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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회학 세트
사랑은 왜 아픈가 + 사랑은 왜 불안한가 전2권
돌베개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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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에바 일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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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 Illouz

프랑스?이스라엘 국적의 사회학자.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파리의 유럽 사회학 및 정치과학 센터에서 연구책임을 맡고 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독일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의 안넬리제 마이어 연구상 및 유럽 사회과학상(EMET)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았다. 2009년 독일 언론 『디 차이트』가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감정사회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된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저서로 『감정 자본주의』,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은 왜 끝나나』, 『근대 영혼 구원하기』,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
프랑스?이스라엘 국적의 사회학자.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파리의 유럽 사회학 및 정치과학 센터에서 연구책임을 맡고 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독일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의 안넬리제 마이어 연구상 및 유럽 사회과학상(EMET)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았다. 2009년 독일 언론 『디 차이트』가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감정사회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된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저서로 『감정 자본주의』,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은 왜 끝나나』, 『근대 영혼 구원하기』,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가』,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해피크라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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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독일 뮌헨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와 베를린 자유 대학교에서 헤겔 이후의 계몽주의 철학을 연구했다. 『늙어감에 대하여』,『사랑은 왜 아픈가』,『존재의 박물관』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2008년에는 어린이 철학책 『생각의 힘을 키우는 주니어 철학』을 집필 · 출간했다. ‘인문학 올바로 읽기’라는 주제로 강연과 독서 모임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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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014g | 140*218*50mm

출판사 리뷰

감정사회학의 대가이자 “내일의 사유를 바꿀 12인의 사상가”
중 한 명인 에바 일루즈의 역작
‘감정 자본주의’를 파헤쳐 학계와 출판계를 놀라게 했던 그녀가
이번엔 ‘현대인의 사랑’에 관한 사회학적 고발장을 던진다!


우리 삶의 일상과 현대문화의 다각적 측면을 활발히 성찰해온 여성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특히 인간의 ‘감정’ 연구에 몰입해왔다. 지금껏 ‘감정’은 주로 심리학의 연구대상으로 여겨져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는 소비자본주의로 기울어진 현대사회가 결국 그 구성원들이 지닌 감정의 생산과 변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진단한다. ‘현대’라는 사회의 풍경을 감정의 ‘상품화’ 혹은 ‘자본화’라는 코드로 읽어내는 것이다. ‘사랑은 왜 아픈가?’ 혹은 ‘사랑은 왜 사랑에 빠진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가?’를 다루는 이 책은 그녀가 진행해온 연구를 또 다른 방식으로 집대성한 독특한 성과물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낭만적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이 오롯이 표현되는 영역이므로 그 이면에 숨은 ‘사회학적 통찰’(‘심리학적 치료’가 아니라!)을 감행해본 것이다.

에바 일루즈 자신은 그런 시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이 책이 품은 커다란 야심은 마르크스가 상품을 가지고 벌인 일을 감정에, 적어도 낭만적 사랑의 감정에 적용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즉 (사랑의) 감정은 사회관계들로 형성된다는 것, 감정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순환하는 게 아니라는 것, 감정이 빚어내는 마법은 바로 사회의 마법이라는 것, 그리고 감정은 현대의 제도들을 압축해낸 것임을 보여주려는 야심인 동시에 열망이라는 이야기다.

현대인의 연애와 사랑, 그 현주소는? - ‘사랑’이라는 매체로 들여다본 ‘현대성’

에바 일루즈는 세계적인 학자답게 사랑을 주제로 다룬 이 책에서도 놀라운 박학다식함과 특유의 성실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녀는 제인 오스틴의 여러 소설들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과 잡지 기사,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올라온 숱한 고백담과 댓글들, 연애와 불륜을 포함한 여러 부류의 ‘사랑’ 경험자들과 나눈 실제 인터뷰를 토대로 ‘오늘날’, 즉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들이 만들어낸 ‘사랑의 현장’으로 곧장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 그토록 많은 고통과 상실과 아픔과 눈물이 차고 넘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단히 치밀하게 분석한다.

