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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서문 오아시스라는 착각 크게 도약하다 사랑과 분노 ‘깊은 이성애’의 꿈 프롤로그 순응주의와 허무주의 사이에서 《주군의 여인》, 사랑의 반反지도 시간의 폭이 주는 희열 “삶이 한낱 여름날의 낮잠일 뿐이라면” “서로 사랑하는 두 존재는 하나가 되는데, 어느 쪽으로 하나가 될까?” 1장 사랑받으려면 ‘스스로 작아져야’ 하나? 우리의 낭만적 이상 속 여성의 열등성 “조금만 힘줘도 부러지겠어” 너무 빛나지 말라는 간청 ‘평등을 에로틱하게’ 환상이 된다는 것 ‘노란 피부에 키 작은 여자’ 피에르 로티에서 말런 브랜도까지 아시아 여성들의 ‘이중적 여성화’ ‘그녀는 말이 없어요’ 2장 남자, 진짜 남자 가정폭력을 배우다 ‘자기애 강한 변태’ 또는 ‘가부장제의 건강한 자손’? 어떤 시련 앞에서도 태연자약한 남성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숭배 자기 이익조차 지키지 못해 주변 사람이 폭력을 꺾을 때 혹은 폭력을 배가할 때 매니포드 맥클레인의 우화 ‘그의 엄마가 된 느낌이었죠’ ‘완벽한 애인’ 사랑과 죽음, 클리셰의 번창 고뇌하는 예술가의 과도한 권리 3장 사원을 지키는 여자들 사랑은 여성의 일인가? 정신 이상과 지혜 ‘그늘과 익명에서 벗어나라’ ‘의존의 씨앗’ 가난한 여성의 거부할 수 없는 역할 내면의 질서를 되찾다 다른 여자들, 궁여지책인가 경쟁 상대인가 그러면 남성의 의존은? 요새 같은 남자들과 변조된 여자들 “너는 살아 있으니까” 거부할 줄 알기 4장 위대한 탈소유 관능적 주체가 되기 시선의 올가미를 풀다 침묵화 이야기 성적 환상을 품는 여성은 ‘괴물’ 해리슨과 나 ‘O’ 또는 해적질 이야기 독인가… 해독제인가? 주 |
Mona Cho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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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쓰기에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면, 글쓰기로 사랑의 격정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물론 그 바탕은 다르지만. 나의 목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감당해야 할 위험이고, 거기엔 낙원과 지옥이 나란히 공존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고통과 더 큰 고통만이 있는 것 같다.
--- p.19, 「서문: 오아시스라는 착각」 중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도록 체계적으로 사회화하고 교육하며 동시에 이성애 명령을 우리에게 폭격하듯 쏟아붓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적인 도착증이다. 교묘하지 않은가? 각 젠더의 대본에 문자 그대로 부합하는 파트너들은 무척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그 대본은 한쪽에는 전제적 요구에 따라 애정과 사랑의 영역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감상적이며 의존적인 피조물을 낳고, 다른 한쪽에는 야성적 독립성이라는 허상 속에서 바리케이드를 친 채 말 없고 잘 다듬어지지 않은 꺽다리 남자를 낳는데, 이 남자는 어떤 비극적인 부주의로 자신이 그 덫에 걸려든 게 아닌지 늘 자문하는 듯 보인다. 우리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더라도 그 요소들은 우리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것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고, 그것들은 문제가 되는 간섭들을 낳는다. --- p.21, 「서문: 오아시스라는 착각」 중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남편인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이 내 마음에 묶여 있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나의 팔꿈치 아래에 항상 끼고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각자 아파트를 세냈다. 크리스티나 네링은 전한다. “그들은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청소년처럼 저녁 식사와 만남 시간을 조정했다. 어쨌든 이렇게 선택된 거리는 그들의 관계를 청소년의 관계로 만들기는커녕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어져 있게 해주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도 같은 선택을 했다. “그들은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별개의 집 두 채(칼로는 파란 집, 리베라는 분홍색 집)에서 살았는데, 두 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에 갇힌 수십 마리 동물, 과일나무, 드문드문 보이는 사막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 p.62, 「프롤로그: 순응주의와 허무주의 사이에서」 중에서 대중문화는 결혼에 대한 전망 속에 현실을 날것 그대로 제시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유명한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액츄얼리〉(2003)는 이별 후 프랑스 남부의 자기 집에 은둔해서 지내는 런던 출신 작가 제이미와 포르투갈 출신 여자 가정부 오렐리아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가정 착취의 낭만화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를 내놓는다. 