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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체계
2강 예술과 정념 3강 예술과 정념 2 4강 구경거리 예술에의 적용 5강 댄스 6강 음악 7강 시 8강 구경거리 예술 9강 구경거리 예술 2 10강 의상 11강 의상 2 12 강 건축 13강 건축 2 14강 건축 3 15강 조각 16강 조각 2 17강 회화 18강 회화 2 19강 데생 20강 예술가 알랭 연보 옮긴이 후기 |
Alain, Emile-Auguste Chartier,에밀 오귀스트 샤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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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예술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영감에 대해, 그 모습을 잘 조명해주는 말에 눈을 돌리기로 합니다.... 예술작품이란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대건조물이나 그림은 미리 생각되고 구상되는 것이요,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장인의 영역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면에 도움이 되는 만능의 공식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미美란 이념이 실현되어, 대상이 된다는 공식입니다.
--- p.101 축제[페스티벌]는 편안한 생각의 전염으로 인해 답답한 사고를 뒤로 미루게 합니다... 축제의 본령은 밖으로 향하는 기쁨에 있지만, 그것은 곧 내면의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대상에 의해 내면이 친숙하게 제어된다는 것이 아마도 모든 예술의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의식과 행렬에는 말이 없는 웅변 같은 작용이 있어, 우리의 정감을 일깨우는 동시에 정감을 제어하고 군중을 안정되고 질서 있는 형태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자신에게 있어 구경거리가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원에게 예를 갖추게 됩니다. --- p.53 음악은 어디까지나 기억일 뿐인 것이어서, 대상이 없다고 해도 기억으로 남으려 합니다. 현실의 충실한 시간의 감정이 음악입니다. 과거의 시간의 환기가 그 자체로 미학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모두 한데 모아 운반하는, 즉 우리와 모든 것을 흔들림 없이 동일한 운동으로 운반하는 시간이란 위대한 대상입니다. “그건 과거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로 과거를, 과거가 될 미래를 떠올려보기 바랍니다. 과거는 아마도 절대의 위안일 것입니다. 시간 덕택에 우리는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의 걱정과 고뇌가 그 대상이 됩니다. 이 대항해大航海는 끊임없이 모든 것을 회복하며, 우리를 실어 나르지만 해방의 약속이, 아니 약속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이 지속적인 운동이 추억의 입맛을 가볍게 해줍니다. 절망은 과거에 주저앉으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과거를 재고하는 것과 과거에 이별을 고하는 것은 삶의 균형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몸이 물러나면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추억의 행보에 은근히 숭고한 감정이 포함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 p.89~90 회화의 중심을 이루고 그 진수가 되는 것은... 최초의 겉모습, 젊은 겉모습이고, 세계의 탄생과 같은 어떠한 지식도 섞이지 않고, 어떠한 개념에도 이끌리지 않는 ‘겉모습’을 탐구하고 재발견하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초상화에 있는 눈빛과 표정이 그것입니다. --- p.247 그[예술가]는 말합니다. “나는 나 그대로이다. 자신을 표현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하는 일도 없다.” 예술가는 그의 소명[ 천직] 그 자체로 불후의 존재입니다. 그것으로부터, 다시 한 번, 예술과 아름다운 작품의 높은 가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가치는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고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립니다. 이 찬양해야 할 불평등은 곧 평등을 만들어 냅니다. 모든 사람 속에서 인간을 일깨우니까요. “칭찬하는 것은 대등해지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 강의가 이 아름다운 격언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30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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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로서의 예술의 육체성
또 하나, 알랭 예술론의 중요한 특징은 예술을 자연과의 관계라는 구도 하에 파악한다는 점이다. 예술에서의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그중 인간의 몸을 예술에 있어 불가결하며 중요한 자연으로 파악한다. 『예술 강의 20』은 총론적인 논의 후에 각론으로 넘어가서 먼저 댄스를 다루고 그 다음에 음악을, 그 다음에 시를 주제로 하는데, 이상의 세 가지가 몸을 변화시키는 예술로 정의된다는 데에서 자연으로서의 몸의 중요성이 단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자연으로서의 몸과 예술의 관련이라는 것도, 자연을 그냥 묵묵히 따른다기보다, 자연과 격투하고, 자연과 서로 다툰다고 하는 것이 크게 표면에 부각된다. 몸이 고양된 상태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형태화로는 다가갈 길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 그것은 통어되고 억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외침은 자신을 따르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며, 지속되어 가는 것이 되고, 음악적인 소리가 된다. 그와 같이 고양을 통어하거나 억제하는 행위를 ‘몸의 훈련’이라 부르고, ‘정념의 정화’라 부른다. 그렇게 몸을 조련하고 정념을 정화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예술 활동의 본래 모습이자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서 ‘행복’으로 시간 예술로서의 음악과 시, 공간 예술로서의 건축, 조각, 회화 등을 다룬 각론 뒤로, 마지막 장인 20강에서 알랭은 새삼 예술가가 무엇인지 묻고 예술가들을 고대 그리스의 무녀인 퓨티아에 빗댄다. 몸이 고양되는 것을 억제하고 혼탁해지는 정념을 정화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알랭은 거듭해서 말하고 있지만, 무녀에 가까운 예술가는 그러면서도 몸의 고양과 정념의 혼탁을 각별히 강하게 받아들이는 존재여야 한다. 대자연과의 교감이 있고,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과의 교감이 있고,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몸과의 교감이 있다. 그것이 예술 제작의 현장의 상황인 것이며, 바로 거기에서 외적인 자연뿐 아니라 내적인 자연에도 신뢰를 두는 것이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 그는 거의 유례가 없는 낙천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0번의 강의를 통해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알랭은 역시 예술가를 행복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더구나 그 ‘행복’은 예술가만이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통해 예술의 세계로 입문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은 공유된다. 예술을 논하는 알랭 자신도 물론 그 행복에 기여하는 한 사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