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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존재의 양식 - 13
춤추는 세계 1 - 15
춤추는 세계 2 - 17
춤추는 세계 3 - 19
블랙홀을 맴도는 산책 - 20
거울이 뒤집는 것 - 22
라그랑지안 - 24
불륜의 아침 - 26
통계의 허점 - 28
밍글맹글 - 29
화장실 우주론 - 30

제2부
공전의 이유 - 35
밤을 등지고 왼쪽으로 - 36
쓸쓸한 비질 - 38
끈의 노래 - 40
사랑가 - 42
불안과의 불화 - 43
흐르는 흔적 - 44
시대의 유물론 - 45
리 반 클리프 - 46
무늬 - 48
마왕 - 49

제3부
열무꽃 - 55
내복풍의 꽃무늬 여인을 위한 세레나데 - 56
독서(獨書) - 58
한 파리마리 - 60
이명 - 61
오줌 묻은 자지 - 62
자격 - 64
질문 - 66
해피엔딩에 관한 몇 가지 사설 - 68
겨울의 어느 모서리 - 74
설날 - 76

제4부
삶의 총론 1 - 79
삶의 총론 2 - 80
약속 - 81
엄마의 땅 - 82
매운 기침 - 84
낙인 - 85
구겨진 길 - 86
병 2 - 87
미혹 - 88
텃밭에서 - 90
똥과 시의 관계에 관한 비시적 고찰 - 92
끝 - 96

해설
장철환 절망의 살얼음을 딛고 - 98

저자 소개 1

1998년 [작가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 왜 사는지, 그래서 사는 일에 합당한 답이 있는지, 살다보니 사는 거더라, 이런 무책임한 핑계로 버티는 일을 이해할 수 없어, 나에게 또 세상에 따져 묻던 시절에는, 시를 많이 썼다.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 『포이톨로기』, 『밍글맹글』 이런 시집들을 낼 때까지 그랬다. 정신도 마음도 무거웠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냥 썼다. 장편 SF소설들이다. 『폴픽 Polar Fix Project』도 크고 작은 죽음 운운하며 많이 무거웠다. 몇몇 계기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날카로운 불연속점은 나이이다. 어느 날 훅, 나이가 내 몸 안
1998년 [작가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 왜 사는지, 그래서 사는 일에 합당한 답이 있는지, 살다보니 사는 거더라, 이런 무책임한 핑계로 버티는 일을 이해할 수 없어, 나에게 또 세상에 따져 묻던 시절에는, 시를 많이 썼다.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 『포이톨로기』, 『밍글맹글』 이런 시집들을 낼 때까지 그랬다. 정신도 마음도 무거웠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냥 썼다. 장편 SF소설들이다. 『폴픽 Polar Fix Project』도 크고 작은 죽음 운운하며 많이 무거웠다.

몇몇 계기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날카로운 불연속점은 나이이다. 어느 날 훅, 나이가 내 몸 안에 쌓여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몸이 무거워지자 정신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상과 적당히 주고받은 타협이 아니라 그냥 데면데면해진 것인데, 그러자 『몸으로 부르는 연가』처럼 날라리 같은 시도 쓰고 소설도 『뵐룽 아흐레』가 등장하며 훌쩍 가벼워졌다. 소설 『나와 트리만과』도 이런 연장선에 있달까?

그 사이에 과학에세이 『과학인문학』, 산문 『초능력 시인』 같은 글을 썼다. 그리고 『동네 시인이 그리고 쓴 느지감치 그림일기』를 그리고 쓰면서 더 가벼워졌다.

이제 지킬 것도 따질 것도 없어진 모양인데, 그래서 왜 사는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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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22쪽 | 188g | 130*208*20mm
ISBN13
9791187756149

책 속으로

불륜의 아침

그날 저녁 만난 1은 누가 봐도 그저 1이었다 1이었지만 흔들리는 노을에 채여 그늘을 만드는 순간, 터울 져 드러난 여럿 그림자들은 각각 온전한 자백이었다 탄식은 먼 세계에서 가졌던 자신의 부피에 관한 기억이었고 회한은 몇 개의 차원을 건너 긴 그림자를 드리울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넋두리였다
지금 이곳에서 그저 1인 모든 1들이 다른 차원에서 다른 존재가 드리운 신성한 독립 상태들의 긴 그림자였다는, 그래서 나를 나로 나누어 나온 1과 너를 너로 나누어 나온 1은 진정 다르다는 밀고와 각성이 후려치는 밤, 세계는 이미 어제의 그것이 아니었다 사무치는 통고였다
허망은 허투룬 삶의 첫발자국이다 이 번잡한 세계 전체를 스스로 나누어도 1이 나올 터였지만, 그 1이 또 어느 차원에서 수많은 영혼을 쥐고 흔들지 감당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저 해서는 안 될 연산을 끄적였다
세계를 나로 나누자 온통 토악질하는 나들의 범벅이었고 나를 세계로 나누자 명암만 남은 치욕의 무한소들이 차곡차곡 쌓인 곳간이었다 갈 곳이 아니었다 너를 나로 나누자 패턴 없이 영원히 이어지는 무리수, 원주율이었다 태생이 딱 접히지 않는 어긋남이라는 이 증거 때문에 다시 나는, 아침 볕에 기대 나를 1로 나눴다 거기에는 한 꺼풀 채도가 사라진 내가 퀭하니 누워 있었고 나를 2로 나누자 한껏 흐릿해진 두 개의 봄꿈이 흐드러진 거기 들판이었다 다시 3으로 나누자 모서리가 뭉개진 울음이 세 방향에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나를 너로 나누자 가을 햇살에 푸석, 먼지로 일어났다가 서둘러 침전하는 맥박들이 있었고 이 희미한 맥박들은 닿는 곳 어디든 꿈틀거리는 빨판이었다 ***