두 주인공 모두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갔는데, 제이미는 크리스마스 날 저녁에 충동적으로 마르세유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그녀가 종업원으로 일하는 카페로 찾아가 그녀를 만난다. 대단히 극적인 이 장면에서 그는 계단 위에 선 그녀에게 카페 손님들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혼한다. 이때 우리는 그들이 헤어져 있는 동안 각자 상대의 언어를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십중팔구 오렐리아는 제이미에게 예전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집을 관리하고, 그가 글을 쓰는 동안 커피를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녀에게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동거를 거부하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지 아니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때문에 사랑받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p.70, 「프롤로그: 순응주의와 허무주의 사이에서」 중에서 우리의 문화는 여성비하를 표준화해왔기 때문에 많은 남성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검열을 하지 않거나 스스로 작아지지 않는 반려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일부 남성은 상당히 호기심을, 열린 정신을, 자신감을 드러내며 그런 여성을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찾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것은 위험을 부담하는 일이다. 여성은 ‘스스로 작아지길’ 거부하며 남성이 자신의 진짜 얼굴을 빨리 드러내도록 부추김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만일 그가 도망치더라도 큰 상실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남자는 위험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여성을 둘러싼 환상에 가려졌던 천박하고 압제적인 논리가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 p.125, 「1장: 사랑받으려면 ‘스스로 작아져야’ 하나?」 중에서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은 무고할 때조차 자신이 죄인이라고 설득당한다. 그리고 죄지은 남성은 자신에게 무엇이든 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데 익숙해져서, 자신이 피해자로 여겨지지 않을 때는 언제나 자신이 무고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가해자들은 법정에 소환되어서도 종종 반려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응수한다. 여성에게 주입된 기계적인 위법성의 감정은 무엇을 하든 자신은 온당한 권리 안에 있다고 느끼는 남성의 감정과 호응한다. --- p.140, 「2장: 남자, 진짜 남자」 중에서 이는 거의 우리 사회에 대한 음산한 풍자 같다. 해골들이 가부장제의 벽장 속에서 덜거덕거리는 동안 우리는 로맨틱 코미디에 심취하는 꼴이다. --- p.175, 「2장: 남자, 진짜 남자」 중에서 《단순한 열정》이 완벽하게 예시하는 여성의 사랑 방식은 이미 내게 아주 친근했다. 지금 그 방식은 나를 겁에 질리게 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숭고하게 여겨졌다. 나는 아니 에르노가 매우 잘 묘사하고 있는 이러한 퇴색에서, 사랑받는 존재와 관계된 것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런 포기에서 문제를 보지 못했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그와 관계되지 않은 모든 것, 그의 호의와 관계되지 않은 모든 것을 싫어하는 일이 자연스럽고, 심지어 부러운 일처럼 보였다. 나는 평범하고 음울한 현실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해줄, 있을 법하지 않은 구원자를 기다리는 일 대신, 내 삶의 모든 면면에 색을 입히고, 그것들을 길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몫임을 알지 못했다. 나는 나를 건설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임을 알지 못했다. 어떤 영화, 어떤 소설도 내게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듣지 못했거나. --- p.196, 「3장: 사원을 지키는 여자들」 중에서 엉겁결에 나는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여성의 역할 속에 눌러앉았다. 페넬로프 러시아노프의 말을 빌리자면 그 태도는 “언제나 감탄스럽고 심지어 매혹적이기도 한 여성의 속성처럼 생각되었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생각되기”에 그만큼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 p.218, 「3장: 사원을 지키는 여자들」 중에서 내면화된 전제적 시선에서 일부 여성들이 해방되는 데 시동을 건 두 번째 사건은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한 2020년 봄의 격리다. 평소에 시선과 판단의 선별기가 되었던 사회적 환경에서 갑자기 벗어나게 된 여성은 자신의 감각에 다시 집중하게 되었다. 일부 여성은 이 기회에 화장과 염색을 끊고 지내면서 훨씬 자연스러운 자신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저널리스트 아니야 다스는 말한다. “화장하지 않고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화장품이나 머리카락 관리에서 실질적 절약을 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매일 자유로운 시간까지 벌었다.” 