태죠. 저는 해석자들이 제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신만의 솔로 작품을 만들기를 바라요.” --- p.54~55, 「제롬 벨, 「이메일들 2009~2010」」중에서 “반드시 극작가가 쓴 대본을 전문 배우가 공연장의 조건을 충족하는 공간에서 공연하지 않아도, 다시 말해 기존의 전통적인 장르의 방식으로 기획하고 창작하지 않아도, 연극일 수 있고, 공연일 수 있고, 예술일 수 있다는 가르침, ‘왜, 누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가설을 세울 수 있다면 예술에서 어떤 정해진 기준도 따라야 할 규칙도 없다는 가르침. 전통과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오히려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안에서 공연예술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에 더 방점을 찍게 되었고, 그 고민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공연 기획자로서, 시민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살고 창작하는 모든 시작점에 페스티벌 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68, 「고주영, 「페봄 키드」」중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 참가한 작가들은 유럽의 식민주의가 소위 비유럽 국가들의 역사에 무엇을 기입하고 배제시켰는지 질문한다.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그들은 정치 , 경제 , 문화를 점령했던 그리고 점령하고 있는 특정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시간에 균열을 가한다. 그로부터 생성되는 새로운 지형 속에서 현재를 재구성한다. 오늘날 예술이 행하는 기억 행위는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시간을 구성하는 일이다.” --- p.88, 「이경미, 「아시아의 눈, 역사와 사회를 향한 삐딱한 응시」」중에서 “영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꿈에도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인간의 몸이 항상 꿈을 꾸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나의 모든 작품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꿈은 그보다도 한 차원 더 개인적인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이 경험하는 꿈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대단히 깊은 의미가 있다. 따라서 꿈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내게는 모티브가 된다. 영화와 꿈은 이런 점에서 연결 고리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 나는 영화가 다른 사람의 꿈을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믿는다.” --- p.110,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열병의 방」」중에서 “페스티벌은 단순히 여러 작업을 모아 놓고 한꺼번에 많이 보여 주는 뷔페식 행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왜’를 붙이는 개별 작업들과 구성원이 모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공론장에 가깝다.” --- p.169, 「김지선, 「왜」」중에서 “권태란 이 세계에 딱 맞는 시간이란다. / 우리는 과도한 자극에 끊임없이 노출되어서 / 자극이 없는 것은 곧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 그래서 나는 아주 정중하게, / 권태로울 수 있는 시간을 요구한다.” --- p.176~177, 「엘 콘데 데 토레필, 「풍경 앞에서 사라지는 가능성들」」중에서 “예술가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형식은 항상 그 예술가가 예술에 관해 상상하는 바를 드러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18 ‘아시아 포커스’에서 만난 두 공연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극장의 개념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을 보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극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이 상상력을 만들어 내는 데 쓰여야 하는지, 아니면 실제 현실을 인식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최근의 논쟁까지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 p.182, 「장크리스토프 브리앙숑, 「석화된 현실에서 경험된 초현실로」」중에서 “이제 ‘함께’하는 게 뭔지에 대한 공통된 이해부터 다른 방식으로 모색해 보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비공동체적 공동체의 형태로요.” --- p.197, 「르네 폴레슈,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중에서 “오늘날 축제가 존재해야 한다면, 그 지향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어떤 축제의 형식과 경험이 오늘날 유효한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새로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방법은 무엇일까? 