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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무지개 산책 1 산책 2 산책 3 산책 4 산책 5 산책 6 산책 7 산책 8 배롱나무 하늘 지우개 폐교 탱자나무 책방 할미꽃 2부 초생달 어머니 1 어머니 2 어머니 3 어머니 4 어머니 5 어머니 6 어머니 7 내 병은 오래 되었으나 양파 1 양파 2 밤나무 1 밤나무 2 상사화 1 상사화 2 3부 창가에 앉아 폐왕성 1 폐왕성 2 폐왕성 3 폐왕성 4 폐왕성 5 삼월의 크리스마스 청마를 찾아서 1 청마를 찾아서 2 청마를 찾아서 3 청마를 찾아서 4 청마를 찾아서 5 한하운 시인을 생각하며 푸른 집 4부 사월의 눈보라 혁명 이후 대통령 만델라 백두산에 올라 1 백두산에 올라 2 어니스트 헤밍웨이 생가에서 사직동에는 야구공이 자란다 1 사직동에는 야구공이 자란다 2 사직동에는 야구공이 자란다 3 선교사의 말씀 1 선교사의 말씀 2 아프리카 선교지를 찾아 겨자씨 해설 산책과 여행, 길 위의 시학 _황선열(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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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눈물 끝에는
마음에도 깊은 골짝 생긴다 사람들은 본 적 없다 하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하늘과 내통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보았다 ---「무지개」중에서 한가할 때 산으로 간다 올라가서 나도 산이나 된다 발길 닿는 데까지 가서 먼 곳이나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바위에 기대어 흐르는 구름이나 본다 이제 더 이상 아무 일도 없는 나는 잡풀처럼 누웠다가 초록 수풀에 머리 감는 시늉도 한다 산에서 사람과 마주치면 나 혼자도 너무 많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지나간다 에둘러 집으로 가는 길 산 짐승들의 놀이터가 된 무덤을 지나 집이 가까워지자 나만 코끝이 탁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저무는 마을에 대낮보다 붉어지는 문명이 오늘따라 몹시도 야속하다 ---「산책 1」중에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만나는 사람을 피하며 간격을 두고 걷는다 왁자지껄 만났다 흩어지는 바람소리 들으며 이 길을 가서는 영 돌아오지 않은 이웃 사람 생각난다 어딘가 깊은 곳을 건너갔다는 것일까 죽음 또한 어느 날 뚝 그쳐 버린 매미 울음 같은 것 이파리처럼 가벼워져서 지구의 계단을 내려오며 중얼거린다 생은 짧고 하루는 길다 ---「산책 2」중에서 읽던 신문을 덮고 새로운 세상을 생각한다 걷는 사람은 먼 곳이 있는 사람 잃어버린 먼 곳을 찾아간다 너무 많은 표지판을 지나서 다채로운 방향으로 날아가는 새들 바라본다 살점 파는 바람소리 묵언으로 받으며 겨울산이 바람을 뜯어먹는다 줄기차게 걷는 사람은 눈빛 하나로 잘 익은 것들을 제압하는 힘이 있다 내가 당도해야 할 먼 곳은 가도 가도 여기가 그곳이다 나는 가끔씩 흐릿한 눈빛으로 갈아 끼운다 ---「산책 3」중에서 뾰족한 주둥이로 바람을 툭툭 치며 꽃 피고 싶은 것이 어디 봄꽃뿐이랴 몽골몽골 얼굴 내미는 저것은 샘물 숨가쁜 허기로 씩씩거리며 나도 꽃 핀다 우쭐우쭐 앞서 피는 진달래 아직 피지 못한 것들은 두근두근 먼 산 넘어가는 구름이 피고 구불텅거리며 산들이 피고 저기 저 줄지어 선 벚나무 차오르는 몸이 무거운지 해질녘 능선 위에 걸터 앉았다 오늘 같은 내일은 없는 거라며 피었던 어제가 옛날이라고 나는 나를 읽고 있다 사랑은 흔적도 없고 슬픔은 봄으로 와서 간다 ---「산책 4」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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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돌아보면 모두가 없는 것들이다 오늘은 살아 있고 지금은 고요하다 내일은 기록할 수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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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집은 은목서 한 권이다. 그곳에는 새와 햇볕이 깃들기 좋아서 독자는 그녀가 풀어놓는 서정에 함께 하기 좋다. 제 6시집 「걷는 사람은 먼 곳이 있는 사람」은 그녀의 성품처럼 은은한 향을 풍기는 ‘기억의 시학’이다. 「산책」, 「어머니」, 「폐왕성」 등의 연작시는 대표성을 가진다. 그것은 그녀 태생의 곳 ‘산방산’의 한 기슭이기도 하겠고 비밀한 숲을 가진 산책길과 비극의 왕가 역사이기도 하겠다. 이어지는 「어머니」 시편에서는 가족의 세계를 등장시키며 자신의 육체 속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기억과 안타까움을 말한다. 기억은 성장하여 밥을 짓고 자식을 낳고 시인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 일도 없는 나는/잡풀처럼 누웠다가/초록 수풀에 머리 감는 시늉도 한다.” 「산책 1」에서 그녀는 생물학적 나이에 이르른 자신의 실존을 말한다. 한 인간의 삶은 무수한 실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 역시 숱한 실존을 지나 ‘지금’에 있다. ‘지금’ 또한 ‘과거’의 틈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성찰의 남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 손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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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과 여행길이 끝나는 곳에서 그녀는 “하늘과 내통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발견하고 있다. 그 찬란한 무지개를 보러가는 길의 끝에서 그녀와 함께 서서 그 아름다운 길을 바라보고 싶다. 그녀는 삶의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 그녀의 시는 가볍고, 지극히 평범하다. 시어도 어렵지 않다. 다른 시인들처럼 시적 기교를 부리거나 낯선 언어로 비유하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도 평범한 시들이라서 가볍게 읽힐 수도 있다. 그것이 그녀의 시적 한계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적 한계라고 할 수 없다. 어떤 평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다른 시인들이 기교에 물들어갈 때 그녀만이 유일하게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 그저 묵묵히 시인의 자리 끄트머리에 앉아서 시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저 평범하고 가볍게 보일 뿐이다.
그녀가 평상이야말로 지극한 길[道]에 이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시집을 읽으면 그녀의 시에 나오는 가벼운 일상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가는 깨달음의 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가볍게 놓치고 있는 일상들이 모두 참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고, 그 참된 깨달음의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은 가벼운 산책길에서 만나는 작은 생명들에게도 있고, 여행길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들 속에도 있다. 이 때문에 길에서 시작해서 길에서 끝나는 그녀의 시적 여정은 삶을 깨닫는 과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모든 풍경들이 가장 소중한 삶이요, 지극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 황선열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