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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안녕, 그리운 사람들에게
마술 라디오 1 어부와 사랑 마술 라디오 2 빠삐용의 아버지 마술 라디오 3 주먹맨 마술 라디오 4 두 갈래 길 마술 라디오 5 신은 나에게 그녀 대신 혓바닥을 주셨다 마술 라디오 6 사라진 라디오 마술 라디오 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마술 라디오 8 소원을 70퍼센트 이룬 노인 마술 라디오 9 잘 듣는 할머니 마술 라디오 10 마지막 잎새 인간 마술 라디오 11 지상의 선물 마술 라디오 12 간월도의 달 마술 라디오 13 제일 부러운 사람 마술 라디오 14 야채 장수의 이중생활 에필로그 행복의 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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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대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듣고 묻는 자’, 이게 라디오 피디이기 때문이야. 라디오 피디의 최고의 권력 행사는, 바로 물어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음이야. 그렇게 묻고 들으면서 끝없이 살 방법을 찾아 헤매는 사람, 수많은 삶의 형태를 전하는 사람, 이게 라디오 피디라고 나는 생각해. 이렇게 묻고 듣고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란 거야.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고 동요하면서도 찾고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누군가는 말했어. 인생은 자신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신이 풀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48∼49쪽)
사실 내 가슴속에는 라디오 한 대가 있을 수도 있어. 그것은 내가 들은 이야기들로 이뤄진 라디오일 거야. 내 가슴속이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라디오일 거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쩐지 사람들 가슴속에도 라디오가 한 대씩 들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 라디오는 자신들이 살면서 들은 이야기들, 그런데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 잘했건 아쉽건 자랑스럽든 후회되든 잊히지 않고 반복적으로 혹은 기습적으로 생각나는 이야기들로 이뤄져 있겠지. 그 이야기들에는 애틋함이나 후회스러움, 자긍심, 그리움, 소망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복잡한 느낌을 줄 거야. (50∼51쪽) 어부는 그리움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던 거야. 나는 어부가 옳다고 생각해. 우리를 사랑했던 것들은 우리를 잊지 않아. 우리를 만든 사람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아.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을 사랑하는 법이니까. (67쪽) 빠삐용의 아버지는 이 말을 하면서 울먹였어. 눈맛은 그러니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마침내 눈앞에 벌어지는 것을 볼 때의 바로 그 맛이었던 거야. 그때까지 아버지는 절대로 아들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해. 그는 아들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가 기다리는 것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뭐가 가치 있는 일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기다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씩씩했던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숙연해졌어. 어떻게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동안에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86∼87쪽) “선배, 주먹맨이 살아가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방법은 있을 것 같아요. 모두가 한 사람을 위해 지는 거예요. 가장 힘센 사람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을 위해서 지는 거예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가위를 내는 거죠. 사람들이 모두 가위를 내려고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가슴이 뛰지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어요. 누군가 또 하나의 유아사 마코토가 되는 거죠.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주먹맨 대신 규칙을 바꾸는 것을 걸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는 절대로 져서는 안 되겠죠. 만약 그가 진다면 기적적으로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이 계속계속 나오는 거예요. 계속 규칙을 바꾸기를 요구하면서……. 이런 마술 같은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어요. 저도 수없이 본걸요.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 나를 걷게 하는 것은 천사의 날갯짓 소리가 아니라 바로 옆 사람의 발소리였다는 말, 들어보셨죠? 그런 경험도 있죠?” (111쪽) “그날 눈앞에 있던 두 갈래 길, 그게 자꾸 생각나거든. 내가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지. 그런데 두 갈래 길이 나타났을 때 내가 택한 길이 맞기를 진심으로 바랐는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워. 그날 친구가 물었었지. 어느 쪽으로 갈래? 나는 그녀가 위험에 빠졌기 때문에,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내 길이 옳지 않기를 바랐지. 그날 밤의 두 갈래 길은 선택의 순간마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운 좋게도 틀린 길을 택하길 바라지. 내가 재수 없게 옳은 길을 가게 될까 봐 두려워하지. 내가 별일이 없는 편안한 길을 가길 원하지. 