현대를 창출한 ‘계몽적 이성’과 ‘자유’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심지어 ‘감정’이 닿는 부분에서까지 ‘합리성’과 ‘자유로움’을 강제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애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고(‘합리적/계산적 성찰’의 결과다) 자존감에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된다. 자신을 버린 상대방에 대해 윤리적 심판을 내리는 대신에 현대의 여성들은 애인이나 배우자의 사라짐을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과 직접 결부 짓는 것이다. 하지만 에바 일루즈는 ‘사랑의 상처’라는 경험은 그것이 아무리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극히 ‘사회적인’ 경험임을 역설한다. 현대사회 그 자체가 제인 오스틴이 살던 빅토리아 시대와 달리 상대방의 태도를 ‘이해’하거나 ‘심판’하는 그 어떤 도덕적 언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레퍼토리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연애나 결혼 문제에서 현대와 달리 굉장한 ‘합리성’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고작해야 상대방의 재산 정도를 대략 알아보고, 상대방의 인격과 평판을 살핌으로써 ‘배우자’로서 ‘적당한’ 인물인지를 따졌다. 남자든 여자든 상대에게 어떤 특정한 ‘성격’이나 ‘감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없었다. 더구나 개인적 차원에서 배우자를 찾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그 일은 언제나 가문끼리 혹은 특정 집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로 접어들면서 사랑의 문화는 성정체성과 함께 크게 변모했다. 이른바 ‘현대문화’는 이상적 사랑이란 일상생활을 초월하는 일종의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성의 평등’과 ‘섹스의 자유’라는 두 가지 정치적 이상이 애정관계의 핵심으로 치고 들어오자, 현대문화는 그때껏 사랑을 감싸고 있던 의례적 경건함과 신비스러운 후광을 벗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룩하다고 여겨지던 사랑이 이제는 범속한 것으로 변해버렸으며, 그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관계 지형도도 변질되고 말았다. 에바 일루즈는 ‘현대’ 이후 남녀 간의 사랑이 떠안은 이러한 깊은 분열상에 집중한다. 어째서 현대인은 사랑을 하면서 혹은 사랑을 끝내면서 아파야만 하는지를 사회라는 전체 맥락에서, 그리고 역사 변천 과정 속에서 사랑이 보유해온 이중적 측면을 거듭 고찰함으로써 사랑의 본질을 되묻는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사랑은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을 초월해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원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정체성이 맞부딪치며 권력을 놓고 싸우는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싸움이야말로 현대적 사랑이 갖는 문화적 특징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연구한다는 것은 결코 지엽적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성의 핵심과 기초를 연구하는 일의 중심이라는 견해가 피력된다.

심리학은 사랑을 혹은 개인의 자아를 어떻게 망가뜨렸는가?

에바 일루즈에 따르면 사회학의 핵심과제는 ‘사회적’ 밑바탕을 폭로하는 것이다. 반면에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자란 무릇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생각하는 자세”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그가 말하는 ‘생각’이란 다분히 개인적인 것, 개인으로 하여금 외부세계의 어떤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무시해도 좋은지 결정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거나 해석하는 방식도 심리학(특히 정신분석학)과 사회학 간 격차가 있다. 지금껏 많은 사회(특히 미국 사회)에서 ‘사랑’은 심리학적 해석대상으로, 나아가 심리학적 ‘치유’의 대상으로만 다뤄져왔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심리학적’ 방식은 개인의 감정을 치유하고 자존을 되살리기보다는 개인의 감정을 망가뜨리고 자존감을 죽이는 장치로 곧잘 활용되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그랬다. 에바 일루즈는 사랑이 왜 ‘심리학적’ 치유의 대상으로 퇴화했는지, 어째서 사랑은 특히 ‘여성’을 약자로 만들었는지 그 변화과정을 추적하며 ‘이성애 혹은 이성관계의 밑바탕’을 폭로한다.

