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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문찬
나무옆의자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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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입당식
강도
제보자
지하당 사건
보좌관
병문안
동아리
조국통일위원회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
미제의 간식
수령론
파리코뮌
장학금
프락치
미영
삼각관계
접선
상구와 준구
분신
공동투쟁
노선투쟁
패배
결혼
문상
사인死因
조짐
납치
경석의 이야기
드보크
기자
성찬의 이야기
역습
제보
동희의 이너서클
당원증

작가의 말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다. 직장을 다니며 다른 필명으로 몇 편의 소설을 썼다. ‘라문찬’은 레이먼드 챈들러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에드거 앨런 포를 흠모하여 이름마저 바꾼 추리 작가 에도가와 란포처럼 되고 싶었다. 앞으로 라문찬이라는 이름으로 추리나 미스터리를 기본으로 한 융합장르소설을 쓰고자 한다. 공동작품집 『연애소설 읽는 로봇』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에 단편소설을 수록했으며, 「기억의 주인」 「메다스」 「차이니스 와이너리」 「광자력빔의 사용승인」 「승진과학혁명」 외 다수의 단편을 온라인 플랫폼에 발표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135*200*25mm
ISBN13
9791161571591

책 속으로

“김 기자, 우동식이 죽기 전날에도 전화했다고 그랬지? 왜 첫날에 바로 제보하지 않고 군불만 땠을까?”
“음…… 첫날에는 제보한다고 했다가 금방 말을 바꿔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이 사건의 실마리는 바로 거기에 있어. 왜 제보자는 두 번에 걸쳐 전화를 했을까? 왜 처음에 제보한다고 했다가 하루를 기다려달라고 말을 바꿨을까?”
“모르겠네요. 선배님 생각은 뭔가요?”
“범인이 우동식의 지갑을 훔쳤다고 했지? 혹시 우동식이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지 않고 조회만 하진 않았나?”
“앗!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강민재는 쿡쿡 웃었고 소미는 소름이 돋았다.
--- p.33

내가 정치를 하면서 마음속에 두 개의 상자를 만들었어. 첫 번째 상자에는 상황에 따라 전술적으로 배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넣었지. 살다 보면 친구도 적이 될 수 있고, 은혜도 저버려야 하는 순간이 와. 하지만 인생에서 절대로 배신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 난 그런 사람들을 두 번째 상자에 모아두었지.
--- p.48

지금은 1980년대 이후 급진적 이념을 따랐던 운동가들이 장악한 세상이다. 30여 년 전 성찬이 학생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상했던 대로, 노선투쟁에서 승리하고 제도권에 진입한 그들은 그들이 맞서 싸웠던 적들보다 더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권력으로 변화했다. 그들은 정권을 보위하는 데 필요한 합종연횡 전술을 썼지만 논공행상에서는 과감한 토사구팽을 실천했다. 잘나가던 유력 인사가 어느 날 갑자기 케케묵은 스캔들이 튀어나오며 낙마하거나 검찰 조사를 받으면 영락없이 계파가 다른 인물이었다. 학생 시절에 그들이 보여주었던 과도한 패권주의적 행태를 생각해보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 p.60~61

“성찬아,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좌와 우도 구분이 안 되는 세상이야. 색깔론이 먹히는 시대가 아니라고. 젊을 때 노동해방을 하겠다던 사람들이 강남에 아파트 몇 채씩 가지고 살아.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정책을 봐라. 이제는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손잡고 포퓰리즘으로 가고 있잖아.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정체성은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버리지. 여의도는 출신 성분이 어떻든 개량주의자들이 살아남는 곳이야. 공천만 받게 해주면 당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 너도 이제 좌파가 아니잖아?”
--- p.67

“아까 말했잖아. 네 인생이 걸린 일이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정파를 선택하라고. 너희 정파는 자유로운 생각과 판단을 허락하지 않아. 생각을 주입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길 원하지. NL의 핵심 사상은 결국 주체사상이야. 주체사상에 따르면 수령은 뇌수腦髓에 해당하고 인민은 뇌수의 명령을 받는 신체에 해당돼. 김일성이 북한의 수령이라면, 너희 조직의 꼬마 수령은 동희야. 동희가 뇌수지. 나머지는 동희의 지시를 받는 수족이라고 보면 돼. 동희의 수족이 되면 더 이상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어. 빠져나올 수도 없지.”
--- p.108

