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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편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또다른 편지는 “아내에게 배반당한 남자가 된 것을 축하하는”으로 시작했다. 익명의 편지에는 페테르부르크 주재 네덜란드 공사의 아들인 기병 장교 단테스가 곤차로바의 애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바로 단테스였다. 단테스가 곤차로바를 짝사랑한 나머지 이런 행동까지 저지른 것이다. 모욕을 느낀 푸슈킨은 중간에 사람을 넣어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 58쪽
이때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내가 이 글을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을 인류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형 집행 불과 몇 분 전에 목숨을 건진 작가는 없다. 그런 까닭에 예정된 죽음이 초침처럼 째깍째깍 다가오는 그 순간의 느낌을 짐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천운이 주어졌다. 위대한 천재 작가를 위해 예비된 시련이었을까. 훗날 그는 형 미하일에게 쓴 편지에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이렇게 썼다. “이제 내게는 몇 분밖에 살 시간이 남지 않았어. 마지막에는 형과 형의 가족을 떠올렸어. 마지막에는 형 한 명만이 내 가슴 속에 남게 되더군. 그때 비로소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어.” ― 91쪽 두 사람은 예정대로 유럽 여행을 시작한다. 바덴바덴, 제노바, 로마, 나폴리를 지나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덴바덴에서 도박으로 수중에 있던 돈을 거의 다 날리게 된다. 두 사람은 이후 어떻게 여행을 했을까? 두 사람은 소지품을 전당포에 잡히거나 형 미하일과 친지,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 송금받은 돈으로 간신히 여행을 이어나갔다. 궁핍은 사랑의 열기마저 식게 만든다. 곧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져 여행은 2개월 만에 끝나고 만다. 수슬로바는 혼자 파리로 돌아갔다. ― 99쪽 밤 11시. 시간으로 보면 밤인데, 밖은 환하다. 마치 대낮 같다. 낮이 저물지 않고 희끄무레하게 있다가 다시 낮으로 태어난다. 백야의 한가운데 있으면 현실이 몽환적으로 바뀐다. 몽환적인 상태에서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다시 바라다본다. 운하의 수면도 몽환적이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드물다. 운하는 모든 일상을 시시각각 굴절시킨다. ― 104쪽 전당포, 전당포……. 수슬로바와 유럽 밀월여행을 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뻔질나게 전당포를 드나들었다.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돈이 될 만한 것을 들고 전당포를 찾곤 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당포를 찾았을 때 그가 느꼈을 비참함이란!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절박한 순간에 만난 인색한 고리대금업자에게서 《죄와 벌》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이다. 궁핍이 극에 이르렀을 때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인간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비스바덴에서 그는 ‘한 범죄의 심리학적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죄와 벌》의 앞부분을 쓰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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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행 작가 조성관 기자의 빈, 프라하, 런던, 뉴욕 편에 이은 다섯 번째 책.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답고 격조 있는 건물과 풍광으로 유명한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며 인류에게 귀한 유산을 남긴 다섯 명의 천재들을 소개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슈킨,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발레음악의 천재 차이코프스키, 러시아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이름보다 작품들이 더 유명한 화가 일리야 레핀. 이들 불멸의 천재들의 진짜 삶과 예술 이야기가 페테르부르크의 신비롭고 낭만적인 풍광과 어우러져 읽는 재미와 보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불멸의 천재 5인과 함께 떠나는 낭만적인 페테르부르크 예술 기행 문화 기행 작가 조성관 기자의 빈, 프라하, 런던, 뉴욕 편에 이은 다섯 번째 책 《페테르부르크가 사랑한 천재들》이 출간되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한 천재들, 푸슈킨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일리야 레핀까지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과 예술세계를 찾아떠나는 낭만적인 페테르부르크 예술 기행서이다. 유명한 호박방이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 이콘화로 가득한 그리스도 부활 성당, 표트로 대제의 청동 기마상과 이삭 대성당, 그리고 백야의 네바 강과 운하들. 