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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연주-해질녘 안개의 냄새 신기섭-알짜마트 주임, 열혈 시인 기형도-천사는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여림-안개 속으로 걸어간 새 이경록-하얀, 해변의 죽음 김민부-서른한 번의 죽음 그리고 서른한 번의 가을 김용직-기찻길, 그로테스크, 투신 원희석-파주, 빠친코 그리고 시와 정치 임홍재-남사당패가 되어 날아간 새의 노래 송유하-니르바나를 향한 단독자의 길 박석수-철조망 속의 파라다이스 이현우-나부껴 오르는 깃발도 없는 방랑 혹은 편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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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이란 물리적 죽음과 의식의 죽음이 한 지점에서 만나 불꽃처럼 타오르다 소멸해간 흔적이다. 생의 모든 촉수들의 죽음이라는 물가로 그 뿌리를 급속히 또는 서서히 뻗어가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두렵고 황홀한 일이기도 하다. 그분들의 시가 세상에 남아 누군가를 위로하고 따듯한 손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p.5 「작가의 말」중에서 (……)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_「매음녀·4」 부분 --- pp.22-23 「해질녘 안개의 냄새-이연주」중에서 ‘절망은 유물을 남기지 않는다’는 구절은 어쩌면 그녀의 삶의 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독한 절망을 통해 다다른 나라에서 그녀는 썩어 흐물거리는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패의 냄새’가 없는 나라가 그녀가 원했던 공간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가 실은/ 이토록 쉽고 간단한 것을……’이라는 시 구절은 그녀의 죽음을 보는 것만 같아 두렵고 쓸쓸하다. 느닷없는 죽음은 그녀의 시 구절처럼 ‘질 나쁜 공기’가 되어 그녀를 덮쳤다. 친구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다 스스로 목을 맨 것. ‘나는 간다, 종은 울린다/ 콧등이 이렇게도 싸아해 두렵기 한이 없는/ 해질녘 안개의 냄새’(「안개 통과」 부분)처럼 그녀는 떠났다. --- pp.31~32 「해질녘 안개의 냄새-이연주」중에서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시를 썼던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부채 의식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그 하나는 80년대 초반 광주에서 불어닥친 민주화의 불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80년대 말 기형도의 죽음과 그의 시집이 던져준 충격이 그것이다. 1989년 5월 30일 발행된 그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문학청년들에게 던진 충격은 당시 이 땅의 문학적 풍토에서 어떻게 저 같은 시들을 쓸 수 있었는가 하는 경이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p.68 「천사는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기형도」중에서 여림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나무처럼 빛을 따라 자신의 몸을 뻗어가다가 빛을 향하는 다른 식물들의 악착스러움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한 그루 나무를 떠올린다. 그 악착스러움에 치를 떨다가 빛을 향해 나가기를 스스로 포기한 나무 한 그루가 서서히 말라가는 풍경은 우리가 얼마나 그악스럽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 p.92 「안개 속으로 걸어간 새-여림」중에서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 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하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_「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부분 살아야 하는 근사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제 손목을 긋는 시인에게 세상은 막막한 곳이었지만 역설적이게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곳이기에 그는 살고 싶어 했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이다. --- pp.121~122 「안개 속으로 걸어간 새-여림」중에서 이경록 시인은 부인과 함께 잠들었지만 새벽에는 늘 깨어 있었다고 한다. 시란 아름다운 그 무엇으로 알았던 이수인 여사는 남편이 시를 쓰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란 고통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한 손가락이 없어지더라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듣고 시라는 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아름다운 그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p.151 「하얀, 해변의 죽음-이경록」중에서 우리가 시킨 추어탕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입이 까다롭고 미식가로 알려진 김요일 시인은 자신이 먹어본 추어탕 가운데 가장 일품이라 했고, 밥을 먹고 나왔다는 최창균 시인은 몹시 아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서로가 말을 아끼고 있었다. 원희석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술이 한 순배 돌았다. 비가 흩뿌리는 날 죽은 시인을 추억하기 위해 모인 살아남은 시인들은 미꾸라지를 입에 넣고 굴리며 쉽사리 죽은 시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 pp.257~258 「파주, 빠친코 그리고 시와 정치-원희석」중에서 날이 더 어둑해졌고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흩뿌리고 있었다. “참, 저도 생긴 것은 이렇지만 시인입니다.” 아주머니의 말이 칼날처럼 가슴에 꽂혔다. 시집이 있느냐는 내 물음에 아주머니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며 수줍게 대답했다. 시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비를 맞고 길을 묻는가. --- pp.289~290 「남사당패가 되어 날아간 새의 노래-임홍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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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생의 환희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짧은 생, 불꽃같은 열정, 천재 예술가의 광기… 그리고 여기 빛나는 시 “시인에게 시는 운명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쓴다. 천국의 새벽까지 등불을 밝히고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맑고 따뜻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한다. 이 책은 일찍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삶 자체가 한 편의 위대한 시가 된 시인들의 이야기다.” 천재는 요절한다고 했던가. 천재성을 인정받았으나 끝내 요절한 시인들이 있다. 이연주, 신기섭, 기형도, 여림, 이경록, 김민부, 김용직, 원희석, 임홍재, 송유하, 박석수, 이현우.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기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시인들의 이름은 생소하다. 정호승 시인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일찍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삶 자체가 한 편의 위대한 시가 된 시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인 우대식 시인은 요절 시인들의 고향이나 그들이 거쳐 간 곳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유족과 지인들을 인터뷰하며 이 책을 썼다. 