아직 예술에 미래를 그릴 힘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미래가 될 수 있을까?” --- p.202, 「김신우, 「축제라는 항해, 그리고 우리 앞에 떠오른 것들」」중에서 “가능의 영역은 개연성의 영역이다.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아마도 이것이나 저것, 어느 정도의 가능성 등 언제나 이미 인식된 것, 상상 가능한 것 안에 있다. 잠재성은 이와 전혀 다른 것으로, 가능, 불가능, 인지나 지식을 넘어선 영역이다. 잠재성 안에서는 개연성이 분해되며 미결정성, 완전히 예측 불가한 것, 우발적인 것에 자리를 내준다.” --- p.213, 「마텐 스팽베르크, 「필요」」중에서 “책을 아무리 많이 , 아무리 잘 외웠다고 해도 계속해서 ‘하지’ 않으면, 되풀이하지 않으면, 기억은 다시 사라져 버린다. 이 끊임없는 이어짐과 ‘하기’에 대한 헌신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인 것 같다. 이는 프로젝트의 전제이자 방법론이며,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p.225, 「메테 에드바르센, 「단단하지 않은 공간」」중에서 “자신의 무용한 일에서 그 어떤 게으름의 흔적도 지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는 자신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진짜 게으름을 비출 수 있는 그 어떤 비판적 힘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만다.” --- p.232, 「보야나 쿤스트, 「예술과 노동」」중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모든 예술 맥락에서 수행성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비엔날레, 미술관, 문학 축제에 수행적인 요소가 포함되어야 했다. 이 시기에 무용이 미술관에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이 수행적인 것으로 포장되었다. 수행성은 꽤 자주 형용사로 쓰였는데, “그 작품은 약간 수행적이지.”라는 말은 마치 그것이 흥미롭거나 쿨하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수행성은 양적인 단위로도 사용됐다. 어떤 것이 더 수행적이거나 덜 수행적일 수 있다는 듯 말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춤을 많이 춘다거나, 통통 튀는 걸음으로 걷거나, 과장된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당신의 정체성이 더 수행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물질적인 것을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정체성, 이를테면 의자, 도시, 역사적 사건, 무용 공연, 진료 예약 등은 수행적이다. 무언가가 다른 무언가와 관계 맺는 순간, 수행성은 필연적이다.” --- p.242, 「마텐 스팽베르크,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중에서 “현재중심주의를 탈피한 연극 ? ‘지금 아님-여기 아님’을 향한 연극 ? 을 목표로 삼는 것. 그럼으로써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한 연극에 이르는 것. 이 콘셉트는 작품이 상대하는 시간의 스케일을 바꿀 뿐 아니라, 작품이 상대하는 맥락이 겨냥하는 범위도 바꾸게 될 것이다.” --- p.251, 「오카다 도시키, 「‘지금 아님-여기 아님’을 향한 연극」」중에서 “해결 불가능한 문제. 공간을 뒤섞고 꼬아 놓고, 사람들 옆에 남고 뒤에 남아 거리에서 사람들을 따라 흐르고, 사람들을 둘러싸고 비틀고 사로잡고 유혹하는 문제… 그러니까 유령과 뒤엉킴의 페스티벌. 꼬인 매듭의 페스티벌. 뒤엉킴과 물음들을 꿈꾸는 바보들의 페스티벌. 고뇌하는 자들의 페스티벌.” --- p.286, 「팀 에철스, 「페스티벌의 알파벳」」중에서 |
|
우리가 공유한 시간
‘다원예술’은 우리 시대의 예술을 둘러싼 특징적인 용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온갖 정의를 벗어나고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면서 공연장에서, 미술관에서, 또 다른 장소에서 ‘불가능’에 대한 질문을 던져 온 움직임과 태도는 해를 거듭하며 국내 예술계에 꾸준히 영향을 끼쳐 왔다. 특히 지난 20년간 페스티벌이라는 장치를 기반으로 삼아 한국 다원예술의 독보적인 흐름과 지형을 만들어 온 행사들이 있다. ‘다원예술 축제’를 표방했던 페스티벌 봄(2007~2013),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의 공연들(2013~2016), 국립현대미술관의 다원예술 프로젝트(2017~2018), 그리고 2023년 현재까지 열리고 있는 옵/신 페스티벌(2020~ ).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은 이 행사들을 이끌어 온 기획자 김성희가 그동안 함께한 동료 예술가들의 글들을 새롭게 엮은 책이다. 다원예술이 도전해 온 궤적을 다시금 반추해 보는 이 책은 국내 주요 페스티벌의 흐름을 따르면서 시간이 지난 지금 이 행사들이, 작품들이 던졌고 자아냈던 질문들을 총체적으로 살핀다. 