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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감정의 궤적을 그리는 몇 가지 방법 시간은 어떻게 기억되는가-박찬호 「악취」 / 12 행운의 느낌, 감정에의 동참-박종규 「잭팟 터트리기」 / 17 애처로움을 더욱 애처롭게 말하는 법-이목연 「꽃기린」 / 20 감격 혹은 상처-박경희 「칼라 꽃」 / 24 기억 속의 공간 너그러움에 관하여-김지연 「봄날은 간다」 / 28 영원한 모성성의 갈망-강병석 「미륵을 부르는 봄」 / 31 아버지의 공간-최문경 「햇볕 드는 집」 / 35 한계령 오르는 길-류담 「나르키소스를 위하여」 / 38 반성으로의 권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신중선 「집으로 가는 길」 / 42 회복의 공간, 치유의 공간-이하언 「빨간 신호등이 있는 마을」 / 45 차마 외면하고 싶은 장면들-최정희 「엄마의 주검」 / 49 오래된 감정을 들여다보는 방법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법-임수랑 「번짐」 / 54 슬리퍼의 사용법-이병순 「슬리퍼」 / 60 시간의 강을 거슬러가는 법-한정배 「무심천」 / 64 상실을 말하는 세 가지 목소리 40년 된 낡은 다리미의 목소리-손영목 「한탄강」 / 72 죽지도 살지도 못한 자의 기이한 목소리-박유하 「블랙홀」 / 77 빛 속으로 사라진 새의 목소리-이순임 「구아노의 밤」 / 82 누군가의 사연, 누군가의 진심 덫으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고향-양승언 「덫」 / 88 타인의 눈물-박희주 「참새의 눈물」 / 92 무지개의 시절-김승섭 「별은 반딧불이 되어 나븐나븐 내리고」 / 96 곰삭은 맛을 풍기는 이야기-정형남 「울 엄니는 당골래여」/ 100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고무호스가 울고 있는 풍경-박경숙 「의미 있는 생」 / 104 어린 아이와 팽나무의 시선, 그리고 그리움의 회상-한수경 「나비머리핀」 / 108 낯설고도 익숙한-성민선 「라그랑주 포인트」 / 113 일상 속의 몽상-김광님 「러브체인」 / 117 그때 그곳에서 금기와 위반-나경 「칼과 장미」 / 122 삶의 불확정성-김채형 「눈폭풍 속에서」 / 126 멜로지만 괜찮아-남미자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가네」 / 129 가난한 연극, 가난하지 않은 소설-김주현 「완두콩 한 숟가락」 / 132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 봄 향기와 갯내음, 그리고 고향-정동수 「이웃」 / 138 변명과 편견의 목소리-양영수 「천둥소리」 / 142 두 번째 전환-남마리아 「바위틈에 피어나는 백일홍」 / 147 강물에 비친 초상-김창식 「죽음의 문」 / 151 그들의 사연 아버지와 자식들의 사연-안수길 「실종」 / 156 타투하는 여자의 사연-김경해 「사랑을 새기다」 / 160 카멜레온들의 사연-신용성 「카멜레온」 / 164 늙은 춤꾼의 사연-윤원일 「왈츠 추는 늙은이」 / 169 환영 속의 슬픔 고독과 그리움 집-이길환 「찔레꽃 화장」 / 176 허락되지 못한 ‘행복한 사랑’-이찬옥 「핑크로즈」 / 180 독특한 소재로 표현된 팽팽한 긴장감-조규남 「쪽」 / 184 당신의 휴대폰은 당신이 누군지 말한다-이병순 「인질」 / 189 오래된 공허를 넘어서 과거와의 화해-이선우 「관」 / 196 도서관 광시곡-이연초 「하이드비하인드」 / 201 공허의 질감-천종숙 「박제」 / 205 키위새의 길 찾기-한정현 「벤야민의 지도」 / 209 한참을 돌아온 길 인간은 곤충이다-이정은 「생태관찰」 / 216 세태의 표정들-표중식 「투명 완장」 / 220 30년을 돌아온 길-강준 「느티나무에 핀 꽃」 / 223 순수로 돌아가는 길-박충훈 「흐르는 강물처럼」 / 226 디테일, 또 디테일 디테일의 묘사와 의인화-김다경 「그 겨울」 / 232 인생의 갈림길-박성선 「갈림길」 / 236 인물 묘사와 관찰의 시선-권흥기 「도장 찍는 사람」 / 240 마음의 디테일-이종숙 「차가운 손」 / 243 마음의 여정 이해할 수 없는 것들-박종윤 「지렁이의 춤」 / 250 태양을 집어삼키는 괴물-이완우 「비문증」 / 255 돌무덤 너머의 소녀-이진 「여전히, 거기」 / 259 마음속의 폭풍-박은몽 「사흘 동안」 / 262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제의로서의 소설-조동길 「죄제」 / 268 동화 속 신데렐라의 운명-홍지화 「로즈타투」 / 271 흐르는 강물처럼-김병룡 「백악기 가족사진첩」 / 277 감정의 움직임 감정의 솜씨-강성숙 「무촌」 / 284 낯섦과 신선함-도명학 「생일」 / 287 꿈결 같은 죽음-김상렬 「꿈」 / 290 상황 속으로-고윤숙 「57일간의 수렁」 / 294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 어느 등산가의 선택-신영철 「아들과 함께 가는 길」 / 300 어느 여행자의 기록-우한용 「도도니의 참나무」 / 304 어느 장의사의 죽음-이만재 「메모리얼 스톤」 / 310 기억 속의 얼굴 회상의 형식-김명희 「금빛 여자 중학교」 / 316 모순 혹은 허무-이상은 「그 남자의 칼」 / 320 치정 혹은 순정-이휘용 「이름」 / 323 지속되는 긴장, 그리고 반전의 묘미-김민혜 「아내가 잠든 사이에」/ 326 기억과 소설 어린 소년의 기억-김광휘, 돼지털 공장 / 330 가족사적 기억과 역사적 기억의 결합-조동선 「까마귀 떼울음」 / 334 오래된 사랑의 기억-박경숙 「기억의 나무」 /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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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단편 「봄날은 간다」는 독특한 서정적 분위기의 창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잔잔하게 유지되는 서술자의 목소리를 따라 펼쳐진다. 