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뵐룽 아흐레 7
내비게이션 111 여행 147 후기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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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아니 전해진 말에 따르면, 아니 다 늙은 허공이 밤새 속삭이길, 그가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 불룩 나온 배를 안고 길을 가는 엄마의 그림자가 막 전원을 켠 브라운관 텔레비전처럼 가끔 깜박였다고 한다. 그림자가 켜졌을 때 초음파 사진처럼 웅크린 태아의 모습이 바닥에 어른거리기도 했다는데, 또 누구는 그가 웃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소문을 들은 참새들이 엄마의 불거진 배꼽에 앉으려다 떨어지기도 했고, 이른 여름 좁은 길을 가득 채운 두꺼비들이 딱 보폭만큼 길이에 딱 발 디딜 만큼만 바닥을 내주어 임산부는 미끈거리는 두꺼비 등 대신 어렵사리 땅을 밟으며 걸었다. 집에 이른 여인이 신발 바닥에 늘어져 붙은 껌을 떼느라 애를 먹고 있을 때 옆 마을에서는 배 나온 여인이 두꺼비 위를 걷는 기적을 행했다는 말을 전하며 그해 담배 농사가 잘될 거라고 웅성거렸다.
--- p.9 '생명이여, 그대는 왜 사는가?' 잠 없이 사흘을 헤매고는 어느 순댓국집 앞에서 하염없이 돌고 있는 물레방아 앞에 섰다. 온갖 색전구들을 매단 요란한 물레방아였지만 그 앞에 선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뜻밖에 물레방아가 대답했다. '가능한 오래 살기 위해 산다네.' 그는 놀랐지만 놀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생명이여, 왜 그토록 오래 살려 하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묻듯 짐짓 다시 물었다. '그래야 왜 사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물레방아의 목소리는 깊었다. --- p.16 그는 뵐룽 아흐레이다. 그의 이름이자 스스로를 바라보는 거울이고 세상이 그를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다. 아흐레 뵐룽이라 불러도 그는 들은 체를 했으며 부르기만 해도 세상이 함께 울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름의 어느 부분이 씨족을 지칭하는지 또 어느 부분이 자신을 가리키는지 순서를 가리지 않는 이름 아닌 이름이었다. --- p.36 "기억해 보라. 사람이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희생하는 행동은 인간이 이성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깨달음이며 이를 몸으로 행하는 실천이니. 그렇기에 모름지기 인간은 여기에 이르기 위해 단계별로 수많은 노력을 해야 함이나, 상황이 닥쳤을 때 이 어려운 과정을 인간 개체들이 매번 하나씩 생각해 이룰 수 없으니, 진화가 인간 본성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새겨 두었으니, 가장 높은 정신적 작용이 필요할 때 자동으로 실행되게 만든 프로그램이 사랑이라." --- p.71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스스로 모순입니다. 이미 말이라는 진술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있기 시작한 거죠. 이후는 일사천리입니다. 진술이 있는 상황은 그 진술의 주체가 있다는 실토입니다. 숨길 수 없이 누군가 있는 거죠. 그리고 다음 순간 주체가 진술을 던질 때 반드시 대상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원시적인 비유이기는 하지만) 허공을 향해 툭, 침을 세 번 뱉었는데 그중 하나에 번뜩 그놈 얼굴이 나타나 척하니 인상 쓰고 맞아 주는 것처럼. 그러니까 거기에 진술을 받을 대상이 있거나, 또는 있었으나 없어졌거나, 없었으나 나타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대상이 만드는 변화가 있다는 사실 또한 피할 수 없는 전제입니다. 여기에서 돌아보면, 다시 지울 수 없는 배경과 마주칩니다. 존재와 변화에는 반드시 배경이 되는 시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 p.149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됩니다. 우주가 관측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그리고 있음의 완료는 없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스스로 모순으로 사라지고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 p.225 "그대는 내가 저 작은 산의 등을 타고 올라간다고, 진정 그리 말하는가? 정녕 그렇게 보이는가? 그대의 작은 눈이여. 나는 뺑글뺑글 어지럽게 도는 그대들의 작은 지구를 바닥없는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니, 이것이 그대 한없이 좁은 눈에 비친 내가 떠오르는 원인일지라. 허나 내가 떠오르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그만 입을 다물 것이라. 이유라 함은 그대의 한 톨 먼지만 한 마음 안에 떠도는 헛된 미망일지니. 없음이라, 이유라 함은." --- p.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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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야기다. 바닥에 닿을 수 없는 깊음과 결코 끝에 다다를 수 없는 넓음을 가진, 감당하기 쉽지 않은 호기심을 원료로 삼는다. 가뭄에 풍부한 지하 수맥을 찾아 펌프를 박아 넣고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뽑아내듯 이야기를 쭉쭉 끌어내는 이들만이 결국 소설을 쓴다.
『뵐룽 아흐레』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우주와 그 안에 티끌처럼 존재하는 인류까지 포함한다. 우주와 인류의 기원, 우리가 태어나 삶을 영위하는 이유 등은 그 깊이와 지속성에 차이만 있을 뿐, 이 세상에 태어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볼 주제였다. 이런 ‘근원’을 향한 이끌림은 자연스럽다. 저자 김병호는 『뵐룽 아흐레』를 통해 우리에게 ‘존재’에 관한 한 가지 이론을 넌지시 제시한다. 그의 이야기에는 풍자와 위트가 가득하고 제시하는 이론에 논리적 구조는 튼튼하다. 작품 속에서 신화와 과학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공존한다. 양극단에 놓인 이 둘의 뿌리는 어쩌면 같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살아내는 시간은 우주가 출발한 시작점과 다가올 세상의 끝점이 어느 순간 맞닿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상태와 비슷하게 말이다. 『뵐룽 아흐레』는 SF소설로 장르 문학임이 틀림없지만, 먼 미래 어느 날 멸망한 지구 어떤 동굴에서 우연히 발견한 허구와 진실 사이, 모호한 경계에 놓인 두루마기 경전을 읽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런 착각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사유를 촉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