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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전
전시의 공무원 초선의원 단명소녀 투쟁기 킬링 시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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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군 : 이곳에 있으니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가늠이 안 갑니다. 시간이 점점 사라집니다.
스님(광대) : 그렇게 사라지다 결국은 나라는 존재도 사라질 것입니다. 진평군 : ……나는……. 사라지면 안 됩니다……. 나는…… 꼭 할 일이 있습니다. 스님(광대) : 사라지면 안 된다니, 꽤 중하신 분인가 봅니다. 진평군 : ……. 스님(광대) 오늘의 행동은 내일의 업을 쌓지요. 오늘 내가 꿀벌 하나를 죽이면, 그 꿀벌이 향했을 꽃이 사라지고, 꿀벌이 생산했을 꿀이 사라지고, 그 꿀을 모아 쌀을 구했을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지요. 진평군 : 꿀벌이 아니라 사람을 죽인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집니까. 스님(광대) : 소승의 눈으로는 감히 담을 수 없을 만큼 사라지겠지요. 진평군 : ……. 스님(광대) : 그 뜻은 누구의 뜻입니까. 진평군 : ……. ---「세자전」중에서 갑돌 : 그 서류들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 주면 바로 풀어 준대요.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준대요. 하지만 오늘도 말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의 반동으로 찍혀서 공개 처형을……. 갑순 : 그 새로운 세상이라는 걸 믿어요? 갑돌 : 아직 못 믿죠, 배운 지 3일 됐는데. 갑순 : 근데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요? 갑돌 : 별 수 있나요, 공무원인데, 공무원은 어떤 세상이건 그 세상 밑에서 일을 하는……. 갑순 :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갑돌 : 나쁘다구요? 내가요? 내가 왜 나빠요?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 내가 전쟁 일으켰어요? 내가 이 나라가 이 꼴이 되도록 만들었어요? 난 공무원이에요. 어떤 세상이 밀려오면, 그 세상이 시키는대로 일을 할 뿐이라구요. 내가 왜 나빠요? 당신이 더 나빠요. 시키는 대로 안 할 거면 왜 공무원이 됐어요? 왜 자꾸 시키는 대로 안 해서 일을 크게 만들어요? 이건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에요! 갑순 : 그래요……. 내가 자초한 일이에요……. 그래서 뿌듯하네요. ---「전시의 공무원」중에서 명제 : ……그다음은요? 수호: 모르겠다……. 변호사가 돼서 법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 됐고, 국회의원이 돼서 법다운 법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됐고……. 어찌해야 세상이 바뀌겠나. 명제 : ……어떤 세상으로 바뀌길 바라세요? 수호 : 뭐 별거 있나……. 학생도 잘살고 노동자도 잘살고 농민도 잘살고 여성도 남성도 노인도 어린이도 다 잘살고……. 억울한 죽음은 절대로 없는……. 명제 : ……사람 사는 세상이네요. 수호 : 좋네……. 사람 사는 세상. ---「초선의원」중에서 수정 : 백설기가 백 개였는데. 우리만 먹었다면 더 오래 먹었을 텐데. 북두 : 근데 그렇게 안 되지? 여기저기 먹이고 싶은 이들이 많았지? 수정 : ……. 북두 : 그게 인생이다. 내가 먹을 떡 하나를 남에게 주는 건, 내가 사는 하루를 남에게 주는 거랑 같아. 그렇게 서로 하루와 하루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생을 나누는 거지. 누군가의 생을 빼앗아서 자신의 생을 늘리는 이들이 있고, 누군가와 생을 나누어서 서로의 생을 공평하게…… 너희들 내 말 듣고 있냐? ---「단명소녀 투쟁기」중에서 저승신 : 깨끗이 쓸어 버린다…… 라고들 하지. 그러나 내 오랜 경험에 미루어 보건대 ‘깨끗이’ 쓸어 낸 자리란 없지.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언가들을 다 죽이고 나면 언제나 그들의 잔해가 남지. 부서진 조각들과 흘러나온 액체들로 그 ‘어딘가’는 오히려 더 엉망이 되곤 하지.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망치게 되는 경험. 수정 : 망친 게 아니야. 저승신 : 그럼? 수정 : 구한 거야. 이룬 거야.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야. 저승신 : 그럼 잔해를 떠안고 살아가. 고약한 피 냄새에, 무질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 수정 :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경고야? 저승신 : ……. 수정 :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 ---「단명소녀 투쟁기」중에서 브루터스 : 두려워 맙시다. 두려워 맙시다. 우린 시저의 적이 아니라 시저의 친구요. 시저가 독재자가 아닌 얼굴로 죽을 수 있게 도와주었으니까. 모두 허리를 굽혀 시저의 붉은 피에 우리의 손과 칼을 적십시다. 광장으로 걸어가 피 묻은 손과 칼을 휘두르며 외칩시다. 로마에 다시 평화, 자유, 해방이 왔노라고. 이 살인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 아득할 정도로 오랫동안 공연될 것이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라에서, 아직 들어 보지 못한 언어로. 시저는 연극의 막이 오를 때마다 피를 흘릴 것이오. 우리의 칼로, 우리의 정의로. 그 연극의 막이 내릴 때마다 관객들은 우리의 이름을 외칠 것이오. 위대한 로마에 자유를 되찾아 준 해방자들이라고! 시저라는 낡은 이름을 대신할 새로운 이름들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극장을 넘어 광장으로 질주하는 순간, 우리의 연극은 더 이상 연극이 아니게 될 것이오. ---「킬링 시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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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작품인 「세자전」은 정 이리이리 작가의 카카오웹툰을 원작으로 한 음악극이다. 동생을 죽이고 왕이 된 군주가 죄의식과 광기 끝에 세자 경연을 열고, 다섯 명의 왕자들이 권좌를 둘러싼 비극적 경쟁을 펼친다. 권력을 향한 열망과 죄책감, 피의 역사, 형제 간의 비극이 강렬하게 교차하며, 명분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인간성의 균열을 집요하게 조명한다.
