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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연주-해질녘 안개의 냄새 신기섭-알짜마트 주임, 열혈 시인 기형도-천사는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여림-안개 속으로 걸어간 새 이경록-하얀, 해변의 죽음 김민부-서른한 번의 죽음 그리고 서른한 번의 가을 김만옥-먼 바다 파랑주의보 김용직-기찻길, 그로테스크, 투신 원희석-파주, 빠친코 그리고 시와 정치 임홍재-남사당패가 되어 날아간 새의 노래 송유하-니르바나를 향한 단독자의 길 박석수-철조망 속의 파라다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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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내내 지방의 작은 도서관에서 그들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빛나는 시구들 앞에서 환호작약하기도 했지만 처절한 실존의 곡괭이질 앞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심사로 술집을 드나들기도 하였다. 사람살이가 늘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시인들만큼 미늘의 바늘로 상처를 낚아채는 존재들도 드물 것이다. 그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아찔하다. (5쪽, ‘작가의 말’)
(……)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_「매음녀·4」 부분 성병에 걸린 매음녀가 단속반에 걸려 보건소에 끌려가 강제로 진찰을 받는 장면은 인간의 수치심이나 치욕과는 먼 곳에 위치해 있다. 아랫도리를 벗고 양다리를 벌리는 익숙한 행동에서 인간의 존엄 혹은 부끄러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를 비웃는 것은 눈을 뒤집어쓴 나뭇가지뿐이다. 그때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집을 나가는 아버지가 오버랩된다. 이연주 시인의 「매음녀」 연작이 단순히 매음녀를 관찰자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암시되어 있다. 비루한 삶의 조건에 놓인 자신도 같은 궤적 위에 서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매음녀와 자신의 삶을 ‘된가래의 추억’이라고 명명한다. (22~23쪽, 해질녘 안개의 냄새-이연주) ‘절망은 유물을 남기지 않는다’는 구절은 어쩌면 그녀의 삶의 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독한 절망을 통해 다다른 나라에서 그녀는 썩어 흐물거리는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패의 냄새’가 없는 나라가 그녀가 원했던 공간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가 실은/ 이토록 쉽고 간단한 것을……’이라는 시 구절은 그녀의 죽음을 보는 것만 같아 두렵고 쓸쓸하다. 느닷없는 죽음은 그녀의 시 구절처럼 ‘질 나쁜 공기’가 되어 그녀를 덮쳤다. 친구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다 스스로 목을 맨 것. ‘나는 간다, 종은 울린다/ 콧등이 이렇게도 싸아해 두렵기 한이 없는/ 해질녘 안개의 냄새’(「안개 통과」 부분)처럼 그녀는 떠났다. (31~32쪽, 해질녘 안개의 냄새-이연주)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시를 썼던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부채 의식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그 하나는 80년대 초반 광주에서 불어닥친 민주화의 불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80년대 말 기형도의 죽음과 그의 시집이 던져준 충격이 그것이다. 1989년 5월 30일 발행된 그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문학청년들에게 던진 충격은 당시 이 땅의 문학적 풍토에서 어떻게 저 같은 시들을 쓸 수 있었는가 하는 경이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68쪽, 천사는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기형도) 여림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나무처럼 빛을 따라 자신의 몸을 뻗어가다가 빛을 향하는 다른 식물들의 악착스러움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한 그루 나무를 떠올린다. 그 악착스러움에 치를 떨다가 빛을 향해 나가기를 스스로 포기한 나무 한 그루가 서서히 말라가는 풍경은 우리가 얼마나 그악스럽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92쪽, 안개 속으로 걸어간 새-여림)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 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하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_「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부분 살아야 하는 근사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제 손목을 긋는 시인에게 세상은 막막한 곳이었지만 역설적이게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곳이기에 그는 살고 싶어 했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이다. (121~122쪽, 안개 속으로 걸어간 새-여림) 이경록 시인은 부인과 함께 잠들었지만 새벽에는 늘 깨어 있었다고 한다. 시란 아름다운 그 무엇으로 알았던 이수인 여사는 남편이 시를 쓰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란 고통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한 손가락이 없어지더라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듣고 시라는 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아름다운 그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151쪽, 하얀, 해변의 죽음-이경록)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세요?” “누구세요?” 고개를 내밀고 나오시는 아주머니는 놀랍게도 키가 120센티 남짓의 불편한 몸이었다. 반은 몸을 끌다시피 마루로 나온 아주머니에게 혹시 임홍재 시인을 아시느냐고 물었다. 시인이라는 말에 아주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그분을 잘 아는 분이신가요?”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니고 먼 후배뻘 되는 사람입니다.” “그럼 시 쓰시는 분이세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내 시에 대해 스스로도 그리 썩 미더운 생각을 가지지 못한 탓에 아주머니의 물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날이 더 어둑해졌고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흩뿌리고 있었다. “참, 저도 생긴 것은 이렇지만 시인입니다.” 아주머니의 말이 칼날처럼 가슴에 꽂혔다. 시집이 있느냐는 내 물음에 아주머니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며 수줍게 대답했다. 시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비를 맞고 길을 묻는가. (289~290쪽, 남사당패가 되어 날아간 새의 노래-임홍재)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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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고 황홀하다!
뜨겁고 치열했던 그들의 시 정신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목숨을 줄여서라도 좋은 시를 쓰고 싶다”, “맘에 드는 시 한 편을 위해서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고백하며 죽음 직전까지도 치열하게 시를 써 내려갔던 요절(夭折) 시인들. 이들은 요절(撓折)했다. 일찍 죽었다는 뜻의 요절이 아니다. 여기서 ‘요’는 ‘휘어져 부러지다’는 뜻이다. 그들의 재능이 자신의 삶을 휘어 부러뜨렸다. 천재란 그런 것이다. 버스 전복 사고, 심야극장에서의 죽음, 간경화증, 백혈병, 화재, 자살, 의문의 죽음……. 죽음의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의 삶을 창조적 에너지로 밀어올려 결국 휘어 부러뜨렸다. 자신의 삶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이들은 청춘의 시간 동안 치열하게 시에 매달렸고, 짧은 시간 엄청난 시의 흔적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리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병들고 고단했던 몸, 빠져나올 수조차 없던 가난한 생의 조건.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그들의 빛나는 재능을 세상은 알아보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소통할 길 없이 소외된 시인들은 그림자처럼 사라졌고,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페이지 곳곳에 실려 있는 요절 시인들의 빛바랜 흑백사진에 눈길이 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잊힌 시인들의 이름을 오늘로 다시 불러 세운다는 점이다. 요절 시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억누를 길 없이 올라온다. 죽음 앞에서 더욱 빛나는 시구들을 살펴보는 일은 아찔하고 황홀하다. 평범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의 힘 이 책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시인들의 삶과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시들이 많이 담겨 있다. 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모두 훌륭한 수준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이연주 시인이 그렇다. 왼손에는 담배, 오른손에는 소주잔을 들고 한참을 이야기하는 이연주 시인의 눈빛은 매혹적인 광기를 내뿜고 있었다고 한다.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의 집은 작은 소품 하나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녀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 한 장과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라는 시 구절이 읽는 이의 가슴에 훅 다가온다. 여림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라는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살아야 하는 근사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제 손목을 긋는 시인에게 세상은 막막한 곳이었지만 역설적이게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다. 요절 시인들의 시 곳곳에서 보이는 삶에 대한 치열함은,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 그들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이다. 이것이 요절 시인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주는 삶의 교훈이고, 그들의 시가 빛나는 이유이다. 죽음의 언저리를 산책했던 예민한 영혼들의 치열했던 삶과 빛나는 시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