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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바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외갓집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통영 내가 생각하는 것은 북방에서 _정현웅에게 허준 고향 두보나 이백같이 절망 귀농 조당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2부 창원도 _남행시초1 통영 _남행시초2 고성가도 _남행시초3 삼천포 _남행시초4 북관 _함주시초1 노루 _함주시초2 고사 _함주시초3 선우사 _함주시초4 산곡 _함주시초5 구장로 _서행시초1 북신 _서행시초2 팔원 _서행시초3 월림장 _서행시초4 3부 모닥불 여우난골족 가즈랑집 주막 고야 오리 망아지 토끼 고방 적경 정주성 추일산조 산비 쓸쓸한 길 머루밤 초동일 하답 흰밤 4부 통영 절간의 소 이야기 비 노루 오금덩이라는 곳 미명계 성외 광원 여승 수라 가키사키의 바다 창의문외 정문촌 여우난골 삼방 청시 5부 적막강산 산 석양 안동 추야일경 함남도안 삼호 _물닭의 소리1 물계리 _물닭의 소리2 대산동 _물닭의 소리3 남향 _물닭의 소리4 야우소회 _물닭의 소리5 꼴두기 _물닭의 소리6 가무래기의 락 멧새소리 박가시 오는 저녁 산숙 _산중음1 향악 _산중음2 야반 _산중음3 백화 _산중음4 6부 동뇨부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연자간 오리 개 수박씨, 호박씨 황일 탕약 이두국주가도 국수 촌에서 온 아이 목구 칠월 백중 부록 -사진으로 보는 백석과 그의 지인들 -백석을 찾아서 _정철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에게 _안도현 -백석 연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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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바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외갓집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통영 내가 생각하는 것은 북방에서 _정현웅에게 허준 고향 두보나 이백같이 절망 귀농 조당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2부 창원도 _남행시초1 통영 _남행시초2 고성가도 _남행시초3 삼천포 _남행시초4 북관 _함주시초1 노루 _함주시초2 고사 _함주시초3 선우사 _함주시초4 산곡 _함주시초5 구장로 _서행시초1 북신 _서행시초2 팔원 _서행시초3 월림장 _서행시초4 3부 모닥불 여우난골족 가즈랑집 주막 고야 오리 망아지 토끼 고방 적경 정주성 추일산조 산비 쓸쓸한 길 머루밤 초동일 하답 흰밤 4부 통영 절간의 소 이야기 비 노루 오금덩이라는 곳 미명계 성외 광원 여승 수라 가키사키의 바다 창의문외 정문촌 여우난골 삼방 청시 5부 적막강산 산 석양 안동 추야일경 함남도안 삼호 _물닭의 소리1 물계리 _물닭의 소리2 대산동 _물닭의 소리3 남향 _물닭의 소리4 야우소회 _물닭의 소리5 꼴두기 _물닭의 소리6 가무래기의 락 멧새소리 박가시 오는 저녁 산숙 _산중음1 향악 _산중음2 야반 _산중음3 백화 _산중음4 6부 동뇨부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연자간 오리 개 수박씨, 호박씨 황일 탕약 이두국주가도 국수 촌에서 온 아이 목구 칠월 백중 부록 -사진으로 보는 백석과 그의 지인들 -백석을 찾아서 _정철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에게 _안도현 -백석 연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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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스무 살 무렵, 백석의 시 「모닥불」이 처음 내게 왔다. 그때부터 그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사회과학적 열정과 기운이 문학을 견인하던 당시에 백석의 시는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집회에 참가해서 구호를 외치다가 돌아와 쉴 곳도 그 둥지였고, 잃어버린 시의 나침반을 찾아 헤맬 때 길을 가르쳐준 것도 그 둥지였다. _‘서문’에서
어린 백석은 수업시간에 경의선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의선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평양이 멀지 않았고, 10시간쯤 달리면 경성에 닿았다. 경부선으로 갈아타고 부산에 내리면 일본으로 가는 관부연락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도를 보면 바다 건너 일본이 지척이 아니었던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북으로는 경의선의 종착지 신의주까지 달릴 수 있었고, 압록강만 건너면 드넓은 중국 대륙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경의선은 중국의 단동(안둥)에서 봉천까지 가는 단봉철도와 연결되어 바로 만주로 갈 수 있는 통로 구실을 하고 있었다. _본문 24쪽 백석은 외모만 ‘모던보이’가 아니었다. 일본 유학시절 습작기부터 그는 ‘가장 모던한 것’과 ‘가장 조선적인 것’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백석보다 앞선 주요한이나 정지용은 유학시절부터 일본어로 쓴 시를 발표했다. 그러나 백석은 단 한 편도 일본어로 된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모더니즘적인 시를 탐독하고 시론을 받아들였지만 조선 사람의 언어를 지키는 시인이고자 했다. _본문 51쪽 첫눈에 백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박경련이었다. 그녀의 까만 머리는 가르마를 타 정갈하게 보였고, 갸름한 얼굴에는 두 눈이 유난히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다. 신현중이 좌중을 웃기려고 너스레를 떨면 가끔 입가로 살짝 웃음을 내비칠 뿐이었다. 그때의 헤프지 않은 미소는 백석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었다. _본문 73쪽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백석보다 다섯 살 아래였다. 