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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 너새니얼 호손
아버지의 언어로 각인한 유년 시절의 초상 - 폴 오스터 옮긴이의 말 |
Nathanial Hawthorn, Nathaniel Hawtho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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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늙은이가 하는 말.
“아빠, 애기가 가니까 좋지 않아?” 내가 동조할 거라고 믿는 줄리언의 자신감에 좀 어이가 없었다. “왜 좋은데?” “왜냐면 이젠 내 마음대로 소리를 꽥꽥 지를 수 있으니까!” 줄리언은 숨을 잔뜩 들이마시고는 반 시간 동안 고막이 찢어져라 마음껏 소리를 질러댔다. -13쪽에서 줄리언은 소나기를 좋아했고,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징조를 알려주었다. 나는 잠자코 들었다. 줄리언은 자기 나름의 지혜가 담긴 훌륭한 의견을 펼쳤고, 아빠인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신이 더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15쪽에서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 까치밥나무 열매를 주웠다. 아이는 온갖 손짓 발짓을 해가며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또 내가 알아듣지 못해 기록할 수조차 없는 이상한 말들을 간혹 내뱉었다. -22쪽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담벼락을 기어올라 러브그로브에 앉아서 신문을 읽었다. 그러고 있는데 말에 올라탄 기사가 길을 따라와서 나에게 스페인어로 인사를 했다. 나는 모자를 만져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다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기사가 한 번 더 인사하기에 그제야 나는 자세히 훑어보았다. 허먼 멜빌이었다! -35쪽에서 우리 셋은 호숫가로 내려갔다. 줄리언은 아주 황홀경에 빠졌다. 아이보고 낚시꾼이 되지 말라고 말릴 필요가 없다. 줄리언에게는 천재적인 직관이 있다. 조만간 그 실력이 발휘될 것이다. -40쪽에서 줄리언은 ‘엄마’ ‘우나’ 말고도 다른 소리를 많이 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 소리가 메아리쳐 오자 엄마가 자기를 부른다고 말했다. 메아리란 얼마나 이상하고 기이한 것인지! -46쪽에서 며칠 전부터 잎이 마르더니 이전보다 그림자가 점점 성기어졌다. 습도가 떨어져 잎이 노랗게 시들었으며 가지도 눈에 띄게 말라갔다. 군데군데 가을 정취도 찾아볼 수 있었다. 단풍과 황금 들판, 물기 없이 바싹 마른 수풀, 이 모든 것이 지나간 영화를 들려주었다. 언제 이렇게 스쳐 지나가버렸나? 나도 잘 모른다. -55쪽에서 “아빠,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응.” 줄리언이 대꾸를 한다. “하지만 나는 아빠 대신 안방 문을 닫을 줄도 아는데.” -81쪽에서 이 불쌍한 어린 것이 나랑 함께 있는 동안 꽤나 심심하게 지낸 건 아닌지, 어쩌면 앞으로도 이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93쪽에서 아내가 없는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호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작가도 해보지 않은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 거장의 섬세하면서도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육아 일기였다. -112쪽에서 호손은 종종 아이의 참뜻을 알아챘으며 평생 마음속에 간직할 말을 찾았다. 한 세기하고도 반이 지난 지금 우리도 그 과정을 경험한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촬영하는 것보다 언어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p.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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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넘어, 평범한 아버지의 언어로 새긴
다섯 살 사내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 “할 수만 있다면 줄리언이 말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다.” 이름난 작가의 아이라고 해도, 시대가 다르다고 해도 다섯 살 사내아이는 다섯 살 사내아이다. 그동안 갓난아기 동생 때문에 마음껏 소란을 피울 수 없었던 둘째 줄리언은 엄마와 누나, 동생이 떠나자마자 소리를 꽥꽥 지르며 좋아한다. 하지만 이내 시무룩해져 엄마를 따라가겠다며 말 타는 시늉을 한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기분이 왔다 갔다 하고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아이의 기력에 호손은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버거워하면서도 안타까워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해한다. 호손은 줄리언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꾸밈없이 일기에 털어놓는다. 내가 줄리언을 침대에 눕혔을 때 시계는 저녁 일곱 시를 향하고 있었다.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처음으로 아이의 세상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낀다. - 23쪽에서 이제 아이는 흔들 목마를 타고 놀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혀를 움직이며 나에게 말을 건다. 아이의 말에 이렇게 시달려본 사람이 있을까. 저를 축복하소서! - 80쪽에서 그러면서도 줄리언이 한 말을 모두 기록할 수 없다고 아쉬워한다. ‘무지개’는 왜 ‘해’지개가 아니고 ‘물’지개인지 궁금해하는 모습, 뒹구는 통나무 하나에도 이름을 붙이며 지나치는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 어른에게는 항상 똑같은 하루하루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날마다 새롭게 변하는 것을 함께 경험하며 호손은 줄리언과 단둘이 남겨지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생동감 넘치는 시간을 보낸다. 꽃을 발견하면 줄리언은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 가장 낯익은 꽃들에게 찬사를 보내곤 했다. 그렇게 줄리언은 성장하는 모든 것에 진심 어린 관심을 품었다. (…) 우리 꼬마는 통나무 하나를 보고 ‘절망의 거인’이라고 칭하면서, 거인은 죽었고 자신이 그곳에 판 얕은 구멍은 거인의 무덤이라고 했다. 