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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서론 1 킹 러드의 밤들 마르크스와 러다이트│마르크스주의-모리스주의 2 수리공, 테일러, 군인, 워블리 제2인터내셔널│워블리와 기술 전문가│레닌과 볼셰비키│발터 베냐민의 이견 3 자동화에 대항하여 통제로서의 자동화│존슨·포레스트 경향과 광부│부두│흑인 노동자와 자동화│페미니즘과 자동화 4 하이테크 러다이즘 컴퓨터가 장악하다│세계를 과정화하기│하이테크 러다이트│새로운 디지털 자동화│기계 파괴 결론 찾아보기 옮긴이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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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들의 기술 낙관주의는 정치적 우파와 중도파에서 비롯되지만, 급진 좌파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급진 좌파 가운데 이른바 가속주의자는 실리콘 밸리 기업가의 광기 어린 환상을 등에 업고 완전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를 기대하며, 스스로 ‘친과학적 좌파’라고 천명하는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착취적인 사업의 병참 조직을 포용한다. 가속주의자들은 종종 그들이 지적하듯이 마르크스주의 전통 내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는 기술이 노동자에게 해로워 보이는 방식으로 작업장에 배치될 때에도 기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 않았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기술은 최악의 경우에도 중립적이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노동이든 자본이든 기술을 통제하는 사람이 문제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에 따르면, 기술은 심지어 자본가에 의해 통제될 때에도 바로 상관의 코앞에서 급진적 변화의 조건을 창조하며, 사회주의에 도움이 된다. 이것은 기술 발전이 비록 단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사회주의 운동이 기술 발전을 긍정적인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책이 러다이즘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첫 장에서 러다이트에 대해 논의하기는 하지만 그들에 대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19세기 초 영국의 직공들이 결성했던 운동 이면의 정치, 즉 초기 자본가가 기도했던 노동의 기술적 재조직화에 대해 전투적 입장을 취했던 정치에 관심이 있다. 러다이트는 새로운 기계가 생계를 위태롭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또한 그 기계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기계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유효한 전략이라고 믿었다. 나는 우리의 현재 시점에서 노동 및 경제의 미래에 관한 논쟁의 용어가, 러다이즘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지속적으로 노동자 운동을 계속 횡단했는지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함께, 그러한 관점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그것은 여전히 무의식적이더라도 저항할 수 없는 21세기 노동 현장의 정신이다. --- 「서론」 중에서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은 러다이트의 기계에 대한 반대는 단순한 기술 공포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커크패트릭 세일이 주목하듯이, 러다이트의 상당수는 복잡한 도구를 다루는 직조공이거나 기타 숙련된 직물공이었다. 그들의 반란은 기계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계를 주요 무기로 삼아 그들이 확립한 삶의 방식을 위협하는 산업 사회에 대한 것이었다. …… 기계 파괴는 러다이트가 전개한 많은 기법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으며, 노동자의 힘을 증가시키기 위한 더 다양한 전략의 일환으로 가장 비타협적인 공장 소유주를 상대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것이었다. 사회학자 도널드 매켄지가 지적하듯이, 이 구절을 기술 결정론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사용하는 ‘생산력’이 인간 노동력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동등하다는 잘못된 가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마르크스의 독자들이 ‘생산력’을 기술과 동등한 것으로 해석했지만, 매켄지는 인간의 숙련 기술, 능력, 테크닉, 가장 중요하게 의식적인 적용을 포함해, 인간 노동력도 생산력이라고 지적한다. 생산력을 기술과 사람의 어셈블리지로서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족쇄가 채워지는 것은 기술 발전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와 기계 사이의 관계(노동자는 이 관계 안에서 의식적인 행위성을 가진다)이다. --- 「1장 킹 러드의 밤들」 중에서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운동의 지도자들은 과학적 관리와 같은 자본주의 기술을 테일러와 같은 시각, 즉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상태도 향상시킬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보았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바탕으로 그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경쟁적인 기술 혁신과 효율적인 작업 방법의 발견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다고 믿었다. …… 일반적으로 기술, 과학, 진보의 객관성과 필연성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추동하는 철학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 관점은 종종 노동자 자신의 실천적인 활동과 상충되었다. 게다가, 그 관점은 해방적 사회를 건설하는 목표에 해로운 방식으로 사회주의 전략을 형성했다. 이러한 실수는 단순히 역사적 골동품인 것만이 아니라 좌파 기술 정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발명하기 전에 과거로 돌아가서 기계와 기술에 대한 이러한 운동의 접근 방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 「2장 수리공, 테일러, 군인, 워블리」 중에서 데이비드 오터가 설명하듯이, 자동화는 단순히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적 과정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방식으로 노동에 영향을 미친다. …… 따라서 자동화는 노동력을 재구성해, 작업을 분리 및 재배치하고, 직무 내용을 변경하며, 중간층 일자리들을 도려낸다. …… 이것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은 이탈리아 노동자주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언어는 반세기 전에 토리노 자동차 공장의 방대하고 사나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기술이 갑자기 덮쳤을 때 이들의 운동을 매우 신중하게 추적했던 언어이다. 