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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고통의 상상력 투박한 표현을 통한 고통의 섬세한 포착-안장환, 〈이별〉 /14 트라우마를 향해 돌진하는 롤러코스터 탑승자 -이언호, 〈롤러코스터〉 /17 고통의 치유로서의 애도의 한 방식-윤춘택, 〈2월과 소녀〉 /19 시간의 저편에서 풍기는 고통의 냄새-황영경, 〈황색 바람〉 /21 고독에서의 성찰 천치냐? 천재냐? 혹은 우리 도시의 고독 -윤진상, 〈우리 도시의 P씨〉 /23 고독의 상황과 인간 존엄에 대한 질문-고영엽, 〈황혼의 만가〉 /26 적막과 외로움 속에서 별 따기-이길환, 〈별 따는 밤〉 /28 문체의 여운과 독수리의 생태학-서기향, 〈욜하트〉 /30밤의 정감 속에 허물어지는 마음의 철책선-지요하, 〈우리 마음의 철책선〉 /33 도피와 고립에서 벗어나 타인과 소통하기 -성지혜, 〈왕따들의 행진〉 /3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 자의 발걸음 과거의 아버지와 현재의 아버지-오연수, 〈내 둥지에 날개 접고〉 /42 고흐의 열정과 구연필봉의 이야기-오광진, 〈론강에 핀 해바라기〉 /47 33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맛비-이선구, 〈보리장마〉 /50 낯선 곳에서 타인과 하나 되기-양원옥, 〈예라이시앙〉 /53 인연에 대한 몇 가지 소설적 해석 수면 아래에서 튀어오르는 인연의 파도-박명희, 〈충주호〉 /59 악연에 대한 절규와 농본주의적 상상력-윤찬모, 〈농녀〉 /67 이야기꾼과의 기묘한 인연에서 발견하는 소설의 의미 -김인배, 〈핑계〉 /70 얽히고설킨 인연과 타자를 향한 양가적 시선의 문제-김용필, 〈코 폴리네시안〉 /75 쓸쓸한 뒷모습의 소설적 포착 모순적 황홀경의 목격담-최규익, 〈늑대는 오빠가 아니야〉 /79 황혼의 고독-정안길, 〈나 먼저 가네〉 /84 타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자아 성찰의 여정-이충호, 〈마음에 지는 별은 돌아오지 않는다〉 /88 통속을 넘어 인물의 내면 탐색으로-손경형, 〈한 발로 널뛰기〉 /92 인상적 장면의 제시와 단편의 미덕 가상과 실재 사이의 방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 -박영경, 〈깊고 푸른 외출〉 /97 첫사랑의 순수함으로-표중식, 〈메아리〉 /103 글쓰기의 치열함에 관하여 -류서재,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말들에 관하여〉 /107 대상에서 주체로의 비약-백지영, 〈언니를 위하여〉 /110 황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존재론적 통찰-강인수, 〈하얀 노을〉 /114 갈등과 긴장의 목소리 간결함과 둔중함의 조화-권순악, 〈어떤 효도〉 /120 서정적 미문주의와 무갈등의 세계-정성수, 〈손님〉 /123 인간과 운명의 대결에서 발생하는 극적 긴장-강성숙, 〈아우라지〉 /126 현실에 관한 언설과 소설의 형식-정광모, 〈시시포스 묻히다〉 /129 또 다시 상처를 버리기-김광님, 〈석류송〉 /134 적막과 공허의 목소리 시간을 초월한 아버지와의 대화-손정모, 〈일몰의 파동〉 /137 감정의 파도와 여운-김재순, 〈행복한 눈물〉 /140 ‘우주의 소리’를 찾아가는 발걸음 -김병덕, 〈그 소리 쪽으로 한 발짝 더〉 /145 ‘일정거리 유지’의 객관적 관찰-윤원일, 〈영도 가는 길〉 /149 꿈꾸는 자들의 메아리 모순과 공감의 이중주 -윤진상, 〈조작된 미래: 지어지지 않은 건물의 잔해〉 /157 소유냐 존재냐-심아진, 〈도약〉 /162 시간의 아포리아-유금호, 〈시간에 관한 임상연구 사례 하나〉 /168 새로운 가능성의 향연 괴물과 언캐니-김영옥, 〈게으른 놈〉 /175 기분의 서사와 비상의 이미지 -김종옥,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177 베이스캠프를 떠나며-은소정, 〈베이스캠프〉 /181 현실에 대한 감각과 소재에 대한 통찰의 반짝임-이병순, 〈창〉 /185 진부함을 뒤집기-최은순, 〈로딩하는 여자〉 /189 아이러니와 화두의 제시-이강숙, 〈시 빠진 소설〉 /191 공감에 이르는 길 비극의 현대적 해석-박정규, 〈누구나 혹은 아무도 아닌〉 /198 사람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하여-김영민, 〈블랙 타운〉 /202 신기함과의 조우-권이삼, 〈그곳에 달마가 있다〉 /205 낯선 소재에 대한 공감의 창출-엄상익, 〈경계성인격장애〉 /207 삶의 균열을 그려내는 방식 상류층의 생활 세계를 담아내는 세련된 문장의 힘 -최일옥, 〈두꺼비 되던 날〉 /210 중산층의 붕괴와 아버지라는 존재 -임수랑, 〈국민교육헌장은 잘 외우는지〉 /214 엉겨 살아가는 하층민의 용기-박영해, 〈제대로 엉겨 살아야지〉 /217 낯익은 삶의 이질감에 관하여 과장과 미화를 넘어서-이덕화, 〈타자의 초상〉 /221 감각과 감정의 결정화 작용-이목연, 〈맨발〉 /224 알레고리와 냉소의 시선-김중상, 〈마술〉 /227 고통의 깊이와 허무의 무게-심강우, 〈흔적〉 /230 기법의 활용과 주제의 심화 그 여자의 상처를 드러내는 법-우계숙, 〈송진의 향기〉 /235 개 같은 인생, 공감과 화해의 따뜻함으로-김진초, 〈개년〉 /239 사막을 건너는 법-김성달, 〈낙타의 시간〉 /243 조롱과 냉소의 기법이 향하는 곳-서한경, 〈소풍〉 /247 형사가 찾아낸 것-김명조, 〈한탄강〉 /250 이야기는 힘이 세다 운명을 다루는 작가의 기량-이종학, 〈멍석말이의 그림자〉 /254 구성의 탄탄함과 디테일의 섬세함-양창국, 〈어느 한해〉 /257 풍문과 꿈결의 노랫소리-고선, 〈복숭아나무 그늘〉 /260 실존 인물의 재현을 위한 노력-박하식, 〈몽화각〉 /264 가족의 이름으로 평범한 드라마를 넘어서-박선일, 〈비눗방울 사랑〉 /268 세상의 모든 자식들을 향한 이야기-박주원, 〈더러운 젖〉 /271 53년의 기다림-김승섭, 〈국화빵〉 /274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넘어서-최민초, 〈정사〉 /277 혼란과 매혹의 양면성-김채형, 〈물안개〉 /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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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린 인체를 냉동하였다가 의학 기술이 발전된 미래의 시점에서 소생시켜 병을 치료한다는 이야기는 SF소설의 단골 소재이다. 냉동되었다가 2050년에 소생한 인물인 박민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의 초반부 역시 평범한 SF소설처럼 보인다. 깨어난 박민서가 보고 듣는 것은 현재로부터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실현될 갖가지 신기술에 대한 정보로 채워져 있다. 미래의 세상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 손목에 내장된 칩을 통해 의학 정보를 송수신하는 기술, 손가락 하나로 신원 확인과 금전 결제가 해결되는 기술, 바닷물을 정화하여 음용수를 공급하는 기술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는 40년 후의 미래 세계에 대한 예측과 전망이 아니라 제목에서도 암시되듯 시간에 관한 인간의 본질적인 인식에 집중된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현란하게 펼쳐지는 미래 기술 묘사가 일단락되고 나면, 주인공 박민서는 ‘슬로 시티(Slow City)’로 가서 과거의 향수를 복원한 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미래 세계에 대한 청사진은 점차 서사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더욱이 작품은 박민서가 사고를 당하기 전, 친구인 한영우 박사와 장훈 화백, 한영우의 여동생 한미혜와 함께 노르웨이 여행을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때로는 시간을 더 역행해 세 친구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노년의 인물이 젊은 시절을 넘어 까마득한 유년기까지 회상하는 시간의 역전이 이 작품의 주된 서사 전개 방식이라면 2050년 미래 세계에 관한 신기한 정보들은 인간 생명의 지속을 비약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동원된 서사적 방편이라 볼 수 있다. 즉,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역전에서 발생하는 현재와 과거의 격차를 더욱 현저하게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장치인 셈이다. 작품 속에서 박민서는 3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냉동 상태에서 깨어났고, 그 3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 동안 주위 사람들은 철저히 변해버렸다. 시간의 격류에서 홀로 배제되었던 박민서는 그 변화의 충격을 가장 고스란히 증언하고 인식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다. 이때 박민서가 경험하는 변화와 시간의 격차는 작품 내에서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의 충돌이라는 모티프로 제시된다. 한영우 박사. 아니 영우. 지금 나, 내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았네. 자네, 그 ‘시간’의 이중성을 꼭 내게 증명해보여야 했나? 30년의 객관적 시간과 내가 느끼는 주관적 시간 차이를 자넨 내게 확인시키고 싶었던 모양이지. 벼로 유쾌하지 않지만 자네 실험은 성공했다고 해야겠지. 내 시간은 멈추어 있었으니까. 나 개인으로는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고 해야 하나? 망가진 육신 일부가 수리되었다니 혼란스럽네. 지금은 같은 장소가 시간에 따라 얼마나 이질적일 수 있는지 자네가 확인시키고 있는 것 같군. 걸어 다니고, 뒹굴고, 커피 마시던 장소가 낯설어지고, 소실되고, 이질화된 시점에 나를 던져 놓고 내 반응을 자네가 지켜보는 기분이 드네. 그나저나 내가 쓰러지고 객관적으로 30년이 지나갔으면 내 나이는 도대체 몇 살인가. 쓰러진 게 60대였으니 내 나이가 100살 전후여야 하는데, 자네 조카, 연구소 소장 말로 내 육체 나이가 50대 중반이라니, 그럼 ‘나’는 어디에 있는 건가? 과거에 내가 살았던 ‘나’와 지금 ‘나’는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존재인가, 아니면 ‘복사물’인가? --- 「시간의 아포리아-유금호, 〈시간에 관한 임상연구 사례 하나〉」 〈핑계〉는 ‘나’와 어느 돗자리 장수 노인과의 ‘기묘한 인연’을 다루고 있다. 