내가 구멍이 거인의 반도 되지 않는 크기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줄리언은 ‘절망의 거인’이 죽는 순간 너무 작아져버린 거라고 귀띔해주었다. - 84쪽에서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또 다른 성격의 자전적 일기 숨겨진 문학·삶이 생생하게 드러나다 『줄리언』은 호손과 줄리언의 일과를 기록한 단순한 일기이지만 그 기록을 세세히 살펴 읽다보면 무심코 적힌 문학사의 놀라운 순간을 접하게 된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나 제임스 러셀 로웰 같은 당대 저명한 문학가 이름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가 하면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출판한 에버트 듀이킹크같이 미국 문학사에 이름을 자리하는 유명한 출판업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이야기는 단연 허먼 멜빌에 관한 이야기다. 말에 올라탄 기사가 길을 따라와서 나에게 스페인어로 인사를 했다. 나는 모자를 만져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다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기사가 한 번 더 인사하기에 그제야 나는 자세히 훑어보았다. 허먼 멜빌이었다! - 35쪽에서 “너새니얼 호손의 천재성을 추앙하며”라고 『모비딕』을 헌정한 것처럼 삼십 대 초반의 허먼 멜빌은 자신보다 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이제는 중견 작가라 불릴 만한 너새니얼 호손을 스승처럼 따랐다. 과묵한 호손 앞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펼치는 멜빌을 보며, 소피아 호손은 너새니얼 호손이 마치 고해성사 사제가 된 것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특히 『줄리언』이 쓰일 시기에 멜빌은 『모비딕』을 집필 중이었고 그해 10월에 책으로 펴냈다. 줄리언이 잠든 사이 호손과 멜빌이 밤늦도록 나눈 이야기는 미국 문학사에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내용이다. 멜빌과 나는 시간, 영원함, 이 세상과 그다음 세상, 책, 출판업자, 가능한 문제, 불가능한 문제를 두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했다. 굳이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거실이라는 신성한 구역에서 시가를 피웠다. - 35쪽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빌의 뮤즈”가 되어 있었다고 폴 오스터가 말하듯이 호손은 『줄리언』을 쓰는 동안 줄리언의 아버지였을 뿐만 아니라 멜빌의 아버지 역할까지 한 셈이다. 줄리언 역시 멜빌을 친근한 아저씨로 여기며 잘 따랐다. 이들이 함께한 소풍 풍경은 마치 어린 줄리언이 미국 문학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꼬마는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방랑자 행세를 했다. 줄리언은 허먼 멜빌과 에버트 듀이킹크 사이에 앉았다. 앞자리에 앉아 가끔씩 뒤돌아 나를 보며 기이한 표정으로 미소를 보냈고 손으로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방랑자가 사상 최악의 모험을 겪으며 헤쳐나갈 때 우러나오는 공감대 같아 보였다. - 71~72쪽에서 자식을 향한 작가 호손의 사랑, 작가 호손을 향한 폴 오스터의 사랑 부모는 어떻게 부모가 되는 걸까, 아이를 ‘본다’고 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관계에서 ‘부모’만큼 어려운 역할도 없어 보인다. 글쓰기에 열중하느라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았던 호손은 줄리언과 삼 주를 오롯이 함께 보내며 아버지로서 뿐만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역할까지 깨닫게 된다. 엄마가 떠나고 처음으로 줄리언이 한 시간 동안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줄리언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 곁에 줄리언이 없다는 사실이 엄마들이 할 법한 걱정을 하게 했다. (…) 머지않아 줄리언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주먹을 꼭 쥐고서는 집으로 달려오더니 뭔가 나한테 좋은 것을 들고 왔다고 말했다. ‘뭔가 좋은 것’이란 한 시간 동안 주먹 안에서 짓이겨 걸쭉하게 죽이 되어버린 라즈베리와 블랙베리, 구스베리였다. 엄마였다면 오히려 더 좋은 요리가 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 89쪽에서 줄리언은 엄마가 돌아오면 얼마나 기쁠지, 어떻게 행동할지 말했다. (…) 이 불쌍한 어린 것이 나랑 함께 있는 동안 꽤나 심심하게 지낸 건 아닌지, 어쩌면 앞으로도 이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 93쪽에서 19세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면 될 법한(실제로 소로와 호손은 친분 관계가 있었으며 호손 부부의 신혼집 텃밭을 소로가 선물로 일구어주기도 했다.) 외따로 떨어진 집, 이런 이미지는 21세기 도시화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상관없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고 경탄하는 모습, 내심 자신을 닮을까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잠시 떨어진 엄마/아내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자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한 시간 안에,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피비가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떨어져 지낸 지 일 년이나 흐른 것 같다. 지금 바퀴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가 아니었다. 줄리언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왔으면 좋겠어! 나 엄마 너무 보고 싶단 말이야!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아빠, 로즈가 다 커버리고 나서 엄마 만나는 거 아니야?”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피비는 오지 않았다! -98쪽~99쪽에서 폭발하는 수다의 밑바닥에는 공감을 얻으려는 욕구가 깔려 있다.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을 다른 친구들 마음속에 심어놓으며 즐거움을 더하고 싶어 한다. 줄리언이 나처럼 고독한 인생을 살 염려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80쪽에서 옮긴이 장현동은 이 책이 두 가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자식을 향한 호손의 사랑과 호손을 향한 폴 오스터의 사랑. 폴 오스터의 밝은 눈과 섬세한 손길이 없었다면 이 책은 우리 손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오스터가 직접 쓴, 호손의 일기 분량과 거의 비슷한 분량의 해설은 재미있는 일화에 그칠 수 있었을 호손의 일기에 새로운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는다. 죽은 듯 잠자는 언어를 끊임없이 깨우는 일이 작가의 몫이라면, 『줄리언』은 유년 시절의 완벽한 초상일 뿐 아니라 문학 자체의 완벽한 초상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