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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시간 안에 있는 초월적·영적 세계 2장 정신질환은 마귀 들림인가? 3장 기독교의 신앙 치유 역사와 문제점 4장 교의신학과 후기 세속의 영성 5장 영적-빙의에 관한 몇몇 접근과 그 모습 6장 예수의 긍정적 영적-빙의 7장 치유받는 자의 주체적 태도 8장 악마적 빙의 9장 악마적 빙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에필로그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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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빙의하면 우선 무당이 접신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런 것을 일컫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빙의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떤 직감적 혹은 직관적인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다. ‘우연’이라거나 ‘간절함의 결과’라거나 하는 말로 설명하려는 그런 유의 감성이다. 거기서 좀 더 확대하면 신비주의자들의 신적 체험과 같은 경험까지를 일컫는다. 믿음은 본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 위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영적-빙의를 탐구하는 것은 곧 믿음 그 자체를 돌이켜보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무속신앙으로 채색된 한국인 내면의 속성들이 기독교를 얼마나 왜곡시켜왔는지, 체면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가 힘들고 괴로운 삶의 질곡 속에서 그런 아픔을 충분히 표출하지 못한 채 정형화된 교리에 얽매여 얼마나 남의 눈치만 봐왔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임을 확인하는 일에 얼마나 성실했는지, 더욱이 기독교의 원죄 교리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괴로워하며 살아왔는지 하는 것들을 돌이켜 볼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시간 안에서 사는 인간이라면 그런 초월적 측면보다 삶에서 진심으로 접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즉 시간 속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고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태도는 이기적이거나 신 앞에서 교만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행위일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기적이나 신앙 치유 행위를 인간 내면의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은 현재를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듯한 어떤 서술이나 행위들을 비판적으로 다시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즉 예수의 기적과 치유 행위는 과연 ‘시간’을 초월한 것이었을까? 예수는 진정으로 시간을 초월한 사유나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겼을까?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치유나 기적 행위를 ‘시간’을 고려한 시각으로 봐야 함이 마땅하다. 과연 ‘시간’과 더불어 기독교의 치유나 신유 은사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1장 시간 안에 있는 초월적·영적 세계」 중에서 기독교 신앙 치유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앙 치유는 기본적으로 병은 악, 즉 사탄의 농간으로 인한 질곡이라는 믿음이 바탕이 된다. 우선 이런 이원론적인 사고가 가지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즉 병을 악으로 인한 고통이라고 보았을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이 왜 악마의 목표물이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경우 우리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자책과 죄책감을 끄집어내려고 무진 애를 쓰게 되면서 결국 스스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 무능하게 만든다. 둘째, 병이 사탄의 농간으로 인한 악의 발동이라면, 그렇게 병든 사람들은 죄인이거나 사탄의 목표물이 된 잘못된 사람들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그들을 정죄하거나 회개가 필요한 오염된 존재라는 편견을 갖게 됨으로써 그들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를 무디게 할 수 있다. ---- 「3장 기독교의 신앙 치유 역사와 문제점」 중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 중에는 영적-빙의가 구원의 중심이라는 것도 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다”라는 구절이 바로 이를 의미한다. 사람이 긍정적인 영적-빙의를 달성하지 않는 한, 즉 예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성령을 육화(구체화)할 방법을 찾지 않는 한, 영적 방식은 그 사람에게 이질적일 것이다. 가령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는 예수의 또 다른 인격이 악령이라기보다는 거룩한 영이라는 결론을 내린 후 예수와 대화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 「6장 예수의 긍정적 영적-빙의」 중에서 문제는 개인 차원의 마성을 ‘개인적 그림자’라고 하든 “내면의 개인적 마성”이라고 부르든 그것이 집단적 마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개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어서 정작 사회적 마성인 폭력, 편견, 불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도, 즉 어두운 사회현상에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그 악에 동조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의 상호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그림자를 의식하는 것이 공동체의 안녕에 기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개인의 성장에도 중요하다. 따라서 개인의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집단적인 악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 「8장 악마적 빙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