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가의 이름을 궁금하게 만든 사람의 이야기
그가 번역 작업을 한 영화가 상영된다 하면 절로 예매하게 된다. 말 속에 언어와 문화를, 유머와 질감을 실어내는 그의 번역이 일상을 살아내는 그의 모습에서도 드러나는 것임을, 이 책으로 알 수 있다. 이제는 그의 번역이 아닌 이야기도 궁금해지게 할 책.
2023.11.24.
에세이 PD 이나영
|
|
5 추천사
6 프롤로그 1부 최대 두 줄, 한 줄에 열두 자 14 왁스 재킷을 샀다 20 농아라고 쓰시면 안 돼요 26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잘해야지 32 망작과 아빠의 눈물샘 36 영화 보는 일이 숙제가 될 때 42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48 영화 번역가는 자막 봐요? 54 쿨한 번역가 60 엄마는 그런 줄만 알았다 66 우린 어쩌다 이렇게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70 강연을 수락하기 어려운 건 74 영화 번역가를 그만두는 꿈을 꿨다 78 번역의 신 황석희 2부 나는 참 괜찮은 직업을 골랐다 86 어쩌다가 됐어요 94 투명한 번역 102 세상 모든 오지랖에 부쳐 108 영화 번역가로서 가장 기분좋은 순간 114 번역가의 개입 124 관객의 언어 130 너 그래서 복받은 거야 136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140 부산 사람 다 되셨네예 146 아는 만큼 보이고, 알려진 만큼 보여지는 152 낭비할 시간, 잔뜩 있어 158 싹을 밟아주겠어 164 띄어쓰기좀틀리면어때요 172 뉘앙스의 냄새를 맡는 사람 3부 1500가지 뉘앙스의 틈에서 180 윤여정, 할리우드를 ‘존경하지 않는다’ 밝혀 188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 때 192 취존이 어렵나? 198 응큼한 번역 204 결국에 가면 다 부질없으니까 210 번역가님도 오역이 있네요? 214 영화 번역가가 드라마 주인공이 되다니 222 나는 태어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 228 영원불멸한 자막의 전설 234 생각의 속도 240 혼자 하는 번역은 없다 246 마음껏 미워할 수 없는 252 내가 몰랐던 감사 인사 258 그대들의 거짓말이 현실이 되기를 |
황석희의 다른 상품
|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인정하고 고치는 건 쉽지 않다. 늘 자존심의 문제거든. 훗날 내 딸이 커서 이 영화를 같이 본다면 해줄 이야기가 하나 늘었다. 이참에 근사한 어른인 척 거드름 피울 멘트도 하나 짜놨다. “아빠는 반성에 자존심 같은 거 없어.”
---「농아라고 쓰시면 안 돼요」중에서 모든 결과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프리랜서에게도 실패로 이어진 노력은 반드시 재산으로 쌓인다. 당장은 기회를 잃더라도 근육처럼 몸에 밴 노력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다음 기회에는 실패에서 얻은 요령까지 더해져 더 효율적인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 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 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잘해야지」중에서 입학식을 하는 강당 의자에, 아담한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만 봐도 들뜬 기운이 느껴진다. 어머니는 정말 그 시절 국민학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심정이 묘하다. 너무 기분좋은 날인데 희한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좋은 학부모가 되자. ---「엄마는 그런 줄만 알았다」중에서 특별한 사람들처럼 대단한 가치관이나 천재적인 재능이 없어도 그 업을 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 나처럼 별생각 없이 일을 시작해서 어쩌다보니 생각보다 멀리 떠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미디어에 노출된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연에(정말로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부러움이나 자괴감 느낄 것 없이 내 자리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 될 일이다. “어쩌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됐어요”라는 말은 어찌 보면 그 어떤 사연보다도 훨씬 운명적이다. ---「어쩌다가 됐어요」중에서 자막은 영화 번역가가 사는 집이다. 그 작은 집에서 번역가를 내쫓아봐야 남는 건 온기 없이 텅 빈집뿐이다. ---「투명한 번역」중에서 내가 번역했다는 것 따윈 몰라줘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인생 영화, 누군가에게 소중한 영화를 내가 번역할 수 있었다는 감사함과 뿌듯함이면 충분하다. 영화 한 그릇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참 괜찮은 직업을 골랐다. ---「영화 번역가로서 가장 기분좋은 순간」중에서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종종 “너 그래서 복받은 거야”라고 농담조로 말한다. 농담처럼 말은 하지만 그게 정말 사실이면 좋겠다. 힘들 때도 원칙대로 정당하게 사람을 대우해서 운이 들어온 거고 복을 받은 거라고. 뻔한 권선징악 전래동화의 결말처럼 그렇게 순진하게 믿고 싶다. ---「너 그래서 복받은 거야」중에서 영화에서 대사란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다. 