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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개가 먹다 버린 마음이라 해도 infancy in fancy - 11 달콤한 나의 사유지 - 14 우화일몽(右火一夢) - 19 슬프니까 게르니카 - 23 저 가을이 지나도 방아쇠를 풀지 마 - 26 민들레 만개하는 가을 도살장 - 28 토라(Torah) - 31 Dear My 오경자 - 34 물 옆을 걸어서 - 38 누쟁(漏箏) - 41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데저트 - 46 제2부 뒤집은 늪처럼 울고 있지 말고 사요나라, 병상에 누운 꿈들아 - 49 슬립 나이트(sleep knight) - 51 상류로 흐르는 마음 - 56 탐조등이 한겨울을 빨아들일 때 당신의 미소 속 교정기가 빛나시네 - 61 금요일에 나가요 - 65 나의 너의 엄마의 나 - 67 크라이 베이비 크라이 - 75 크라이 베이비 크라이 돈 레스트 - 77 나는 끌려옴 그대는 그리움 - 79 독사의 후예들 - 81 나 말고 너 어 - 84 목포의 눈물 - 87 서정론 - 91 제3부 나의 베고니아 사랑의 위경(僞經) - 95 아이가 세상을 몰래 사랑했을 때 - 99 로구, 하고 불러 줄까 - 101 모르핀 속의 아틀란티스 - 103 구역질 나는 사랑 수업 1 - 105 구역질 나는 사랑 수업 2 - 107 가을 숲속으로 추억은 항생제처럼 - 110 촛불은 늙어 가고 - 112 크리스마스 - 117 Quo Vadis, my worm - 118 수면의 신학 - 120 소녀가 소녀 위로 엎어질 때 - 123 제4부 힘껏 너의 엔진을 울려 팬이야 - 131 그 애의 웃는 얼굴은 내 목을 휘감아 오는 목련꽃 같아 - 135 b i t l e b i t l e 비 틀 거 렸 지 - 139 Smoke - 142 Heart into firecrackers tears into swamp - 146 사랑의 맹세? - 149 서리와 기계의 우화 - 153 어른들이 시켜서 나 사모하는 노래 - 156 얼어붙는 비금도 - 160 얼음 속에서도 힘껏 너의 엔진을 울려 - 163 강물보다 멀리 하수보다 외로이 - 166 빙하기를 날아 북아현동을 기어 토성의 금요일까지 - 168 해계 - 171 겨울의 위령학(慰靈學) - 177 해설 임지훈 불발된 슬픔은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되고 -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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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니까 게르니카
앞으로는 꿈처럼 찾아와 내 파란 침대를 흔들고 가지 말아 줘 수화기를 내려놔 잠이 쏟아진다 겹겹이 쌓아 올린 칼과 낫의 그림자보다 어둡지 않은 그 밤에는 진짜 꿈으로 네가 찾아왔다 같은 나라에 산다는 건 서로라는 미궁의 간수가 되어 주는 일이었나? 묻는 네가 염소 모양 인공위성을 베고 누워 깨질 듯 시린 두 손을 모아 입술로 가져다 대었다 소리 없이 따뜻한 두 손 안에서 신을 수배하겠다 선언하고 신을 수배한 자가 너의 나라를 장악했다 사람을 매달고 있는 십자가들이 사람에 매달린 나무로 변하는 마지막 광경을 화들짝 집어삼키며 너는 스무 살로 건너간다 사람보다 지구가 사람을 더 많이 죽이기 시작하던 해에 태어난 너를 축복했다 신을 쓰러뜨린 자가 세운 유치원과 학교들과 대학과 기업을 자루 속에 담긴 자루 속의 자루 속 송곳처럼 찢고 또 찢으며 건너가는 너를 의식은 네 몸의 형틀일까 사형수일까 고민하며 분침이 지날 때마다 나의 신체가 조금씩 내 숨의 위성(衛星)이 되어 갔다 너는 나의 숨소리로 울고 있었다 뼈가 부러지는 나의 숨소리로 울며 일러 준다 앞으로 꿈인 척 찾아와 내 위성을 몰래 꺼 놓고 가지 말렴 사방에서 커다란 플라스틱 낫들이 자라나 네 온몸을 뒤덮어 아직도 우는지 자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슬프니까 게르니카 매달릴 십자가도 없는 모멸을 미루나무에 대신 걸고 중력 바깥의 일을 미안해할 줄 모른다 이 행성을 뺀 우주만큼 너와 내가 나빠져 갔다 ■ 사요나라, 