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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불가능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 12 -김훈의 역사소설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행하고 있다 … 34 -김영하, 「옥수수와 나」 불안과의 대화 … 49 -편혜영, 「몬순」 뿌리를 보는 시간 … 68 -김숨, 「뿌리 이야기」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 84 -구효서, 「풍경소리」 역사적 상상력이 머무는 곳 … 96 -2000년대 소설의 ‘역사’ 2부 상상, 거짓말 그리고 이야기 … 120 -김애란, 『달려라, 아비』 비현실로 현실을 말하기 … 137 -박민규의 『카스테라』 마카브르의 상상력 … 150 -편혜영, 『아오이가든』 사람의 길, 소설의 길 … 173 -손홍규, 『봉섭이 가라사대』 초능력을 가진 소년들 … 190 -김연수, 『원더보이』와 김영하, 『너의 목소리가 들려』 골방과 거리의 상상력 … 214 -김미월 소설과 서울 진실 혹은 거짓, 당신의 선택은? … 234 -김희선, 『라면의 황제』 3부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 254 -김경욱, 『위험한 독서』 이야기의 리듬과 생의 리듬 … 260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불가능한 꿈에 관하여 … 264 -손홍규, 「환멸」 라르고,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길 … 267 -조해진, 「빛의 호위」 적막과 고립의 시간에서 벗어나기 … 272 -김주영, 『빈집』 과거로의 여행 … 277 -권여선, 『비자나무 숲』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 282 -강영숙,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잔혹함의 묘사와 불편함의 진의 … 288 -안보윤, 『우선멈춤』 환상의 길, 나와 당신의 길 … 292 -최수철, 『갓길에서의 짧은 잠』 현실은 환상을 낳고, 환상은 현실을 낳는다 … 297 -김이환, 「너의 변신」 번역가의 시선과 위로의 말 건넴 … 302 -박찬순,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 사소한 착각의 공감대 … 307 -윤고은, 「요리사의 손톱」 슬픔 저 너머로 … 312 -최은미, 「창 너머 겨울」 역사를 상상하다, 인간을 상상하다 … 317 -김탁환, 『혁명』 반죽의 시간 … 322 -김숨, 「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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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실존적 상황과 내면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역사에 기댈 필요는 없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거멀못은 작가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훈은 역사적 사실을 활용하여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글쓰기 전략을 택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백의종군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역사소설에서는 이것을 영웅의 ‘고난―극복’의 반복을 통한 서사 전개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고난의 강도가 강할수록 극복의 위대함은 높아지고 인물의 영웅성은 강화된다. 이순신을 소재로 한 여타의 작품에서 백의종군이 흔히 영웅적 면모를 구현하는 도약대로 기능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칼의 노래』는 이 같은 문학사적 관습을 위반하고 백의종군을 실존적 고민의 출발점으로 바꾼다. 정치적 맥락 따위의 전후 사정을 최대한 소거한 결과, 백의종군은 ‘임금이 나를 죽이려 했다’는 앙상한 뼈대로 남는다.
---「불가능에 대하여 이야기하기-김훈의 역사소설」중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김숨의 「뿌리 이야기」는 뿌리 뽑힌 자들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접근법으로 익숙함의 무게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소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가령 철거촌에 대한 묘사를 보자. 이 소설은 철거민의 삶이 파괴당하는 과정을 묘사하지 않으며, 사회경제적 모순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대신 뿌리가 뽑힌 채 철거촌에 남겨진 나무를 보면서 뿌리가 뽑힐 때 나무가 느꼈을 공포감에 초점을 맞춘다.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인간이 아니라 나무를, 냉철한 분석이 아니라 모호한 감상에 기대는 것이 이 소설의 ‘어떻게’다. ---「뿌리를 보는 시간-김숨 〈뿌리 이야기〉」중에서 중편 「풍경소리」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어느 한적한 시골 산사로 우리를 데려간다. 온갖 세속의 번잡스러움을 벗어난 그곳에서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듣고, 맛본다. 한참을 맑고 깨끗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솟아난다. 주인공이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흐뭇한 미소도 짓게 된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따뜻함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이내 뭔가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온다. 이런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는 과연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어디서오셨습니까, 어디로 가십니까?-구효서, 〈풍경소리〉」중에서 김애란의 소설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키워드는 단연 ‘가족’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기본적인 인물 관계로 설정된 소설이 유난히 많다.