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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미오틱과 쌩볼릭
[2] 부정성 : 거부 [3] 이질적 요소 [4] 실천 |
Julia Krist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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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욕동과 에너지 방출의 충격은 일종의 흥분을 만들어 낸다. 이 흥분은, 만족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으면서, 어떤 질적인 비약을 통하여 그 흥분을 지연시키고 일시적으로 흡수하여 정착시키는 대항책을 산출해 낼 때까지 지속된다. 반복된 거부는 이와 같이 자신의 조정을 만들어 낸다. 거부가 분리.분할.분열.파열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또 그 다음에는 축적.중단.표지.정지가 된다. 거부의 긍정화는 거부의 궤도에 내재해 있다. 거부는 과거 체험의 흔적을 각인하고, '一者'에게 표지를 남겨서 또다시 그것을 거부하고, 또 다시 두 개로 분리시킨다. 의미 생성으로 가는 길로서의 엔그램은 자기 방어이고, 욕동의 재가동, 즉 재-투사(re-jet)를 가능케 하는 거부의 상관적 고정이다.
--- pp.199-200, --- 3장 이질적 요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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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가 함축하고 있는 부정성의 유형을 다시 한 번 강조하자. 물론 논리적 부정의 지위를 가장 정교하게 구상한 사람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듯이 프레게이다. 그는 '사고'의 영역에서 이 부정의 작용이 무용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고에서 부정이 하나의 '환상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의미 기능의 정립적 계기, 즉 'stehen(이다, 있다)', 'meinen(의미하다)', 'fassen(파악하다)'의 계기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고 영역의 위치에 기인한다. 사고의 생성은 사고에서 배제되어 있다. "사고한다는 것은 사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고하는 인간은 사고를 만들어 내지 않으며, 그는 있는 그대로의 사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고가 생산을 갖지 않은 것이라면, 사고 속에서는 그 어떤 부정도 안일 주체 즉 '나'의 확고한 현존을 항상 이미 조정하는 긍정에 미리 속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은 존재의 일부이다. "... 나는 없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 p.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