집단 구타가 시작됐다. 주먹질 발길질 몽둥이질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그것은 자백을 얻기 위한 구타가 아니라 아직 문명인으로 진화가 덜 된 호모사피엔스들의 폭력적 본능이었다. 그들은 1만 년 전 초원을 누비던 사냥꾼의 기분으로 저항할 수 없는 사냥감을 마음껏 유린했다.
--- p.162

정배는 성찬의 경고에 더 이상 자주파 얘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걸리에 취할수록 선배들에 대한 불만과 학생운동의 낭만에 대해 주절주절 두서없이 쏟아냈다. 성찬은 정배가 찢어놓은 파전을 보면서 자신들의 정파가 저 파전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재료들을 버무려 만든 음식인데 젓가락으로 너무 갈가리 찢어놓으면 재료가 흩어져 먹을 수 없게 된다. 반면에 자주파는 주점에서 서비스로 내놓은 주먹밥 같은 존재였다. 개성 없는 밥알들을 단단히 뭉쳐서 든든한 식사를 만들어낸다.
--- p.211~212

성찬은 부대원들 중에서 꽃병을 가장 정확하게 투척했다. 성찬의 손을 떠난 꽃병은 반드시 아스팔트 바닥을 만나 깨지면서 화염을 비산시켰다. 성찬은 경찰 병력의 진영을 관찰하여 약점만을 공격했다. 몸에 불이 붙은 전경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자 그를 따라 인파가 갈라졌다. 기세가 오른 불꽃부대원들은 양손에 이글거리는 꽃병을 들고 용감하게 경찰들 코앞까지 진격하여 꽃병을 투척했다. 다리에 불이 붙은 전경들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경찰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날 불꽃부대는 제조한 꽃병 350개를 모두 퍼부었다.
--- p.236

“지금은 누구나 자본가가 될 수 있는 시대야. 회사 선배들이 성과급으로 뭘 받았는지 아냐? 우리사주! 회사의 지분을 받았다니까. 노동자가 회사를 소유하는 세상이 온 거지. 마르크스가 이런 세상이 올 줄 알았겠어? 더 이상 계급투쟁은 무의미해. 노동자와 자본가를 나눌 수 있어? 타도할 계층이 누군데? 대주주? 기관투자자? 은행? 지분을 몇 퍼센트 가져야 착취자가 되는데?”
급진적 좌파였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우파가 되느냐는 질문에 상구는 출처가 불분명한 격언을 내세워 자신의 변절을 합리화했다.
“젊어서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나이 들어서도 공산주의자라면 뇌가 없는 사람이지.”
--- p.256

“불쌍한 자식…… 평생 뜻 한번 못 펴보고…… 이렇게…….”
경석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성찬은 고개를 돌려 경석의 손을 치웠다.
“사람 묶어놓고 뭐 하는 짓이냐? 너 변태냐?”
경석은 눈물을 닦고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성찬아, 지금부터 묻는 말에 정확하게 대답해. 안 그러면 내가 널 아프게 해야 돼.”
경석은 소파로 돌아가 앉았고 몸에 문신이 그려진 남자는 테이블 아래 종이 박스에서 하얀 수건을 꺼냈다. 남자는 주전자 뚜껑을 열고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다.
“성찬아, 어디에 숨겼어?”
“뭘?”
“그거 말이야.”
“뭐?”
“그거. 미영이가 너한테 남긴 거.”

--- p.325

출판사 리뷰

살기 위해선 ‘그것’을 찾아야 한다!

학생운동 동지에서 원수가 된 두 남자, 그리고 의문의 죽음들
부비트랩처럼 팡팡 터지는 반전과 숨 막히는 서스펜스

다시 시작된 악연, 잘나가는 국회의원과 ‘백수’ 같은 중장비 기사로 마주 선 두 사람


H대학 NL의 거두 안경석과 PD의 대표 김성찬. 1980년대, 학생운동으로 청춘을 불태운 두 남자가 30년 만에 재회했다. 세상에 다시없을 적으로. 학생운동가에서 어느덧 국회의원으로 변신에 성공한 경석은 옛 연인 미영의 투병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성찬은 한때는 친구이자 동지였고, 이후에는 이념의 대립과 삼각관계로 적이 된 사이다. 미영의 남편인 성찬은 경석의 방문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자리를 피해준다. 하지만 경석의 방문은 옛 연인의 문병이라는 순수한 목적 때문이 아니다. 그는 찾는 것이 있었고,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정치생명을 단칼에 끝장낼 ‘그것’은 미영의 손에 있다. 30여 년 전, 호기심 많은 미영의 사랑을 붙들어두기 위해 위험한 물건인 줄 알면서도 경석 자신이 직접 요구해 만들었다가 미영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이다. 경석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던 미영은 죽어가면서도 끝내 그것을 돌려주지 않는다. 미영의 죽음 후 경석의 촉수는 성찬에게로 향한다.

