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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발가락 사이로
이광이
삐삐북스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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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 04

1장 갑오년에 콩 볶아 먹는 소리

헤어 소수자의 길 … 16 / 게 등딱지 … 20 / 뻥의 스케일 … 22 / 부드러운 혀 … 25 / 논-쟁 … 28 / 뻘수저 … 30 / 고추 … 34 / 말의 맛 … 37 / 옛날 선배들 … 41 / 저 지경이 저 경지가 되는 순간 … 44 / 금둔사 … 47 / 실상사 뒷간 … 49 / 화불과야 … 52

2장 세상은 저런 놈이 오래 산다네

무꽃 … 60 / 낡은 껍질 … 64 / 훈수 … 67 / 늦가을 … 70 / 만원 … 73 / 보수 … 75 / 오디오 … 77 / 앙리 마티스 … 81 / 아완 선생의 용맹 정진 … 89 / 정종 … 93 / 지하철에서 … 97 / 분배 … 98 / 지혜 … 101

3장 세월은 뻘뻘뻘뻘 빨리도 기어가네

여름 저녁 … 110 / 어머님의 은혜 … 114 / 쌍가락지 … 116 / 무하유지향 … 120 / 고생한 나무 … 123 / 개와 펫 … 126 / 망년 … 127 / 스마트폰 … 132 / 귀가 … 136 / 향년 … 140 / 열반송 … 142 / 어디로 갈지를 모르고 … 144 / 봄날 … 145 / 제2의 화살 … 147

4장 계절은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선물 … 156 / 부처의 유언 … 159 / 어떤 문제 … 162 / 천왕봉 소풍 가는 길에 … 169 / 개심사 … 172 / 황룡강 일몰 … 176 / 무지개 … 178 / 연잎차 템플스테이 … 181 / 지공너덜 … 184 / 양계 … 188 / 신들의 죽음 … 190 / 깨달은 자 … 192

5장 손가락 사이로 왔다가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림 한 점 … 200 / 음악회 … 204 / 생애 첫 데뷔 … 208 / 전신 … 212 / 고갱 … 215 / 중년, 클래식으로의 귀의를 권하며 … 219 / 무엇이 전해지는 순간 … 222 / 수연성 … 224 / 마지막 사중주 … 226 / 절터 … 229 / 피날레 … 232 / 엄니 시집 … 236

저자 소개 1

이광이 인(仁)을 묻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여러 해 봉급쟁이를 했고, 지금은 쓰는 일이 업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일한 특이한 이력이 있고,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가까운 자리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피아노 왜 배워야 돼요?』와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가 있다. 여러 해 불교 잡지 [불광]에 글을 썼고, 지금은 [한겨레신문]에 ‘이광이 잡념잡상’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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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64g | 120*190*17mm
ISBN13
9791197145179

책 속으로

1994년 변산.
윤 선생。 뒷짐 지고 묻는다.
“대두大豆 파종播種 시기가 언제랍니까?
흥촌 아짐 허리 펴면서 답한다.
“대…… 머라고? 대가리가 어쨌다고.”
“아니, 대두 파종 시기 말입니다.”
“대두가 뭐여?”
“아, 콩이지요.”
“그러면 콩이라 글먼 되지, 입이 삐뚤어졌능가?”
“…….”
“파종은 뭐여?”
“심는 시기 말입니다.”
“긍께 콩 언제 심냐, 그 말이제?”
“맞습니다, 맞아요.”
“기냥 콩 언제 심냐고 물어보믄 될 것을, 뭔 갑오년에 콩 볶아 묵는 소리를 그라고 해싸.”
“…….”
“올콩(여름 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 알겄어?”
“예에.”
---「갑오년에 콩 볶아 먹는 소리」중에서

