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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세 자매 역자 해설 ― 문학과 예술과 인생에 관한 짧지만 완벽한 논리 안톤 체호프 연보 |
Anton Pavlovich Chekhov,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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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안드레이치!」 그가 조용히 말했다. 갑자기 그의 살진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고, 검은 눈동자에는 한때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매력적인 표정이 번득였다. 「파벨 안드레이치, 자네에게 친구로서 말하겠네. 성격을 바꿔야 해! 자네와 같이 있기가 힘드네! 정말 그래, 힘들다네!」
---p.28 「당신은 자신이 고결하다고 생각하니까 온 세상을 미워해요.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이 무지와 미숙함의 표현이라며 미워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은 믿음과 이상이 없다며 미워하죠. 노인은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싫어하고, 젊은이는 자유분방하다고 싫어하죠. 농민과 국가의 이익은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개인적으로 농부를 만나면 혹시 도둑이나 강도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미워해요. 스스로 옳고 항상 원칙의 토대 위에 서 있다고 여기기에 소작농이나 이웃을 끊임없이 심판하려 들지요.」 ---p.56 한겨울 시골에 살아 봐서 개조차 너무 지루한 나머지 짖지 않고 시계도 제가 재깍재깍하는 소리에 지쳐 가는 길고 지루하고 고요한 저녁을 알며, 그런 저녁이면 갑자기 양심이 깨어나 평정을 잃고 하염없이 서성대면서 자기 양심의 소리를 외면해 보려다가 결국 듣게 된 사람이라면,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 작고 아늑한 방에 울려 퍼진 아내의 목소리가 내게 선사한 쾌감과 해방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57 부티가와 나 사이에는 얼마나 무서운 차이가 있는가! 무엇보다 부티가는 견고하고 근본적인 물건을 만들었고 자기 일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았다. 그는 인류의 영속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은 생각하지 않았으며, 아마도 죽음의 가능성마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수천 년을 버티고 존재해야 할, 철과 돌로 된 다리를 만들면서 〈이게 오래가기나 할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p.69 마샤: 그래도 의미라는 게 있지 않을까요? 투젠바흐: 의미라……. 지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p.138 이리나: 모스크바로 가야 해! 모스크바! 모스크바! ---p.156 이리나: 어디로 갔어? 죄다 어디로 갔냐고? 어디에 있어? 오, 어떻게 하면 좋아, 난 어떻게 해! 다 잊어버렸어, 잊어버렸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야……. 이탈리아 말로 창문이 무엇인지, 저 천장이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아……. 다 잊어버렸다고, 매일 잊어 가고 있어. 인생은 가면 다시 오지 않을 텐데, 우리는 모스크바로 갈 수 없을 거야……. ---p.175 마샤: 음악 소리가 들려! 다들 우리를 떠나나 봐. 한 사람은 영원히, 영원히 떠나 버렸고, 우리만 남았어. 다시 우리의 삶을 시작해야 할 텐데. 살아가야 할 텐데……. 살아가야 할 텐데……. ---p.212 이리나: 시간이 흐르면, 왜 이 모든 일이 일어났고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모두 알 수 있을까. 어떤 비밀도 없이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살아야겠지……. ---p.212 올가: 오, 하느님! 세월이 흐르고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잊힐 거야. 우리의 얼굴도 목소리도, 우리가 세 자매였다는 것도 잊힐 거야. 하지만 우리의 시련은 우리 뒤에 살아갈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바뀌어 지상에 행복과 평화가 찾아올 거야. 그러면 우리 후손들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좋은 말로 기억하며 고마워할 거야. 오, 사랑하는 내 동생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가야 해! 음악이 저렇게 밝고 즐겁게 울려 퍼지는 걸 들으니, 이제 조금만 지나면 우리가 왜 사는지, 왜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걸 알 수만 있다면, 알 수만 있다면! ---pp.212-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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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할 수 있어도 정답이 없는 질문