에바 일루즈는 이 방대한 저작을 통해 ‘심리학이 지배하는 해석 모델’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진정한 사회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녀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아프리오리’, 곧 선천적으로 타고난 병리적 현상으로 다루는 설명을 의심한다. 예컨대 프로이트 식의 논점을 거부하는 그녀는 “성적 매력이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랑을 선호하는가 하는 태도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일찌감치 형성된다는 주장을 강력히 내세우는” 프로이트 문화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른바 ‘프로이트 문화’의 유행으로 인해 내 파트너가 내 부모와 닮았든 말든 그 파트너가 곧 나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며, 이로써 ‘사랑의 고통’이란 결국 ‘개인이 자초한 것’이라는 파괴적 결말이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통찰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사회학은 무엇보다 사회의 틀이 만들어낸 조건에 주목한다. 더 나아가 사회의 틀이 빚어낸 문화 모델이 전략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딜레마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에바 일루즈 역시 바로 이런 틀을 만드는 현대적 사랑의 조건을 여러 각도에서 매우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사랑과 섹스의 ‘거대한’ 전환 - 화성 남자 대 금성 여자의 이분법을 넘어서

에바 일루즈는 사랑의 파트너를 고르고 관계를 맺는 ‘낭만적 선택’에 일어난 변화가 경제상황을 두고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이라 부른 과정과 닮아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 경제관계의 ‘거대한 전환’이란 자본주의 시장이 경제활동을 사회와 그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기본 틀로부터 떼어내 경제를 자기규제의 시장으로 바꿔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를 경제에 예속시킨 과정을 뜻한다. 이처럼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자율적 규제 기능을 갖는 결혼시장이 성립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요즘의 배우자 선택은 신체와 성적 매력을 중시하는 동시에 감정 역시 소중히 생각하는 심리학적인 것이 되고 말았으며,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 역시 더욱 주관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변모했다. 저자는 사랑의 ‘거대한 전환’이 갖는 일련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압축한다. 첫째, 잠재적 배우자를 평가하는 일에서 규범이 힘을 잃었다. 이러한 규범이 공동체의 가치체계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배우자의 매력과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서는 오히려 대중매체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둘째, 배우자를 감정이라는 범주와 함께 성적 매력이라는 범주로 평가하는 경향이 너무도 강해졌다. 여기서 결국 배우자의 감정적 소통능력은 섹시함에 우선순위를 내주고 말았다. 셋째, 성적 매력의 약진이 더욱 두드러졌다. 섹시함이라는 경쟁력이 결혼시장에서 점점 더 커지는 비중을 자랑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현대인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사회에서처럼 ‘도덕’이나 ‘재산’이 아니라 ‘성적 매력’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물론 과거 역사에서도 성적 매력은 사랑받기 위한 필수 조건의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상대방을 평가하고 배우자로 선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섹시함’이라는 범주는 연인이나 섹스 파트너를 평가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다. 문화의 범주로서 ‘섹시함’은 ‘미모’와 다르다는 것이 에바 일루즈의 견해다. 그녀에 따르면 19세기 중산층 여인들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매력적이었지 ‘섹스어필’로 매력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몸과 마음의 특성으로 이해했으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섹시함’이란 현대에서 남자도 그렇지만 특히 여자의 성정체성이 일련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신체·언어·복장 코드로 이뤄지는 섹스 정체성으로 변모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현대의 소비문화가 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페미니즘의 요구와 나란히, 여성의 (그리고 결국 남성의) 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데 기여한 가장 강력한 문화권력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심리학적 측면과 더불어 현대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는 현대 이전의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던 ‘애정관계’의 내용과 형식을 모두 뒤바꾸고 말았다. 오늘날 사랑은 “두 개의 자율적 의지가 서로 감시하고 감독하면서 개인의 심리적 기질과 욕구에 맞춤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사랑은 초월성과 연관되던 관점, 곧 개인의 특별한 욕구와 의지를 초월하는 힘이 곧 사랑이라는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으며, 따라서 사랑에 존재하던 환상도 말끔히 소거되었다. 이제 사랑은 단지 ‘애정관계’에 그칠 뿐이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서 ‘애정관계’란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낭만적 결합 안에 새겨 넣으려는 목적으로 감정생활이 행동의 규칙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관계”를 뜻한다.

