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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04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08 1. 장르 수필隨筆 19 에세이essay 24 미셀러니miscellany 30 형상形象과 교술敎述 33 어름문학 39 중간 형식 46 산문문학 49 자전적 글쓰기 54 해석의 글쓰기 59 고백의 글쓰기 64 수필의 새로운 패러다임 70 붓 가는 대로 76 전통 장르 문법의 해체 79 문학과 비문학 사이 85 삼분법의 장르 인식 87 수필의 문화적 정당성 91 2. 형식 무형식의 형식 99 주제theme 102 과거 경험과 향수 109 형식과 구성 113 집중형과 확산형 117 화제에 의미 부여 119 내적 자아와 외적 세계 124 수필의 언어 126 원근법과 수필 130 형식에 대한 망설임 135 형식과 내용 137 단락 중심의 수필 쓰기 141 수필적 우회 145 선경후정先景後情 148 유비類比 구조의 수필 151 수필의 처음과 끝 154 3. 방법 언어의 함축적 사용 159 기록과 허구 사이 161 기억 상기想起 165 경험자아와 서술자아 167 수필과 상상 171 주체의 거리두기 175 설리說理와 수필 179 문학성을 위한 수사적 전략 181 구체에서 보편으로 185 발상의 전환 189 힐링 글쓰기 191 소재의 수필적 변용 195 디지털 환경에서 글쓰기 199 제목 정하기 202 하이브리드hybird 글쓰기 205 인공 지능과 수필 창작 207 4. 특성 문학성 215 문학주의 220 서정성 222 철학성 225 창조성 228 진정성 232 독창성과 유연성 235 자연의 질서에 비유하기 237 수필과 윤리 240 예술로서 수필 245 수필의 나르시시즘 249 냉소와 허영 252 일화기억과 의미기억 255 서사와 수필 257 수필과 개성 260 수필의 기록성 265 5. 비평 좋은 수필 271 수필이론 273 실험수필의 좌표 278 고정된 창작 방법의 극복 284 어조 289 수필적 자아 291 사후성 事後性 293 공감 295 수필과 정치 298 수필작품 읽기 301 작품 의미의 뿌리는 306 수필비평 310 메타진술로서 비평 318 예술과 감각 322 미문 충동 324 수필과 사회 문제 328 6. 종류 경험과 사유 333 소설적 수필 336 짧은 수필 339 칼럼Colum 344 이야기와 수필 348 장소수필 353 액자형 수필 356 가족 이야기 359 아포리즘 수필 365 사물수필 369 여행수필 373 메타수필 379 인물수필 382 생태수필 385 시적 수필 388 희곡적 수필 391 【미주】 393 【찾아보기】 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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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문학 본래의 순수함을 산 정상에 꽂힌 깃발로 상정하고, 그 깃발을 향해 오르려 애쓰는 일은 사실 헛된 노력에 가깝다. 수필의 깃발은 문학의 정상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산의 언저리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이런 점에서 수필은 기표보다는 기의의 문학, 즉 주제와 메시지의 문학이다. 주제와 메시지는 ‘형상화’나 ‘보여주기’보다 ‘교술’이나 ‘말하기’를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필은 문학의 자락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문학의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모색을 거듭하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다. 창작방법에 있어서도 수필은 형상화라는 문학 본래의 길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 형상화와는 다른 길인 교술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는다. 바로 여기에 수필 장르의 고유한 본성이 놓여 있다.