공전의 이유

바람이다 대지의 상처를 처음 어루만지는 손길은
날선 상처의 가장자리를 허물어 어느 허공도 베이지 않아야 돌아서는
물이다 상처의 가장 깊은 곳을 수심으로 덮고
세월의 앙금으로 메워 어느 숨결도 갈라지지 않아야 흘러가는
먼 옛날의 파도를 불러 거칠어진 흉터를 쓰다듬고 물러서는
어느 생명도 하는 일이기에
이렇게 지구의 상처는 아물진대

달은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바람도 파도도 내쳐
40억 년 전의 피 묻은 흉도 지금의 것이기에
온전히 상처로 이루어진 달과

지구가 함께하는 이유는
아물어야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할 것
생명이기 때문이다 ***


질문

식이 섬유가 변비에 좋으면 탄 음식은 암에 좋은가요
콩나물이 숙취에 좋으면 그렇게 숙취가 좋아지면
콧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술 냄새의 풍속은 빨라지나요 느려지나요
검은콩은 발모에 좋은가요 탈모에 좋은가요 그래서
위로는 받는 이를 위한 것인가요 하는 이의 독백인가요

더위는 무좀에 좋은가요 자유는 영혼에 좋은가요
낮은 울음소리는 나를 위한 속삭임인가요 스스로를 위한 주문인가요
밤과 낮 사이에 새기는 각인인가요
변덕은 여자에게 좋은가요 저주는 불안에 좋은가요

연기는 싸움의 원인인가요 결과인가요
창은 어둠을 담기 위해서인가요 빛에 비켜서기 위해서인가요
굳이 창을 만들고 커튼을 치는 이유는 비릿한 봄 멀미는
나락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인가요 나락을 앞에 두고 올려다보기 때문인가요
철 지난 섹스는 그래서 추억에 좋은가요 ***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흔들리는 맨 끝은 모두 꽃이다, 시다!

김병호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 『밍글맹글』이 2018년 2월 28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김병호 시인은 1967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 『포이톨로기』가 있고, 산문집으로 『초능력 시인』이, 과학에세이집으로 『과학인문학』이, 장편소설로 『폴픽 Polar Fix Project』가 있다. 이 소설로 2017년 SF 어워드 우수상을 수상했다.

『밍글맹글』은 독특한 시집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지면 도처에 수두룩한 물리학 용어들이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병호 시인은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마치 경성고공 건축과를 졸업한 시인 이상이 건축학과 기하학을 시에 적극 끌어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실증주의적 맥락이, 즉 시인이 물리학을 전공했다는 유다른 내력이 그가 쓴 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고 효과적인 증빙 자료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우리는 왜 여전히 시를 두고 이러한 독법을 차용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아마도 현대시 일반을 대신하는 개념인 ‘서정시’에 대한 오해 때문은 아닐까?

‘서정시’는 ‘개인’의 서정을 적은 시다. ‘개인’은 유동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비단 단독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역사적이기에 매번 양태를 달리한다. 따라서 ‘서정시’도 가변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서정시’는 이미 어떤 특정 유형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오인한다. 그래서 시와 시 아닌 것을 두서없이 그리고 과감하게 구분하곤 한다. 실증주의는 이 틈서리에 기생하는 듯하다. 실증주의는 시 아닌 것 혹은 시 이전의 것이 ‘시’로 전환되었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예컨대 연애의 실패가 시로 승화되었다거나 당대의 억압 구조가 시의 심층을 주조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밍글맹글』을 두고 말하자면 물리학적 개념들이 시화되었다는 식으로, 그리고 시인이 물리학 용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속내는 그의 특이한 이력 곧 그가 물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하는 셈이지만 실증주의적 신념은 결국 각 개인의 ‘남다름’을 자료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방식을 통해 ‘시’라는 불투명한 어떤 표준을 공고하게 상상한다. ‘서정시’에 대한 그 이전까지의 단단한 신화들에 대해 효력 정지와 용도 폐기를 강력히 요청했던 2000년대 초반을 충분히 건너왔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밍글맹글』이 한국시에 제기하는 바는 그래서 생각보다 전면적이다. 이 시집의 돌올함은 비단 ‘새로운’ 감각 혹은 정서를 개진하거나 ‘새로운’ 어법이나 입장을 선보이거나 ‘새로운’ 영역을 도입한 데 있지 않다. 새로움은 현대 예술의 불변하는 모토이며, 그런 만큼 언제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 의해서나 재생산된다. 이는 때로 세속적인 세대론의 서식처로 활용되며, 그것은 매번 처음엔 유별나 보이지만 종국에는 ‘뻔한 새로운 시’ 속으로 시인들과 그들의 시를 축소시킨다. 그리고 ‘시’는 정확히 그만큼 자신의 몸피를 부풀려 왔다.