저자 스스로 말하듯 이 책은 과연 “모든 면에서 현대의 사랑을 겨눈 고발장”처럼 보일 수 있다. 확실히 이 책은 사랑에 관한 기존의 지배적 선입견, 즉 “남자는 심리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본래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존재이며 여자는 자신의 심리학적 본성을 따르기만 하면 사랑을 찾기가 쉽고 또 더욱 잘 유지할 수 있다”라는 통념에 저항하려는 중요한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저자는 생물학과 심리학은 남자와 여자가 맺는 낭만적 관계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풀어주고 보듬어주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며 해결책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남자와 여자의 감정적 불평등을 생물학과 진화론 혹은 심리발달로 설명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이런 차별을 상당히 부풀리는 결과만 낳는다는 주장이다. 금성과 화성 운운하는 이야기가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설명함으로써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지만, 실제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아픔 없는 열정적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간 ‘상처의 치유’에만 주력해온 심리학이 놓치고 있는 중대한 결함이라는 것이다. 에바 일루즈는 작가 조너선 프랜즌의 입장에 흔쾌히 동의하며 그의 말을 소개한다. “고통이 아프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마취를 한 채 기술의 힘을 빌린 자급자족의 꿈이라는 대안이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해본다면 아픔은 자연의 산물이며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해주는 자연의 지표다. 아무런 아픔 없이 인생을 헤쳐 왔다는 말은 살아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 현대 이성애 관계의 난제를 풀어줄 열쇠는 과연 무엇인가?
- 베스트셀러에 내재된 사회의 잠재의식을 파헤치다


2012년 봄, 영국의 독서시장이 들끓었다.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뒤흔들며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가장 빨리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한 대형 베스트셀러가 탄생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전 세계에서 총 1억 부 이상 팔려나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다. 속편을 포함해 총 3부작으로 출간된 이 시리즈 소설은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출판을 넘어 문화·사회 전반에 ‘50가지 그림자’ 붐을 일으킨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바이블”(워싱턴포스트), “대학생부터 노부인까지, 모든 연령의 여성이 읽고 있는 놀라운 책”(미국 ABC 뉴스)이라는 평가를 받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그 내용과 표현의 자극성 때문에 ‘엄마 포르노’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흔하디흔한 ‘할리퀸 로맨스’ 부류의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이었다.

과연 ‘그레이 시리즈’가 담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유례없이 자극적인 소재를 들고 나온 이 소설의 성공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대표적인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19금 로맨스 ‘그레이 시리즈’를 분석도구로 삼아 현대 이성애 관계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사도마조히즘과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의 잠재의식을 고찰하는 신작 『사랑은 왜 불안한가 - 하드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은 전작 『사랑은 왜 아픈가 - 사랑의 사회학』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간 책으로서, 전작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진지함과 신선함으로 누구에게나 예민한 주제를 적절한 어조로 치밀하고 정교하게 파고든다.

