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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주요 사건과 배경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소크라테스의 변론》 해제《크리톤》 해제역자 후기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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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모른다’로 끝맺는 소크라테스의 철학도대체 무엇이 옳은 일이고 시민들에게 유익한 일인가? ‘나는 모른다’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모른다’로 끝맺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철학을 한다는 것’은 앎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여정임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검토하도록 이끌고 있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지를 밝히려고 애썼던 것은 델포이의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없다’라는 이 신탁의 참뜻을 알기 위해 지혜자들을 만나 그들이 진짜 올바른 앎을 가지고 있는지 검토하고 확인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지혜로운 것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소크라테스는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을 무지와 편견에서 해방시키는 일이 자신에게 부여된 신의 소명이라고 여겼다. “내가 이 사람보다는 지혜롭구나. 아마도 우리 중 누구도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 그런데 이 사람은 알지 못하면서도 자 신이 뭔가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실제로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비록 작 은 차이이지만 나는 적어도 이 점에서 저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듯하다. 알지 못하는 바를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이런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자는 후기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진정으로 원했던 바는 ‘어떤 행동을 해야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무슨 말을 해야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가’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 일이고 시민들에게 유익한 일인가?’였다.” “우리는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탐욕의 시대, 불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법정 변론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닌가?’ 하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으로 읽는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크리톤〉 국립아테네대학교 철학박사 오유석 교수의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쉬운 번역과 작품 해제로 생생한 현장 재현 이 책의 번역은 국립아테네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오유석 교수가 맡았다. 그는 고대 서양철학을 다룬 여러 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출간한 정통파 고대 서양철학 연구자로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했다.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지금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번역했다. 그동안 여러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대부분 중역이거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법정 변론 현장과 그가 탈옥 대신 죽음을 택한 경위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인명과 지명 또한 고대 그리스어 발음에 충실하게 표기했다. 가령, 외래어표기법상 ‘Αθηναι’는 관용에 따라 ‘아테네’로 표기하지만, 고대 그리스어 발음인 ‘아테나이Athenai’로 표기했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시대적 배경이 고대의 법정 변론이기에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전한다. 본문 바깥에 표기된 아라비아숫자와 로마자는 ‘스테파누스 표기’에 따른 것이다. 스테파누스가 1578년에 플라톤 전집을 세 권으로 편집하여 발행했는데, 이때 세로 단을 다섯 단락으로 나누어 로마자를 써놓았다. 플라톤 저서의 인용은 스테파누스 판에 들어간 쪽수와 판본의 단락을 함께 적어 사용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스테파누스 판본의 1권 17a~42a에,《크리톤》은 43a~54e에 수록되어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작품 해제와 각주도 꼼꼼히 달았고, 본문의 내용과 어울리는 자크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비롯한 그림도 수록되어 볼거리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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