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집을 나가서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나는 어떻게 태어났나요?’라는 아들의 발칙한 질문에 의뭉스러운 거짓말을 들려주는 아버지, 25년간 칼로 국수를 썰면서 자식을 키워온 어머니는 독특한 개성으로 조형되어 소설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대개 편모이거나 편부로 설정된 결손의 가족 관계 속에 놓인 아이는 자신의 부모에 관한 강한 심리적 지향을 내보이고 있기에 김애란의 소설을 ‘가족 로망스’로 읽는 독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상상, 거짓말 그리고 이야기-김애란 『달려라 아비』」중에서 ‘개연성 너무 신경 쓰지 말 것!’ 또한,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말 것!’ 이것은 『카스테라』를 읽는 독자가 지켜야 하는 룰이며, 이를 거부하는 독자 즉,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생각한 독자는 책장을 덮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서술자는 이러한 룰을 설정함으로써 비현실적인 내용을 마음껏 펼쳐놓을 준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책장을 덮을 독자는 이미 덮었을 테고, 남아 있는 독자는 얼마든지 서술자의 황당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이제 서술자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이야기꾼이 된다. 서술은 단어나 구, 절을 병렬적으로나 대비적으로 배치하는데, 장황하고 다변적으로 늘어놓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 등은 다분히 작품이 구술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독자는 할머니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손주들처럼 비현실적인 장면의 펼쳐짐을 거침없이 향유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다. ---「비현실로 현실을 말하기-박민규의 『카스테라』」중에서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손홍규의 소설에서는 대체로 시작의 흡인력보다는 결말에 이르러 발휘되는 뒷심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는 점이다. 소재나 설정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말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소설 속 서술자의 서술이 실상은 귀신의 입에서 나온 발화였다는 식으로 사태의 진상을 밝히거나(『귀신의 시대』, 2006), 결말에 이르러 그간 지연되었던 개인사가 공개되고 가슴이 뭉클해지도록 읽는 이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방식(『이슬람 정육점』, 2010)이 더 일반적이다.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2008)에 수록된 작품들 역시 소설의 마지막 한두 문장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마치 그의 소설에 빈번히 등장하는 동물인 황소의 발휘하는 우직한 뒷심처럼. ---「사람의 길, 소설의 길-손홍규, 『봉섭이 가라사대』」중에서 김희선의 소설집 『라면의 황제』는 한 그릇의 ‘짬뽕’이다. 서로 다른 것을 뒤섞어 만들어내는 짬뽕처럼 소설집에는 얼핏 보아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소재들이 혼합되어 있다. 가령 외계인과 라면이 어울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작가가 직접 일러스트한 책 표지에는 멀리 지구가 보이는 달 표면을 배경으로 여러 명의 외계인과 라면 한 그릇이 놓여 있다. 외계인과 라면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역사적인 순간인 듯하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두 소재의 병치는 소설집에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의 서사적 지향점을 강하게 예고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확정적 상상력의 출현이 그것이다. ---「진실 혹은 거짓, 당신의 선택은?-김희선 『라면의 황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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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문득 대학 시절 수업 시간이 떠오른다. 전영애 교수님의 [독일명작의 이해] 시간이었다. 매번 지정된 작가의 작품을 미리 읽고, 강의실에서는 여러 작품을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그날의 수업 주제는 ‘카프카.’ 나는 카프카의 단편소설 작품 중 한 편에 관한 내 생각을 한창 말했다. 그러다 다른 학생 하나가 나의 실수를 지적했다. 나는 작품 제목 ‘법 앞에서’를 ‘문 앞에서’로 착각하고 읽었던 것이다. 제목부터 엉뚱하게 파악했으니 내용 해석도 엉뚱할 수밖에. 아마 그 학생에게 내 말이 이상하게 들렸으리라 싶다. 그런데 전영애 교수님께서는 내 의견이 흥미롭다고 코멘트하셨다. 내가 토론에서 망신당할까 봐 걱정하셔서 말씀하시는 건 아닌 듯했다. 쓰고 계신 안경 너머로 교수님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법 대신 문을 집어넣어 해석하면 어떤 의미가 될까, 짧지만 진지한 평론가의 눈빛이었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씀으로 나는 해석했다. 지금까지 평론을 쓰면서 전영애 교수님께 많은 빚을 졌다. 문학 작품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수많은 주저함과 망설임의 순간이 있었다. 나의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그럴 때마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씀은 언제나 큰 용기가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편의 글은 제법 오랫동안 썼던 주저함과 망설임의 결과물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서 계속 엉뚱한 생각을 해나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