윤동주는 1936년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니다가 이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가 되자 용정의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으로 전학을 갔다. 그는 문학소년으로 시를 가슴에 품고 장차 시인이 되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의 책꽂이에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정지용의 『정지용시집』, 이은상의 『노산시조집』, 윤석중의 『윤석중 동요집』도 있었지만, 정작 읽고 싶은 『사슴』은 구할 수 없었다. _본문 136쪽 겨울방학을 앞두고 백석은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12월에방학이 시작되면 지체 없이 경성으로 올라오라는 편지였다. 백석은 이사실을 자야에게 말했고, 자야는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나 혼자 어떻게 경성을 간단 말이오” “왜요” “당신이 보고 싶어 미쳐버리면 어떡해? 경성역에 내렸다가 당신이 보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함흥으로 돌아올지도 몰라.” _본문 168쪽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표현은 분명히 문장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이다. 가히 연애의 달인답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진다. 첫눈이 내리는 날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백석 이후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p.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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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분단시대 극복의 정점에 서 있는 천재시인 백석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평안북도 정주 태생인 백석은 우리의 잃어버린 영토에 깔린 북방정서를 평북 방언의 질감을 통해 보석처럼 갈고닦음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미학적 깊이를 더해주었다. 하지만 재북在北시인인 탓에 우리 문학상의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다가 1988년 납?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에야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백석은 분단시대 문학사가 여전히 놓치고 있는 공백에 해당한다.”(‘백석을 찾아서’에서) 이 시집은 2005년 출간된 이후 4년간, 13쇄를 찍으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백석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개정판이다. ‘이 땅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백석은 “현재의 문학사가 남북한 모두의 불구적 성격에 구속돼 있다고 할 때 그 불구성을 극복하는 데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존재이다. 그는 남과 북이라는 체제적 성격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가장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었다. 남북 언어의 통일과 조탁을 꾀하는 길라잡이로서 백석의 현재성은 두드러진다.”(‘백석을 찾아서’에서) 나타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백석은 당신한테 대체 어떤 사내였나요? _안도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에게’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각 시마다 고유어를 간단한 주석으로 해설하여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됐다. 현대 맞춤법에 맞추어 재구성되었지만, 백석 시인 고유의 토속어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번 개정판에 새롭게 추가된 정철훈 기자(국민일보)의 ‘백석을 찾아서’에는 백석 시인의 유년시절과 대표시들이 탄생하던 시기의 삶과 작품에 담긴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유난골족’에서 지내던 시절부터 1945년 해방 이후 고향 신의주로 돌아간 시절까지의 이야기들은 백석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백석 시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했다고 평가 받는 안도현 시인의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의 나타샤에게’는 시에 등장하는 여인 ‘나타샤’에게 쓴 편지글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 글을 통해 백석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냈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백석의 ‘나타샤’가 누구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어 백석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아버지가 경성과 같은 타관에 가서 몇 날이고 몇 달이고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예닐곱 살 백석은 여우난골이라는 깊은 산골의 짐승 소리와 바람 소리에 놀라 어머니가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 자지러들곤 했다. 어머니를 대신해 먹을 것도 챙겨주고 옛 이야기도 들려주던 막내고모가 시집간 것도 이때쯤이었으니 어린 백석은 밤이 무서웠고 또한 고적했다.” (‘백석을 찾아서’에서)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산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어느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 고무가 고개 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고야古夜」에서, 85쪽) “백석의 시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나는 백석이라는 사내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나도 백석처럼 가난 했으나 아름다운 나타샤도 흰 당나귀도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백석이 되어보려고 혼자 쓸쓸히 앉아 눈 내리는 북방을 생각하며 밤새워 소주를 퍼마시기도 했지요. 