서술자는 급하거나 넘침 없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지리산 산판의 한적한 전원 속으로 독자를 이끌고 간다. 주인공 선우여사의 전원생활을 그려내는 대목에서는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전원생활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정확한 어휘와 표현, 풍성하고 섬세한 문장력에 의해 소설 속에 담겨진다. 작품 속에서 서술된 지리산 전원생활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임수랑의 단편 「번짐」은 사건의 전개보다는 소설적 분위기의 제시에 한층 주력한 작품이다. 인물과 사건을 통한 서술이라는 ‘말하기’보다는 비유와 암시가 한껏 담긴 소재들을 소설 내부에 펼쳐놓는 ‘보여주기’를 주로 활용한다. 외로움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서술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작품의 제목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외로움이 번져나가는 모습을 문장으로 붙잡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어느 몽환적인 장소를 화폭에 옮긴 풍경화를 연상하게 하는데, 주인공 Y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진한 외로움의 감정이 독특한 색채의 물감으로 그려지는 듯하다. 손영목의 단편 「한탄강」은 주인공 ‘나’가 아내와 함께 아내의 고향을 방문하는 여행을 다룬다. 소설 속 언급처럼 ‘과거로의 회귀여행’이라 부를 수 있는 이번 여행에서 주인공의 아내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언니를 그리워하고, 쉽게 정 붙일 수 없었던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을 향한 거리감을 새삼 떠올리면서 비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리움의 대상들이 저 멀리서 손짓을 하고 있지만 결코 그들과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소설의 전편에 깔려 있는 주된 정조다. 한탄강 인근의 어느 시골 마을이라는 특정한 공간적 배경이라든가 인물의 단순하지 않은 가족 관계와 내력을 다룬 이 소설은 누군가의 남의 사연이지만, 이 소설은 과거의 시간들은 회복될 수 없는 영원한 상실의 영역에 속하기에 아름다우면서도 애달프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환기함으로써 독자들을 깊은 공감으로 이끌어 간다. 윤원일의 중편 「왈츠 추는 늙은이」를 읽고 나면 거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배경으로 낚싯대를 드리운 키 작은 노인의 형상이 떠오른다. 노인은 문득 낚싯대를 내려놓고 스탭을 밟기 시작한다. 몸을 풀기 위해 쉐도우 복싱을 하는 권투선수처럼 노인은 바다를 배경으로 혼자서 왈츠 스탭을 밟는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면서, 또 때로는 그리움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노인의 형상이다. 「왈츠 추는 늙은이」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독특한 캐릭터의 창조에 성공한 작품이다. 박충훈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동강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다. 고의로 부도를 내고 도피 생활 중인 주인공,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강가에 나가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뿐인 생활,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이복형제의 존재를 뒤늦게 확인하고, 무책임하게 저질렀던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 소설의 줄거리다. 얼핏 줄거리만 놓고 볼 때는 굳이 동강을 배경으로 삼지 않더라도 별 지장이 없을 듯싶다. 하지만 소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동강의 아름다움에 서서히 동화되어 결국 더러움의 때를 벗고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변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강원도 두메산골을 휘감아 나가는 동강의 은은한 물결 속에 서서히 빨려드는 느낌, 아마 인간을 향한 대자연의 위로가 선사하는 안온한 느낌일 것이다. 