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답고 격조 있는 건물과 풍광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이 아름다운 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며 인류에게 귀한 유산을 남긴 다섯 명의 천재들을 소개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슈킨,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발레음악의 천재 차이코프스키, 러시아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이름보다 작품들이 더 유명한 화가 일리야 레핀. 이들 불멸의 천재들의 진짜 삶과 예술 이야기가 페테르부르크의 신비롭고 낭만적인 풍광과 어우러져 읽는 재미와 보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페테르부르크는 어떤 도시인가? 소련이 붕괴되던 1990년까지 러시아는 우리에게 금단의 땅이었다. 인류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던 러시아 땅에서 페테르부르크는 세 번의 혁명을 거치며 이름이 세 번 바뀌는 시련을 겪었다. 1차 세계대전 때 페트로그라드가 되었고, 종전과 함께 정치권력을 모스크바에 넘겨주고 문화예술의 중심지로만 남게 되었다. 레닌이 숨진 후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소련이 붕괴되면서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네 가지 별칭이 있다. 서유럽으로 난 창문, 바로크 도시, 운하의 도시, 그리고 혁명의 요람이 바로 그것이다. 페테르부르크는 여름이면 백야(白夜) 현상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태양을 보기 힘들 만큼 혹한이다. 저자는 “새하얀 백야와 혹한의 어둠이 사람들의 심성을 형성했고, 이것이 시간의 발효 과정을 거쳐 문화 유전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도시는 200년 이상 정치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문화예술의 수도로 군림하였다. 음악, 오페라, 발레, 미술 등에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성공을 꿈꾸며 모두 페테르부르크로 몰려들었다. 도시는 세계적인 작가와 예술가들을 키워냈다. 또한 이들에 대한 오마주로 지하철역과 거리에 천재들의 이름을 헌정했고 이들의 숨결이 머무른 곳에 동상을 세우고 플라크를 붙였다. 지하철 1호선 푸슈킨 역을 가보라. 박물관에 온 것처럼 화려하고 격조가 있다.” 페테르부르크가 사랑한 천재들, 천재들이 사랑한 페테르부르크 천재들이 태어나고 자란 집과 학교, 서재와 작업실, 단골 카페, 대작이 탄생한 집, 그리고 묘지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상처와 영광이 깃들여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애송시로 유명한 푸슈킨이 이 책의 첫 번째 천재이다. 문학소년 시절 푸슈킨이 다녔던 귀족기숙학교 순례를 시작으로 그의 소설 《청동 기마상》의 모티브가 된 표트로 대제의 동상을 비롯해 데카브리스트 반란 현장, 단골 문학 카페, 목숨을 잃은 결투 공원, 그의 신혼집 등을 들여다본다. 푸슈킨이 결투로 유명을 달리한 해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육군공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한다. 체포와 사형 선고,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시련을 거치며 그는 인간성의 내면에 자리한 선악의 심층심리에 천착하게 된다. 《죄와 벌》을 비롯한 불멸의 작품들이 탄생한 집들과 소설 속 라스콜리니코프의 하숙집, 사형 집행 현장, 마지막 거처와 묘지 등이 그의 작품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다. 교향곡 〈비창〉과 3대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차이코프스키. 동성애에 눈뜨게 된 남학교를 비롯해 그의 작품들이 초연된 극장과 집, 묘지 등을 돌아보며 〈비창〉 탄생 후 9일 만에 맞은 미심쩍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왈츠 2번〉과 교향곡 〈레닌그라드〉로 유명한 ‘러시아의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작곡가의 목을 조이며 압박하는 스탈린 치하에서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교향곡 〈레닌그라드〉로 러시아 시민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러시아의 국민 음악가로 자리매김한다. 레닌그라드 교향악단 연주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이삭 대성당과 승리의 탑을 비롯해 겨울궁전, 오로라 호와 레닌 광장 등을 순례한다. 〈무소르크스키의 초상〉, 〈톨스토이 초상〉을 비롯한 많은 초상화들, 그리고 〈자포르쥐에 카자크들〉, 〈볼가 강의 뱃사람들〉까지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레핀이 다닌 미술 아카데미를 비롯해 러시아 미술관, 에르미타주 박물관, 핀란드 만에 있는 레핀의 마을과 묘지까지 레핀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 여정을 함께 한다. 백야와 운하와 박물관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예술 기행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수준 높은 정신문화 유산을 연대기적으로 응축시켜 놓은 상징적인 공간”이며, 어디를 돌아보아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혼돈의 시기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인류에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천재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는 이 책은 다섯 인물들의 충실한 평전과 역사서와 여행기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저자가 직접 순례하며 찍은 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들, 천재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과 작업실, 고단한 영혼이 쉬고 있는 묘지들, 그리고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의 풍광들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책속으로 추가 소설이 세상에 나온 후 수많은 연구자들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직접 730걸음을 확인해 보았다. 