숨은 명작 단편소설 「아내」 나는 아내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 ― 85면 「아내」는 대기근과 역병이 러시아를 휩쓴 1890년대 초를 배경으로 농민 구제 사업을 펼치려는 지식인 파벨 안드레예비치와 나탈리야 가브릴로브나가 겪는 부부간의 갈등을 따라가며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지를 묻는다. 파벨 안드레예비치는 저술 활동에 집중하고자 시골 영지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지만 늘 마음이 불편하다. 굶주리고 병든 지역 농민들 탓인지, 집에 도둑이 든 사건 탓인지, 우울한 겨울 날씨 탓인지, 아내와의 오랜 불화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는 특권층으로서 뭐라도 해 보여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압박감에 구호 사업에 큰돈을 기부하기로 하는데,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도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님을 알기에 떳떳하지 못하다. 나탈리야 가브릴로브나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오데사 출신인 그는 남편에게 여권으로 상징되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기생충〉같이 살면서 무료함과 불안함에 〈찌들어 죽어 간〉다고 느낀다. 그런 그가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왁자지껄한 가운데 구호 활동을 도모하는 저녁 시간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남편과 말다툼 도중 고백한바 나탈리야는 그 일에서 자기 인생을 〈정당화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결국 부부에게 타인을 구제하는 일은 잠시나마 자신을 구원하는 일임이 드러난다. 이들은 한심한 부유층처럼 보이기 쉽지만, 체호프의 세계에서 독자가 어떤 인물에게든 경멸감을 느끼기란 어렵다. 무능하고 속물적인 지식인 남편이나 순진한 나르시시스트 아내에게도. 비판하되 경멸감이 들어설 자리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채워 넣는 것이 그의 탁월함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주인공과 달리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체호프 역시 대기근 시기에 의료 활동을 펼치며 농민 구제 활동에 매진했다. 그런 사실에 근거해 어떤 도덕적 우월함을 주장하는 대신 그는 자기 경험을 한 편의 시트콤 같은 단편소설에 녹여 내고, 감탄하거나 불편해서 웃음을 띤 독자에게 어떻게 타인과 함께 〈사람답게〉 살 것인지 자연스럽게 물으며 그 정답 없는 질문에 관한 사유에 접어들게 한다. 하모니를 이루는 파열음 영원히 상연될 대표 희곡 「세 자매」 시간이 흐르면, 왜 이 모든 일이 일어났고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모두 알 수 있을까. ― 212면 「세 자매」는 제정 러시아 말기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출구 없는 현실에 갇혀 점차 꿈을 잃고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프로조로프 일가의 세 자매 올가, 마샤, 이리나의 일상을 그린다. 막이 오르는 시점은 아버지의 1주기이자 막내 이리나의 명명일인 어느 봄날, 즉 죽음을 추모하는 동시에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첫 대사를 통해 올가는 1년 전 아버지 장례식 날(과거)의 음울한 분위기를 회상하고, 아름다운 모스크바로 돌아갈 날(미래)을 꿈꾸며, 매일의 고단한 밥벌이(현재)에 지쳤음을 토로한다. 그렇게 죽음과 삶,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이루는 불협화음이 개시되고 이는 변주와 확산을 거치며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학교 선생인 첫째 올가는 일 때문에 늘 괴로워하면서도 달리 살 방도가 없어 그만두지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교장직에 오른다. 이른 나이에 주부가 된 둘째 마샤는 결혼 생활에 숨 막혀 하던 중 베르시닌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는 군대와 함께 도시를 떠나간다. 노동이 갑갑한 상황을 타개해 주리라 믿던 셋째 이리나는 막상 일을 시작하자 환멸과 피로만 느끼고, 사랑하지도 않는 투젠바흐와 결혼해 모스크바로 떠나고자 하지만 그마저 좌절된다. 그들은 모스크바로 표상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내내 〈모스크바로 가야 해! 모스크바! 모스크바!〉(156면)를 외치나 결코 그곳에 닿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모스크바는 언제든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 돌이킬 수 없거나 다다를 수 없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다만 떨쳐 버릴 수 없는 현재를 지고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정은 우리 중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 베르시닌의 말처럼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잊힐 운명이고, 체부티킨의 말처럼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올가는 좌절한 채로 좌절한 동생들에게 힘주어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가야 해!〉(213면) 살아가는 것 외엔 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체호프는 등장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좇으며 곳곳에서 절망과 희망이 부딪치며 내는 파열음을 웃음으로 봉합해 슬프고 웃기는, 그래서 삶과 닮은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