오터가 ‘양극화’라고 묘사한 현상의 일부는 노동자주의자의 계급 투쟁의 언어에서 ‘노동 계급의 분해’로 표현되었다. 노동 과정을 재조직하는 것은 노동자가 감독관에 대항해 스스로를 조직했던 방식을 파괴하는 강력한 길이었다. 자동화가 구현되는 곳마다 자동화는 공식적인 노동 지도부와 무관하게 노동자가 주도하는 전투적인 조사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 「3장 자동화에 대항하여」 중에서 전쟁의 자동화는 산업의 자동화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 반발하는 일반 군인에 대한 통제권을 분명히 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반전 운동이 성공적으로 육군으로 확산되면서, 군인들은 점점 더 전투를 거부하고, 장비를 파괴하고, 파괴적인 시위를 벌이고, 심지어 지휘관을 살해했다. 사기는 붕괴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지상군을 공중 폭격으로 대체하는 것 자체가 점점 자동화되었으며, 반발하는 군대를 갈등 연장 상황에서 제거했다. 많은 반전 단체들의 결론은 그러한 자동화가 군사적 특권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큼이나 정치적 전략이라는 것이었다. 데이터 처리와 함께 군사 컴퓨팅 프로젝트의 연구 개발의 대부분은 대학의 컴퓨터 공학과에 의존했는데, 그 학과들은 그로 인해 반전 투쟁에 휘말렸다. ‘참여 과학자 모임’, ‘민중을 위한 과학’, ‘평화를 위한 컴퓨터인’과 같은 단체들이 미국 군사주의와의 협력에 반대하는 과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커들은 기계를 부수기보다는 기계를 껴안는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러다이트적이지 않은 인물들 가운데 일부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해커들이 실천하는 해커 정치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그림이 부각된다. 해커들은 기술을 칭송하기는커녕 종종 가장 비판적인 기술 사용자이며, 컴퓨터 사용자 행동을 합리화하고 통제하기 위한 기업의 조치를 전복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기술을 사용한다. 그들은 종종 철저히 러다이트이다. --- 「4장 하이테크 러다이즘」 중에서 급진적 좌파가 감속주의 정치를 내세울 수 있고 또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 앞에서 살펴본 사상과 행위의 역사에 의해 뒷받침되는 나의 주장이다. 그것은 변화를 늦추고, 기술적 진보를 약화시키고, 자본의 탐욕을 제한하고, 반면에 조직을 발전시키고 호전성을 배양하는 정치이다. 월마트나 아마존이 전 지구를 삼키게 하는 것은 착취적인 생산과 분배 모델을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감세, 학교 민영화, 동성 결혼 반대와 같은 보수적인 명분에 자금을 대서 노동자의 상대적 지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부를 사용하는 반동적인 억만장자에게 자원을 보내는 것이다. 기술을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는 것은 평등주의적 결과가 아니라 권위주의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 「결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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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러다이트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러다이트의 기계 파괴 운동은 초기 산업 사회의 대량 생산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러다이트가 역사의 필연적 진보에 대한 비합리적인 공포를 가졌다는 오해가 생겨났다. 러다이트의 반란이 시대착오적이며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은 여기에 비롯한다. 시인 바이런은 러다이트가 폭도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진정한 민심이고, (러다이트는) “러드가 심은 자유의 나무를 새롭게 하는 이슬”(시 「러다이트를 위한 노래」에서)이라고 썼지만, 역사는 러다이트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러다이트가 가진 폭도라는 이미지는 오해가 거듭되어 ‘나는 러다이트가 아니다’라는 반기술주의의 비합리성을 고백하는 관용 표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러다이트는 기계에 무지했기 때문에 기계를 파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러다이트는 숙련된 직공이자 자신만의 복잡한 도구를 다루며 일하는 노동자였다. 기계 파괴 운동 이면의 정치에 주목하다 저자 개빈 뮬러는 억만장자들의 기술 낙관주의에도 급진 좌파의 친기술주의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기술 발전은 더 나은 일의 방식보다 부의 일방적인 축적으로 이어지며,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조차 가속주의에 가담해 해로운 노동 환경을 조성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초기 러다이트가 시도했던 전투적인 방식의 정치에 관심을 둔다. 새로 도입된 기계가 노동자의 삶과 공동체를 위협하자 그 기계를 표적으로 삼은 투쟁 방식이 유효한 정치적 전략이었음을 말이다. 러다이즘에 투쟁의 지도를 작성한 마르크스와 투쟁의 이론 마르크스주의를 접목시키고, 러다이즘이 기계와 자본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 러다이즘과 마르크스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다.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실천성과 러다이즘의 긍정적 정치성은 서로를 보완한다 저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기술을 도입한 사회주의의 지난 역사의 과오를 짚어낸다. 그는 사회학자 도널드 매켄지를 인용해, 마르크스의 많은 독자들이 주요 개념 ‘생산력’을 기술로 읽었지만, ‘생산력’을 기술과 인간 노동력의 어셈블리지(결합체)로 이해해야 노동과 기술의 관계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가 투쟁의 이론임을 상기시키며 노동 현장의 모순과 균열을 직시해 낸다. 직물 공장의 기계 파괴에서 포드 자동차 공장에 도입된 자동화 시스템에 반발하는 파업으로, 컨테이너화된 부두의 쫓겨난 노동자로, 저숙련 흑인 미국인의 시위로, 가사 기술 개발로 인해 필수 노동을 강요받은 여성으로, 알고리즘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다크 웹의 해커들로, 기계와 기술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현장에서 신러다이트적 시각과 노력을 이끌어 낸다. 소중한 일을 지키고 더 평등한 미래를 원한다면 러다이즘의 긍정적 정치성으로 눈을 돌리라 균열과 갈등이 빚어지는 투쟁의 현장에 향한 저자의 뜨거운 열정은 러다이즘에 대한 오해를 뒤집고, 노동 조건의 연속성, 노동 환경의 개선, 노동자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정치성으로 바꾸어 낸다. 일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좀 더 평등한 미래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엮어낸 러다이즘의 정치성과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성의 결합을 반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