일루즈는 우선 사회의 잠재의식이 투영된 결과물로서 베스트셀러에 주목한다. “당대에 큰 성공을 일궈낸 책은 그 사회가 품었던 규범과 이상이 무엇인지 짚어볼 바로미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루즈는 케이트 쇼팽이 1899년에 발표해 그사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각성』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교한다. 『각성』은 자신을 소유물로 여기는 남편에게 실망한 나머지 다른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열정을 품는 유부녀 이야기로, 발표 당시 여론의 격분에 시달려야 했다. 온갖 비난에 낙담한 케이트 쇼팽이 이후로는 단편만 쓰게 되었을 정도로 평단과 독자는 이 소설에 냉정함을 보였다. 그러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작가 E. L. 제임스는 그런 유의 따가운 소리는 그저 부수적인 것이었을 뿐 이내 속편을 써달라는 달콤한 제안을 받았다.
요컨대 사도마조히즘적 관계에 집착하는 한 쌍의 남녀를 다룬 소프트 포르노가 『각성』 발표 이후 100년을 갓 넘긴 시점에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것이며, 이는 그동안 우리가 사는 사회에 격심한 가치 변화가 일어났음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일루즈는 진단한다.

에바 일루즈는 ‘그레이 시리즈’가 미국의 사회학자 셔드슨이 제시한 베스트셀러의 5대 요소에 잘 부합하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셔드슨이 말한 대로 활용가능성, 수사적 표현의 힘, 반향을 일으키는 힘, 제도적 저장 요소, 결단력 등을 갖춘 텍스트였다는 것이다. 일루즈가 보기에 이 작품의 성공비결은 결코 포르노에 가까운 내용에 있는 게 아니다. 일루즈는 현대 후기의 남녀관계가 지닌 특징이 이 작품의 사도마조히즘적 관계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어 사람들의 ‘공감’resonate을 불러일으켰는지 그 방식에 주목해야만 이 시리즈의 성공비결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레이 시리즈’는 포르노에 가까운 파격적인 특성을 보여주면서도 우리가 익히 아는 통념, 즉 ‘전형적인 연애소설’이라는 통념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일루즈는 ‘그레이 시리즈’를 단순한 ‘엄마 포르노’로 볼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성애 관계가 직면한 내적 도전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동시에 섹스 문제의 자구책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현대인의 남녀관계에 내재해 있는 두려움과 불안 심리에 초점을 맞춰 고통을 가하는 자(그레이)와 고스란히 당하는 자(아나스타샤) 간의 ‘사랑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면서 ‘사랑’이 아닌 ‘섹스’만을 추구하던 그레이에게서 진정한 낭만적 사랑을 이끌어내는 여주인공 아나스타샤에게 많은 여성 독자가 열광했음을 지적한다.

▶ 섹스 판타지를 넘어선 성생활 자기계발서, 시대의 신경줄을 건드리다

에바 일루즈는 ‘그레이 시리즈’가 조악한 문학임을 인정하면서도 섹스 판타지를 넘어 일종의 문화적 상상을 선보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특히 ‘BDSM’이라는 장치는 이 소설에서 이성애 관계가 빚어내는 긴장을 극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여주인공 ‘아나’에게 자기계발의 방편을 제공함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그레이 시리즈’는 “사랑과 섹스가 처한 한심할 정도로 비참한 상태를 꼬집는 촌평인 동시에, 우리 인생을 개선하기 위해 낭만적 상상력과 자기계발 지침을 하나로 묶어낸, 독특한 장르문학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역설한다.
‘그레이 시리즈’는 여성이 쓴 여성을 위한 소설로 홍보되었다. 그렇다면 ‘그레이 시리즈’를 내용상 실질적인 ‘여성소설’로 만든 요소는 무엇인가? 이 소설은 여성에게 아주 친숙한 영역을 노리는 영민함을 보였으며, 성생활의 구체적 묘사를 담았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여성의 섹스는 자신의 쾌락과 자유 혹은 권력뿐 아니라 정체성 찾기(또는 정체성 만들어내기)와 은밀한 애정관계 형성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19세기의 소설이 주로 처녀가 사랑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오늘날의 여성 독자를 겨눈 대중소설은 결혼생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성생활이 이뤄지지 않거나, 결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적극적 성생활을 한다 해도 자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부추긴다는 것이 일루즈의 통찰이다. ‘그레이 시리즈’도 바로 이런 트렌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일루즈는 이 책에서 ‘사랑 문제’ 이전의 ‘섹스 문제’를 충실히 분석하고 있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상대로 하여금 평등과 합의라는 가치를 중시하던 결혼과 사랑과 번식을 전혀 새롭게 정의하도록 강제하는 개념으로 현대의 섹스를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섹스는 남성과 여성의 문화적 ‘현대화’를 이루는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작용한다고 그녀는 판단한다. 즉 사회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섹스는 침실이라는 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어딘지 모르게 죄책감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지극한 쾌락을 맛보는 행위지만, 사회학자에게 성과 섹스는 이를 중심으로 사회질서가 조직되는 일종의 축이라는 것이다. 이 축은 사람들을 특별하면서도 계산 가능한 어떤 모델로 묶거나 갈라놓는다. 성과 섹스라는 문제는 사회학이라는 분과학문의 핵심 주제다. 섹스는 육안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섹스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사회와 문화의 구조를 육화하는 동시에 재생산한다. 섹스는 “누구와는 자도 되고 누구와는 자면 안 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이기 때문이다.

