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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외할머니의 간장밥 산타클로스는 상표가 없다 영웅본색과 상상의 극장 술을 마시지 말고 사람을 마셔라 어색하지 않아 다행이야 호강의 반전 어린이는 연기할 수 없다 헌책을 꺼내며 먼 기억을 꺼내다 낯선 명절이 선물해 준 낯익은 사람 2부 아버지가 물려준 뜨거운 국물 웃기는 아들 김치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상상의 오락실 아버지의 가로등 택시를 탄 게 아니라 시(詩)를 탔다 오늘 하루는 조명을 받아도 괜찮아요 등 밀어 줄 사람이 없다 3부 책 한 권, 사람 하나 〈홀연했던 사나이〉의 탄생 조용히 울 줄 아는 사람, 봉태규 분장실에서 커튼콜, 배우와 관객의 마지막 인사 관객 : 못 잊을 얼굴, 그리운 얼굴, 기다리는 얼굴 서로의 말이 아닌 서로의 눈빛을 배우들의 언어와 언어가 만날 때 어둠 속에서 더 빛난 앙상블 꺼내고 꺼내도 마르지 않는 얼굴, 배우 김대곤 당신에게 가 닿을 말을 찾는 ‘오선지 위의 구도자’ 4부 어쩌면 이 고양이, 날 구하러 온 건지도 몰라 엄마의 결혼식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사자와 아수라 어떤 꿈은 발견된다 숨 좀 쉬자 ‘디아블로’에서 만난 톰, 나의 영웅 잠시 함께 달리고 잠시 함께 걸었던 소년 시절 나의 데미안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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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는 외할머니가 비벼 준 간장밥이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나는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 밥을 먹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외할머니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 그 밥을 보란 듯이 맛있게 먹고 싶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 p.12 「외할머니의 간장밥」중에서 아마도 그날, 아이들은 누구 이야기가 진실인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 이야기가 더 재밌는지 투표를 했고, 내가 졌던 것 같다. 더 재밌는 건 그날 이후 극장에 새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영화를 봤다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아이들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었다는 것이다. 같은 제목이었지만 아이들마다 주인공과 장르와 주제가 달랐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나면 꼭 투표를 해서 누가 승자인지 가렸다. 모두가 관객인 동시에 창작자였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오히려 무엇이건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우리만의 상상의 극장이었다. --- p.23 「영웅본색과 상상의 극장」중에서 병원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한동안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올라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며칠만 더 있다가 와도 되냐고 여쭤볼래?” 홀로 계단을 오르며, 아버지의 표정이 왜 그토록 어색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었다. 치과 입구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내려갔다.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좀 더 상태를 지켜보고 금니를 씌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또다시 헛기침을 하며 길을 나섰다. 나도 헛기침을 하며 아버지를 따라갔다. --- p.31 「어색하지 않아 다행이야」중에서 “너는 장례식 때는 작은 옷을 입고, 사십구재 때는 큰 옷을 입고, 네 아버지 웃기려고 작정을 했냐!” 그 말에 어머니도 나도 동시에 빵 터졌다. 분명 계속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또 눈물이 났다. ‘내가 아버지를 이렇게라도 웃겨 드리는구나. 살아생전 한 번도 못 웃겨 드리고, 저 멀리 가시고 나서야 웃겨 드리는구나.’ 함께 걸어가던 스님은 갑자기 웃다가 갑자기 우는 어머니와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오늘이 지나면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향하시는데, 이렇게 웃겨 드렸으니 가시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참 웃기는 아들이네요.” 그랬다. 살아 계실 때는 못 웃겨 드리고 떠나실 때가 되어서야 웃겨 드리는 나는, 참 웃기는 아들이었다. --- p.64 「웃기는 아들」중에서 좋은 책을 읽으면 가방에 넣어 다니다가 친한 사람에게 불쑥 건네곤 한다. 그 책이 누구에게 가장 어울릴지 상상을 하면서. 그 생각을 하며 가방에 책을 담으면 하루 종일 두근거린다. 좋은 사람에게 좋은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책 한 권을 읽으면 사람 한 명이 생겨난다는 믿음을 가지면서. --- p.99 「책 한 권, 사람 하나」중에서 한 위대한 배우가 일 막을 마친 후, 분장실에서 삶의 마지막 숨을 쉬고 떠났다. 다음 날, 배우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분장을 하고 등장인물이 되어 무대에 섰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눈물이 분장을 지웠고, 그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그 위대한 배우에게 보내는 최고의 예우였다. --- p.110 「분장실에서」중에서 앙상블 배우들이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셔터 불빛으로 주인공을 비춰 주는 장면이었다. 이 프로듀서는 그때 확연하게 보았다고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주인공을 향해 열심히 빛을 비추며, 그 누구보다 가장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A의 모습을, 그리고 그 어둠 곳곳에서 마찬가지로 뜨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B, C, D, E의 모습을. 이들에게는 아무런 조명이 비치지 않았지만, 그 짧은 몇 초 동안 가장 눈부시게 빛났다고. 그 찰나의 몇 초가 흐르는 동안, 연습실에서 보았던 이들의 모든 노력이 무대 위에서 눈부시게 흘러갔다고. 그 눈부심 때문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배우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모두 떠올라서, 그 얼굴이 너무 눈부셔서, 나도 덩달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p.128 「어둠 속에서 더 빛난 앙상블」중에서 십 년 넘는 시간이 흘렀고, 고양이들은 중년이 되었다. 고양이의 일 년은 사람보다 빠르다니까, 어쩌면 벌써 내 나이를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에, 내가 태어난 이유 중에 하나는 이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두 친구가 태어난 이유 중에 하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고양이의 목숨이 아홉 개라던데, 어쩌면 그중 하나를 나한테 주었는지도 모른다. --- pp.143-144 「어쩌면 이 고양이, 날 구하러 온 건지도 몰라」중에서 세혁아 너무 놀라지 마라. 어느 봄날, 이모들이 우르르 찾아와 꺼낸 첫마디였다. 엄마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그때 엄마는 환갑을 앞두고 있었다. 