그러니 실제 대화에서 타인의 말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듯, 번역가마다 서로 다른 뉘앙스를 살린 다양한 번역이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 번역가는 대사의 전달자가 아니라 대사에서 풍기는 뉘앙스의 냄새를 판별해서 전달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뉘앙스의 냄새를 맡는 사람」중에서 내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중 하나는, 나는 어머니에게 최선의 것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최고의 것은 아닐지언정 당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받으며 자랐다. 그 최선은 최고 못지않은 것이며 어떤 면에선 최고를 능가하는 값진 것이다. … 당신이 준 것은 분명 최선의 것이었지만 외견 이렇게 늘 초라했고 한편으론 촌스럽고 구질구질했다. 자식 눈에도 그랬으니 남들 눈엔 어떠했을지. 하지만 그 기억은 구질구질하지 않고 늘 고마움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당신은 분명 당신 최선의 것을 주었다. ---「나는 태어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중에서 그리고 이렇게 살아보니 썩 나쁘지 않다. 굳이 전처럼 말을 빨리 할 필요가 있나 싶고. 말이 조금 느려졌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게 사실상 전혀 없더라. 나는 이게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나이듦이 준 조언 같다는 생각도 든다. ‘너의 속도는 지금이 딱 좋아’라고 하는 것처럼. ---「생각의 속도」중에서 |
|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나의 일상을 잘 번역하려면 영화 번역은 혼잣말이나 대화, 즉 사람의 말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에 가깝다. 대본에 적혀 있는 대사는 사람의 입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뉘앙스라는 옷을 두르고 새로운 의미를 품기 때문에 번역을 단순 해석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저자의 말처럼 번역은 발화자의 표정과 동작, 목소리 톤을 살펴 “뉘앙스의 냄새를 판별”하는 작업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대뜸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라고 말한다. 번역을 언어 사이의 것으로만 보지 않고 모든 표의와 상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해보면 우리 삶은 번역이 필요한 순간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연인에게서 받은 ‘끝나면 잠깐 보자’라는 문자는 둘 사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장들로 번역할 수 있다. 상사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이 점심시간이 아니라 회의시간이라면 발표자는 긴장하게 된다. 다만, 일상 번역에 정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연인은 그저 심심했을 수 있고 상사는 그날따라 눈이 뻑뻑했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기에 대화에는 항상 ‘빈칸’이 존재한다. 그 틈을 허투루 알거나 무시해버리면 오해와 자의적 해석이라는 형태로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세심히 관찰하고 짐작하며 조심조심 다음 ‘대사’를 말할 수밖에 없다. 기실 말은 원래 그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캐릭터들의 대사를 약 100만 개 가까이 번역하며, 그간 쌓은 노련함을 자신의 현실에 대입한다. 언제든 “마지막일지 모르니까”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언어를 무기처럼 구체화하여 사용”하는 “후진 사람”이 되지 말고, “있어 보이는 척” 타인의 노력을 꺾지 말고, 오지랖 같은 “어긋난 호의”를 보이지 말자고. 아직도 번역이 어렵다 말하는 저자지만, 그의 섬세한 작업은 우리의 일상을 배려있게 번역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준다. 그럼에도 오역하게 된다면 어쩔까. 그럴 땐 상대에게 정중히 되물으면 그만이다. 감독이나 작가가 이역만리에 있는 영화 번역가와 달리 우리는 다행히도 그 진의를 설명해줄 상대방이 (대개는) 눈앞에 있다. 다시금 뉘앙스의 힌트를 구하고 실수했다면 정정하면 된다. 여러 갈래로 읽을 수 있어 헷갈리겠지만 그 갈림길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즐거움이 숨어 있다. “일상의 번역은 오역이면 오역, 의역이면 의역 그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까. |
|
언어란 실로 복어에 가깝다.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지만, 작은 무지나 실수로 인해 치명적인 독을 품기도 하는 복어. 잘 다루면 대단한 풍미를 내지만, 잘못 다루면 매우 해롭다. 황석희는 언어를 복어처럼 다룬다. 번역을 ‘외국어 해석을 잘하는 일’이라 여기는 것만큼 큰 오해는 없다. 번역은 우리가 체험해보지 못한 문화권의 시대적 특성, 유머와 온도 그리고 뉘앙스를 그대로 가져다 느낄 수 있게 옮기는 작업이기에 창작에 가깝다. 감독도, 배우도 아닌 어느 번역가의 참여만으로 영화에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가 해체해 다시 우리 언어로 빚어낸 대사 덕분에 영화와 관객 사이에 미묘하게 띄어져 있던 빈칸이 채워진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영화에서 더 나아가, 언어화되지 못해 일상 속을 희뿌옇게 떠다니던 상념과 감정을 명료하게 정리해준다. - 김이나 (작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