그렇게 몇날 며칠을 마셔대도 나타샤 당신은 오지 않더군요.”(「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의 나타샤에게’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12쪽) 이 땅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현대시 100년 최고의 시인, 백석의 대표시집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슬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배게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17쪽)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출간 이후 4년간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2만 7천여 권이 팔려나간 스테디셀러이다. 기존에 출간되거나 후에 나온 여러 종의 백석 시집과 전집이 학술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시집은 오로지 시집으로서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다는 점에서 백석의 대중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에는 백석의 시 중, 널리 알려진 시편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흰 바람 벽이 있어」 「여우난골족」 등을 포함해 9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사슴』에 수록된 시들은 3부와 4부에 나눠 실었다. “사실상 백석의 명편에 해당되는 시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남북은 분단됐고 백석은 북한에 남았다. 백석의 백석다운 시가 여기서 중단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자 우리 문학의 비극이다. 그러나 문학은 상실이라는 토양에서 성정한다. 천재시인 백석이 노래 부른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한국현대시의 100년을 비추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화이다.”(‘백석을 찾아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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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인이 왈칵 그리워질 때
나는 안도현이 쓴 이 책을 꺼내어 읽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고자 한다.” _이동순(시인?영남대 교수) 그날 밤, 쭈글쭈글한 주름의 늙은 어머니가 서른네 살 아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아들이 오마니한테 어찌 이케 늦게 완?” 백석의 손등 위로 어머니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백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_본문 16쪽 만주에서 5년이 넘는 황폐한 시간을 보낸 백석이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장면으로 『백석 평전』은 시작한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영 처녀 박경련도 없었고, 경성에서 마지막으로 본 자야도 없었다. 최정희도 노천명도 없었다. 평양에서 결혼을 하고 안둥과 신의주에서 잠시 같이 살았던 문경옥도 없었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자주 술잔을 나누던 신현중도 허준도 정현웅도 없었다. 함흥의 김동명도 한설야도 없었다. 낯선 만주에서 그를 돌봐주던 친구 이갑기도 시인 박팔양도 이석훈도 없었다.”(‘본문 13쪽) 늙은 어머니만이 그의 손을 붙잡을 뿐이었다. 백석의 이야기는 고향에서 유년을 보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큰 세상을 꿈꾸던 오산학교 재학시절과 방응모의 장학생으로 떠난 일본 생활, 『사슴』을 세상에 내고 잘나가던 『여성』지 편집자이던 시절과 백석의 생을 관통한 사랑 이야기까지…… 그렇게 안도현 시인은 백석의 전 생을 뒤쫓는다. 함흥에서 교편을 잡던 날들을 거쳐 만주에서 유랑을 하던 날들 그리고 북한에서 문단 활동을 하던 백석의 이름이 사라지고 1996년 1월, 여든다섯 살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의 이야기는 안도현 시인의 손끝에서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되살아난다. 안도현 특유의 시인적 직관과 통찰, 품격 높은 상상력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유일무이한 평전 『백석 평전』은 마치 “소설을 읽듯 전기를 읽듯, 혹은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적 연구를 읽듯” 독자를 백석의 삶 한가운데로 서서히 끌어당기고 있다. “사실 백석의 생애와 문학세계에 대한 부분적 연구와 조명은 다수의 연구자에 의해 시도된 바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통찰은 거의 전무하였다. 그런데 이 방대한 서사적 구조의 체계를 일일이 학인하고 재현해내는 전체적 통찰”을 안도현 시인은 “특유의 시인적 직관과 통찰, 품격 높은 상상력”으로 해낸 것이다. “식민지시대와 일본유학, 만주표랑과 분단 이후 북한문단에서의 생활 등 한국현대사의 가장 치열했던 격동의 세월을 살았던 백석의 생애를 통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현대정치사, 경제사, 식민지생활사, 분단사, 방언학, 향토음식, 아동유희, 무속, 민간의약 등” 참으로 다양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안도현 시인은 조각조각 단편적으로만 흩어져 있던 백석 시인의 생애를 많은 자료를 찾아서 읽고, 당시의 구체적 사실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완전히 하나의 끈으로 꿰어냈다. 