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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_『1914년 네덜란드판』 서문 : 요안나 반 고흐-봉어르가 쓰다 _『빈센트 반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판』 서문 : V. W. 반 고흐가 쓰다 _『1960년 갈리마르판 반 고흐 서간집』 서문 : 조르주 샤랑솔이 쓰다 1. 네덜란드_ 헤이그 Den Haag /1872년 8월~1873년 5월 2. 영국_ 런던 London /1873년 6월 18일~1875년 5월 18일 3. 프랑스_ 파리 Paris /1875년 5월~1876년 3월 4. 영국_ 램스게이트 Ramsgate · 아일워스 Isleworth /1876년 4월~12월 5. 네덜란드_ 도르드레흐트 Dordrecht /1877년 1월 21일~4월 30일 6. 네덜란드_ 암스테르담 Amsterdam /1877년 5월 9일~1878년 7월 7. 네덜란드 · 벨기에_ 에턴 Etten · 보리나주 Borinage · 브뤼셀 Bruxelles /1878년 7월~1881년 4월 8. 네덜란드_ 에턴 Etten /1881년 4월~12월 9-1. 네덜란드_ 헤이그 Den Haag /1881년 12월~1882년 12월 |
Vincent Willem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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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고 거의 24년이 지나서야 나는 이 편지 전집을 완성했다. 편지의 뜻을 해독해내고 날짜별로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날짜가 빠진 편지도 많았고, 그것들을 순서대로 배열하려면 아주 주의깊게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더 일찍 출간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빈센트가 인생을 바쳐서 그려낸 작품들이 정당한 평가와 칭송을 받기도 전에, 그의 성격부터 주목을 받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년이 걸렸지만 마침내 빈센트가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마침내 그라는 ‘사람’이 알려지고 이해되어야 할 시간이 왔다. 부디 이 편지들이 세심하고 소중하게 읽히기를 바란다.
--- 「1914년 1월 요안나 봉어르가 쓴 ‘서문’」중에서 항상 여기저기 거닐어 산책을 많이 하고, 자연을 한껏 사랑해라. 그게 바로 예술을 오롯이 이해하는 진정한 길이야.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지. 그리고 우리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줘. 게다가, 명작만 그리지 졸작이라곤 만들 줄 모르는 화가들이 있지. 사람들 중에도 악행이라곤 모르고 선행만 행하는 이들이 있듯이 말이야. 이곳이 마음에 든다. 숙소도 훌륭하고, 또 런던이라는 도시는 물론 영국인들과 영국적인 생활양식을 관찰하는 게 대단히 즐거워. 거기다가 내게는 자연과 예술과 시도 있지. 이런 삶이 부족하다면, 도대체 뭐가 더 있어야 충분하니? --- 「13번 편지에서」중에서 난 보리나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에턴 근처에 있었으면 하셨지만 내가 거절했지. 그리고 그건 잘한 결정이었다. 본의 아니게, 가족에게 이미 난 골칫덩어리,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요주의 인물로 취급되는데, 내가 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겠어? 그러니까, 결국엔, 내가 집과 적당히 떨어져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게 가장 최선이자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판단했다. 새들이 깃털을 바꾸는 털갈이 시기가, 우리 인간에게는 어려움을 겪는 시련과 불행의 시기야. 털갈이 도중에 멈춰버릴 수도 있지만, 새롭게 거듭날 수도 있지. 하지만 어쨌든 그게 남들 앞에서 드러내고 할 일은 아닌 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거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안 보이는 곳으로 숨는 거야. 글쎄, 내 마음이 그렇다. --- 「133번 편지」중에서 내가 하루 종일 그녀(시엔)와 붙어 다니다 보니 이런저런 소문들이 도는데,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지? 솔직히 이렇게 소중하고 또 못생긴(???), 아니 ‘시든’ 보조자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었어. 내게는 아름다운 여성이야. 그녀에게서 내가 정말 원하는 걸 찾을 수 있거든. 세파에 찌들고 고통과 시련이 그녀에게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갔지만, 그 부분에서 얻을 게 있어. 갈아엎지 않은 땅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어. 그런데 그녀는 경작된 땅과 같아. 그녀에게서는 주름진 삶을 살아보지 않은 여자 여럿보다 많은 걸 얻을 수 있어. --- 「라8번 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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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는 그림을 단 1점밖에 팔지 못했는데
죽어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된 빈센트 반 고흐, 스스로 자기 그림의 큐레이터이자 도슨트가 되어 설명해주는 듯한 상세한 뒷이야기들 빈센트 반 고흐는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살아생전에는 작품을 900여 점이나 쉴 새 없이 그렸어도 단 1점밖에 팔지 못한 무명화가였다. 죽기 반 년쯤 전에 친구의 누이가 [붉은 포도밭]을 사준 것이 전부였다. 10년 동안 그림에 매진했지만, 얼굴도 ‘못생기게 그리고’ 색도 ‘이상하게 칠하는’ 괴팍하고 무능력한 화가로 취급받았다. 그런 빈센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지켜준 것은 4살 터울의 동생 테오뿐이었다. 둘 다 비슷한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화랑에서 일을 시작했기에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이 평생 이어졌다. 빈센트는 긴 방황 끝에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인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그림 연습에 매진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자 후원자인 동생 테오에게 엄청난 분량의 편지를 자주 썼는데, 특히나 그림을 그리는 전 과정을 자세하게 적었다. 