파주의 통일동산에서 땅끝 완도까지 거의 만 킬로미터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요절 시인들의 삶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고 분투했던 모습들이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요절 시인들의 ‘무엇’이 그를 그토록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문득 요절 시인들이 우리에게 남긴 어떤 메시지를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에 발걸음이 멈춰 선다. 아찔하고 황홀하다! 뜨겁고 치열했던 그들의 시 정신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목숨을 줄여서라도 좋은 시를 쓰고 싶다”, “맘에 드는 시 한 편을 위해서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고백하며 죽음 직전까지도 치열하게 시를 써 내려갔던 요절(夭折) 시인들. 이들은 요절(撓折)했다. 일찍 죽었다는 뜻의 요절이 아니다. 여기서 ‘요’는 ‘휘어져 부러지다’는 뜻이다. 그들의 재능이 자신의 삶을 휘어 부러뜨렸다. 천재란 그런 것이다. 버스 전복 사고, 심야극장에서의 죽음, 간경화증, 백혈병, 화재, 자살, 의문의 죽음……. 죽음의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의 삶을 창조적 에너지로 밀어올려 결국 휘어 부러뜨렸다. 유쾌하고 세심한 청년 신기섭은 버스 전복 사고로 의식을 잃었다. 기형도는 심야극장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부산 출신 김민부는 화마에 휩쓸려 갔다. 서울 변두리 기찻길 옆 판잣집에서 가난에 허덕이며 살던 김용직은 술로써 시를 쓰다 간경화로 생을 마감했다. 왕초 걸인의 모습으로 빛나는 감수성의 시를 썼던 시인 이현우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의 망명 혹은 실종으로 자취를 감췄다. 자신의 삶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이들은 청춘의 시간 동안 치열하게 시에 매달렸고, 짧은 시간 엄청난 시의 흔적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리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병들고 고단했던 몸, 빠져나올 수조차 없던 가난한 생의 조건.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그들의 재능을 세상은 알아보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소통할 길 없이 소외된 시인들은 그림자처럼 사라졌고,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페이지 곳곳에 실려 있는 요절 시인들의 빛바랜 흑백사진에 눈길이 간다. 시가 생의 전부이며, 살아가는 이유였던 천재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는 운치가 있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더해진 이현우 시인은 전후 낭만주의 시의 절정을 보여줌은 물론 시인의 삶의 굴곡에서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잊혀진 시인들의 이름을 오늘로 다시 불러 세운다는 점이다. 요절 시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억누를 길 없이 올라온다. 죽음 앞에서 더욱 빛나는 시구들을 살펴보는 일은 아찔하고 황홀하다. 평범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의 힘 이 책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시인들의 삶과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시들이 많이 담겨 있다. 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모두 훌륭한 수준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이연주 시인이 그렇다. 왼손에는 담배, 오른손에는 소주잔을 들고 한참을 이야기하는 이연주 시인의 눈빛은 매혹적인 광기를 내뿜고 있었다고 한다.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의 집은 작은 소품 하나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녀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 한 장과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라는 시 구절이 읽는 이의 가슴에 훅 다가온다. 여림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라는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살아야 하는 근사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제 손목을 긋는 시인에게 세상은 막막한 곳이었지만 역설적이게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다. 요절 시인들의 시 곳곳에서 보이는 삶에 대한 치열함은,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 그들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이다. 이것이 요절 시인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주는 삶의 교훈이고, 그들의 시가 빛나는 이유이다. 죽음의 언저리를 산책했던 예민한 영혼들의 치열했던 삶과 빛나는 시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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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시는 운명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쓴다. 천국의 새벽까지 등불을 밝히고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맑고 따뜻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한다. 이 책은 일찍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삶 자체가 한 편의 위대한 시가 된 시인들의 이야기다. 이경록, 박석수, 김용직, 송유하, 기형도, 임홍재! 나와 함께 시의 청춘 시대를 보낸 그들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대 아름다운 시인의 이름 앞에 그리움의 촛불은 영원히 타오른다. -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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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무슨 논이나 비평과는 궤를 달리하는 육신적 들숨과 날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늘 머뭇거리고 피해가거나 주변을 맴도는 위장된 모습이기 일쑤인 우리의 삶이 이들 시인들의 삶과 시를 통과하고 났을 때 주르륵 알몸으로 흐르는 자유의 눈물 같은 것을 개운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비극의 정체가 아니겠는가. 또한 시의 진정성이 아니겠는가.
- 정진규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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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흙이 되어버렸을 요절 시인들. ‘생의 근친인 죽음 앞에서’ ‘말의 촘촘한 저인망에 걸려 죽어’ 간 그들의 치열했던 생애가 복원되고 있음을. 그들의 작품 세계에 그가 ‘숨’을 불어 넣고 있다는 것을.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지난한 일을 해낸 것은 그가 우대식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그로 인해 문학사에서 지워질 뻔한 뛰어난 몇몇 시인들의 작품 세계가 숨을 쉬게 되리라는 것을. - 이대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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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이들을 만나 찬탄과 비탄 금치 못할 삶과 작품을 읽을 수 있었으니, 먼저 간 시인들에게는 미안한 마음, 그들이 남긴 시편에 대해서는 즐거운 마음, 책을 쓴 저자에게는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 들돌 (북로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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