그리고 안도하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122∼123쪽) “나는 그때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나는 삶에서 뭘 느끼고 싶어 할까? 내 마음의 주파수가 있을까? 내가 삶에 짓눌리지 않고 추구하는 어떤 멋이란 게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내 인생의 질문. 그것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거였어.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지.” (151쪽) 하나의 별에서 탄생했단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사람 마음도 그때 내가 본 하늘과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별 하나 없이 어두워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한 별이 있는 것. 하늘과 사람 마음은 데칼코마니 같을 수도 있어요. 반으로 뚝 잘라 접으면 같은 모양이 겹쳐질 수도 있어요. 그걸 제일 잘 알았던 사람 중 하나가 빈센트 반 고흐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불행하고 지친 사람들 머리 위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머리 위에 별 총총 밤하늘을 올려놓았겠죠. 이걸 믿는 나조차도 가끔은 어두운 표면에서 철벅거리며 헤매고 길을 잃죠. 내게 진짜 어두운 것은 심연이 아니고 표면이고 얕음이에요. 두려운 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얕음이죠. 제 인생의 질문 중 하나예요. 어떻게 깊어질 수 있으려나? 어떻게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185∼186쪽) 살다 보니 알게 된 건 인생에 쓸데없는 것은 없더라는 거예요. 그걸 모아서 선물을 하려고 맘만 먹으면요. 다 소용이 있어요. 돈 없어도 폼 나게 사는 것 어렵지 않아요. 나는 가구들도 직접 만들어요. 거실 탁자, 아내의 서랍장. 다 버려진 나무 주워다가 내가 만들고 칠한 거예요. 이 거실 탁자에서 커피를 마시고 과일을 먹죠. 나한테 가장 소중한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줄 아니까 폼 나게 살아요. (245쪽)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강한 인간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노점상 할머니들이 자기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우린 고생스러워도 버티니까, 살아내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하지 않았거든.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행복할 줄 아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했거든. 사실 이 말은 이후로도 내가 슬픔에 빠져들 때 자주 생각나. (272쪽) “어머, 그게 사랑이잖아요. 나로 인해서 상대방이 빛나 보이는 것. 상대방이 돋보이는 것.” (……) 떡집 아주머니랑 이야기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 ‘불행한 사람이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조금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그렇게 한다’는 말이 있어.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매일 사랑받기를 상상하는 것도 조금도 특별한 일이 아니야. 이 떡집 아주머니는 사랑받기를 꿈꾸다가 사랑하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했어. 우리는 사랑받는 문제에 예민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받는다는 말 앞에는 항상 사랑한다는 말이 놓여 있다는 점이야. (288∼289쪽) ‘살아가는 것을 쉽게 해주진 않지만 더 괜찮게 여기게 해준다!’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런 질문이 들었어. 왜 우리는 감동적인 이야기, 진실되고 놀라운 이야기에 마음을 움직일까? 그런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감탄할까? 그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이것이 우리 마음의 균형 잡기라고 생각해.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밝음 쪽으로 향해. 우리는 추락도 하지만 비상하기를 꿈꾸는 존재이기도 해. 인간은 지극히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도 산산조각나지만 또 지극히 사소한 계기로도 자신을 일으켜 세울 줄도 알아. 바로 그런 전환의 순간에 균형점이 되는 이야기들,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이야. (291쪽) 나의 삶과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란 감각은 잊히고 있을 거야. 이제 ‘영원으로의 도약은 아무도 탐내지 않는 것’이 되었고 ‘현재의 삶을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도 아니게 되었다고 바우만은 말해. ‘현재의 삶을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하는’ 그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소득+지출+마술’의 ‘마술’이라고 나는 강력하게 느껴. 자, 이렇게 해서 우린 다시 마술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었어. 누구나 소득, 지출만으로는 살 수가 없지. 제3의 것이 필요하지. 자식이기도 하고 우정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고 동료애이기도 하고 인정이기도 하고……. 저마다 살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마술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밧줄에 매달려야 추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 ---pp.322∼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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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후회, 위로, 즐거움, 시작, 행복, 사랑, 슬픔……