지금 어떤 습작을 훈련 중인지, 그림의 대상은 어떻게 선정했는지, 어떤 기법으로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 어떤 지점에서 왜 실패했고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무슨 액자에 어떤 조명을 설치해서 감상할 것인지 등등, 마치 스스로가 자기 그림의 큐레이터이자 도슨트가 된 듯이 상세히 설명해서, 오늘날 우리가 반 고흐의 그림을 더 정확하고 깊이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 의미에서 형제간의 편지글이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화가 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임파스토 기법(덩어리처럼 두껍게 칠하는 채색), 보색대비, 데생의 원칙, 자연을 그리는 이유 등을 듣고 나면 ‘못생기고 이상하게’ 보였던 그림들의 의미가 깊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의 3개국어로 미술(예술), 종교, 문학 등등 다방면에 걸쳐 쏟아내는 인문학적 고뇌 죽을 때까지 이해받지 못했던 ‘고독한 화가’ 빈센트의 간절한 독백들 방대한 분량, 전문적인 회화 용어 외에도, 이 사사로운 편지글들이 읽기 힘든 이유들이 더 있다. 우선, 편지에 3개의 언어(네덜란드어, 영어, 프랑스어)가 복잡하게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세 언어 중 어느 언어도 완벽히 구사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외국을 떠돌며 외국어를 독학한 탓에 외국어 문법은 물론이고 모국어 실력도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빈센트가 구사하는 네덜란드어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브라반트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는 구어에 가까우며 독일어 어법에 영향을 받은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단어를 개인적인 의미를 담아 변형한다.(모이스 베이르블록)” “편지를 읽다 보면 읽기 민망할 정도로 수많은 맞춤법 오류와 문법적 오류가 눈에 띄고, 구두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이해에 방해가 되는 문장도 보인다……. 네덜란드어에 없는 영어나 프랑스어 표현을 네덜란드어로 직역하기도 하고, 남의 글을 인용할 때도 자신의 자의적 해석대로 옮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루이 로엘랑트)” 또한 빈센트는 목회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미술상인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종교, 미술(예술), 문학에 눈떴고, 집요하리만치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그 독서의 넓이와 깊이가 결코 만만치 않은 데다가, 사색의 내용들을 동생 테오와 빠짐없이 나누고 싶어서 며칠 간격으로 장문의 편지를 지치지도 않고 써내려갔기에, 부연설명 없이 둘만의 추억과 지인을 언급했거나 특정 작품의 구체적인 글귀를 인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다가 일부 중요한 사실들은 빈센트가 테오에게조차 거짓으로 말하거나 혹은 묵언으로 의도적으로 숨기기도 했다. 가령 이제는 꽤나 유명한 그의 여러 차례의 연애 사건과 기행들을, 그는 동생에게 말하기 창피했던 것인지 편지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즈음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구절을 인용해 적거나 특정한 그림을 소개하는 식으로 시치미를 떼고 슬쩍 넘어갔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러한 공백을 채워서 읽는다면, 이 긴 편지글들은 흥미롭게 순식간에 읽힐 것이다. ‘옮긴이의 글’에서 빈센트 반 고흐 편지 전집 번역 의뢰를 받았을 당시, 필자는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분량 때문에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빈센트 반 고흐라니 일단 읽어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그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런던으로 건너간 빈센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도중, 그가 해 질 녘 런던 하늘을 묘사한 대목에 이르자 필자는 격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했다. 여름 한 철을 제외하고는 한국에 비해 이른 시각에 해가 저무는 탓에 아쉬움이 많았지만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분홍색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빛의 스펙트럼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주던 그 아름다운 런던 하늘이 바로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눈을 사로잡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게 필자는 런던의 하늘에 취해 반 고흐 편지 전집 번역이라는 대장정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크게 세 가지일 것이다. 미친 화가, 천재 화가, 저주받은 화가. 정신질환을 앓다 생의 말년에 요양원 신세를 져야 했으니 미쳤다고 할 수도 있고,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 없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명화를 남겼으니 천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평생 자기 그림 한 점 번듯하게 팔아 돈을 벌어본 적 없었지만, 사후에 그의 작품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에 달하고 있으니 지지리 운도 없는 저주받은 화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 빈센트 반 고흐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며 소심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한 사람의 화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그림 그리는 일에 온 힘을 쏟았고, 그가 죽기 직전까지 바랐던 건,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어 먹고사는,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화가가 되는 일이었다. 이 책에는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663통을 비롯해서 동료화가, 친구, 다른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150통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편지가 갖는 가장 큰 의의라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명화가 어떤 이유로,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그린 그림인지 그 탄생 과정을 그의 설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