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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강
내가 장롱롱메롱문 열었을 때 암전 해와 달에 관한 오래된 기억 지하철존재론 해설 이원적 상상력의 여왕, 동이향_박상현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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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 나는 오늘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사람들이 서 있었어요. 여기저기. 걷거나 멈춰서. 한참 봤어요. 오래 봤어요. 알고 싶었어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가 있었던 건지.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끝나가는 건지. 알고 싶었는데. 내가 아는 거라고는, 이상하다는 것. 이상하다는 것. 그것만. 그런데 누가 날 때렸어요. 정통으로 얼굴을 내리쳤어요. 너무 아팠어요.
한 대 맞고 알았어요. 두려움. 두려움이 끝나가는 거구나. 우리는 너무 두려움이 많았구나. 두려움이 끝나가느라 두려움밖에 없는 거구나. ---「간과 강」중에서 V : (중략) 시간이 우리를 이렇게 다르게 만든 걸 봐봐. 당신에게 오기 위해 나는 성공해야 했잖아. 그래서, 떳떳한 인어가 되었어 들어 봐.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아주 약간씩 더 약간씩 요만큼씩 개미보다 코딱지보다 작게 바뀌고 있어. 그 변화가 진화야. 그 변화가 시간이야. 오게 될 시간. 오지 않는 시간. 결국 왔지만 지나가고, 여전히 오지 않은 그 시간. 자, 지금이 그 시간이야. 미래, 시간은 뒤로 가지 않아. 강은 거꾸로 흐르지 않아. 우리가 두고 온 시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만든 시간이야. 그리고, 우리는 ---「간과 강」중에서 (패륜아) 배를 가른다. 쿨렁 내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빛의 실오라기라도 걸치려, 단박에 외마디로 넘쳐난다. 껍데기는 내장들 밑으로 깔렸다. 한 몸에 이리 한 몸 아닌 것들을 담느라 앙다물던 것들이 이제 핏물 흥건한 바닥 위로 널브러졌다. 아버지는 죽고 내장들이 탄생했다. 죽어 빛을 본 내장들이여. ---「내가 장롱롱메롱문 열었을 때,」중에서 안티노리 : 타인이 나를 인정하는 거기에 인간의 개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제물의 결과를 보고도 누가 봐도 얘는 인간이다, 라면 인간이죠. 우리가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구요. 기자 : 박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한 개인이 누구인가와 그 사람의 유전자와의 관련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상호 교환할 수 없는 유전적 정체성이야말로 인간의 전제조건이 아닙니까? 안티노리 : 인간의 유전자는 암호화 기능이 없는 DNA, 즉 쓰레기 DNA가 97%요. 이 거대한 사막 중 단 3%의 오아시스만이 정보를 지닌 DNA요. 이 3%에만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정보들이 담겨 있지요. 나머지 97%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일까? 영혼의 자리일까? ---「내가 장롱롱메롱문 열었을 때,」중에서 민 : (대사)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똑바로 들어. 명분이 없으면 명분을 만들어 이 새끼야. 이건 전쟁이야. 아군을 못 찾겠으면 아군을 만드는 거야. 적이 안 보이면 적을 만들어 내는거야. 이 새끼야. ---「암전」중에서 (노래) 절망에 빠진 이 아이를 누가 달래줄까. 숲속에 있는 밤 지키는 달이 지켜주지. 그런데, 아침은 어떡해? 고민을 하네. 우리의 여왕이신 해가, 해가 지켜주지. ---「해와 달에 관한 오래된 기억」중에서 보고서 발췌1 지하철에 서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는 누구인가.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얀 지하철 형광등 아래에서 누구인가. 그가 가만히 서 있을 때 그를 알 수 있을까. 그가 서 있는 습관, 짝다리, 골반, 척추뼈가 놓인 방식은 선천적인 생김새와 더불어 어떻게 후천적인 생김새를 만들었을까. 그는 자신의 몸 어디를 좋아하는가. 어디를 혐오하는가. 왜 그럴까. 그는 다른 이들을 바라본다. 그의 혐오와 자신의 동경 사이에서. 그것이 그의 척추를 어떻게 세우는가. 그는 지하철에서 가만히 서서 누가 되고 싶은가. 그는 어떻게 다른가. 그는 그렇게 다르다. 그는 왜 다른가. ---「지하철존재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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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그러고 보면 비현실이란, 줄곧 생성되기를 멈추지 않는 세계의 윤곽일 것입니다. 그걸 이 세계 어느 구석에 만드는 일은, 기억이지만 기억이 아니게, 경험이지만 경험이 아니게, 꿈이지만 꿈이 아니게. 꿈이 아니지만 꿈이게, 경험도 기억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 그것을 잔영하도록 하는 이 일은, 이 일이, 연극일 겁니다. 실제라는 허구, 실질과 효용이라는 거대하고 단일한 허구가 장악하는 이 세계를 다른 프리즘으로 보고자 하는 비현실들. 그 비현실들의 노력이 ‘지금’이라는 윤곽을 자그맣게 흔듭니다. 거기에 말들은 이 공기를 울려 우리의 자리를 놓습니다. 순식간에 무언가를 향했다 사라지는 그 개념과 욕망의 말들이 작게 진동하는 지금에 놓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잘못 뿌리내린 곳에서 계속 자라는 어쩔 수 없는 시간입니다. 곧 끊어질 실뿌리들. 어둠 속에서 흙을 더듬으며 기왕의 실패를 실패로, 실패조차 아니게 에둘러 아래로 곁으로 나아가는 하얀 식물의 뿌리입니다. 지렁이처럼. 그리하여, 무언가를 우리가 알도록. 알아내도록. 이 세계에 대체 무엇이 없기에 우리가 이토록 아픈지. 슬픈지. 고통스러운지. 그럼에도 이렇게 사랑하는지. 다시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간 서로의 곁이 되어준 나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사랑하는 가족, 특히 어무니, 아부지께 이 작은 책을 드립니다. 2025년 4월 동이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