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뉴추이란과 웨이보2장 웨이보와 미스 쓰 사이에 있었던 일3장 룽쓰샹 여사의 내적 탐구4장 웨이보의 아내 샤오위안5장 골동품점의 감정사6장 의사의 세계관7장 감옥에 있는 웨이보8장 경찰관 샤오허의 짝사랑9장 감정 교육10장 차오현에서11장 용감한 아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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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Xue,殘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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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있다는 건 천국이 있다는 말만큼이나 불가능한데”추이란은 그동안 쌓인 휴가를 한 번에 몰아서 어느 날 고향을 방문했다. 시골 동쪽에 사는 친척 오빠는 자녀들을 분가시키고 아내와 단둘이 200평 면적의 논농사를 지으며 닭과 오리도 기르는 조용한 삶을 살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해 추이란은 ‘오빠’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곧 오빠 부부가 나왔는데 키는 난쟁이 같고 피부는 석탄처럼 까만 데다 뭔가에 정신이 팔린 듯 보였다. 게다가 밤중에는 나무 위나 논두렁에 앉아 있었다. 올케언니는 더했다. 곤충 울음소리를 내는데 마치 매미 같았다. 추이란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오빠는 말한다. “우리가 왜 나무에 앉아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거 다 알아. 땅이 울부짖는 소리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었어. 침착하게 뭔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말이야.” 추이란은 문득 친척 오빠 부부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오빠는 중요한 징검다리다. 이후 전개에서 드러나듯 추이란과 그 애인 웨이보 사이를 오가는 역할을 맡게 된다. 웨이보의 아내인 샤오위안 역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학교 선생인 그녀를 좋아하는 제자들은 그녀를 쥐와 식물의 세계로 이끌고, 주변 인물들은 그녀가 ‘내면에서 온 사람’임을 알아차린다. 늘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는 샤오위안이 내뱉는 한마디는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듯하다. “여행이 좋아요. 여행은 한 군데만 고집하는 것과 같으니까. 고향에서도 한곳을 정해 머물면 오히려 떠돌이가 된 느낌이 들죠.” 소설 속 인물들은 집을 가진 사람조차 고향을 찾아 떠돈다. 가령 미스터 유는 이런 말을 한다. “집이 있어서 정말 좋겠다. 나한테 그런 건 천국이 있다는 말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인데.” 이 말을 들은 웨이보는 오히려 미스터 유의 뒷모습을 응시하면서 그가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 전개되며 점점 드러나듯, 미스터 유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변화무쌍하다. 이 인물들은 모두 상대방의 심연을 불현듯 알아차린다. 비록 자기 자신은 “죽도 밥도 아니”고, 정신이 온전하지도 않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가치는 보지 못하나 상대방 혹은 내 애인을 빼앗아간 사람에게서는 빛나는 가치를 발견한다. 가령 미스터 유는 “저는 무용지물, 빈껍데기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오페라 가수 부부를 존경한다. 사실 가수 부부 중 남편은 고지식해서 아무거나 주워먹으려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유령이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며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꿈의 환각 작용과도 같다. 현실과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경험을 주인공들 누구나 한다. “난 이렇게 도로에서 어슬렁대는 걸 가장 좋아한다네…… 화장도 지우지 않고 다니는 거지. 귀신처럼 보이게 말이야. 이러고 돌아다니면 죽은 남편이 보이기도 한다오.” 그 환각은 작품 전체에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식물, 지하 동굴 그리고 향기의 세계 추이란의 소설은 감각적이다. 특히 시각과 후각 면에서. 작가는 몇몇 인물의 시각을 박탈한다. 웨이보는 자신의 고향이 정확히 어디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그건 어릴 적 아버지가 매년 아들을 고향에 데려가면서 눈을 안대로 가린 후 맹인인 척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린 웨이보는 고향에 가고 싶어 얌전하게 눈을 가린 채 꿈쩍 않고 기차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여정에 들어서는데, 나중에 수감되면서 감옥이 바로 고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웨이보의 아내 샤오위안은 어느 날 출장 가려고 동북지방행 기차를 탔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맹인이 자신을 ‘귀뚜라미’라고 부르라 했다. 둘이 대화를 나누던 중 샤오위안은 귀뚜라미 오빠가 평생 한곳에 붙박여 있었을까봐 염려되어 말한다. “고생 많았어요, 귀뚜라미 오빠. 부뚜막에 계셨다죠? 나 같았으면 잡목숲의 은둔자나 방랑자가 되고 싶었을 텐데.” 이런 샤오위안의 발언은 자세히 뜯어보면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녀는 “여행은 한 군데만 고집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으니까. 이 책은 향기와도 관련 있다. 추이란은 전 애인 웨이보가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성통곡하면서 웨이보가 고귀한 인품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어쩌면 쑥향과 관련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면서. 고향을 찾는 다른 사람들도 온종일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다니면서 자기가 태어난 마을 입구의 실마리를 얻으려 애쓴다. 소설에서 골동품 감정가 미스터 유와 그가 일하고 있는 가게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 같다. 옛 유물들을 다루는 이들은 종적인 시간대를 넘나들며 늘 불면증을 달고 산다. 그런 미스터 유가 감정하는 화병은 중요한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우리 시골에 있는 화병은 비둘기도 집어넣을 수 있어요. 화병이 작아 보이기는 해도 안쪽은 굉장히 넓거든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닥터 류라는 인물은 여자에게 집착하지만 독신주의자다. 직업은 양의사인데 어느덧 약초와 식물의 세계로 빠져들어 여자만큼 식물 없이는 못 산다. 그는 어느 날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샤오위안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독자를 땅의 진동 속, 식물의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은 ‘역사’다. 특히 방직공장 출신의 성 접대부들이 실은 ‘살아 있는 역사’이기에 찬쉐는 이들이 기록되어야 할 인물임을 암시하는데, 그 기록의 권한을 남성 실직자인 공장 수위 홍씨에게 부여한다. 이렇듯 이 책에서 보잘것없이 나타났던 모든 남성은 가장 깊은 존재일 뿐 아니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여성들은 이미 친구가 되어 있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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