『밍글맹글』은 이를 중지시킨다. 『밍글맹글』은 요컨대 물리학 용어들을 빌려 ‘시’를 구성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적 개념 자체가 ‘시’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시집이다. 해설을 쓴 장철환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필요한 것은 물리학자가 관측한 세상을 다시 시인이 관측한 세상으로 전변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자의 관측 자체를 시인의 그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시인은 경계 저 너머를 보여 준다. 아니, 경계란 애초에 없었음을 알려 준다”라고 추천사의 말미를 맺는다. ‘경계’란 그 내부와 외부가 별도로 있었다는 사실을 고지하며 ‘너머’란 그 영토의 확장을 욕망하는 단어다. 말하자면 시의 안쪽과 바깥쪽이 따로 존재하며, 시인이 할 일은 ‘너머’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황무지라고 여겼던 그곳이 실은 비할 수 없이 풍요로운 낙원이었다면 어찌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 ‘경계’란 애초부터 없었다면, 아니 한낱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면 대체 어쩔 셈인가. 『밍글맹글』에 실린 시편들은 이에 대한 거침없는 거부이자 입증이다. “그의 시는 하나의 물리적 현상이다.”(장철환, 해설 중에서) 그리고 그것 자체로 “다시 꽃이다”. “흔들리는 맨 끝은 모두” “꽃이다”(?끝?), 시다! 김병호의 이번 신작 시집이 한국 시사에 반드시 기입되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추천평

물리학을 공부하고 시인이 될 수도 있다. 바로, 김병호 시인이 그렇다. 과학은 설명하려 하지만, 문학은 함께 삶을 앓는 것이라 들었다. 시인의 시에서 과학과 문학은 하나가 된다. 우리 삶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진다.
주변의 정보로부터 미분으로 계산되는 곡률은 “자신을 보고 싶을 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한다”는 통찰로 독자를 이끈다(?존재의 양식?). 라그랑지안을 적분한 양이 최소가 되는 경로를 따라 물체는 움직인다. 운동 에너지에서 위치 에너지를 뺀 것이 라그랑지안이라고 밝힌 시인은 묻는다. 욕망에서 허망을 빼면 무엇이냐고, 환상에서 꿈을 빼면 무엇이냐고. 질문은 조약돌이 되어 다른 질문을 내게 묻는다. 삶의 라그랑지안은 무엇에서 무얼 뺀 걸까. 내 삶의 궤적의 목적함수는 무엇일까.
우리말에 대한 탐구도 흥미롭다. “검은콩은 발모에 좋은가요 탈모에 좋은가요”(?질문?)를 읽고는 얼마 전 본 재밌는 광고, ‘치킨은 살 안 쪄요. 내가 쪄요’가 떠올랐다. “흔들리지 않으면 억새도 아니다” “뵈는 게 없어야 눈”(?시대의 유물론?)으로 뒤집힌 문장은 재미뿐 아니라, 통찰로도 독자를 이끈다. “시가 아니라고 해서 똥이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듯 똥만큼 굵다고 해서 시라고 자신하면 안 된다”(?똥과 시의 관계에 관한 비시적 고찰?)에 킥킥 웃다 갑자기 숙연해졌다. 맞다. 치열함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과학의 언어로도 삶을 앓을 수 있을까.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독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작년에 멋진 장편소설 ??폴픽??으로 SF 어워드 우수상을 수상한 김병호 시인은 과학과 문학의 경계에 다시 섰다. 독자의 영역이 경계의 어느 쪽이든, 시인은 경계 저 너머를 보여 준다. 아니, 경계란 애초에 없었음을 알려 준다.
-김범준(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꿈의 블랙홀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누구인가? 물리학자가 알려고 애쓰는 것이 물질의 기본 법칙과 원리라면, 그건 시가 꿈의 매혹 속에서 발화하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야말로 가장 깊고 순수한 우주의 발화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렇게 시가 태동하는 꿈의 고고학은 물리학이 탐구하는 빛의 고고학과 근원에서 다르지 않다. 양자는 신비에서 하나이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속에서 물질과 세계와 우주의 신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대체 신비는 누구의 몫일 수 있겠는가. 김병호의 시는 이를 입증하는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자산이다. 보라, 물리학의 법칙이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거기서 우리는 슬픔과 기쁨 속에 내재한 욕망을 통해 삶의 진실과 비의를 만나게 될 테니, 때로는 절망이라는 강력한 중력에 의해 세상의 빛이 휘더라도 역시 놀라지는 말자. 드넓은 시의 우주에서 중력 왜곡 현상은 드문 일이 아닐 테니…. 그의 시는 하나의 물리적 현상이다.
-장철환(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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