환갑 축하로 잔치 대신 결혼을 택한 거였다. 멋있었다. 아, 엄마가 나보다 먼저 가는구나. 분발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엄마 결혼식을 준비했다. 문제는 내가 결혼식을 치러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 p.145 「엄마의 결혼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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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재미있는 책을 읽거나 새로운 영화를 본 후에 사람들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던 오세혁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누군가의 재능을 발견하고 박수 치고 함께 어울리는 일”이 곧 ‘연극’을 통해 구현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대학에서 우연히 본 연극을 계기로 곧바로 연극의 매력에 빠져든 작가는 강의실에 있을 시간에 극장에 가고, 과제 할 시간에 대본을 쓰며 연극인의 꿈을 키운다. 전공과 다른 꿈을 꾼다는 사실에 고민과 불안을 느끼기도 하지만, 후회와 걱정 대신 미래를 바라보려는 젊음의 결의로 친구들과 극단을 만든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주인공을 향해 열심히 빛을 비추며, 그 누구보다 가장 열심히 노래하고 춤을 추는 앙상블을 발견해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원인조차 알 길 없이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증상을, 무슨 일을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 것만 같은 시기를 겪어내고도 기꺼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이에게서 느껴지는 눈부신 믿음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아직 우리의 생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생의 마지막에 찾아올 진짜 얼굴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계속 달려갈 거야. ─「나의 데미안에게」 중에서 그런가 하면 가까운 이에게 마음을 할애하는 따뜻한 풍경이 책 곳곳에서 반짝인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간장밥, 수험생 시절 서로의 어색함을 견디며 아버지와 함께 먹은 설렁탕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소울 푸드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선 몸에 맞지 않는 정장을 입은 채 어머니와 같이 울다가 웃고, 어머니의 결혼식에서는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 얘기를 접하며 놀라워하는 작가의 모습이 우리의 또 다른 초상화처럼 여겨져 먹먹해진다. 그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벅찬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오세혁이 어린 시절 게임에서 만났던 상처 많은 친구의 안녕을 바라고, 한 달 동안 자전거를 공유했던 친구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을 가끔 후회하고, 배우 그리고 관객과 나누었던 교감을 기억할 줄 아는 사람인 까닭이다. 작가는 재치 있는 언어로 마음을 울리는 에피소드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선보인다. 배우 봉태규가 이야기하듯, 오세혁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때로는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목이 터져라 웃음이 나오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감동을 받는다. 오세혁은 통통 튀는 리듬감 있는 문장으로 자신이 아껴 온 추억을 꺼내 보이며, 아름답기에 슬픈 모든 것들이 인생을 구성하는 근사함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한다. 작가의 말 저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웃는 순간은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바라는 웃음도 다양합니다. A는 골치 아픈 생각을 웃음으로 날려 버리고 싶습니다. B는 머물러 있는 슬픔을 웃음으로 덜어내고 싶습니다. C는 답답한 세상을 웃음으로 이겨내고 싶습니다. D는 떠나간 누군가의 공백을 웃음으로 메꾸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다양한 웃음을 언제든 선물해 주고 싶어서 그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기억을 되살리고 사람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챙겨 나갔습니다. 한 명 한 명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어느새 신문과 잡지에 이야기를 연재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들이 쌓여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을 쓰기 위해 목차를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하나의 제목을 바라볼 때마다 그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쌓인 이야기만큼 좋은 사람들이 곁에 가득합니다.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을 좋아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오늘도 만나게 될 어떤 좋은 사람을 위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챙겨 봅니다. 제 이야기에 그 사람이 웃고 그 사람의 웃음에 저도 웃으며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 모두 행복하길 바라며. 2024년 초여름 오세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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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말이 많다. 천만다행인 것은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다. 쉴 새 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그를 보고 있을 때면 어떤 ‘꾼’이 존재한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라고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꾼’이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쓴 글을 책으로 만난다는 건 독자 입장에서는 무척 즐거운 일이다. 오세혁이 가지고 있는 보따리에서 풀어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때로는 내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목이 터져라 웃음이 나오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감동을 받기도 한다. 다행이다. 모두에게 이런 근사한 친구이자 작가를 소개할 수 있다니. 주의할 점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으니 단단히 마음을 먹고 끝을 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페이지를 넘겨 보시길! - 봉태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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