팔순 노모가 저녁 밥상머리에서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근래 어느 날 밤중 자시子時 무렵, 엄니 친구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유명을 달리한 모양이다. 여기서 개는 그냥 개와는 다른 ‘펫pet’이다. 그 집 작은딸이 죽은 펫을 부여안고 울고불고 곡을 하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작은딸은 즉시 인천 사는 언니에게 ‘부음’을 전했다. 언니는 그날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밤중에 50만 원에 택시를 대절하여, 광주까지 천리 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자매는 밤새 펫을 부둥켜안고 울었으며, 그 곡진한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도 없고, 말로 형언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 엄니 친구는 엄니에게 딱 한 말씀을 남겼다.
“저것들이 나 죽으면 저 난리를 치겄냐?
---「개와 펫」중에서

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앓아눕자 제자인 노자가 물었다.
“선생님,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에서 내리거라, 알겠느냐?”
“사람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허리를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마을의 노인들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나서 상용은 돌아누웠다.

허균의 『한정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신의 본바탕을 잊지 말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기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입상진의立像盡意’, 이 말은 시를 지을 때 사실을 나열하지 말고, 어떤 상을 세워서 뜻을 깊게 하라는 것이다. 산이 멀리서 봐야 아름답듯이, 은유나 비유를 통해 돌아 들어가라는 정도로 이해된다.

그런데, 스승이 제자에게 ‘세상 살다 보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가르침을 주면서 입을 열어 “내 혀가 있느냐? 내 이가 있느냐?” 이렇게 묻는立像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더 신기한 것은 그것을 알아먹는 제자다. 어찌 혀와 이를 보고 단박에 ‘유능제강柔能制剛’을 알아차렸을까? 그러니까 노자인가. 겨울 숲길을 걷다가 나무에 쌓인 눈이 가지를 꺾어 버리는 것을 보고 부드러움의 힘을 깨달았다고 하니.
나는 혀와 이를 내미는 교습법이 하도 희한해서 중학생 딸을 앞에 두고 한번 해보았다.
“아빠 혀가 있느냐?”
“…….”
“아빠 이가 있느냐?”
“……뭐래? 담배 끊어서 깨끗해졌다고 자랑하는 거야?”
이런 가르침은 이가 다 빠진 뒤에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데로 간다
---「부드러운 혀」중에서

“노모가 여든둘인데, 어디 안 아픈 데가 없어요. 팔다리, 허리, 발목에 온몸이 돌아가면서 쑤시고 저리고 아프다고 그러시오.”
“나이가 들면 그런 것인데 그래도 큰일이네.”
“하루는 병원, 하루는 수영장 이렇게 버티기는 하시는데 지난봄에도 아파트 현관 약간 경사진 곳에서 미끄러져 발목에 깁스했고 거기에 관절염까지 해서 금년에만 두 발에 번갈아 가면서 두 번이나 깁스했어요.”
“그러다 병원에 가고, 병원에서 살고, 나중에 요양원으로 가고, 인생이 그렇게 끝나는 것 아니겠는가.”
염천에도 퇴근길에는 막걸릿집에서 잡아끈다. 해 질 무렵에 나는 술 좋아하는 선배와 시원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선배 노모는 아흔넷이다. 선배가 아들로는 둘째인데 가운데 누나가 다섯 해서 일곱째이고, 밑으로 동생 셋 해서 형제자매가 열이다.
“울 엄니는 장사여, 한참 때는 90킬로그램이 넘었어. 평생 시장에서 장사해서 열 남매를 키웠지. 내가 그 골육을 이어받아 몸 하나는 튼튼하지 않은가.”

