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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이 소윤에게 보내다산행교거자영밤에 앉아서연아즉사스님을 전송하며이중안에게 보내다자영신묘년 설날에 홀로 앉아 옛사람의 시에 차운하다임진년 3월 15일에 부인과 자식들이 한양에서 와서 촌가에 있기에 말미를 청해 가서 보았는데 설움과 기쁨이 한량없었다. 우울한 나머지 짓는다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새벽에 일어나서산사에 독서하러 돌아가는 김을 전송하며입춘에 회포를 읊다용암 스님에게 답하다운부사은해사비우연히 짓다스님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새벽에 절집을 찾다우연히 짓다벗과 헤어지다즉사환귀사에서 노닐며계흥 스님에게 주다무술년에 짓다벗에게 보내다죽계를 찾아가다. 구호사람을 전송하며자영천천히 거닐다회포를 적어 서파자에게 드리다남쪽 뜰에서 놀다누 위에서홀로 앉아서누에 오르다유거. 이우재의 시에 차운하다사람을 전송하며객지살이산사의 누대에 오르다병중새로 내린 눈스님을 전송하며저물녘 마음남곡 이헌납에게 드리다종백인 정 상사에게 보내다완산 유 생원에게 보내다소나무를 읊다. 이우재의 시에 차운하다우재 이 선생을 애도하다우연히 짓다최 판사의 옛집을 찾다벗에게 주다공덕사에서 묵다즉사새벽길스님을 찾아가다도중에명곡 스님을 전송하며나그네살이이 정랑 이립이 도성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며서울로 가는 사람을 전송하며절집산에 살며회포를 적다병중이남곡에게 답하다신림역에서 짓다단양으로 가는 길에서을미년 9월 초8일에 영천의 구거로 돌아오다비가 개다김 교수가 순흥으로 돌아가기에 시를 지어 전송하다김 교수 편에 아우에게 보내다자서백지사에서 우거하며김, 이 두 수재가 서울로 가는 것을 전송하며고거비밤에 앉아서 이 정랑 이립을 회억하다즉사홍시. 서파자에게 드리다벗인 김의 부고를 듣고 서글퍼서 짓다단비본가의 작은 누에서 짓다벗에게 주다이, 김 두 동년에게 보내다무신년 봄에 영천에서 법천 촌사로 거처를 옮기다신해년 입춘에 우연히 짓다사람을 전송하며최 녹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김생이 나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당진 방 사군의 부임을 전송하며수안 사군을 전송하며장인어른 이용헌에게 드리다밤에 앉아 강 스님과 조중경을 생각하다정언을 지낸 이이립이 서울에서 찾아왔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각명 장로가 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달김생의 현포도에 짓다옛 친구에게 주다입춘이암 도 스님에게 보내다삼짇날땅이 외져서회포를 풀다새벽에 경 스님 방에 들며환귀사에서 노닐며 명곡 스님에게 주다공산의 명 스님이 술을 들고 찾아오다성재인 외숙에게 올리다어떤 스님이 와서 공덕사의 경광을 말해 주기에 짓다우연히 짓다산사에서 묵다흥이 나서밤에 창수촌을 지나다명원루 위에서 회포를 적다8월 15일 밤우중자영스님을 전송하며촌거즉사촌사에 이르다밤에 앉아서아들을 전송하고 영천으로 돌아가다이웃에 어린아이가 죽었는데 그 어미의 곡소리가 애달파 시름겨워 짓다해설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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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가화(家禍)로 인한 19년간의 유배 생활유방선(柳方善, 1388∼1443)의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다. 송도(松都)의 방제(坊第)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때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에게 수학했는데 이들은 이색의 문인이다. 유방선은 1405년 18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입격해 성균관에서 유학하며 대과를 준비했다. 그러나 1409년 부친 유기가 ‘민무구(閔無咎) 형제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방선은 청주로 유배되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가화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그는 《주역》의 태괘(泰卦)를 자호로 삼고, 영천 서산의 송곡 아래에 작은 집을 지어 ‘태재’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영천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이안유(李安柔), 조상치(曺尙治), 최원도(崔元道)와 같은 지역 문인들을 포함해 승려들과도 활발히 교유했고, 지역의 자제들을 양성했다. 1427년에야 완전히 사면되었는데 유배 기간이 모두 19년이었다. 1431년에 영천에 있던 가족을 이끌고 원주의 법천으로 갔다. 이후 1443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법천에 머무르며 시문을 강학했다.여말 선초의 시단유방선은 비록 가문의 정치적 시련으로 인해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고려 말 시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조선 초 시단을 진작했다고 평가받는다. 서거정, 권남, 한명회 등 탁월한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특히 조선 전기 문단을 대표하는 서거정은 “내가 문명(文名)을 훔쳐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모두 선생이 베푼 은혜다”라고 했고, 허균도 자신의 가학의 연원을 유방선에서 찾았다. 유방선의 시문학은 고려 후기 이색, 이숭인, 정몽주, 권근, 변계량으로부터 조선 전기 서거정, 권남, 이승소, 성간, 그리고 허균에 이르는 여말 선초 문학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의 문집 《태재집》은 모두 5권 2책으로, 권1∼3은 시, 권4는 문, 권5는 부록이다. 수록된 시문은 시가 모두 663수(527제)이고 문이 모두 14편으로, 유방선의 문학 세계는 시를 통해 구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언 율시의 매력특히 그는 두시(杜詩)에 정통했는데, 율시의 대가였던 두보의 영향을 받아 《태재집》에도 율시가 절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한다. 《태재 시선》에는 그중 5언 율시 125제 153수를 수록했다. 이 5언 율시에는 그가 교유하고 시를 주고받았던 주요 인물들이 상당수 등장해 당시 학맥과 문단의 교유 관계를 살필 수 있다. 또한 유배지에서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 많고 창작 시기가 명기된 작품도 있어, 특별한 사전 지식 없이도 시를 한 수씩 읽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삶의 궤적이 그려진다.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한(閒)’의 정서를 잃지 않는 작품이 많아 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무엇보다 그의 율시는 대구가 뛰어나고 허사의 쓰임도 절묘해 율시의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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