납치와 고문, 그리고 자백이 가리키는 곳은?

미영의 장례가 끝난 며칠 뒤 경석은 강남의 일식집으로 성찬을 불러내 그것의 행방을 추궁했으나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다. 초조해진 경석의 폭주가 시작된다. 조폭을 동원해 성찬의 집을 뒤지지만 여전히 그것을 찾지 못하자 급기야 성찬을 납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시작된 물고문. 성찬의 얼굴에 수건이 덮이고 그 위로 고춧가루 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성찬은 괴로움에 신음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다. 경석은 성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찬의 입을 여는 데 성공하고, 경석은 성찬이 말한 그곳, 까마득히 기억 속 저편에 밀쳐두었던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 소설의 진짜 묘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성찬이 입을 열었다고 실망하지 마시라. 성찬의 입을 열었다고 안심하지도 마시라. 부비트랩처럼 팡팡 터지는 반전과 숨 막히는 서스펜스에 예상치 못한 전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트랙
의문의 죽음과 지하당 사건


은행 ATM 부스 앞에서 한 남자가 강도의 칼에 찔려 숨진다. 그는 기사 제보를 위해 월간한국의 김소미 기자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경찰은 범인이 지갑을 훔쳐 갔다는 이유로 단순 강도 살인사건으로 결론 내린다. 하지만 졸지에 제보자를 잃은 김소미는 이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작 빈 지갑이나 훔치자고 피해자를 네 번이나 찌른 점, 단순 강도라고 치부하기에는 사전에 치밀하게 도주 동선을 설계한 점 등이 의심스럽다. 그러던 차에 참고인 조사를 위해 들른 경찰서에서 우연히 피해자가 20여 년 전 지하당 사건으로 실형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국가 전복을 모의한 사건이다. 김소미는 선배 기자인 강민재에게 도움을 청한다.

지금은 은퇴해 유튜버로 활동하지만 강민재는 한때 월간한국의 간판 기자였고, 특종 사냥꾼이라 불렸으며,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간첩 전문 기자’였다. 김소미는 강민재를 통해 지하당 사건 관련자의 의심스러운 죽음이 세 건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우동식을 포함해 이 네 명에게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후 지하당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점과 사망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 사망 경위가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행동만이 남았다. 여러 관할 경찰서를 돌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는 등 열혈 신참 기자 김소미의 좌충우돌, 시끌벅적 취재가 시작된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한 인물,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들

“전 그놈들이 밉습니다. 미워요. 정간은폐가 결국 지들은 다 빠져나가고 잔챙이들만 희생시키는 꼬리 자르기 전략 아닙니까. 비열한 공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큰일을 도모하다가 잡혔으면 당연히 우두머리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목숨 걸고 공작했던 사람들은 굶어 죽을 지경인데, 우릴 꼬여내서 간첩질을 시켰던 놈들은 가면을 쓰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중략) 제가 구대서라면, 자신을 버린 사람을 파멸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을 겁니다.” (311쪽)

지하당 사건과 관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최준영의 발언이다. 구대서는 최준영의 직속상급이자 의문의 죽음을 당한 네 명 중 하나이다. 한참 울분을 토하던 최준영은 구대서에게서 들었다며 뜻밖의 말을 한다. 그것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단초가 되고, 서서히 한 인물이, 묻혔던 진실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꼬리를 잘라 잔챙이들만 희생시켰던 사람, 조직원들의 입이 가장 무서웠을 사람, 지하당 사건의 몸통.

소설의 타임라인은 1980년대 학생운동에서부터 “과거의 운동권 세력이 현실 정치에서 맹위를 떨치며 국가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어 나가던”(「작가의 말」) 2020년까지이다. 그동안 학생운동이나 운동권 활동가들을 다룬 수많은 소설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학생운동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시선은 냉정하다. 학생운동가들이 어떻게 현실 정치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힘을 모으고 권력을 유지하는지, 그들 조직문화와 사고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래서인가, 탈고로부터 세상에 나오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격한 논쟁거리가 된다면 기쁠 따름”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이 소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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