두 번째 작품 「전시의 공무원」은 해방 이후 전쟁을 맞이한 혼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공무원으로 살지 말라'는 부모의 웃픈 유언을 받았으나 결국 다시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갑돌과 갑순의 아이러니한 여정을 따라간다. 두 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시작해 지도자들을 따라 피난길에 오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수습하며 국가와 시민 사이,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 개인이 버텨야 하는 아이러니와 생존의 진실을 경쾌하면서도 씁쓸한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표제작 「초선의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열기와 함께 시작된다. 실존 인물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선의원 시절을 모티브로 삼아, 뜨거운 청문회장의 풍경을 스포츠 경기로 빗대며 한국 정치사 한복판에 던져진 초선의원의 고군분투를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담아낸다. “법이 잘못됐으면, 법을 바꾸면 된다”고 외치는 인권 변호사 출신 초선의원 ‘수호’는 정의와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며, 진짜 정치를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간다. 네 번째 작품 「단명소녀 투쟁기」는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인 현호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청소년극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단명할 운명을 타고난 소녀 수정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남동쪽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판타지 로드무비이자, 철학적 성장담이다. 죽음을 피하려는 수정과 죽음을 찾아 떠난 이안이 만나 함께 걷는 여정은, 삶과 죽음에 대한 다정하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아름다운 성장 서사다. 마지막 작품 「킬링 시저」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줄리어스 시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공화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벌어진 시저 암살이, 결국 또 다른 독재자를 탄생시키는 정치적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구현했다. 로마의 절대적 지도자이나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 암살당하는 시저, 정치적 야망과 공화국 수호의 명분 속에 갈등하는 카시우스, 공화국의 이상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딜레마 속에 갈등하는 이상주의자 브루터스의 삼자 구도를 통해, 권력의 윤리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충돌하고 전복되는지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역사극의 외피를 벗고, 오늘날 정치의 본질을 조명하는 정통 현대극이다. 오세혁 작가는 이번 희곡집을 통해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정치적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무대 위에 소환한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그리고 때로는 비극적으로. 이 다섯 편의 희곡은 각각 다른 언어와 결을 가졌지만, 공통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다. 『초선의원』은 단지 무대 위에서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와 시대를 잇는 다섯 개의 강렬한 무대를 통해, 이 희곡들이 담고 있는 치열한 질문과 미묘한 균열을 다시 한번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무대 너머 독자와 관객 모두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작가의 말 연극이 참 좋아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세 권의 희곡집을 출간하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네 번째 희곡집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함께 연극을 만든 동료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극장에 찾아와 주신 관객 여러분께 지극히 감사하고 뭉클합니다. 스물네 살에 동료들과 극단을 만들고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십 년간 연극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연극이 대체 무슨 힘이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유난히도 추웠던 2024년 12월. 저는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광장의 무대 위에 올라가서 좋아하는 연극과 뮤지컬의 대사와 가사를 뜨겁게 낭독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 ‘연극의 힘이 이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극장 안의 연극만으로는 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극을 마음에 담아서 극장 바깥으로 나서는 관객들이 있습니다. 그 관객들이 저마다 세상의 길을 구석구석 걸어가며 연극의 힘을 널리 널리 퍼뜨립니다. 연극의 힘은 극장에서 시작하고 연극의 힘은 관객으로 퍼져나갑니다. 아무쪼록 이 희곡집이 연극의 길을 걷는 동료와 연극과 동반하는 관객 여러분께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희곡집에는 두 편의 창작 희곡과 세 편의 각색 희곡이 담겨 있습니다. 다섯 편의 길을 함께 걸어 준 연극 동료들과 관극 동료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연극을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