6년 전이니까 여든여덟에 거동이 불편해져서 3년을 병원에서 살았고, 그 뒤 3년은 요양원에 계신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쯤 찾아 문안을 드리는 데 몸이 불편해서 그렇지, 옛날 일 기억 못 하는 것이 없을 만큼 여전히 총명하다.
“하루는 갔더니 그러더란 말일세, 다리가 하나 없어져 버렸다는 거야. 아니 그래서 다리 여기 붙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내 다리 어디 갔냐고 자꾸 그러시는 거야. 왼쪽 다리에 감각이 사라져 버린 거지. 손으로 쿡쿡 찔러도 반응이 없어. 온종일 누워 계시니 한 다리가 마비되어 버린 거겠지. 그러더니 지팡이를 하나 사다 달라고 그러셔서 사다 드렸지.”
다시 한 달이나 지나서 찾아갔더니, 노모 왈 “다리를 다시 찾았다”는 것이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다리를 꼬집어 봤더니, 아프다고 반응을 하시는 거라. 그동안 무슨 조화가 있었는지 아나? 그 지팡이로 발바닥을 만오천 번을 때렸다는 거야. 에이 거짓말하지 마시라고 했지. 때린 건 둘째 치고 그걸 어떻게 세었겠는가. 만사천일, 만사천이, 만사천삼, 노인이 이렇게 셀 수는 없는 일 아니겄어? 그래서 물었더니 그것이 뭣이 어려운 일이다냐, 하시면서 100번을 때리고 콩만 한 작은 돌멩이를 하나 놓고, 또 100번을 때리고 하나 더 놓고, 하면서 세었다는 거야. 그렇게 만오천 번을 때리고 났더니, 마비됐던 다리에 피가 돌고, 신경이 돌아오고, 감각이 생기고 그랬나 봐.”
그날 나오는데 노모가 지팡이를 하나 더 사다 달라고 해서 선배는 ‘양발을 번갈아 가면서 때릴 모양이다’ 하고는 사다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 요양원에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와서 급하게 찾아갔다.
“어머니가 다리랑 팔꿈치랑 얼굴에 시꺼먼 멍이 들어 있는 거야. 누구랑 싸워서 맞은 줄 알었지. 그게 아니고 병원 바닥에 넘어진 거야. 침상에 내려서서 지팡이 두 개를 짚고 걷다가 다리에 힘이 없으니 몇 걸음 못 가 넘어져 다친 거지. 다리에 감각도 돌아오고 하니까 인제 걸어볼까 하다가 여지없이 꼬꾸라져 버린 건데……. 그냥 누워 계시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걸으려고 했냐고 물었더니, 뭐라 하신지 알어?”
“…….”
“집에 가려고, 걸어서 집에 가려고 그랬다는 거야.”

---「귀가」중에서

출판사 리뷰

삶은 고고하지 않다, 베토벤 작곡에 이미자 노래 같은 것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비로소 보이는 찰나의 깨달음

작가는 행복이란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는 것, 밥 먹고 담배 한 대 깊게 피우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그제야 보이는 찰나의 순간을 성찰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그 순간 느낀 위안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불교에서 육바라밀은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초월의 경지로 가는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데, 삶 자체가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수행 과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문득 베토벤의 웅장한 연주를 들으며 이미자의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이것이 바로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아닐까. 뻘뻘뻘뻘 사방으로 도망치는 펄 밭의 칠게처럼 우리네 삶 역시 종잡을 수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만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 소소한 일상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감칠맛 나는 문장이 빚어낸 기막힌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무엇이 전해지는 순간, 무엇을 깨닫고자 하는
무지가 만들어낸 몸부림의 기록들

“도대체 깨달음은 무엇이고, 깨달은 자는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정천각지 안횡비직 반래개구 수래합안’ 열여섯 글자로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으로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제자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하루의 어디에 서 있느냐?”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새벽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새벽을 한 그릇 가져오너라.” 스승이 말한다.
작가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현재와 미래 사이, 순간을 살며 영원을 좇는 인간은 발끝으로 서서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하며 괴로워한다. 관념 속의 개가 짖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은 관념 속을 찾아오는 수많은 개로 근심한다. 새벽을 길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시간을 잡으려고 아등거린다.

‘인생은 한 조각의 꿈이려니, 그동안 살아온 삶이 세월 따라갔고 세월 속에 나도 따라갈 뿐이다. 맑은 바람 밝은 달 너무도 풍족하니 나그넷길 가볍고 즐겁구나. 달빛 긷는 한 겨울, 복사꽃이 나를 보고 웃는다’ 이두 스님의 말처럼 작가는 세월을 따라 흐르며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안내한다. 현대인의 고단함을 작가 특유의 비유와 은유로 풀어낸 글을 읽다 보면 무심하게 떠나보낸 일상의 순간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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