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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형(黑兄)이 무대를 떠나며_곽성근
날개옷_김미애 짖어야 개지_김현우 지구촌_문갑연 마네킹이 필요하다고요?_박영희 바람의 여자_박주원 선미의 진심_서경숙 화장실 이바구_예시원 푸른 그늘_이경미 사과하기 좋은 날_이채운 선거 뒤에 오는 것_임종욱 소심한 복수_전미숙 그녀의 이름은 미순_조화진 모호한, 결_최미래 황소바람이 분다_하아무 벽련항 횟집_홍혜문 장독_황보정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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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를 아우르는 일상의 한 순간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어 급한 걸음으로 돌아와 이층계단을 중간쯤 오르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서 계단을 내려가 장독대에 앉아 김치를 버무리고 있는 아줌마 앞으로 다가섰다. 검은 봉지에서 탐스러운 사과 세 개를 꺼냈다. “사과가 먹음직스럽고 때깔도 좋지요?” -「사과하기 좋은 날」 중에서 지난하게 흘러가는 하루. 매일 똑같은 하루 속에서 사소하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사건들. 소설 속 인물들은 사건으로 인한 뭉근한 상처를 품속에 안고 감내하며 살아가거나(「장독」),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기도 하고(「소심한 복수」), 어렵게 건넨 사과 한 알로 날려 보내기도 한다(「사과하기 좋은 날」). 또한, 강력한 한방으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순간들을 포착하기도 한다(「황소바람이 분다」, 「벽련항 횟집」). 인물이 지닌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소설들은 그들의 현재를 붙잡고 과거와 미래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이렇듯 각 소설은 일상 속 한 순간을 포착하여 집중시키지만, 그 속에 삶의 얼개를 함축적으로 심어놓아 전체 삶을 포괄한다. ▶ 도전의 장벽을 낮추는 과감한 시도 이번 소설집에서는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설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동·식물 등 인간이 아닌 생물의 시점에서 인간주의적인 시선을 전복하기도 하고(「짖어야 개지」, 「지구촌」),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고 대본의 형식을 취하며 서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흑형이 무대를 떠나며」). 또한 전래동화의 한 장면을 현대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옛이야기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제공하기도 한다(「날개옷」).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은 짧은 소설이 그 길이의 간결함에 기대어, 도전이라는 장벽을 낮추게 만들고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소설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양식의 소설이 아니다. 우리가 쉽고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함축적으로 서사를 포괄하는 짧은 소설이 그 간결한 분량 이상의 감동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