많은 여성이 편한 옷을 선호했는데, 특히 브래지어를 벗고, 조깅 팬츠를 선택하면서 평소 차림보다 몸이 더 편히 숨을 쉬게 되었다. 기자인 미리암 르뱅은 말했다. “보아하니 대개의 여성이 처음 벗어던진 것은 꽉 끼는 청바지와 자꾸 말려 올라가는 치마였다.” --- p.278, 「4장: 위대한 탈소유」 중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썼을 때조차 여자는 입에 재갈이 물리고, 억눌리고, 주변에서 과소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경우가 보여준다. 도미니크 오리의 대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갈리마르에서 1999년에 출간한 1988년의 대담에서 대담자는 그녀에게 거의 폴랑(그가 위대한 편집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상적인 작품을 남긴 건 없다)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25년 동안 갈리마르의 기획위원회에서 유일한 여자였기에 살면서 가깝게 지낸 다른 모든 위대한 남자들에 대해서만 물었다. --- p.306, 「4장: 위대한 탈소유」 중에서 |
2022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상 수상
2021 레쟁록큅티블 에세이상 수상 왜 우리의 사랑은 번번이 실패하는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의 핵심 주제가 된 ‘사랑’ 프랑스 여성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모나 숄레가 사랑의 실패 원인으로 가부장제를 지목해 분석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반복되는 사랑의 실패, 원인은 가부장제?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대를 맞아 사랑은 더 어려워졌다.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 남녀 10명 중 6명은 연애하고 있지 않다.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와 사랑 노래,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왜 연애하지 않을까? 반복되는 사랑의 실패로 우리는 좀처럼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것을 더 어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8년 출간 후 지금까지 40만 부 이상 판매되고 128주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킨 《마녀》의 저자인 모나 숄레는 이 책 《사랑을 재발명하라》에서 가부장제가 이성애 관계, 사랑을 망가뜨린다고 보고, 이를 위해 페미니즘의 렌즈를 문학, 드라마, 영화부터 여러 사건, 사고와 이를 다룬 언론 보도에 들이대어 대중문화 전반을 섬세하게 관찰한다. 책은 이렇게 다양한 사랑의 사례를 다루며 가부장제를 면밀히 분석하고, 사랑을 단순한 개개인의 일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인 것으로 재조명한다. 가부장제는 어떻게 우리의 사랑을 망가뜨리나? 여성의 열등성을 낭만화하는 대중문화부터 가정폭력 가해자를 옹호하는 언론의 보도까지 모나 숄레는 먼저 프롤로그에서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 발휘되는 문화적 배경부터 짚는다. 프랑스의 위대한 연애소설인 《주군의 여인》에서 보이듯, 사랑의 현실적인 면보다는 열정에만 주목하는 대중문화의 면면을 꼬집고, 이러한 열정이 남자 주인공을 여성에 대한 불신 가득하고 미숙한 관점 속에 가두며, 일상적이고 육체적인 세속적 삶을, 그리고 동시에 이것과 연관된 여성을 멸시하는 엘리트주의적 태도를 가리는 가림막처럼 쓰인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나서는 1장에서 우리의 낭만적 표상들이 어떻게 여성의 열등성을 승화하면서 구축되었는지 살펴본다. 그 결과 많은 여성이 한 남성의 총애를 받기에는 너무 크고, 너무 거세고(문자 그대로의 의미이자 물리적 의미로), 너무 똑똑하고, 너무 창의적이라는 등 ‘너무 과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모든 조건을 충족해서 남성의 자아를 위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이 훨씬 행복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당연하게도 자아가 제한되고 부정되는 토대 위에서 자아의 개화를 구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가정폭력의 메커니즘을 비정상이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통해 남성과 여성에게 처방된 행동의 논리적 결과로서 살펴본다. 자신의 애인인 여배우 마리 트랭티냥을 살해한 프랑스 음악가 베르트랑 캉타를 포함해 많은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폭력을 스스로 초래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나, 연쇄살인범에 끌리는 여성의 사례들을 분석하며, 폭력적인 남성을 포함해 모든 남성의 감정, 경험, 관심사 등에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철학자 케이트 만의 ‘힘패시himpathy: him과 sympathy의 조합)’ 개념을 빌려와 지적한다. 3장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각자 사랑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을 관찰한다. 