이진의 단편 「여전히, 거기」는 그리운 사람을 향한 애절한 만가의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리움 혹은 안타까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은 일인칭 서술자인 ‘나’의 기억에 기댄다. 하나씩 길어 올린 기억의 조각들을 한데 모으면 그리운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낮은 웅얼거림이 들려온다. “노래 같기도, 울음 같기도, 비명 같기도 한” 그런 웅얼거림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의미를 지닌 발언으로 터져 나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역할이라 한다면, 이 소설은 결국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하는 진혼제를 거행하는 일에 해당한다.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애달픈 생애를 위로해주는 한 편의 시이자 노래가 곧 이 소설이다. 조동길의 단편 「죄제」는 제사라는 전통적인 제의를 소재로 삼아 몇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을 길어 올리는 작품이다. 첫째는 점점 잊혀져가는 과거의 풍속에 대한 세밀한 기록으로서의 의미이고, 둘째는 시대가 바뀐 것을 확인하고 그러한 변화에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한다는 의미이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고독사를 둘러싼 쓸쓸한 세태 묘사로서의 의미이다. 세 가지 의미가 작품 속에서 하나로 녹아들면서, 상당한 무게감을 지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김상렬의 중편 「꿈」은 소설의 첫머리에서 상당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작품의 제목은 ‘꿈’이라고 되어 있으나 정작 소설의 첫 문장은 꿈과는 의미상 정반대의 지점에 놓여 있는 ‘죽음’에 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방에서는 늘 죽음의 냄새가 난다.” 꿈과 죽음을 한곳에 펼쳐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일이 된다. 주인공 ‘나’가 말한 죽음의 냄새는 중풍에 치매까지 걸린 어머니의 똥오줌 냄새다. 워낙 연로 하시고, 병환이 깊고 심하여 당장 내일 돌아가신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상태. 가끔 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기왕 가실 거면 어서 가세요.’ 하고 혼자 은밀히 속닥이는 지경”이라고 ‘나’는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한다. 구린내와 비린내, 간혹 향냄새가 뒤섞인 어머니의 방 냄새를 ‘나’는 죽음의 냄새라 부른다. 박경숙의 중편 「기억의 나무」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인연과 사랑, 사람과 나무 등 한 두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무겁고 깊은 주제들로 가득하다. 서사적인 측면에서도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채택하여 소설의 외관도 제법 웅장하다. 이러한 양적, 질적 풍성함을 한 데 모아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이 소설은 제목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오래된 은행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외관을 취한다. 나무가 인간 세상의 일을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상상, 비록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상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인간은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상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어떻게 보면 애니미즘의 분위기도 슬쩍 느껴지는 상상 속에서 기억을 통해 소설의 몸통을 빚어낸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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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평론가 김윤식 선생님께서는 문학 월평을 쓸 때 한 작품당 세 번씩은 읽는다고 하셨다. 글을 쓸 때는 우선 많이 읽으라는 주문이다. 그렇게 많이 읽으면 작품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조언이기도 하다. 작품 월평을 쓰려고 할 때면 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