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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 · 9
감사의 말 · 315 옮긴이의 말 · 317 |
Brenda Loz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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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마가 살해당했다는 말을 전하러 과달루페가 온 것은 오후 6시였어요. 나는 내가 태어난 시간도, 해도 모릅니다. 나는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 몰라요. 산이 솟아나듯 나는 태어났습니다. 산에게 언제 태어났냐고 물어보십시오. 하지만 팔로마가 살해당했다는 말을 전하러 과달루페가 온 시각이 6시였다는 것은 압니다.
--- p.9 “그러니까 이게 어디서 오냐면 말이지, 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 “하지만 엄마, 우리가 레안드라를 구하러 갔잖아요.” “누가 너 혼자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했니?" --- p.131 그 무엇도 그녀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치유자가 아닌 그녀의 진정한 길을 찾았으니까요. 그건 팔로마로 살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빛을 머금은 눈을 깜빡이듯 새하얗고 가벼운 날갯짓으로 하늘을 누비며 보는 이들의 눈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녀를 보았을 때, 팔로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pp.165-166 팔로마가 말했지요, 우리가 싸웠던 전장에는 꽃을 가지고 가야 하는 법이야. --- p.168 꿈은 새처럼 가볍고 빠르게 잊힙니다, 꿈은 날아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영화에서 본 장면은 쉽게 잊지 못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환영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경험한 환영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올 수는 없지만, 환영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받아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삶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과 똑같아요. 이 땅 위의 만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신께서 우리에게 빌려주신 거니까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는 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그 모든 걸 뒤로하는 겁니다. 모든 건 빌린 것이니까요, 그리고 만일 무언가 가져가는 게 있다면 그건 신의 메시지일 겁니다. 그 메시지는 의식을 통하여 볼 수 있지요. --- p.240 읽을 수는 없지만 나는 책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형식이 다 똑같듯 책을 구성하는 형식도 다 똑같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책들을 소중히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책이 책과 같기 때문이고, 모든 책이 언어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 p.247 조에 양의 이야기를 하십시오, 나의 이야기를 하십시오, 조에 양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몇 번이고 조에 양에게 물어보고 물어보았던 겁니다. 조에 양의 이름을 말하십시오, 내 이름을 말하십시오, 아니면 조에 양의 이름과 내 이름을 모두 말하십시오, 결국 둘은 같은 것이니.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는 모두 같기 때문이지요. --- p.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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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서로를 지탱하며 나아가는 여자들의 공동체 소설은 젊은 기자 조에와 전설적인 언어의 치유자로 알려진 펠리시아나, 두 여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진다. 둘을 이어주는 것은 펠리시아나의 사촌이자 스승 역할을 했던 팔로마의 죽음이다. 여성 살해에 대한 분노와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전 세계의 유명 예술가들이며 학자들, 백만장자들이 찾는 펠리시아나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조에는 살인 사건 기사를 맡기로 결정하고 펠리시아나를 취재하기 위해 산펠리페의 산골로 찾아간다. 그러나 조에가 소설 초반에 말하듯 이 이야기는 “범죄 이야기가 아니”고, “펠리시아나가 어떤 사람인지, 팔로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조에의 여동생과 엄마 그리고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에와 펠리시아나는 각각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여자들이다. 멕시코시티에 살고 초자연적인 모든 것에 회의적인 젊은 조에는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멕시코를 대변하는 반면, 외진 곳에 위치한 산펠리페에 살며 주술적인 치유 의식을 집전하는 노년의 펠리시아나는 전원적이고 마술적인 멕시코를 대변한다. 이렇듯 거의 모든 면에서 양극단에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할 수 있는 것은 둘의 삶이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여자에게 유난히 각박한 사회 속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해나가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팔로마이기 전에 가스파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태어난, 사포텍문화에서는 제3의 성으로 인정받는 무셰인 팔로마가 펠리시아나를 치유자의 길로 이끌었고, 이후 조에와 펠리시아나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여 두 세계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렇게 치유자가 된 펠리시아나는 스스로도 몰랐던 조에의 고인 상처를 알아보고 치유를 시작한다. 또한 팔로마를 통해 만나기 전까지 조에와 펠리시아나가 그들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그들의 어머니와 자매다. 모두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이 여자들은 엄마로, 딸로, 자매로, 친구로 서로를 지탱하고 돌보며 연대의 물살 위로 나아간다. “언어가 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진실을 들여다보고 숨겨진 것들을 밝히며 세상을 창조하는 언어의 힘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마녀들》이 힘을 탐구하는 소설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물건의 힘, 돈의 힘 대신 언어의 힘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때 언어는 흔히 생각하는 피상적 언어가 아니다. 펠리시아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비롯하여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그 어떤 언어도 할 줄 모르기에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당신이 언어의 샤먼이라는 것인지 의문을 표한다. 이에 펠리시아나는 답한다. 언어가 하는 일이 그런 겁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 의미를 알게 되곤 하지요. (...) 단어를 말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창조합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었듯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창조하는 세상인 겁니다. _210쪽 그 외에도 소설 속에서 언어는 “우리가 겪은 일들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는 것”이며, 연결되어 있는 만물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뜨이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언뜻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무언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언어의 힘은 사실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며 구사하는 힘이고 지금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힘이다. 오해와 분란이 쉽게 생기곤 하는 표면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아래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말하는 힘,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힘, 그렇게 숨겨진 것들을 발화했을 때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힘 말이다. 언어의 힘을 경험한 조에에게 펠리시아나는 말한다. “조에 양이 본 것을, 내가 조에 양에게 말한 것들을 말하십시오.” 이 말은 조에를 통과하여 소설이 인쇄된 페이지 너머의 독자들에게까지 와닿는다. 한 리뷰어는 이 책이 “그 자체로 세상의 냉혹함에 대항하는 치유와 명상의 공간”이라고 평했다. 펠리시아나가 언어의 힘으로 조에를 치유하고 조에의 언어를 일깨워주는 과정을 목격한 독자에게 이 소설은 폭력에 대항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의미와 삶을 창조하는 힘을 지닌 자신의 언어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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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힘을 통제하는 데 거듭 실패한 세상과 언어 자체의 순수한 마법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성한 동시에 불경한 비밀에 대한 매혹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 - 캐서린 레이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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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애정과 다정함으로 쓰인 소설.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매혹되어 빠져들게 한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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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노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물들과 그들의 유동적인 정체성들을 훌륭하게 구분해낸다. 강렬하고 복합적이다. 매력적인 작가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준다. - 퍼블리셔스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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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은 두 여성의 관점과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힘의 원천을 찾아가는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소설은 결말 부분에서 마술적 힘을 발휘하여 책에서 말하는 다른 형태의 앎을 규정한다. - 시카고리뷰오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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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문학 속에서 이런 목소리를 만나고 싶었다. 민간설화나 클리셰 없이, 진실한 감정과 복잡성을 담은 현대 오악사카 마녀의 시적인 목소리 말이다. 아름답고 고통스러우며 유쾌하고 다정한 소설이다. - 프랜시스코 골드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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