노인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 테니 재미있으면 돗자리를 하나 사라.’라는 특이한 제안 끝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고, 소설가인 ‘나’는 이야기꾼의 입담에 매료되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소설가가 이야기꾼을 만났다는 설정이다. 이야기(서사)를 다루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소설가와 과거의 이야기꾼은 본질적으로 같은 일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감탄을 멈추지 못하는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소설적 진실을 간취하였기에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며, 이에 이 작품은 소설가 소설의 유형에 속하게 되며 서사성 자체에 대한 인식을 개진한다는 점에서 메타픽션적인 면모도 일부 지니고 있다. 돗자리를 파는 상인과 그것을 사는 손님의 관계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과 그 이야기를 듣는 청자 사이의 관계와 일치한다. 상인이 가격을 제시하고 손님이 만족하면 구입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상인의 입장에서 물건을 팔게 되면 이익이 남지만, 팔지 못하면 이익은 제로가 된다. 손님을 향한 상인의 대화는 일종의 ‘목숨을 건 도약’에 가까운 것이며 이것이 교환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야기꾼과의 기묘한 인연에서 발견하는 소설의 의미 -김인배, 〈핑계〉」 중에서 이른 새벽, 잠에서 막 깬 주인공 ‘나’는 극심한 고통에 휩싸인다. 냉기와 통증이 뒤엉켜 공포마저 자아내는 순간, 의식은 흐릿하고 꿈과 현실의 경계마저 아득하다. 주인공을 덮친 이 기분 나쁜 통증은 결말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며 서사를 이끈다. “이 기분 나쁜 통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뇌리에 떠오른 단순한 의문을 넘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실질적인 원동력이다. 이 통증은 어디서 연유했으며, 무엇을 예고하는 징후인가? 갑작스러운 통증의 정체를 묻는 질문은 서사 내내 그 원인 찾기로 독자를 몰아가며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그것이 ‘심장마비’였음이 밝혀진다. 비록 통증의 원인이 심장마비로 밝혀지기는 하나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그 고통이 단순한 육체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음이 곳곳에서 암시된다. 주인공이 느끼는 통증에는 뼛속까지 스미는 ‘냉기’와 온몸이 오그라드는 ‘추위’ 등 낮은 온도와 직결된 감각들이 겹쳐 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느끼는 통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주인공이 느끼는 통증은 왜 유독 추위와 연결되어 있는가?”로 방향을 틀어야만 작품의 진짜 주제에 가닿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한 남자가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절감하게 되는 뼛속 시린 추위, 즉 인생의 짙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내야 한다. --- 「감각과 감정의 결정화 작용-이목연, 〈맨발〉」 중에서 2011년 여름,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조직된 ‘희망버스’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이 현장에는 숱하게 상충하는 언설들이 맞부딪쳤다. 조선소 파업을 지지하는 ‘희망버스’와 이를 저지하려는 ‘어버이연합’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몰려가 정면충돌했고, 현지에서는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 부르며 생활권 침해를 호소하는 부산 시민과 파업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연대 지지하는 부산 시민 간의 갈등도 팽팽하게 얽혀 있었다. 200자 원고지 320매 분량에 달하는 윤원일의 〈영도 가는 길〉은 3차 희망버스를 배경으로 삼아 그 전후의 다층적인 풍경을 폭넓게 스케치한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 사건을 대립하는 두 진영 간의 평면적 충돌로만 규정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그 이면에 숨겨진 사태의 복잡한 진실을 포착해 낸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소설가 K씨가 행사 하루 전인 오늘밤 늦게라도 부산에 가려는 덴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한 여자 노동자가 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이백일 넘게 초인적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가 K씨는 행사차량이 몰려오는 내일은 한진중공업 조선소 정문 앞은 물론이고 영도다리와 주변도로가 봉쇄될 거란 뉴스를 듣자 오히려 더 큰 호기심이 들었다. 