일루즈가 보기에 섹스는 단순히 벌거벗은 두 몸이 마주치는 것 그 이상이다. 심지어 어떤 것이 경계를 넘어가는 섹스인가 하는 문제조차 사회가 정의한다. 결과적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행위는 그 사회가 내세운 규범과 맺는 관계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섹스는 언제나 사회적이며, ‘그레이 시리즈’는 그 최전선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사회학자에게 매우 적합한 ‘분석대상’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에바 일루즈는 ‘그레이 시리즈’ 텍스트를 매우 충실히 따라가며 분석한다. 시리즈 전체를 이끄는 두 주인공 그레이와 아나의 궤적, 다소 조악하지만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빤한 스토리와 잦은 애정 표현, 이 시리즈가 중요한 장치로 가져다 쓰고 있는 BDSM을 인용 묘사하면서 희대의 베스트셀러가 내장하고 있는 남녀관계의 진상, 다시 말하면 한 쌍의 남녀가 ‘BDSM’ 관계(성적인 형태의 ‘주인과 노예 변증법’)를 맺으면서 변화해가는 양상을 그리는 이 소설에서 진정으로 독자가 공감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밝혀나간다. 그리하여 애당초 ‘그레이 시리즈’를 둘러싸고 무성하게 번져나간 세간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추적해낸다.

요컨대 ‘그레이 시리즈’는 영원하거나 완전한 사랑이 아닌 또 다른 사랑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희망을 충족시키는 작품이어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두 주인공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안정적인 사랑과는 정반대로 격렬한 투쟁과 끝없는 협상을 하는 사랑처럼 보이고, 소설이 자극하는 상상은 자율성과 권력이 욕구와 대립하는 모양새가 아닌, 오히려 욕구를 거듭 촉발하는 상상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그레이 시리즈’는 세간의 오해와는 사뭇 다르게 페미니즘이라는 문화코드를 의식적으로 끌어안은 작품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고 ‘그레이 시리즈’가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 구성방식과 캐릭터에 페미니즘 코드를 녹여두었음을 일루즈는 지적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해 반!페미니즘적이라고 낙인을 찍는 비판은, 많은 여성독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지 몰라도 완전히 빗나간 지적이라고 역설한다.

▶ 사도마조히즘은 과연 사랑의 새로운 유토피아인가?

