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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세우는 말 _5
凡例 _9 「提要」 _11 「格致餘論原序」 _14 「格致餘論序」 _20 格致餘論 _24 「?食色欲箴序」 _24 「?食箴」 _24 「色欲箴」 _26 「陽有餘?不足論」 _29 「治病必求其本論」 _35 「??論」 _39 「養老論」 _43 「慈幼論」 _55 「夏月伏?在?論」 _62 「豆瘡陳氏方論」 _69 「痛風論」 _78 「??論」 _82 「病邪雖實胃氣傷者勿使攻擊論」 _88 「治病先觀形色然後察?問證論」 _94 「大病不守禁忌論」 _99 「?病痰病有似邪?論」 _103 「面鼻得冷則黑論」 _109 「胎自墮論」 _111 「難産論」 _113 「難産胞損淋瀝論」 _116 「胎婦轉胞病論」 _118 「乳硬論」 _121 「受胎論」 _125 「人迎氣口論」 _129 「春宣論」 _131 「醇酒宜冷?論」 _134 「癰疽當分經絡論」 _138 「脾約丸論」 _143 「鼓脹論」 _146 「疝氣論」 _154 「秦桂丸論」 _157 「惡寒非寒病惡熱非熱病論」 _162 「經水或紫或黑論」 _167 「石膏論」 _169 「?大必病進論」 _171 「生氣通天論病因章句辯」 _172 「太僕章句」 _177 「新定章句」 _178 「倒倉論」 _179 「相火論」 188 「左大順男右大順女論」 _198 「茹淡論」 _202 「吃逆論」 _207 「房中補益論」 _213 「天氣屬金說」 _217 「張子和攻擊法論」 _220 朱震亨年表 _227 처방색인(處方索引) _230 부록 『標點懸吐譯注 太極圖說解』 |
朱震亨
蘇在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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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格致餘論』은 朱丹溪가 67세일 때인 서기 1347년에 문하생인 張翼 등의 요청에 따라 저술한 책이니, “格致”는 『大學』에서 유래한 “格物致知” 즉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지극히 한다.”라는 말의 줄임말이고, “餘論”은 흔히 “자질구레하고 짧은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 朱丹溪도 이 책의 自序에서 “古人들은 醫學을 우리 儒者들이 格物致知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책의 명칭을 『格致餘論』이라 하였다.”라고 말하였으니, 대체로 이런 뜻으로 책의 이름을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 이 책의 『四庫全書』 本의 〈提要〉에 보이는 “學醫는 特其餘事라.” 즉 “醫學을 익힌 것은 다만 그 餘暇 때의 일일 뿐이었다.”라는 말에 의거하면 “格致餘論”을 “格物致知의 여가 시간에 論한 글”이라는 뜻으로 본 것이니 또한 뜻이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 朱丹溪는 30세에 모친의 脾疼을 여러 의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醫學에 뜻을 두어서 마침내 『素問』 등의 의서를 取하여 읽기 시작하여 34세 경에는 모친의 질병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36세 때에 東陽의 八華山으로 가서 朱子의 四傳之學을 이어받은 許文懿公에게서 道學 즉 性理學을 배웠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朱丹溪에게 醫學이라는 것은 儒者가 하는 格物致知의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본서의 내용 중에는 『周易』과 『尙書』와 『禮記』와 『論語』와 같은 여러 儒家經典의 글들과 『素問』과 『金?要略』과 『素問玄機原病式』과 『內外傷辨惑論』과 같은 여러 醫書의 내용들이 縮約되거나 變文되어 인용된 것들이 매우 많아서 朱丹溪의 말처럼 儒者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글이 많으므로 역자가 古漢文에 능숙하지 않은 오늘날의 전공자들을 위하여 이런 글들에 일일이 脚注와 標點을 달고 懸吐를 하였으며 가능한 한 逐字飜譯을 하여 醫學의 이치와 함께 漢文의 文理까지도 터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앞세우는 말 『格致餘論』은 朱丹溪가 67歲일 때인 西紀 1347年에 門下生인 張翼 等의 要請에 따라 著述한 책이니, “格致”는 『大學』에서 由來한 “格物致知” 즉 “事物의 理致를 窮究하여 知識을 至極히 한다.”라는 말의 줄임말이고, “餘論”은 흔히 “자질구레하고 짧은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朱丹溪도 이 책의 自序에서 “古人들은 醫學을 우리 儒者들이 格物致知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책의 名稱을 『格致餘論』이라 하였다.”라고 말하였으니, 대체로 이런 뜻으로 책의 이름을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四庫全書』本의 〈提要〉에 보이는 “學醫는 特其餘事라.” 즉 “醫學을 익힌 것은 다만 그 餘暇 때의 일일 뿐이었다.”라는 말에 依據하면 “格致餘論”을 “格物致知의 餘暇時間에 論한 글”이라는 뜻으로 본 것이니 또한 뜻이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朱丹溪는 30歲에 母親의 脾疼을 여러 醫師들이 束手無策으로 治療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醫學에 뜻을 두어서 마침내 『素問』 等의 醫書를 取하여 읽기 始作하여 34歲 경에는 母親의 疾病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水準이 되었지만, 36歲 때에 東陽의 八華山으로 가서 朱子의 四傳之學을 이어받은 許文懿公에게서 道學 즉 性理學을 배웠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朱丹溪에게 醫學이라는 것은 儒者가 하는 格物致知의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本書의 내용 중에는 『周易』과 『尙書』와 『禮記』와 『論語』와 같은 여러 儒家經典의 글들과 『素問』과 『金?要略』과 『素問玄機原病式』과 『內外傷辨惑論』과 같은 여러 醫書의 內容들이 縮約되거나 變文되어 引用된 것들이 매우 많아서 朱丹溪의 말처럼 儒者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글이 많으므로 譯者가 古漢文에 能熟하지 않은 오늘날의 專攻者들을 위하여 이런 글들에 일일이 脚注와 標點을 달고 懸吐를 하였으며 가능한 한 逐字飜譯을 하여 醫學의 理致와 함께 漢文의 文理까지도 터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配慮하였다. 또 本書의 내용 중에서 〈相火論〉과 같은 글은 周濂溪의 『太極圖說』의 內容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理解하기 어려운 글이므로 附錄으로 朱文公의 『太極圖說解』의 標點懸吐譯注本을 덧붙여서 參照할 수 있게 하였다. 2023년 9월 29일 仲秋節 밤에 蘇在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