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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내가 읽은 책 취향의 원형 안녕, 만화책 앤이 건넨 위로 등을 떠민 세 권의 책 팔랑귀의 장점 독서의 기본기 나의 그림 경전 책 읽는 여자들 일러스트레이터의 각오 완독하지 못한 책 독서 기록 2부 내가 그린 책 취향과 일은 다르니까 작은 미술관, 화집 책은 사서 본다! 서재와 책장 독서 강박 다시, 만화책 아무튼 산책 그림책의 매력 재기 발랄한 고미 타로 나의 그림 동료 그림으로 가는 문 에필로그 |
반지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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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후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갑자기 서점에 가고 싶어 검색하다가 ‘나타쇼’라는 헌책방을 발견했다. 사진 속 따스한 조명을 둘러싸고 사방에 가득 찬 책,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마법 같은 곳’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비밀스러우면서도 빈티지한 분위기에 반해 부푼 마음을 안고 찾아갔다. ‘나타쇼’는 후미진 골목 작은 목조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었다. 비좁은 1층 입구를 거쳐 끼익끼익 소리 나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15평 정도 되는 공간이 나타났다. 바닥 천장할 것 없이 온통 헌책으로 가득한,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 말 그대로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인터넷에서 본 그 예쁜 사진들도 실은 매력을 다 담지 못했구나, 할 만큼 무척 아름다웠다. 들어선 지 2분도 지나지 않아 책 한 권이 눈에 탁 걸려들었다. 히라타 쇼고의 『엄지공주』가 바닥에 수북이 쌓인 책더미 맨 위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맙소사. 당장 손을 뻗었다. 『엄지공주』는 전집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던 책이었다.
--- p.21~22 나는 인터뷰집이 좋다. 나와는 다른 사람, 먼저 어려운 길을 간 사람과의 대화에선 분명 배울 점이 있다. 노포에 들렀을 때 사장님이 늘어놓는 살아온 이야기나 집회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폭로하듯 뱉어내는 이야기나 부모님이 조곤조곤 털어놓는 과거 이야기를 즐긴다. 사람은 다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 듣진 못하지만, 인터뷰집은 읽기만 하면 된다. 인터뷰어가 사람들이 궁금해할 법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그들의 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인터뷰집의 매력이다. 사람과 사람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마주 보며 서로를 향한 궁금증과 애정이 가득한 시간에만 나오는 이야기. 때로는 일기장에 쓸 때보다 더 술술 풀어놓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며 자신도 몰랐던 부분을 말하기도 하고, 가끔 한층 용감하게 자신을 발화하기도 한다. 인터뷰집을 읽으면 그들과 차 한잔, 술 한잔 기울이는 것 같다. --- p.51~52 대학생 때 그랬다. 살면서 가장 독서를 깊게 많이 했다. 정치외교학과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학점을 잘 따서 좋은 데 취업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세상을 일단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적으로 한미 FTA 반대 시위가 있었고 대학교 입학 전엔 용산 참사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 이 세상의 구조와 비밀을 알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어 학과생만 모집하는 작은 동아리인 소모임 중에서 유일하게 학회인 곳에 들어갔다. 학회 이름은 폴리토피아politics for utopia, 유토피아를 위한 정치학. 지금은 이런 표현이 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치학을 공부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나은 세계를 꿈꾸기 마련이라 이해는 간다. ‘politics in distopia’라는 이름이면 어땠을까. 『멋진 신세계』 같은 책을 읽고 정치학을 얘기하면 더 복잡하고 재미있는 주장이 잔뜩 나올 것 같은데. 아무튼 유토피아를 위한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회에선 가장 기초적인 인문 교양과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회문제에 대해 함께 공부했다. --- p.71~72 『위대한 개츠비』는 『상실의 시대』를 통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산책』은 알랭 드 보통의 책 어딘가에 나와서 읽었다. 영화 입문서를 읽다 『시뮬라시옹』을 찾아봤다. 폴 오스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미야베 미유키…… 책을 읽으면 다음 책, 또 다음 책으로 계속 이어진다. 끝이 안 난다. 뭘 읽을지 모르겠을 때 일단 아무거나 한 권 펼치면 읽고 싶은 책이 잔뜩 생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현우 작가가 쓴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를 읽고 난 뒤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시작으로 카잔차키스, 모옴, 쿤데라의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려주는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었다. 읽다가 니체 철학의 핵심 중 하나인 ‘너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에 꽂혀 다른 책도 궁금해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물론 말기 저작인 『도덕의 계보』까지 샀다. 『도덕의 계보』는 읽으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이내 관둬버렸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흥미롭게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제법 나와 줄을 긋다 보니 읽은 부분이 시커메질 정도였다. --- p.107~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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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았던 책을 다시 펼치다
오래 사귀던 남자친구가 노래방 도우미와 바람이 났다. 그 충격에 한 달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 그 와중에 평생의 짝을 만나 식은 안 올리고 결혼해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했다. 내가 그린 표지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벌어들이는 수입이 달라지자 생활양식이나 소비패턴이 달라졌고, 남편과 함께 여행과 캠핑을 다녔다.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갈 때마다 점점 집은 넓어졌고 채광은 좋아졌다. 때깔 좋은 경험을 차곡차곡 쌓기는 했지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듯 살았다. …… 그리고 난 잠시 손에서 놓았던 책을 다시 펼쳤다. 그래, ‘나’는 내가 읽은 ‘책’이며 내가 그린 ‘그림’이다. 내가 읽은 첫 책 태어나 내가 읽은 첫 번째 책은 뭐였을까? 엄마나 아빠가 사준 책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내가 직접 고른 책일 수도 있다. 그래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그림책이 있는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찾을 수 없던 그 책을 일본 소도시 어느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들어선 지 2분도 지나지 않아 책 한 권이 눈에 탁 걸려들었다. 히라타 쇼고의 『엄지공주』가 바닥에 수북이 쌓인 책더미 맨 위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맙소사. 당장 손을 뻗었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된 내 취향의 원형 사춘기 시절, 도서관을 드나들며 많은 책을 읽었지만 해리 포터나 앤 시리즈, 『비밀의 화원』을 유독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이입했기 때문이리라. 어른이 돼서 세 권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주인공 셋 다 고아라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거나 성장에 방해되는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이 있는 자연이 가득한 새로운 세상으로 이주한다는 점이다. 그곳에서 이전에 없던 경험을 하고 부모님은 아니지만 세상을 알려주는 어른과 새 친구를 만나 성장한다. 수십 가지 질문에 갇혔을 때 나를 구원해준 책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저자가 성인이 되어 그림을 시작할 때 드로잉을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지, 그리다가 다들 어디에서 막히는지, 빈 종이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지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데 드는 수십 가지 질문을 책으로 배우고 채웠다. 누구의 어떤 책을 읽으며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다잡았는지 반지수가 읽은 책을 따라가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