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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걸어서 연못으로 나왔다가 흥이 일어 곧장 시를 짓다한능일이 찾아 줌에 고마워서사촌 동생 사중이 한중으로 책 읽으러 가는 것을 떠나보내며추석, 달을 마주하면서가을밤, 속마음을 노래하다 2수봄날 한가로이 지내며 일을 쓰다 5수《자성록》의 뒤에 쓰다족숙 사연의 시에 받들어 화운하다 6수나를 애도하며우연히 짓다산거하며 속마음을 적다 5수나를 경계하다9월 25일, 남명(南冥) 선생의 사당에 제사가 내렸기에, 그 예식을 보기 위해 다시 덕산(德山)에 갔다제사가 끝난 뒤 느낌이 있어서세심정에 올라 같이 놀러 온 제공과 수작하다 3수적벽을 지나며병든 나를 탄식하며나이 서른을 탄식하는 노래후회 2수이신약을 애도하며봄을 아쉬워하며가을 더위비로소 시원함이단구로 가던 중에 시를 짓다대각동으로 이주한 성경묵이 찾아와서유백삼이 보내 준 시에 받들어 화운하다 2수유잠가를 통곡하다 2수양여일의 〈송석재〉 시에 차운하다 4수금호강을 건너다유잠가의 고택을 찾다봄날 고향집을 그리워하며정취사에서 김천유와 삼가 헤어지며 4수유상동. 정명도의 운을 쓰다 2수 병서봄빛한밤에 앉아서삼월 초하루이도경에게 주며 헤어지다신 승지에게 삼가 드리다무제 2수정취사와 헤어지며다시 율시 한 수로 속마음을 보이다이사한 뒤에 읊다저녁 흥취육방옹의 〈복거〉 시를 읽다가 문득 그 운에 차운하다 2수오래된 병유거 2수병중에 의원 송경룡에게 화답하다 2수임장의 만사구암 서원 대관대에서 감회가 있어 2수가을날, 우연히 시를 지어 애오라지 나를 위로하다친구에게 차운하다 2수환아정 오덕계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봄날 저녁8월 14일, 꿈에 유잠가(柳潛可)의 편지를 받았는데, 다시 잠가도 보였네심운암에서 묵고 장차 삼산으로 갈 것이라, 한문칙과 성경묵에게 고마워하다세심정에서 양이겸의 시에 차운하다 3수청암 혈암. 이생의 시에 차운하다다시 짓다 2수허장을 추모하며한가로운 가운데 마음대로 읊다 5수정장을 추모하며졸다 일어나 빗소리 듣다때맞추어 내린 비봄날 혼자 지내다 2수이장 백회가 호계로 가는 것을 보내며 이별하는 마음을 써 주다여러 공과 같이 묵방사에서 놀다가 헤어지게 되니 감회가 있다악옹 허장이 찾아 주심에 삼가 고마워하며악옹과 삼가 헤어지며처사 소춘암의 시를 읽고 느낌이 있어서비 오는 가운데 매화꽃을 보며 느낌이 있어장맛비 탄식이현경이 대각 서원에서 글을 읽다가 때때로 달빛 아래 찾아왔다. 그 뜻이 느꺼울 만했다. 그가 돌아간 뒤에 이 시를 지어서 내 뜻을 부친다이현경에게 답하다 2수글을 보며 느낌이 있어노이극을 추모하며족숙 하징보를 추모하며가을날의 잡영 11수해설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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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예암(豫菴) 하우현(河友賢, 1768∼1799)은 진주 사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강중(康仲), 호는 예암(豫菴)이다. 수곡면 사곡 마을에 진양 하씨 터전을 처음 잡았던 석계(石溪) 하세희(河世熙)의 현손이다. 하우현의 학통은 남명학을 계승하며 가학으로 이어진다. 그 계보는 하항(河沆, 1538∼1590)에서 시작해 하겸진(河謙鎭, 1870∼1946)까지 이른다. 《예암집(豫菴集)》은 하우현의 시와 산문을 엮어 1902년에 현손 하영수가 편집 간행한 시문집이다. 문집의 내용은 5권 2책 목판본이며, 권1은 78제 129수, 권2는 소(疏) 1편, 서(書) 13편, 서(序) 2편, 기(記) 2편, 권3은 잡저(雜著) 11편, 권4는 잡저 1편, 제문(祭文) 2편, 애사 2편, 상량문 1편, 권5는 부록으로 행장, 묘표, 묘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암 시집》은 문집에 수록된 작품 중 하우현의 시 77제 128수를 수록했다. 당시 지역 고전 지식인이 갖고 있던 학업의 의미와 고뇌, 젊은 지식인의 삶의 방향을 반추할 수 있는 자료다.하우현은 8세에 소학을 시작으로 10세 때 《논어》 《맹자》의 대의에 통달했으며,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당시 동학들이 다들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자인했다. 하우현은 과거를 위해 공부하다가 문득 “천지 사이에 나서 성현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곧 천지와 서로 나란하게 화육(化育)에 참여할 수는 없을 것이리라. 나는 이제 오늘 용력할 곳을 찾았다”라고 말한 뒤, 발분해 과거 공부는 그만두고 먹을 것도 잊은 채 성리학 책을 가져다가 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정주학자들의 공부 방법을 따라 하면서, 치지(致知)를 학문의 요체로 삼고 이를 위해 항상 마음속에 경(敬)을 간직하고자 했다. 그는 성현이든 자신이든 인성은 다르지 않지만 기질의 차이로 우매함과 명철함이 나뉘게 되므로 지속적 성찰을 통해 성현의 경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을 사(士)로 의식하면서 학문과 뜻을 곧추세우려고 노력했고, 특히 친구들과의 도학적 교유를 통해서 고적한 자존감을 다져 나갔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도학에 대한 지속적인 경서 학습을 수행했다. 그 결과 《중용》의 경(敬)에 근원을 둔 것으로 보이는 지경(持敬)을 자신의 삶의 태도로 갖추었다. 《예암 시집》에 따르면, 하우현은 경학을 통한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경학 자체를 위한 공부도 또한 추구하지 않았다. 그에게 경학은 자신의 삶을 벼리는 기준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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