도전의식 같은 게 생겨났다. 그 시각 서재에만 처박혀 있다면 이 역동적인 세상사로부터 동떨어져버릴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희망버스 현장을 목격하고 싶어 안달하도록 만든 건지는 스스로도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려웠다. 평소의 생활신조나 이념 같은 걸 생각해 보면 의외의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내가 그 위험한 시위 현장엔 왜 내려 가냐고 책망했을 때 소설가 K씨는 궁색하나마 다음과 같이 대답했었다. “흥미롭잖소. 한쪽에선 희망버스라 부르고 다른 쪽에선 절망버스라 부르니 말이오. 불화하는 세상을 이처럼 잘 웅변해주는 경우가 없겠다 싶은걸.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 「‘일정거리 유지’의 객관적 관찰-윤원일, 〈영도 가는 길〉」 중에서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욕망 한 자락을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놓아둔 채 묻어둘 것인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남자가 마주하고 있는 고민이다.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딸아이는 어느새 부쩍 성장하여 교복을 입을 나이가 되어 있었고, 오랜만에 딸을 만난 남자의 눈에 단정한 교복 차림의 아이는 무척이나 예뻤다. 그러나 그 남자는 딸에게 예쁘다는 말을 쉽게 건네지 못한다. 남자는 두 팔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아빠를 기쁘게 하는 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따름이다. 눈치가 자랄 대로 자란 딸아이는 혹시 자신이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은 아니냐고 물어오지만 남자는 아니라고 변명을 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기에 섣불리 딸에게 애정을 쏟았다가 혹여 딸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인지 남자는 시종일관 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딸에게서 멀어지지도 못한다. 이러한 모든 망설임과 안타까움의 배경에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절망이 사막처럼 펼쳐져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남자의 복잡한 심경은 짙은 모래바람의 이미지를 통해 효과적으로 형상화된다. 시야를 가리는 황사는 혼돈으로 빠져드는 남자의 내면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잘 쓰인 이미지즘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감상을 자아낸다. 황사의 이미지는 표면적인 현상을 넘어 심층적이고 미묘한 의미를 생성하는 데 기여한다. 전국적으로 황사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지독한 모래바람 속에서 아이의 얼굴 윤곽마저 흐릿해진다. 길에는 모래가 자욱하고 머리 위로는 모래비가 흩날려 마치 사막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방은 어둠으로 짓눌리고, 짙은 바람 탓에 사물들은 형체를 잃어간다. 아이가 모래에 묻혀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움, 갑작스레 나타난 고양이에 놀란 아이가 팔을 뻗어올 때 전해지는 불안감 속에서 부녀는 아슬아슬하게 사막의 길을 걷는다. 곁에 선 아이마저 어둠과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지독한 절망과 불안의 시간이다. 감자탕 그릇을 말끔히 비운 아이의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볼에는 발그레한 더운 기운이 노을처럼 번져 있었다. 물로 입을 헹군 아이가 정말 맛있었다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포만감 같은 행복이 태수의 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아, 이렇게 살 수 있으면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반 토막 난 지렁이의 몸뚱이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태수는 이런 욕망이 두려웠다. 욕망을 구체적인 행위로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욕망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었다. --- 「사막을 건너는 법-김성달, 〈낙타의 시간〉」 중에서 글쓰기는 행복한 작업이다. 