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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9월 상순 어느 날 경성
1920년 10월 중순 어느 날 만주 간도 2009년 늦가을 어느 날 일본 도쿄 나는 거기서 앵무가 노한 것을 보았느니라 나의 육신은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았다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두통은 영원히 비켜서는 수가 없다 날개 축 처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아내는 낙타를 닮아서 편지를 삼킨 채로 죽어가나 보다 나는 홀로 규방에 병신을 기른다 파란 정맥을 절단하니 새빨간 동맥이었다 사람은 광선보다도 빠르게 달아나라 이런 춘풍태탕한 속에서 어쩌다가 한 무더기 비둘기의 떼가 깃에 묻은 때를 씻는다 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허위고발이라는 죄명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죄를 내버리고 싶다 죄를 내던지고 싶다 우아한 여적이 내 뒤를 밟는다고 상상하라 여자는 만월을 잘게 씹어서 향연을 베푼다 혹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선고받았다 사람의 숙명적 발광은 곤봉을 내미는 것이어라 나는 그것들을 조금씩 먹어보곤 깜작 놀랐다 춤추어라 깔깔 웃어버려라 나는 그냥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달렸다 여기는 어느 나라의 데드마스크다 한 마리의 뱀은 한 마리의 뱀의 꼬리와 같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도회의 인심은 대체 얼마나 박하고 말려고 이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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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서 까마귀는 울지 못하오.”
그가 내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의미를 담고 던진 말이었다. 암호처럼 던져진 말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 만에야 나는 그 말이 유치장에 갇혀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항의하는 뜻인 것을 알았다. 봄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차가운 날씨였다. 더구나 벽돌로 둘러쳐진 유치장에서라면 추위는 더욱 잔혹하게 살갗을 파고들 것이다. 나는 침구를 한 벌 더 넣어주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취조문에 기록된 것으로 볼 때 그의 신원은 비교적 확실했다. 지금은 퇴직했다고 해도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근무했다면 사상이 불순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그는 시인이었고, 소설가였다. 그림도 곧잘 그렸던 모양이었다. 따뜻한 세상이 그리워서 도쿄에 왔다는 그의 넋두리 속에 불경이나 대역의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 더구나 폐병 말기의 중환자가 아닌가? 경찰이 처음부터 뭔가 동아줄을 잘못 엮은 것이 분명했다. 식민지 현실과 전쟁의 광기가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그는 애꿎은 희생자로 전락하고 있었다. --- p.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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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0월경,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은 폐병을 앓는 몸으로 동경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옛 애인 금홍과 방지온, 하숙집의 눈먼 딸 마리코 등을 만나면서 조국 조선의 식민지적 현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또한 천황 암살을 위해 동경에 잠입한 ‘까마귀’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부탁으로 암호가 적힌 시를 써서 한성으로 보내면서 일본 경찰의 추적과 감시를 받게 된다.
한편 2009년, 소설가인 정문탁은 이상이 왜 동경에서 체포되어 죽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도쿄로 간다. 도쿄에서 한국인 할머니를 둔 가와무라 소조를 만나게 되고, 그의 할아버지가 지내던 사찰에서 이상의 위패를 발견한다. 부모가 교통사고 죽은 뒤 소조의 보호를 받던 재일교포 3세 도리타니 다다오가 살인 누명을 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개입하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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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되어버린 천재, 李箱!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숨겨진 비밀 1937년 동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박제가 되어버린 天才, 李箱죽음의 비밀이 밝혀진다 2010년은 사회 각계 전반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많은 해였지만, 문학계에서도 기념할 만한 해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상인 ‘이상문학상’의 주인공이자, 우리 문학 사상 가장 이채로운 존재로 평가되는 ‘이상’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을 난해한 작품과 그의 짧은 생애 동안의 기이한 행동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의 거친 항의로 '조선중앙일보'의 연재를 그만두게 되고, 경영하던 카페가 연달아 문 닫게 되면서 돌연 일본행을 결심한 이상. 하지만 1937년 죽음을 맞기 전 동경에서 보낸 6개월은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적다. 폐결핵을 앓는 몸으로 ‘반일 조선인’이라는 혐의로 34일간 옥살이를 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다음 달 4월 17일에 동경 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는 것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상은 왜, 동경에서 그렇게 죽었을까? 죽기 전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세상을 눈에 담았을까? 죽음의 땅 도쿄에서 이상의 흔적을 더듬다 이 책은 치밀한 자료 수집과 방대한 관련 지식을 동원해 퍼즐을 맞추듯 매우 정밀하게 짜놓은 웰메이드 가상역사소설이다. 1910년 국권피탈이 되던 해에 태어나 일제의 횡포가 극에 달해가는 시점에서 삶을 마친 이상은 생각해보면 참 딱한 사람이다. 그는 온전한 조선을 살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상이 “과연 무슨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하면서 식민지 시대를 살다 죽었던 것일까?”, “그는 왜 체포되어 긴 시간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이상의 행적을 추적했다. 특히나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했다는 확실한 신분이 있고 폐결핵까지 앓고 있던 그를 왜 가두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치밀한 자료 조사와 파괴적인 상상력으로 1936년 가을과 1937년의 봄의 ‘이상’을 만들어간다.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또한 작가는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2010년을 살고 있는 소설가 ‘정문탁’을 불러낸다. 정문탁은 작가를 대신해 도쿄로 건너가 이상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 무엇이었을지 더듬어가다 ‘재일한국인에 의한 일본인 살인사건’에 연루된다. 모든 정황이 재일한국인을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살인은 계속된다.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오는 사건 뒤에 감춰진 음모와 그 진실은 무엇일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사건들, 그 속에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보다! 동경으로 건너온 이상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보게 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의 치욕을 당해야 했던 1930년대. 이 소설은 이상이 만났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이상의 눈과 귀를 통해 보여준다. 넓은 한문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다양한 역사적 소재를 한국적 감성에 맞게 써내려가는 작가 임종욱.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던 그가 이번에는 불운한 시대의 초상인 ‘이상’을 이 땅에 다시 불러낸 것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이상, 작가로서의 이상, 그리고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이상을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추리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 단순한 역사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까지 독자들이 얻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적 정보는 물론, 이상이 남긴 기하학적인 작품들의 면면까지도 느낄 수 있게 재구성한 데 있다. 소설 중간 중간에 만나게 되는 이상의 작품들은 단순한 이상의 저작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소설의 극적 구성을 더 치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한 팩션이지만, 인물의 업적이나 단순한 역사적 설명이 담긴 기존 역사서나 전기 서적을 뛰어넘어 극적 요소를 가미한 교양서라 할 만하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지나온 우리가 그려야 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도록 요청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