에바 일루즈는 ‘소설’이란 사회적 입장과 그 사이의 긴장을 담아낼 뿐 아니라 적어도 함축적으로 그러한 긴장을 정당화하거나 문제시하는 정치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레이 시리즈’가 담은 규범적이고 정치적인 함의가 무엇인지 물어야 하며, 이 작품이 사도마조히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성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묘사와 함께 섹스를 왜곡되게 이해했음을 보여주었다면, 이 소설은 아마도 수상쩍은 도덕관을 대변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본문 4장에서 에바 일루즈는 이렇게 묻는다. “마조히즘은 일종의 자발적 형태의 굴종이며 제 스스로 아픔을 감당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자존감과 자율성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의 향락적 주체와 극단의 대비를 이룬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성은 자청해 아픔을 감당하는 마조히스트를 그린 소설을 좋아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자율성과 평등과 자유라는 규범이 사도마조히즘 성생활의 자연스러운 확산과 함께 나란히 강화되었다는 독특한 분석을 내놓는다. 일루즈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인구의 5~10퍼센트의 사람들이 사도마조히즘 섹스를 경험했다고 한다. 결국 사도마조히즘은 지난 30~40년 동안 일종의 문화적 실생활로 자리잡으면서, 점점 더 그 무게를 더해온 자율성과 자아실현이라는 규범과도 결코 대립하지 않았다. BDSM은 오히려 페미니즘의 발달, 양성관계의 점증하는 평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유포되었다고 봐야 하며, 성적 취향이라는 문제가 정체성 정치(인권을 중시하고 자아실현의 비전을 키워가는 정치)에도 투영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일루즈는 사드 후작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분석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덧붙인다. 일루즈는 사도마조히즘을 계몽의 일부라고 본다. 사도마조히즘이 확실성을 추구하는 문제의 내재적 해결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초월적 존재인 신에 바탕을 둔 질서정연한 도덕적 우주가 와해된 현대의 도덕이 애매모호함, 불확실성, 불특정성이라는 문제로 골치를 앓게 된 상황에서 그 문제의 내재적 해결책은 스스로 빚어낸 확실성에 기초해 행동할 때에만 찾을 수 있으며,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현대의 애정관계를 풀어줄 해결책으로서 BDSM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되묻는 것이다. 정해진 역할과 고통, 고통의 통제와 합의의 경계를 약속해주는 확실성을 내재한 섹스형태가 바로 사도마조히즘이라면 그것은 사랑의 조건이나 변태적 섹스라기보다 사회가 지어낸 일종의 장치라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그레이 시리즈’는 섹스와 낭만의 관습을 ‘묘사’하는 동시에 ‘바꿔’놓은 조악한 문학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허구와 진실 사이의 구분’을 넘나들면서 오늘날 우리의 성생활과 애정생활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똑똑히 보여준다고 결론 내린다.

추천평

에바 일루즈가 다시 돌아왔다. 감정사회학의 달인답게 그녀는 E. L. 제임스의 메가 베스트셀러이자 19금 사도마조히즘 로맨스인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솜씨 좋게 요리한다. 사도마조히즘적인 관계 그리고 진정한 사랑. 두 항은 절대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자율성과 평등이라는 요구가 불러일으키는 현기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루즈는 이 난관을 넘어설 해법으로 사도마조히즘적인 섹스가 자리잡는 과정을 추적한다. 후기 근대적인 세계에서의 사랑, 그것의 역설을 그녀보다 더 명쾌하게 풀이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서동진(계원예술대학교 교수)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그레이 시리즈’를 토대로 현대인의 성과 애정생활이 처한 실상을 고찰하는 이 책은 염주 알처럼 꿰어진 관습과 도덕 아래 연애가 만들어내는 불안의 사슬과 우리 내면의 갈망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르포 기사와도 같다. 자율과 열정의 추구인 동시에 투쟁이기도 한 사랑, 넘쳐나는 자극과 폭발하는 감각 속에서 드러나는 짝짓기의 딜레마를 깊이 있으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문체로 해부한 에바 일루즈는 감정사회학계의 프로파일러라 할 만하다.
김경(칼럼니스트, 『하퍼스바자』 전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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