화가 보리스 코스치고프는 《소설 ‘죄와 벌’의 세계》를 출간했다. 코스치고프는 소설을 토대로 중요 장면을 실제적인 그림으로 끄집어냈다. 이를테면 하숙집 문을 열고 13계단을 내려가 남의 집에서 도끼를 훔치는 것으로 묘사된 계단실을 포함해 거의 모든 공간을 재현했다. 그는 아예 ‘730걸음’이라는 지도까지 만들어냈다. 하숙집에서 나와 전당포 노파 집까지 가는 길은 5~6가지나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730걸음으로는 소인국의 걸리버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730걸음이라고 한 것은, 그의 말대로 몽상 속의 걸음 숫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730이라는 숫자의 마법에 걸려 마치 실제인 것처럼 따라해 보았다. ― 112쪽 영화와 뮤지컬로 널리 알려진 〈빌리 엘리어트〉. 영국의 탄광촌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키워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런던 극장가 웨스트엔드에 가면 지금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볼 수 있다. 2006년 런던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객석은 만석이다. 같은 이름의 영화도 큰 호응을 받았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과 환희 그 자체다. 영화의 엔딩 신에 등장하는 작품이 바로 〈백조의 호수〉. 발레리노로 성공한 빌리 엘리어트가 백조로 분장한 채 대기하고 있다가 무대 위로 뛰어가 힘차게 도약하는 순간의 뜨거운 환희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138쪽 결혼한 지 20일이 지났을 때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1,000루블을 빌려 아무 말 없이 여행을 떠났다. 한 공간에서는 아내를 피할 방법이 없자 선택한 도피 여행이었다. 얼마 후 모스크바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모스크바 강에 몸을 던졌다. 천만다행으로 자살 기도는 실패로 끝났다.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결혼생활을 끌면 끌수록 서로에게 불행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은 했으나 결혼생활을 하지 않은, 이상한 혼인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 ― 151쪽 차이코프스키는 최후의 교향곡 〈비창〉을 작곡한 뒤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내 영혼을 모조리 이 교향곡에 쏟아부었다. 수수께끼로 들릴 것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해석할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다. 오직 신만이 처벌하고 응징하라.” 〈비창〉이 주목받는 까닭은 또 있다. 멀쩡하던 차이코프스키가 11월 6일에 급사했기 때문이다. 10월 28일에 〈비창〉이 초연된 후 불과 9일 만이었다. 왕진 온 의사들은 사망 원인을 콜레라라고 진단했다. ― 164쪽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계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말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에서 《프라우다》 신문을 읽은 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36년 1월 26일 나는 《프라우다》를 사러 역에 나갔다. 신문을 펴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계’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한 구절을 영원히 내 가슴에 새겼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구절이 될 것이다.” ― 185쪽 이반 뇌제가 아들을 살해한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었지만 또한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반 뇌제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하물며 이를 회화의 주제로 채택한다! 이는 목숨이 두 개인 사람이나 하는 짓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300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비극적 사건이 처음으로 회화의 주제로 등장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그럼에도 이 그림이 대중 앞에 공개되었을 때 황실 관료들은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를 보며 몹시 불편해했다. ― 239쪽 레핀이 모델인 무소르크스키를 만난 시점이 절묘하다. 무소르크스키는 보통의 러시아 남자들처럼 보드카를 무척 사랑한 나머지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만다. 결국 1881년 군부대의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레핀은 무소르크스키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기력이 쇠잔한 무소르크스키였지만 레핀을 위해 무려 4일 동안이나 포즈를 취해주었다. 레핀은 무소르크스키를 위대한 음악가가 아닌, 자기 관리를 못해 타락한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으로 그렸다. ― 24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