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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_ 9
1장 나 놀던 옛 동산 고향 이야기 _ 19 성안집의 추억 _ 26 무더위 속의 강복降福 _ 32 어린 날의 착각 _ 36 딸 많은 집 셋째 딸 _ 47 어느 고양이의 꿈 _ 56 2장 성안집 사람들 아버지 아버지와의 만남 _ 69 쾌락주의와 박애주의의 함수관계 _ 80 산과 그림자 _ 88 어머니 하늬바람과 싸우는 여인 _ 99 메멘토 모리 _ 104 생명이 진 빚 _ 112 피의 마디 _ 118 씰 비치Seal Beach에서 만난 어머니 _ 124 죠세트 원피스와 무명 속옷 _ 127 오빠 나의 오빠 오봉선생五峯先生 _ 134 지까다비와 북행열차 _ 139 최초의 여행 _ 144 어둠 속에 찍힌 판화 _ 147 큰언니 언니의 혼일婚日 _ 159 향수동鄕愁洞 _ 210 비상시의 이력서 _ 234 축배 없는 잔치 _ 243 작은언니 잠자는 공주의 잠꼬대 _ 249 가달거리기와 걷어 먹이기 _ 253 이름값 _ 260 병복病福 _ 265 어느 욥의 이야기 _ 271 우리들의 병든 기쁨조 _ 275 남동생 갈대마나님 _ 282 3장 글로리아의 계절 내가 처음 본 데모 _ 289 패러디의 역사 _ 293 1945년 8월 _ 300 글로리아의 계절 _ 303 해설 _ 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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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내성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편인 나는, 자신이 타고난 차례를 혐오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언니하고 싸우면, 쪼꼬만 게 까부는 것이 되고, 동생하고 싸우면 다 큰 것이 민한 짓 하는 게 되는데, 무슨 수로 배겨내겠는가? 앉은 자리에서 쪼꼬매졌다가 커졌다가 하니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가 온다. 유년기에 나는 자신이 어린앤지 어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늘 혼란스러웠다.
_ ‘딸 많은 집 셋째 딸’ 중에서, 48쪽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그 후에도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성취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에서 역사상 가장 작은 집을 지을 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 여남은 평의 작은 집을 지으면서 어머니는 서울대에 들어간 나를 위해 폭 넉 자짜리 골방을 따로 만들어주셨다. 당신의 팔 하나를 잘라내는 것 같은 비장한 심정으로 그 방을 내주셨을 것이다. 드디어 소원을 이룬 나는 그 골방에서 행복했다. 비가 올 때마다 도배종이가 들뜨는 서푼 판자벽에 시험지 같은 것으로라도 번번이 새로 도배를 하면서, 나는 그 작은 방에서 밤을 새우며 서정주와 정지용, 보들레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읽었다. _ ‘어느 고양이의 꿈’ 중에서, 62-63쪽 아버지는 내게는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분이었다. 에피큐리언으로 시종하든지, 아니면 박애주의자로 일관했으면 훨씬 쉽겠는데, 그 두 가지 상반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계시니 난해해진다. 몇 달 만에 아내를 만나러 오면서 딴 여자를 달고 오는 무신경함, 맛있는 음식을 혼자 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유아스러움 같은 것이, 모든 인간의 아픔을 헤아리는 박애주의와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자신의 욕구를 다 충족시키면 저런 넓은 사랑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박애주의는 자기 충족을 바탕으로 해야 생겨나는 것일까? (중략) 내가 본 아버지의 특징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극진히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정말로 율법을 다 이룬 것일까? 1901년에 나서 1987년에 가신 그 삶을 이어령 씨는 묘비명 속에 이렇게 집약했다. 온 가족과 백 사람의 친구를 한 가슴에 품으시고도 넉넉한 자리 남기고 떠나시니 한 여름의 뙤약볕에 푸른 그늘 드리운 큰 느티나무다워라 _ ‘쾌락주의와 박애주의의 함수 관계’ 중에서, 84-87쪽 그 무렵에는 정신대 때문에 신랑감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적령기의 남자는 모두 군대에 끌려가서 신랑감이 없었다. 그런데 언니에게는 금방 신랑감이 나타났다. 폐가 좀 약한 것을 빌미로 손을 써서 징집을 면한 사람이라는데, 모든 조건에 흠이 없었다. 나이는 언니보다 한 살 위이고, 문벌도 좋은데 가세도 넉넉하다. 상황이 급박한 판인데, 병역을 면제 받은 신랑감이, 병색도 짙지 않고 인품도 마음에 드니 할아버지가 서두신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우집에 내린 날벼락이었다. 말은 꺼냈지만 여기에서는 아직 부모도 당사자도 전혀 결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잠깐 결혼을 시켜 볼까하고 생각해 본 정도다. 게다가 신랑을 본 일이 없으니 약혼을 한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펄펄 뛰면서 반대를 했다. _ ‘언니의 혼일’ 중에서, 171쪽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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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가장 아프고 고단했던 시절을 견뎌 낸
나의 사랑, 나의 가족 우리 집 식구들은 뿌리를 잃어 힘들게 살아왔지만 대체로 낙천적이다. 아버지의 박애주의와 쾌락주의, 어머니의 강렬한 성취의욕, 병복에 시달리면서 웃고 사는 동생의 웃음 같은 것들은 성안집 사람들의 집단적 개성이다. 그것들은 어떤 폭악한 정치도 말살하지 못했다. 나는 결정론자는 아니지만 이 세 개의 축이 한 가족 안에서 만들어 내는 파랑波浪의 무늬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80년을 살아왔다. 각자의 대응법이 모두 달라서 보고 있으면 재미가 있다. 이 작은 책은 욥처럼 억울한 수난을 많이 당한 한 가족의 피가 만들어 낸 다양한 변주곡의 파노라마다. _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