전 세계의 혁신적인 예술가들을 국내 무대에 적극적으로 초청하며 동시대 예술의 간극을 좁히고자 했던 페스티벌 봄은 포스트드라마 시어터, 농당스, 장소 기반, 수행성, 관계 미학 등 예술의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면서 이곳의 새로운 태도와 방법,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는 서구 유럽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전략적으로 조망하고 재발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젝트는 아시아 동시대 예술에 대한 관심을 이어 가는 한편 연간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과 공동체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살폈다. 그리고 현재 옵/신 페스티벌은 자본주의라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과 자율성을, 나아가 지속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이다. 질문들과 함께 시작된 작품과 행사는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나갔지만 여전히 질문들과 함께한 채이기도 하다. 그간의 성과에 만족해 버리는 대신 지나온 자취를 더듬으면서 남아 있거나 새로 발생해 있는 질문들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다원예술의 태도에 어울리는 선택일 것이다. 책의 구성은 여러 페스티벌에 다양한 입장으로 참여해 온 작가, 비평가, 기획자, 스태프, 관객의 에세이와 리뷰, 인터뷰, 대담, 서신, 설문, 대본 등 다채로운 형식의 글들로 이루어졌다. 페스티벌의 역사와 직접 관련된 경우뿐만 아니라 흐름상 느슨히 연관되거나 지향점으로서 함께 살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글들도 새롭게 수록했다. 우리가 공유할 시간 이 책의 제목은 벨기에 국제 예술 축제 쿤스텐페스티발데자르의 예술 감독이었고 2014년 에라스뮈스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 작고한 프리 레이선의 말,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The Time We Share)”에서 비롯되었다. 엮은이 김성희는 서두에서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은 쿤스텐페스티발데자르의 프리 레이선 예술 감독이 ‘동시대 예술’을 유럽 중심적인 지리적 발상에서 벗어나 모든 지구인들이 능동적으로 예술의 역사 쓰기에 동참하는 시간적 발상으로 재정립하면서 즐겨 썼던 표현으로, 이를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은 우리의 지난 20년 역시 이러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일부였음을 공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은 정신 그 자체다.”(13쪽) 동시대 예술이 동시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작품을 둘러싼 조건과 상황이 적합하게 조성되어야 한다. “한 공연의 미학은, 작품을 고르고 지지하며 그 작품을 시공간 안에 위치시키고 필요한 지원을 통해 실현시키는 예술 감독의 윤리 없이는 무의미합니다.”(62쪽)라고 단언하는 작가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말은 그동안 우리의 시공간에서 펼쳐진 예술 작품들의 배경을 알려 준다. 나아가 사회 안에서 예술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오늘날 예술 축제는 어떠한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 예술 공동체란 과연 무엇인지, 예술가들이 어떻게 ‘덜 하기’와 ‘불일치’라는 자율적인 상태에 다다를 수 있을지, 어떻게 ‘진짜 문제’에 닿을 수 있을지, 『우리가 공유하는 시간』은 앞으로 우리가 공유하게 될 수 있을 시간을 향한 길을 여러 갈래로 열어 둔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의 전제는 다시 우리에게 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동시대 예술이 우리에게 전하는 정신이자 태도이다.”(14쪽) -옵/신 페스티벌 2023(10월 31일~11월 26일) “올해 옵/신 페스티벌은 20~21세기 예술사를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예술적 관점과 형식들을 한데 모아 회고전을 개최한다. 페스티벌 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그램을 거쳐 옵/신 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기획의 궤적을 되돌아보며 예술계의 지형 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한 신념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전환하려는 염원을 담는다. 지난 20여 년 동안 공연예술의 가장 과감한 확장을 시도해 온 예술가들에 경의를 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옵/신 페스티벌 웹 사이트 소개 글, http://obscenefestival.com/festiv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