여성들이 사랑을 과대평가한다면, 남성들은 사랑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여성과 남성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오는 불균형에 대해 분석한다. 여성이 연애 관계에 더 강력한 투자를 하는 것을 모성의 욕구로 설명하는 에바 일루즈의 주장을 여러 다른 경우의 사례를 가져와 반박하며, 사랑에 빠진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어머니로서의 정체성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성차별적인 사회를 비판하고, 이런 의존을 만드는 여러 사회적 조건을 하나씩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환상에 부합하는 정숙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아주 오래된 역할에서 벗어나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O 이야기》와 같은 성애 소설의 사례를 가져와 여성의 성적 욕망과 그것의 표현을 두고 남성들이 보인 모습을 돌아보고, ‘우리의 환상은 정말 우리의 것일까?’, ‘평생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젖어 지냈는데 어떻게 해야 자기 고유의 상상계를 되찾을까?’ 등의 여러 의문에 답을 해나간다. 저자는 가부장제가 이성애 관계에 개입하는 다양한 측면을 훑고,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인 여러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저자는 많은 동거 커플이 상대의 부재를 기뻐하는 모습을 관찰하는데, 독립된 주거지의 원칙을 이야기하며 비동거의 여러 이점을 열거하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프리다 칼로와 같은 실제 사례를 가져와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로 사는 것이 집안일의 분배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언급한다. 또한 자립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며, 자립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성이나 사랑의 삶을 완전히 거부하는 게 아니며 자기 안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성행위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중심’을 남성에서 자기 내면의 새로운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이외에도 모나 숄레는 우리가 이성애 관계에서 사랑을 재발명할 수 있을 여러 이상적, 현실적 방안을 내놓는다. 특히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여러 조언을 하는데, 남성들이 여성만큼이나 타인과 깊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며 과감하게 ‘사랑한다는 사실과 연계된 취약성’을 끌어안으라 권한다. 이와 관련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아둔해 보였던 애덤이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과감하게 ‘사랑한다는 사실과 연계된 취약성’을 끌어안고, 자신의 사랑에 솔직해지는 모습을 사례로 가져온다. 사랑을 재발명하라 흔히 페미니즘을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으로 비유하는데, 페미니즘을 알게 된 사람은 이제 영원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와 같이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모나 숄레는 《사랑을 재발명하라》에서 글쓰기를 통해 사랑의 격정을 되찾으려 한다며, 가정폭력 같은 이성애 관계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면서도 사랑을 언제나 감당할 만한 위험으로 보고 사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점차 사랑을 잃어가는 한국에서, 모나 숄레의 분석과 제안은 사랑 앞에서 항상 헤매고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사랑을 재발명하라》는 아주 야심찬 프로젝트인데,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된 성공적인 작가 모나 숄레에게 이보다 더 약한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기자로 일한 모나 숄레는 《치명적 아름다움》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패션의 압박을, 《마녀》에서 특정한 사회적 규범으로부터의 여성해방을 다룬 데 이어, 이번에는 페미니즘에서 종종 기피되는 주제인 사랑으로 관심을 돌렸다. ― 《허핑톤포스트》 드디어 때가 왔다. 미투운동 이후 4년 동안 페미니즘 문학은 문제의 핵심인 이성애 관계를 다루고 있다. 페미니스트 이성애자들 사이에는 불안이 고조되어 분열되거나 최악의 경우 자신의 대의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모나 숄레가 여기에 있다. … 책장을 넘기면서 이성애 관계에 있는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외칠 것이다. ‘맞아, 바로 이거야!’ ― 《보그》 우리는 첫 줄부터 그녀의 인용 기술, 참조하는 방법, 특정 책, 만화 또는 시리즈를 소환하는 그녀의 매우 개인적인 방식, 부드럽고 견고한 방식에 감동한다. 모나 숄레는 가장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로맨티스트로 여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과감하게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르몽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