병상에 누운 꿈들아 준비, 이다음에 사계절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우리 체온이 이 땅에 남은 마지막 기후야 급하게 슬퍼하고 허겁지겁 배우자 내 피와 물에 체하자 하얀 얼굴 위에 연필로 그린 멍 같은 시큼한 너의 코 눈 광대 눈 입 눈썹 종탑처럼 높이 쌓인 권총과 군화들의 어둠을 밤새 문질러도 못 지우는 나의 덕지덕지 때 묻은 살이 까진 곳투성이 그 맨발 디디는 소리에 놀라 뒤돌면 너의 둥지까지 슥삭 지울까 봐 조심한다는 기도를 두 무릎 쥐고 이제는 믿으며 처음 배운 용기, 구더기 같은 용기 사요나라 병상에 누운 꿈들이여, 이 덜 잠든 세상아 나 안 간다 그대가 이 앞으로 오시길 밀물 빠지는 시간을 그새 참지 않고 태풍이 물러나 떠나길 참지 않고 독재자가 늙기 전에 참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비가 눈이 멀어 길 잃기 전에 너무 긴 진혼가가 죽은 자 살려 내기 전에 오래 오래 죽은 자가 죽은 자 살리기 전에 아스팔트 위를 포물선 그리며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이리로 자동차 바퀴에 채여 앞으로 전진 다시 뒤로 전진 탄산이 전방으로 펑 터지는 콜라 캔처럼 이리로 고양이의 입속 같은 미용실 문을 넘어 빛나는 은빛 가위가 두 갈래로 쩍 부러지기 전 마지막 손님이 되어 태풍 모양으로 머리를 자르고 떠날 때 문도 닫지 않고 떠나갈 때 뒤늦게 도착한 가을 강풍이 수북한 너의 머리칼들을 발로 훅 걷어찰 때 돌아보지 말고 이리로 더 아플 뻔한 곳으로 더러울 뻔한 곳으로 벌레들도 안 기어들어 갈 곳으로 승강기를 뜯어 등에 지고 계단 올라 벽을 타고 눈보라가 이제 다 커 어른 되기 전에 빨리 거꾸로 뒤집은 비처럼 웃고 있지 말고 거꾸로 뒤집은 늪처럼 울고 있지 말고 이리로 ■ 팬이야 달도 더 갈 데 없고 추위도 여기 말고 갈 데 없고 새끼손가락 서로에게 걸고 휠체어에 올라 함께 내리막길 내달릴 때 지켜 줄 거다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어둠은 키 작은 책상 아래에서, 오수가 말라 가는 화장실 욕조에서 차가운 세 자루의 삽이 꽂힌 땅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고 가르쳐 줄 거다 보여 줄 것이다 눈을 감고 카메라 플래시 속으로 뛰어드는 초저녁의 시간을 검지 손으로 귀를 막고 들리는 재즈와 엘레지를 연주하는 소년이 남자가 되어 가는 성탄절을 온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서둘러 옷깃을 당겨 재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피투성이 너와 너를 밟아 버린 애들 사이를 가로막은 나 뒷덜미를 붙잡고 내게 은빛 권총을 겨누는 네 앞에 붙잡힌 내가 양팔을 벌리고 선 자세가 똑같을 것이다 너를 수호하려고 사방을 횡대로 둘러싸 혼비백산 얼어붙어 버리는 벵갈나무들보다 은장도 칼집 속에서 뽑히는 소리 머리핀 닫히는 소리 녹조 가득한 물속에서도 구분하는 네가 내가 가위를 들고 티셔츠를 자르는 척 머리칼을 자르려고 할 때 미처 손목을 낚아채지 않고 놀라 버리는 너를 물속에서도 다 들리는 네 웃음소리에도 좀처럼 쏟아지지 않는 너의 먼지 쌓인 비밀을 사랑할 거다 너의 목과 허리를 숲과 오렌지밭에서 찾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가을의 부엌에서 교정에서 옷장과 다락 속에 머리를 넣은 채 널 부르고 찾을 거다 세상이 전부 나를 사랑할 때 빠르게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줄 것이다 어떤 폭풍도 너의 심장을 휩쓸어 가지 않는다고 맹세할 거다 저 비를 피해 이곳에서 곤충의 날개 가득 붙은 우산을 펄럭 펼치면서 울어 버리면 생시 위로 범람하는 홍수도 너의 눈물만큼 적실 수 없는 둥근 백일몽 두 개의 안구를 고개도 들지 않고 젖은 손을 닦지도 않고 감겨 주는 몸이 될 것이다 거울이 없을 때 칼로 내 얼굴을 비춰도 괜찮다고 말해 줄 거다 이생의 미래가 온몸 가렵도록 싫어질 때 저승을 보며 살아가도 된다고 흔들려도 잡지 않겠다고 해 줄 것이다 잡으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불러 