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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 파롤의 욕망 랑그의 종착지 ‘문자’라는 신 앞에서 아침 잡샀니껴 고유의 이름을 불러 다오 좀 덜 까불지 순박한 언어가 목마르다 클리셰 균열 내기 2부 ‘먹다’의 품격 촌스럽다 할머니의 말 내 말이 누구에게 위안을 줄 수도 통증 언어학 순백의 언어 빈말 고래를 춤추게 하는 칭찬은 싫다 3부 질문의 기술 내 책과의 이별 외로워도 괜찮다 급행 버스의 언어 수필/SUPIL 방법과 기술 그곳은 있다 무던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4부 비대면과 초연결 시대 나그네에서 관광객으로 수도권에 입성한 아들에게 도둑맞은 집중력 문학판에도 서열화 악을 들여다보다 내미는 손 잡아 주자 기후변화와 그 대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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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롤은 욕망의 덩어리다. 말을 많이 하려는 것이 파롤의 속성이다. 많은 것을 말하려다가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거나 오해를 불러온다면, 그 말은 침묵보다 못하다. 많은 것을 말하려면 적게 말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 p.17 나의 말이 누구의 가슴에도 닿지 못한 채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지고 마는 것을 인생 노년에 이르러 더욱더 실감한다. 언어에 관한 내 생각이 진화해온 종착지는 ‘불립문자’인 것 같다. 언어에 휘둘려 감정과 욕망을 소비하는 가련한 모습이 지금의 내 자화상이다. --- p.25 타인에 의해 명명되는 내 이름이 나를 언제나 비껴가는 것을 알지만, ‘나’는 나에게 걸맞은 이름을 가진 고유한 존재이다. 나를 비켜난 별명을 부르지 말고, 내 고유의 이름을 불러 다오. --- p.45 지금 우리에게는 실용성을 추종하는 기술과 자본, 상투적이고 얄팍한 유행과 허영, 정파적 이념, 기계적 알고리즘의 조야함에 저항하는 언어가 절실하다. 삶의 구체성과 토착성이 묻어나는 언어, 대지가 붙안는 햇빛과 비와 바람의 언어, 돈에 속박되지 않은 순박한 사람의 언어가 목마르다. --- p.58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언어의 무력함을 경계하느라 내 한마디 말이 누구에게는 위안을 주는 한 송이 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놓치고 살았다. 어쩌면 이는 도덕적 겸양을 가장한 이기적 도피였는지 모른다. 자기 말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것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p.86 내 몸의 통증은 오롯이 내 몫이다. 상호 소통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언어의 기본을 위반하는 것이 통증 언어학인가 보다 --- p.94 합당한 근거 없이 다가오는 다른 사람의 칭찬으로 잠시 위안을 얻는 나를 발견할 때면 무단히 슬퍼진다. 그 슬픔은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래가 춤을 추는 것은 조련사의 칭찬이 아니라 먹잇감 때문이다. 나는 고래가 되기 싫다. --- p.111 수필이 한자 이름 ‘隨筆’에 구속되면 열등 문학의 굴레를 벗을 수 없다. 수필이 ‘에세이’에 힘을 빼앗기면 100년 동안 축적해 온 그 고유한 미학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수필은 우리말 ‘수필’이고, 영어 표현으로는 그냥 ‘supil’이어야 한다. --- p.143 비대면이 대면에 의한 몸의 언어를 약화하지만, 비대면 가운데에서도 몸의 언어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활로를 만들어 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대면의 어두운 그늘을 한탄하지만 말고, 그 가운데에서 대면의 가치를 살리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 p.164 우리는 개인의 능력 평가가 객관적일 수 없는데도 그것을 앞세워 차등화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악습을 청산하려면 마음속에 뿌리내린 서열화의 잔재를 먼저 씻어내야 한다. 서열화를 멈추지 못하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의 감옥에 갇히고 말 것이다.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다. --- p.184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첫걸음은 윤리적 책임감이다. 이를 망각지 않으려면 기후변화와 그 위기를 입에 자주 올리는 길밖에 없다. --- p.1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