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1 나의 가장 먼 미래는 아침이다 009part 2 나는 마음이 전부인 사람이 되어버렸고 035part 3 나는 왜 하노이에 왔을까 057part 4 방안에서는 아무것도 잊히지 않는다 085part 5 하노이에는 내가 있어요 115part 6 사진의 다음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145
|
유진목의 다른 상품
|
자고 일어나면 내가 아니길 바랐다 아니, 잠들면 깨어나지 않길 바랐다하지만 하노이에 도착해서 반나절을 걷다가 맨 처음 알아차린 것은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_63쪽내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 나는 여기서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는 곳, 아무와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고 오직 나만이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곳. 뜨거운 햇빛이 몸을 관통해버린 것만 같은 여름의 하노이에 시인은 “아무것에도 압도당하지 않고 단지 계속해서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에만 순순히 이끌리고 싶어 온 것이다.” 하염없이 걷던 거리에서는 옅은 망고 냄새가 났다. 오토바이들이 질주하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어도 엘리베이터를 타도 화장실을 가도 언제나 깔려 있던 그 냄새. 시인은 문득 이 달큰한 냄새가 무엇을 닮았는지 기억해낸다. “살갗과 살갗이 서로를 스칠 때 나는 냄새”였다는 것을, 살의에 가득차 있던 마음은 너무도 오래 살의 보드라운 감촉을 잊고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혼자서 울고 밖으로 나갈 때는 웃는 사람이다. 밖에서도 울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날들을 지나왔다고 지금은 쓸 수 있다.”그는 그저 살아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죽고 싶다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 살아 있다는 생각도 그만 하고 그냥 살고 싶은 마음. 살아 있음을 흉내내느라 스스로 지쳐 있던 나. 살아 있음을 행하지 않아도 되기에 잠은 달콤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인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까무룩 잠든 사람들을 보다 깨닫는다. 그들이 너무나도 선명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잠은 죽음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삶에 속해 있다는 것을.” 그렇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이런 젠장너무 아름다워살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일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말없이 그를 안아주고 싶다. _101쪽마지막 파트 6 「사진의 다음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에는 시인이 팔십만 원을 주고 산 중고 필름 카메라 CONTAX T2로 직접 찍은 56컷의 베트남 풍경이 담겨 있다. 이 사진들은 시인이 셔터를 누르던 순간의 심정으로 되돌아가 이 장면과 사람 앞에 서 있는 느낌을 살려 선별하고 재배치한 것이다. 동시에 유진목 시인은 이 파트에서 자신은 어떻게 사진을 찍는지 써내려가며, 무엇이 자신으로 하여금 지그재그로 달리는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곡예하듯 손을 들어올리고 셔터를 누르게 했는지 그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책표지는 유진목 시인이 호텔 숙소에서 직접 찍은 사진으로 디자인했다. 제목 ‘슬픔을 아는 사람’은 먹박으로, Hanoi라는 영문은 우윳빛 펄박으로 구현했다. 코팅된 종이 위에 찍힌 두 종류의 박과 이를 감싸는 반투명한 트레싱지 띠지는 표지에 인쇄된 글자와는 다른 질감으로 읽는 이에게 다가온다. 이 차이는 표지와 눈을 마주친 이에게 저마다의 층위를 만들어 다름을 헤아리게 한다. 농을 쓰고 과일을 깎는 묵직한 칼을 든 손을 오래 바라보았던 시인처럼, 그 칼을 쥔 빠른 손놀림에 대한 무서움이 자신을 절대로 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바뀌기까지 길고도 짧았던 시간처럼. Hanoi에 사용한 우윳빛 펄박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진에 어울리는 잔잔한 흰빛으로 투명하지만 책을 기울여 빛을 받으면 무지갯빛으로 조용히 반짝인다. “언제든 죽으면 된다고 그러면 다 끝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사람”, 어디서든 눈에 띄지 않는 사람, 빛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은 그들처럼 빛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 닌빈에 세번째 찾아가서야 그 평원의 넓고 광활함이 복받쳐와 헬로 키티 헬멧을 쓴 채 주룩주룩 흘리고 말았던 그의 눈물이 그러하듯이.● 작가의 말공항에 앉아 있다보면 어디로든 가고 싶어진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에는 돈이 필요하고 시간이 있어야 하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지녀야 한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 얼마간의 짐과 함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그런 것이다.지난여름, 나는 하노이에 열흘 혹은 이 주씩 세 번 다녀왔다. 내가 가진 돈을 모두 쓰기로 했고 일상에서의 생활도 멈추기로 마음먹었다.당시 내게는 수년간 차곡차곡 들어앉은 분노가 마음을 모두 채우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을 모두 깨부수고 싶고 빨래를 널다 말고 옷을 전부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그래서 나는 멈추었다. 일단 멈추고 하노이로 떠났다. 여행자가 되어 분노를 잠재워볼 심산이었다. 하필 하노이였던 것은 그곳의 모든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는 맛있는 것들이 잔뜩 있고 나는 하염없이 걷다가 그것을 먹을 수 있다.『슬픔을 아는 사람』은 그 세 번의 여행을 기록한 책이다. 나의 작은 여행을 이제 사람들 사이에 놓아둔다.2023년 4월유진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