--- 「1. 장르」 중에서 수필 창작 과정에서 주제를 구현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주제를 먼저 설정하고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찾는 방법이다. 이는 글쓰기의 일반적인 순서로, 주제가 글쓰기의 중심에 놓이는 경우다. 곧 글감은 주제를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는 어떤 글감을 먼저 만나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주제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일상에서 유의미한 경험을 선택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형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수필의 기본을 일상의 해석으로 보는 관점은 여기에 근거한다. 많은 수필이 이 같은 화제 중심의 유형을 취한다. 이는 수필이 일상의 의미를 발견하는 글쓰기임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 「2. 형식」 중에서 수필에서 상상은 사실을 꾸미는 허구적 장치가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고 서로 떨어져 있는 불연속적 경험들을 하나의 의미망으로 새롭게 조직하는 문학적 사유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개별 경험에 대한 작가의 반응을 일정한 담론으로 집적하여, 그 속에 잠재한 작가의식과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상상은 경험 하나하나를 고립된 사실로 남겨 두지 않고, 서로 역동적으로 연결된 관계망 속에 배치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사유 과정의 일부이다. 이러한 상상의 작용을 통해 수필은 경험에서 단선적이고 고정된 의미를 끌어내는 수준을 넘어, 여러 경험의 상호작용 속에서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의미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작가는 현실을 더욱 풍부한 이야기로 전달할 수 있으며, 현실의 모순을 성찰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서사적 흥미까지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사실과 상상이 조화롭게 결합할 때, 현실의 공간은 비로소 문학적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 「3. 방법」 중에서 문제는 이러한 철학적 측면이 자칫 상투적인 교훈으로 미끄러지기 쉽다는 데 있다. 삶의 보편적 의미와 원리는 곧바로 독자를 가르치는 덕목으로 환원될 수 없다. 보편성과 교훈성은 겉으로 닮아 보일 뿐, 그 성격은 분명히 다르다. 보편성은 개별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어 올려질 때 설득력을 지니지만, 교훈성은 그것을 미리 정해진 결론으로 단정할 때 발생한다. 더구나 삶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원리는 그 자체로는 독자에게 정서적 감동을 주기 어렵다. 원리가 앞서고 경험이 뒤로 밀리면 수필은 훈계로 전락하고 만다. 독자는 자신의 삶과 맞닿은 구체적 장면 속에서 삶의 보편적 의미를 발견할 때 비로소 공감하고 수긍한다. --- 「4. 특성」 중에서 비평은 작품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 텍스트 각 부분의 의미 조각을 모아 하나로 통합하고, 그것을 토대로 평가를 하는 것이 비평의 과정이다. 마지막 평가에 이르기까지는 일차 정보와 의미를 피라미드의 꼭짓점으로 끌어올리며 추상화한다. 이 추상화를 통해 보편적 의미를 축출하는 것이 비평적 해석이다. 추상화의 점층적 진행은 비평가가 작가와 작품의 일차적 정보에서 멀어져 주체로서 자신의 심미적 관점과 해석적 역량을 투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비평은 비평 주체에 의한 작품의 재구성인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비평은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일에서 한 단계 나아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구조화하고,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심미적 효과를 줄 수 있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 「5. 비평」 중에서 경험 중심의 수필과 사유 중심의 수필은 이론적으로는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과 사유는 작품에서 분리된 채 존재하기보다 맞물리며 작동한다. 경험은 사유가 발을 딛는 땅이고, 사유는 경험을 비추는 빛이다. 경험이 배제된 사유는 현실의 무게를 잃은 채 공중에 뜬 관념으로 흐르기 쉽고, 반대로 사유가 삭제된 경험은 의미화되지 못한 사건의 나열로 남는다. 중요한 것은 두 요소가 어떻게 교차하고 호응하는가이다. 완성도 높은 수필에서는 경험에서 사유가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고, 그 사유의 깊이는 다시 경험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다. --- 「6. 유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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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기본 개념》 개정증보판은 수필을 쓰는 이에게는 창작의 기준을, 수필을 읽는 이에게는 이해의 틀을 제공하는 책이다. 동시에 한국 수필문학의 현재를 성찰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여러 개념과 논의는 수필을 둘러싼 담론에 새로운 자극을 더하며, 장르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탐색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의의는 수필을 문학의 주변부에 머물게 하던 오래된 시선을 재고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수필을 단순한 기록이나 감상의 산문으로 한정하지 않고, 경험과 사유가 결합된 하나의 형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수필문학의 영역을 한층 확장한다. 이를 통해 수필은 자유로운 글쓰기라는 막연한 인식에서 벗어나, 구성과 논리를 갖춘 사유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