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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북촌과 서촌에서 살아가는 지리 교사의 일상
1. 경복이 가을을 타다 - 느티나무 2. 나무 아래서 우정을 나누다 - 괴단 야화도 3. 효자는 살고 사랑은 죽었구나 - 운강대, 효자비와 애첩 옥봉 4. 할아버지가 사랑한 손자 - 풍계유택 5. 청계천이 시작되는 계곡 - 청풍계 6. 유란동 계곡에 서린 은둔의 흔적 - 청송당 7.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무속헌과 독락정 8. 세상을 등지고 숨어있는 바위 - 대은암 9. 친구의 집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 - 삼승정과 옥동척강 10. 중인문화를 꽃피우다 - 청휘각과 송석원 11. 마음을 깨끗이 닦는 언덕 - 세심대 12. 독립정신 요람이 될 뻔한 요정 - 백운동과 백운장 13. 아름다움과 총소리가 뒤섞인 역사의 현장 - 자하동 맺음말 - 미술을 접목하는 지리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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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은 70세 때 「풍계유택」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평소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외할아버지 집을 그린 것으로 ‘청풍계에 남아있는 외가’란 의미다. 당시 명문가들을 위해 많은 화첩을 그렸던 정선은 인생의 끝자락에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이 그림을 남겼다.
청풍계는 현재 종로구 청운동 54번지 일대로 서촌의 대표적인 고급주택지다. 또한 청풍계는 이곳의 작은 샘에서 발원한 물이 청계천으로 연결되어 청계천의 이름도 이곳에서 연유하고 있다. 이렇게 물 좋고 산 좋던 청풍계 일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미쓰이물산에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주택지로 분양됐다. 미쓰이는 계곡을 메우고 암석을 부숴 택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백세청풍’ 바위 각자만 겨우 남아서 옛 정취를 기억하게 할 뿐이다. 조광조의 수제자인 청송 성수침은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청송당’에 은둔한 채 책만 읽었다. 예전 청송당 일대는 현재 경기상고와 청운중으로 나눠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청운중 후원 일대에 청송당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무속헌’은 현재 청와대 옆 주한 로마교황청 대사관과 무궁화동산이 있는 자리로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살던 궁정동 55번지 집은 해방 이후 청와대 안전 가옥(안가)으로 사용되다가 1979년 10월 26일 이곳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안가 터 3,200평을 무궁화동산으로 만들었다. 18세기 중인문화의 중심이었던 ‘송석원’은 일제 강점기에 호화 별장인 ‘벽수산장’으로 변신했다가 1973년 옥인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완전히 철거됐다. 현재 그 자리에는 고급 단독 주택들이 들어서 옛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고, 벽수산장의 출입문으로 쓰였던 돌기둥만이 어느 빌라의 기둥으로 남아있다. 현장 지리 수업은 일종의 ‘흔적 찾기’다. 그런 의미에서 옥인동은 훌륭한 현장 학습의 장소임이 틀림없다. 일제 강점기에 ‘세심대’와 ‘선희궁’ 자리에 제생원 양육부가 들어섰고, 1931년에는 맹아부가 자리 잡았다. 맹아부는 광복 이후 국립맹아학교로 개칭됐으며, 지금의 국립서울농학교와 국립서울맹학교로 이어져 왔다. 결국 세심대와 선희궁 일대가 대한민국 특수교육기관의 중심지로 성장한 것이다. 정선의 그림 「자하동」은 북악산의 산세를 배경으로 제법 규모가 큰 기와집을 확대해 그려놓았다. 신선이 놀 만한 자하동은 1968년 ‘1·21 사태’가 벌어진 역사적인 현장이 됐다. 북한의 무장 공비가 육상으로 청와대 바로 뒤까지 침투한 1·21 사태는 예비군 제도, 주민등록증 발급 등 많은 사회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다. 서촌은 북악산· 인왕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그곳에 살았던 선조들의 격조 높은 삶, 그리고 격동의 시절을 모두 품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