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여는시
이따위 세상에 사랑 10 1부 붉은 비 14 복서 16 태엽 사람 18 불타는 행성 20 AI 사랑 22 기억 속으로 온다 24 발광다이오드 별 26 우리는 모르는 사이 28 모래와 바람의 전언 30 즐거운 하루되세요 32 기억 캡슐 34 글라이더 36 달콤한 공기의 세계 37 2부 비보이 40 먼지 얼굴 42 엘도라도에서 춤을 43 날마다 기적 44 직립 기억 46 타임 루프 48 이륙 자세 50 버섯구름 축제 52 랄랄라 54 가로등 징검다리 56 눈물 지층 58 3부 황금 혀를 위하여 60 화양연화 62 네가 없는 행성에서 64 스릴러 시 66 얼음 행성 68 그대 뱃속에 유골이 70 엔딩 드라이브 72 풀잎 전쟁 74 도둑들 76 봄꽃, 저수지 개들이 온다 78 역전 뒷골목 캘리포니아 모텔 80 클릭, 클릭합니다 82 밤 개 84 새는 빗속에서 뼈마디 뒤틀어 길을 바꾼다 86 러시안 룰렛 87 4부(Ⅰ) 쿠바에서 룸바 90 햇살 속으로 내리던 비 92 그리고 또 생은 흘러갔다 93 도시 미아 94 장마 96 어떤 엔딩 98 중년을 만나다 100 칸나가 아름다운 날 102 세 개의 달에게로 초대 104 플라타너스 수화 106 4부(Ⅱ) 해변에서 108 그래도 봄이었다 110 너에게 불러주던 노래 112 사진 114 전학 간 아이 116 떠도는 산책 118 잊힌 약속 120 산문 문예사조라는 허상 122 |
|
붉은 비가 내린다.
죽은 자의 자세로 서 있는 창문 날아가 버린 콘크리트 벽 잔해들 도시를 뒤덮는 그림자마저 붉다니 살을 뚫고 들어오는 방사능 빗방울 함성, 공중을 걸어 다니는 먼지 발자국 햇살과 바람의 냄새를 맡던 코가 사라진 두개골 증발해버린 피가 구름으로 회오리쳐 떠다니다가 세슘에 섞여 비로 내린다. 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수만 년째 붉은 비만 내리고 있다. --- 「붉은 비」중에서 컵밥이 좋아, 자판기가 던져주는 하루가 가볍게 음미하는 삶에 오우, 소리 질러 버튼을 누르면 위이잉 쏟아져 나오는 바코드 찍혀 있는 하늘 바다 들판 뜨거운 물 부어서 2분 30초 기다렸다가 먹는 어디까지 날아오를까. 동전 하나로 되살아나는 웃음이 싫어 날개는 잘린 것인지, 삭제되었나? 대낮에도 즉석 별들이 은하수 유성으로 떠다니는 두 평 반 옥탑방에서 퍼덕거리다가 뒹굴뒹굴 반지하에서 질척거려보다가 뻥 내쫓겨, 시멘트 바닥을 굴러 비보이 춤을 춘다. --- 「비보이」중에서 쨍쨍 햇살 빛나는 5월 바람 두둥 부는 날이었지. 비를 맞으며 걷자 했지. 셔츠 속으로 목을 밀어 넣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이파리 아래를 비명을 지르면서 달렸지. 제과점 그늘막 밑에서 어깨를 감싸 안았던가. 세레나데 음표로 떨어지는 둘만의 빗방울 속 꽃물결 오선지 위로 걸어가자 마주 보며 웃었지. --- 「햇살 속으로 내리던 비」중에서 도살된 소가 쇠갈고리에 걸려있다. 향도 없이 뿌려진 술도 없이 만장을 휘날릴 바람도 없이 서로 조문하듯 바라본 지 칠 일째다. 뼈와 살 깊숙이 숨겼던 핏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냉장 기계 윙윙거리는 작업장 숙성된 주검을 헤적여 톱으로 끊고 칼로 잘라 등급을 나누고 있다. 시퍼런 비닐 앞치마에 장화를 신은 죽은 눈동자 속 눈동자들 더운 김 뿜어내며 흥건히 차오르는 피 울음에 발목이 잠기는 줄도 모른다. 황금 혀를 휘감는 골수의 단맛, 여린 속살에 바코드를 찍는 그램 단위 몸짓들 저승도 이승도 아닌 피비린내 속이 분주하다. --- 「황금 혀를 위하여」중에서 피 맛 나는 사랑이 좋아 타액 섞인 위스키 더블 날마다 배달되는 챗봇 실루엣 따위 쓰레기통에 처넣지. 서로의 눈동자 들여다보며 웃는 건 가슴으로 안아 춤춘다는 것, 목숨 건다는 마음 짓 이리와 너를 만들어 줄게 사랑은 전속력으로 달려와 죽어도 좋아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펑 사라져 버릴 수 있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쿵쿵 타들어 가는 심장 박동, 나란히 발자국 찍으며 불구덩이 모래사막이라 해도 맨발로 걷는 거야. 그치? 꿀벌 날갯짓 바람 무지개로 떠다니는 들판 길을 알려 주어도 너는 찾아내지 못할 거야. 물고기들이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 건널목에서 함께 지느러미 살랑거려 본 적 없겠지. 나를 따라다니는 세 개의 달과 여섯 개 화이트홀에 대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아 해 질 무렵이면 라면이 맛있는 분식집 끓는 물 속으로 송송 노을을 썰어 넣는 소리가 들려오지. 초록 눈망울 빛나는 계절이 오면 햇살 기차를 타고 산호별 흐르는 무중력 물결을 따라 맑은 눈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거야. 올래? --- 「이따위 세상에 사랑」중에서 |
|
시인의 말
8년 동안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50편을 건져 올려 책으로 묶는다. 세상은 겹겹의 빙벽에 막힌 겨울이다. 겨울 아니었던 적 있나. 강철 기둥 내리꽂아 숲으로 세운 거리다.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감싸 안는 시절이 오기 바란다. -깊은 밤, 어느 들판을 혼자 거닐고 있을 별의 눈을 생각하며 2024년 늦봄 김유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