세워 얘기해 줄 거다 올가미에 매달린 망자의 허벅지를 멍이 들도록 껴안은 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 안방의 시간처럼 제자리에 우리는 멈춰야만 하는지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 줄 거다 겁에 떨며 무릎 꿇은 나에게 코와 입술을 파묻고 노래 불러 주다가 네가 먼저 잠에 들어도 죄인이 되지 않게 해 줄 거다 밤이 너를 재우고 달이 너를 키워도 버려진 동물원처럼 자유롭고 조용한 이 세상에서 너의 존재가 오래전 네 심장을 쓸어 가지 못한 채 홀로 남은 폭풍이라도 네 심장의 모든 것을 빼앗고 너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해도 상관없다고 한겨울에도 빙하기에도 꾸덕꾸덕 마르는 허공을 가르는 흰 줄 위의 빨래들처럼 다 돌이킨다고 ■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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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장미야, 하고 겁에 질려 부르면 백호야, 하고 화들짝 뒤도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인간은 서로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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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요나의 이번 시집에는 정말 많은 이름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가 이렇게까지나 아프고 투박하고 구체적인 이름들을 무수히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하나의 빛” 속에 들어가 “매일 다른 이름을 짓고/기다”리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금요일에 나가요?). 빛은 이미 서요나에게 하나여서, 그의 시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은 빛의 차가움과 빛의 따뜻함, 빛의 잔인함과 빛의 자비를 고루 나누어 갖는다. 다른 이름을 지닌 이들이 같은 몸이 되어, 같은 상처와 같은 울음, 같은 삶과 흔들리는 풍경을 공유하는 모습 속에 어떻게 멈춰 서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서 “내가 마시는 매연”과 “내 어깨에 날아와 박히는 플라스틱 파편”은 모두 “네” 것이고(?infancy in fancy?), “너는 나의 숨소리로 울”게 되지만(?슬프니까 게르니카?), “나는 분명 너였다”고, “너는 분명 나였다”고 선언하며(?어른들이 시켜서 나 사모하는 노래?) 기꺼이 “사랑의 신으로 썩어 가는 일”을 택한다(?촛불은 늙어 가고?).
서요나에게 사랑은 이렇듯, 온갖 상처로 내던져진 세계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탈출이 불가능한 어두운 세계, “나는 켜지지 않”는다고(?누쟁?) 무력히 이야기하는 화자로부터 미약하게 가능해지는 사랑들이 빛으로 뿜어져 나온다. “깨지는 창문과 함께 열리는 음악실 미닫이문”에서(?달콤한 나의 사유지?) “완성하다 실패하고” “함께 비밀의 쌍둥이를 발명”하는 존재들(?infancy in fancy?). “없는 내 청력”으로(?토라?) “염증 나도록 사랑”하려는 존재들(?슬립 나이트?). “너를 깨울 수 없는 것들”이 “내 몸속에 다 들어” 있어도(?모르핀 속의 아틀란티스?), 같은 몸으로 엮인 가장 낮은 존재들은 가장 높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불가능성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의 조용하고 강한 목소리. 내가 서요나를 읽으며 아프면서도 환해졌던 이유, 계속해 사랑하고 싶어졌던 이유다. - 김연덕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