한 편의 작품을 쓰는 일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희열을 맛보는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글쓰기는 불행한 작업이다. 희열 속에서 창조한 세계가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기껏 만들어놓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순간, 창작의 희열은 이내 허무와 두려움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류서재의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말들에 관하여〉는 불행한 작업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말하고 있다. 일인칭 서술자 ‘나’는 갓 등단한 신인 작가이다. 아직까지 등단 축하 인사를 건네받을 정도이니 ‘나’의 글쓰기는 행복한 작업이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작품에서 ‘나’의 상태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나’에게는 아직 팔리지 않은 자신의 책으로 가득한 택배 상자가 배달된다. 세 평짜리 초라한 방, 창작의 희열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던 그 공간에는 배달된 세 개의 커다란 박스가 위압적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다. 독자와의 소통이 차단된 채 작가에게로 되돌아온 책에 포위된 ‘나’에게 글쓰기는 결국 불행한 작업이 되고 말았다. ‘나’는 책을 싸 들고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는 아직 등단하지 못한 시인이며 말을 더듬는 언어장애를 지니고 있다. 마침표 대신 쉼표로 이어지는 친구의 말은 단절되고 파편화된 채 ‘나’의 귓가를 스친다. 작가는 진실한 입을 가져야 하며 펜은 지성의 칼이라는 친구의 말은 ‘나’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채 단속을 반복할 따름이다. 글쓰기는 행복한 작업이라는 관념, 진실과 지성의 성채를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신비롭고 성스러운 것으로 만들겠다는 소망은 더듬거리는 친구의 말 속에서 희미해지고 힘을 잃어갈 뿐이다. --- 「글쓰기의 치열함에 관하여-류서재,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말들에 관하여〉」 중에서 “소유하는 것만이 존재의 현시가 된다.”라는 명제는 〈도약〉의 주인공 외씨 부인의 생활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유명 대학이 운영한다는 프리미엄 덕에 아이당 백만 원이 넘는 영어 캠프에 자녀를 보내고, 명품 투피스를 걸친 채 유기농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브런치 모임을 갖는 외씨 부인은 전형적인 강남 주부이다. 생존 투쟁과는 거리가 먼, 안정적이고 호사스러운 생활이 곧 그녀의 일상이자 삶 자체이다.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훗날 자녀들이 어엿한 강남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 문제에 쏠려 있으며, 영어 캠프는 물론 대치동 영어 학원에 보내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한다. 이때의 교육은 지식과 학문에 대한 본원적인 목적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의 근거를 마련해 줄 부의 재생산을 도모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서의 의미가 앞선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소유로부터 오는 존재의 안정에 대한 갈망은 그녀의 생활 습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바로 물건을 두 개씩 사는 강박적인 버릇이다. 어떤 물건이든 하나를 사면 왠지 불안해서 같은 것을 두 개씩 사곤 하는 외씨 부인이었다. 물론 고가의 물건이야 그럴 수 없지만, 푼푼이 드는 액세서리라든가 옷, 모자 등은 늘 잃어버릴 것을 대비해 하나 더 사놓아야 안심이 되곤 하였다. 신발의 구두굽이 수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다든가, 귀고리 한 짝이 빠져버려 외짝이 된다든가, 마음에 드는 옷이었는데 올이 터져 다시 사려하지만 재고가 없다든가 하는 불상사에 대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작은 물건들을 두 개를 끼거나 꽂았고, 그럴 수 없을 때는 가방 속에 나머지 하나를 가지고 다녔다. 물론 예상했던 그런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없어졌던 목걸이나 반지는 세면대 위나 이불 사이에서 다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옷은 하나를 버리고 남은 하나를 입게 될 즈음이면 이미 그곳에 싫증이 나기 일쑤였다. 두 개를 사는 것이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외씨 부인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버릇을 오래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 「소유냐 존재냐-심아진, 〈도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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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가
