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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사과깎기 이명 여름 프리즘 바람의 정거장 여백 천사는 언제나 맨발이어서 푸른 비 아내 루소의 정원 탁란 바람이 전하는 말 절창 소멸에 대하여 침잠 2부 우리는 빙산처럼 12월 상승하는 벽 우수아이아 달의 심장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떠도는 저녁은 전적신고 서머타임 새의 몸속에서 숲이 태어난다 빛의 대화 바람의 뒤편 당신이 고인 우물 나의 미래 완료 정처 3부 누에보 다리에서 쾌락의 정원 브이로그 톨레도 환상 기행 여름 삽화 피라칸사스 변신 왜가리 종이컵 스캔 썰물 가을 장마 4부 죽은 것들이 날아오른다 오른다는 것 돌기둥 물태리역 습유 괴정삼거리 바람개비 환청에 대하여 겨울 비망록 폭설 백신시대 가을과 겨울 사이 안개 나의 셈법 해설_ 떠난다는 것,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신정민(시인) |
김지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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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을 도려낸다
누군가 잘라놓은 탯줄 한나절 냉이 꽃술 같은 햇살 눈부시다 면사포 쓴 강물 가진 것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흰 낮달 돌리며 둥근 숲 하나 측량한다 ---「사과 깎기」중에서 가을은 너를 번역하는 일이다 알 수 없는 몸짓들 한밤중 보리차 끓는 소리로 운다 달의 고요 귀 안에 있는 신비로운 악보를 위해 풀벌레들이 운다 나뭇잎들이 소리로 깨어난다 하늘 높이 쏘아 올린 귀 한쪽 눈먼 낮달의 행선지를 더듬는다 세상의 모든 숲길 달빛으로 물든 동굴이 깊어 직박구리의 높은음자리 밀려오고 밀려오는 밤 귀를 앓는다 절벽이 적막을 길어 올릴 때까지 ---「이명」중에서 알몸의 나무들이 눈부신 살갗을 드러낸다 키다리 겨울은 환승역에서 발을 내딛고 편백나무 숲, 링컨의 움푹 파인 눈동자가 생각에 머무는 사이 꽃구름 몇 장 수척한 겨울의 속살을 뒤척인다 뼛속까지 환한 벌거숭이 나목 사이로 더디게 돋아나는 수원지의 입춘방은 안구건조증을 앓는다 꽃눈 틔운 벚나무들 화색이 부푼다 부드러운 조막손 빌려 꽃소식에 취하는 자세 벌거숭이 바람이 실성한 웃음을 퍼뜨린다 뒤척이는 바람의 언어, 야생의 향기를 부추긴다 빛바랜 겨울 메모장을 끄적이는 적막 고목 한 그루의 사색이 돋아난다 소리 없는 감탄사 고독을 짓씹는다 ---「바람의 정거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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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보이지 않는 것은 멀리서 오고 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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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서 있는 아이의 파노라마! 김지은의 시를 읽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생각났다. “순진무구하며,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이라던 니체의 어린아이.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던 일을 금새 잊어버리고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는 어린아이. 그러나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 김지은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만나기 위해 떠나고, 마주치고, 돌아온다. 순수와 긍정의 놀이. 마주 보고 있는 존재들이 들려주는 말에 김지은은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지은의 시에서 ‘듣다’에 주목해야 한다. 듣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세계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의 연민이 아이처럼 보인다. “귀를 앓는다/절벽이 적막을 길어 올릴 때까지”(「이명」), “내 귓속으로/쇄빙선 한 척 다가오고 있다”(「우리는 빙산처럼」), “아이들의 근황에 귀 기울인다”(「서머타임」)에서 보면 귀를 앓고 있는 시인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그 앞에서 같이 귀 기울이며 겸손해질 뿐이다. 김지은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아이의 호기심이 자신의 바깥으로 장난스럽게 뛰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자신의 몸 밖에서 뛰는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타인의 심장소리가 곧 자신의 심장소리이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무엇인지 조금 더 잘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동안 시인은 낯선 곳에 서 있곤 한다.(…) 시작(詩作)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느끼고 성찰하는 것이다.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닌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시인이 발견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시의 창조적인 행위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시인 김지은 역시 호모 노마드인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움직임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시간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며 다양한 연결을 이뤄내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인이 태어난다. 김지은 시인은 낯선 장소나 사물, 사람들과 함께 기존의 틀에 박힌 생활과는 다른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다양한 연결접속을 통해 시는, 시인은 다양체가 된다. 유목민적 삶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무수히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 힘이 느껴질 때마다 방향을 틀어 떠나고 떠난 곳에서 김지은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김지은 시인은 떠나고, 떠난 곳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서 있는 그곳이 상승에서 하강 중인 허공임을 감지하고, 허공에서 본 찰나의 것들을 풍경으로 그려내고, 이어 소멸을 체감한다. 내가 누구인지, 시인이 이 끝없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안위를 두고 불편한 쪽으로의 움직임이다. 늙어가고 있는 불면의 밤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 신정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