우리를 살게 하는 마술 같은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나는 언제부터인가 힘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만 이야기를 들려줘. 나는 ‘의견’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나는 이야기로 노를 저어서 힘없는 사람들을 다른 편 기슭에 옮겨놓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나 대화를 나눠보면 흔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들을 전한다. 〈무지한 스승〉이라는 다큐를 만들다가 만난 통영 경매사와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어부, 낚시가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을 알게 해줬다는 빠삐용이란 별명을 가진 아이의 아버지,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 때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과 후손들을 취재하다가 만난 사람들, 비정규직 문제를 취재하다가 일본에서 만난 유아사 마코토, 여자 친구를 구하러 가는 도중에 만난 인생의 두 갈래 길을 여전히 기억하고 사는 선배,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골로 간 중년 부부, 사랑이 끝난 걸 뒤늦게 깨닫고 괴로워하던 중 우연찮게 만난 음식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가게 된 한 남자, 사라져버린 라디오를 찾는 한쪽 눈이 먼 남자, 한 귀퉁이에 밀어놓았던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을 백 번 듣다가 인생에 대한 무언가를 깨달은 한 남자, 책을 읽고 가슴에 남은 글귀를 새긴 장승들을 마을 입구에 세우는 촌로(村老), 일흔여덟에 노인 대학에 간 강장군 할머니,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취재할 때 만난 송전탑 위 한상균 지부장, 제주도에서 만난 전설의 낚시꾼, 찬바람 맞으며 굴 캐는 간월도의 아낙들, 바람 한 점 없이 무척 더운 날 만난 재래시장 사람들, 엄마의 떡집을 물려받은 아주머니, 야채 장수 경숙이 언니, 제주도에서 만난 해녀와 해녀의 아들과 딸…….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과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고, 삶의 비밀과 진실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 마술 같은 이야기들은 놀라운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게 해준다. 또한 그녀가 읽어온 책 속 이야기들과 섞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책들을 통해 정혜윤은 포크너의 ‘소득+지출+이상향’, 볼라뇨의 ‘공급+수요+마술’이라는 이야기를 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그녀 자신에게 인생의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는 ‘소득+지출+자아’ 말고 어디에 매여 있을 수 있는지, 어떤 마술을 부릴 수 있는지, 나에게 필요한 또 하나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일 수 있는지 물어본다. 이 책은 그녀의 아름다운 백마술이며, 백역사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로 했던 마술은 선도 악도 아니고 온갖 한계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애를 쓰며 살아가는, 선악을 모두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구와도 살아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면 어쩌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영리하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을 세상답게 하며, 세상을 마술적으로 바꾼다고 한다. 말하지 못한, 하지만 가장 진실한 가슴속 말들. 누구나의 가슴속에는 마술 라디오가 한 대씩 들어 있다! “이 이야기들에는 여백이 아주 많아. 여백에 새로운 주석을 달듯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나가길 바라. 그게 마술 라디오의 좋은 점이잖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아주 깊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야. 아주 깊게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아주 깊게 들을 수만 있다면, 아주 깊게 말할 수만 있다면, 그다음에 우리에게는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날 거야. 왜냐하면 남는 것은 사랑하는 일뿐이니까.” 그녀는 이 책 《마술 라디오》를 통해 그녀의 마음속에도 이야기의 왕국이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수천 개의 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 모두를 하나하나 엄청나게 귀하게 여긴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마음속 주인공들과 함께 한바탕 방송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며,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할머니가 되고 어부가 되고 야채 장수가 되고 해녀가 되었던 것도 같다. 이 책에서 정혜윤은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들을 듣는 순간 다 듣기도 전에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 안에 진실로 진실로 이루고 싶은 세 가지 소원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에필로그에서는 오랫동안 라디오 피디로 살아오면서 인생에서 소중한 몇 가지를 배웠다고 이야기해준다. 완벽함과 한계와 믿음과 상상력과 반복과 시간에 관해서, 또다시 살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스스로의 마술에 대해서 들려준다. 정혜윤은 누구든 적어도 한 사람에게라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존재를 열어 보여야 한다고 믿고, 속 시원히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은 우리 보통의 인간 존재의 이야기, 우리 보통의 인간 존재가 만드는 마술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에는 책 속 이야기와 대화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여 채우고, 그것으로 다시 대화를 나누고 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여백이 많다. 그녀는 그 여백들을 같이 채워나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