-장두영 평론집 『공감의 서사학』 출간!! 『공감의 서사학』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문학의 노력에 대한 응답이며, 동시에 우리 시대 소설들이 품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진지한 탐색의 결과이다. 이 책은 “소설은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가. 그리고 문학은 어떻게 독자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타자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언어로 확장되는가?” 장두영 평론가의 신작 평론집 『공감의 서사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삶의 풍경과 인간 존재의 상처를 따라가며, 문학이 지닌 공감의 가능성과 서사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한다. 『공감의 서사학』은 유금호, 김인배, 윤원일, 김성달, 심아진, 류서재, 이목연 등 70명의 소설가들이 발표한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각 작품이 품고 있는 고통과 상실, 기억과 사랑, 소외와 연대의 문제를 세심하게 읽어내면서, 문학이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에서 장두영 평론가는 소설을 단순한 이야기의 집합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서사가 인간의 감정을 매개하는 통로이자,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공감의 장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삶을 경험할 수 없는 인간이 문학을 통해 타인의 아픔과 기쁨을 상상하고 공유하게 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특히 『공감의 서사학』은 우리 시대 소설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기도 하다. 불안과 고독,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 사회적 상처와 인간적 회복 등 동시대 문학이 천착해온 문제들을 폭넓게 조망하며, 오늘의 소설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두영의 평론가의 비평은 작품을 재단하거나 평가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작가가 구축한 서사의 결을 따라가며 그 안에 스며 있는 인간의 체온과 시대의 징후를 읽어낸다. 때문에 이 책은 문학 연구자와 평론가뿐 아니라 소설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서로의 삶이 점점 단절되어 가는 시대, 이 책은 문학이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깊고도 따뜻한 언어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문학은 결국 타인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노력이다. 『공감의 서사학』은 그 노력의 흔적을 따라가며, 오늘의 독자들에게 공감의 의미와 서사의 가치를 새롭게 되묻게 하는 의미 있는 비평서로 자리할 것이다. 작가의 말 우리는 수많은 서사 속에서 살아간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활자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가 굳이 소설이라는 오래된 거울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일상에서는 눈여겨보지 못하는 삶의 이면, 즉 보이지 않는 상처와 그늘을 응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타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들의 고통과 슬픔, 고독과 환멸을 겪어보는 일. 그것이 소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쓰임이라고 믿는다. 이 책 ≪공감의 서사학≫은 바로 그러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소설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감각하고 언어화하는가 그리고 그 텍스트는 어떻게 독자의 내면으로 흘러들어와 타자를 향한 이해와 공감으로 확장되는가. 이 책에 묶인 글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응답이자 우리 시대의 소설들이 관심사에 대한 탐색의 결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