백석에 대한 슬픔과 애착을 내내 마음속에 품고 살았기에, “백석 문학에 대한 특별한 안목과 사랑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추천의 글’에서) 그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백석 시인 이야기 좀 해주세요.” “…….” “남쪽에서 요즘 대단한 인기를 끄는 시인이 백석이에요.” 오영재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의 머리 위로도 세월이 눈발을 뿌리고 있었다. “백석 시인은 말년에 전원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역시 똑같은 대답이었다. 북한에서 활동하는 시인이나 작가 그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이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_본문 422쪽 “해방 전 남한에서 그는 가장 주목받던 시인의 한 사람이었지만 해방 후 북한에서 시인으로서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생을 마친 백석에 대해 우리는 그가 살아온 삶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421쪽) “2009년 개정 교과서에 따라 개발된 중?고등학교 국어 관련 교과서에 백석은 김수영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고형진의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문학동네, 2013)에 따르면 백석과 관련한 단행본, 학위논문, 평론, 에세이 등의 연구물이 800개가 넘는다고 한다.”(본문 424쪽) 안도현의 『백석 평전』에서 새로 밝혀지고, 새로 규명된 백석 “백석의 생애를 완벽히 재구성하는 일에 성공하다” 이 책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백석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들을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재구성했다. 백석이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가 일본에서 유학하며 습작할 때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그동안 잘 규명되지 않았다. 안도현 시인은 백석이 1920년대 일본의 모더니즘 시론을 폭넓게 수용했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백석의 시와 산문에 드러나 있는 내용과 그의 실제 행적을 비교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고당 조만식이 백석의 집에서 하숙을 치지 않았다는 점, 백석이 사모했던 통영의 박경련이 그의 아버지처럼 폐결핵을 앓았고, 나중에 신현중과 혼인한 뒤에 아이를 낳은 적이 없었다는 점, 백석의 통영 방문 횟수가 모두 세 차례였다는 점 등 구체적인 세밀한 정황을 밝혀냈다. 더불어 1941년 평양에서 백석과 결혼한 문경옥의 오빠 문학수(오산학교 후배)와 깊게 교유했고, 그 사실이 백석의 수필 「사생첩의 삽화」에 드러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평전은 『조광』 창간호에 실린 「나와 지렝이」, 이 지면 같은 호에 ‘백정’이라는 필명으로 실린 「늙은 갈대의 독백」, 만주의 〈만선일보〉에 ‘한얼생’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고독」 「설의」 「고려묘자」, 1957년 북한의 〈문학신문〉에 실은 「계월향 사당」 등의 작품을 백석의 시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백석 문학의 본체성까지 현저히 손상시키고 혼란과 무질서를 조장시키는”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말끔히 정돈시키고 있다.”(‘추천의 글’에서) 일제 말 백석이 친일작품을 발표한 적은 없지만, ‘시라무라 기코(白村夔行)’로 창씨개명한 자료를 발굴했다. 한때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 여사의 에세이 『내 사랑 백석』에서 기억의 오류로 인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았고, 김영한이 ‘김숙’이라는 이름으로 1939년 《삼천리》에 발표한 수필 두 편을 새로 발굴했다. 더불어 그동안 지나치게 과장되었거나 풍문으로만 떠돌던 백석의 연애담과 결혼생활과 관련된 사실들을 정리했다. 또한 해방 후 북한에 남아 있던 백석의 옆에 조선작가동맹 위원장이었던 소설가 한설야가 있어 백석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아동문학 논쟁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북한 문단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했고, 1948년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어떤 경로로 남한의 잡지에 마지막으로 발표되었는지를 추적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 사진과 안도현 시인이 직접 작성한 백석 연보를 실었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 『사슴』, 『사슴』의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신문 기사, 『내 사랑 백석』을 출간할 당시 자야 여사가 이동순에게 보낸 편지, 이화여고보 재학 시절의 18세 박경련, 백석과 자야가 잠시 동거하던 서울 청진동 집, 이 책에서 처음 선보이는 백석이 「사생첩의 삽화」에서 묘사한 문학수의 그림 〈죽은 새〉 등의 자료 사진이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한 백석이 일생 동안 기차를 이용해 다녔던 길들을 지도로 보여줬다. 안도현 시인은 스무 살에 백석의 시 「모닥불」을 만난 이후 백석을 30년간 마음에 품어왔다. 안도현 시인은 “시인적 기질가 본성 자체가 백석 시인의 그것과도 너무도 닮아 있다.” 그의 “여러 시집들이 보여주는 시창작 기법과 표현양식, 포즈, 스타일 등에서도 백석의 호흡과 보폭”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안도현 시인은 “백석의 시세계, 시정신, 시인적途程을 배우고 닮아가려는 지향으로 살아온 것이다.” 『백석 평전』은 안도현 시인이 백석을 짝사랑해온 애착과 슬픔으로 쓰인 우리시대 최고의 평전이며 “우리 문학사에서 전무후문한, 유일무이한 명편”이라 할 수 있다 .(‘추천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