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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무의미한 게 어디 있겠어 얼굴에 다 쓰여 있어 당분간 내향적 외향인 나의 기원을 찾아서 삶을 닮고 싶은 화가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애니메이션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그냥 귀여우면 어때 보통 사람들 언제나 영감 2 종이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의뢰와 창작의 줄타기 눈에 프레임을 달고 아는 만큼 그린다 불규칙적인 생활과의 이별 물 같은 나를 담는 그릇, 기록 네모난 홍보의 장 저작권은 작가에게 팩트반과 칭찬반 내 성장의 척도 단가 산정의 역사 3 매일의 작은 모험 방황하는 작업실 이상적인 역할 분담 스트레스 마주하기 변덕은 나의 힘 북 토크 애호가 결혼식은 안 할게요 순수한 재능이 부러워 난 앞으로 더 잘될 거야 대체로 행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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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유전자와 교육의 결합으로만 인간이 구성된다고 생각하면 재미없다. 어쩌면 누구도 닮지 않고 아무에게도 물려받지 않고 출처를 알 수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야말로 고유한 나만의 모습 아닐까. --- p.44 이제는 귀여운 인형과 물건을 만들고 갖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말하기 싫다. 오히려 ‘무의미한 귀여움을 사랑하고 좇을 거야!’ 외치고 싶다. 장난감 가게를 갈 때마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뽀글뽀글한 곰 인형을 볼 때마다, 커다란 눈망울의 목각 고양이 인형을 볼 때마다 ‘나에겐 이런 게 필요해. 사랑스럽고 좋아!’ 하며 온전히 마음을 주고 싶다. 마음이 동동 뛰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p.78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와 배달 앱을 쉴 새 없이 번갈아 가며 스크롤을 내렸다.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찝찝한 불쾌감을 몰아낼, 무기력함을 끝장낼 어떤 문장이 있지 않을까, 남들은 삶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뭐라도 먹으면 기분이 풀릴까. 맛집, 연예 인, 유명한 사람들의 소식을 걸리는 대로 눌러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 그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꼭 텅 빈 것만 같았다. --- p.99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일이고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매번 깨닫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세상의 모양을 점점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높아진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 p.135 계약서를 읽다가 한숨 쉬는 일은 언제쯤 사라질까. 그림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녀야 더 이상 문제가 안 생기려나. 내가 구구절절 수정을 요청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창작자의 저작권이 당연하게 존중받고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 p.174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다짐했다. ‘행복을 미루지 않을 거야! 인생은 짧아! 지금 당장 필요한(사실은 갖고 싶은) 빈티지 협탁을 살 거얏!’ 다섯 시간 후 일기장에는 이렇게 썼다. ‘더 이상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이미 필요한 것은 다 갖고 있어!’ 아침에는 인테리어 관련 영상을, 오후에는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다. --- p.231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내 그림에 만족한 적이 없다. 과거에도 현재도 자꾸만 미래를 기다리면서 산다. 미래에 뭐가 더 나올 것 같아, 앞으로가 중요해. 항상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자꾸 일을 벌이고 뭘 할지 궁리한다. 내 말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 --- p.262 |
외주와 창작의 경계에서 골몰하며
꼿꼿하게 닦아나간 자기만의 길 마땅히 도움을 받거나 의지할 데 없이 홀로 부딪혀야 하는 프리랜서의 특성상, 먼저 그 길을 닦아온 저자의 노하우는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다양한 경험담을 통해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창작과 의뢰받은 일의 적정한 줄타기, 계약과 비용 등에 관한 구체적인 조언을 들려준다. 풍경을 세밀하게 구현해내는 그는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어딘가 허술한 그림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라고 말할 만큼 자료 수집에 공을 들인다. 나뭇잎의 모양과 대나무가 뻗은 모습을 몇날 며칠 관찰하고, 온라인 지도의 ‘로드뷰’ 기능을 활용하여 외국 동네를 둘러보거나 십수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과거 풍경을 채집하기도 한다. “모르는 부분을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한 근거를 토대로” 그리되, “회화 작업으로서의 매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작업물의 단가를 산정하는 일과 저작권 양도에 관한 문제처럼 프리랜서 창작자들이 실제 계약에서 주의해야 하는 지점들도 톺아본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낮은 금액으로 단가를 책정했다가 선배 작가에게 “반 작가님은 노동운동도 했다면서 왜 자기 일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냐며 혼이 난 후 정신을 차렸고, 여전히 “저작권은 출판사에 귀속되며……”라는 대목을 심심치 않게 만나는 계약서에 한탄하며 저작권은 당연히 작가에게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계약서를 읽다가 한숨 쉬는 일은 언제쯤 사라질까. 그림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녀야 더 이상 문제가 안 생기려나. 작가가 구구절절 수정을 요청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창작자의 저작권이 당연하게 존중받고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저작권은 작가에게」(174쪽)에서 “내 말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대체로 행복하게, 그럼에도 더 잘될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 그리기 이전에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의 면모도 마음껏 펼쳐 보인다. 순수한 아이의 재능을 마주한 후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아이처럼은 될 수 없을 것 같”다며 울기도 하고, 국내외 미술관과 화집에서 매번 새로운 화가들을 발견하며 즐거움을 찾아내기도 한다. 나아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 자신의 말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겠다고 씩씩하게 다짐한다.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삶에 관해서도 전한다. 사주나 점을 맹신하지 않지만 응원의 말을 듣고자 종종 사주 카페에 들르고, 결혼식과 결혼반지를 생략한 남편과 고양이들과의 생활에 큰 만족감을 느끼며, 평화롭게 천변을 산책하면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면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그림을 그리기로 선택한 것이 자랑스럽고 마음에 든다고, 나는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이런 삶도 있다고.” 작가의 말 5년 전에 그린 그림을 지금 똑같이 따라 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 10년 뒤에나 나올 법한 성숙함을 미리 당겨쓰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오늘의 나는 오늘의 나만큼만 그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나다운 그림만 그릴 수 있다. 내 이야기를 쓸 때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미숙해도 지금의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고 다짐했다. 이 책에는 가장 최신 버전의 내가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