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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한국고전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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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박문수전

1. 너는 나라를 위해 일해라
2.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3. 어명보다 백성의 목숨이 우선이다
4. 하늘의 도리는 기묘하더라
5. 양반 될 그릇은 따로 있는 법이다
6. 사대부가 도둑질하는 어지러운 세상
7. 죄를 벌로 다스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8. 우리 백성 중에 도둑이나 강도는 없다

주니어 박문수전 해설

1. 박문수의 생애
2. 박문수전 해설

저자 소개 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7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철탑」 발표. 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병원」 당선. 1995년 제5회 서라벌 문학상 신인상 수상. 2020년 제9회 황순원작가상(소나기마을문학상) 수상. 창작집 『철탑』, 『검은 양복』, 엽편소설집 『발가락 사십 개를 부양하는 남자』, 중편소설 『흥선 대원군: 일세를 주름잡은 풍운아』, 장편소설 『흑치』, 『슬픈 시베리아』, 청소년소설 『주니어 박문수전』, 대표작품 선집 『바람도 때론슬프다』 출간. 현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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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74쪽 | 148*210*20mm
ISBN13
9791198502896

책 속으로

과거는 경희궁에서 실시되었다. 박문수가 종이와 필묵을 챙겨 들고 과장에 들어가니 경희궁 앞뜰과 뒤뜰, 그리고 줄줄이 이어진 작은 방에까지 시험을 치를 거자 거자: 수험생.

들로 가득했다. 와글와글 떠드는 무리도 있었고 조용히 정좌하고 앉아 마음을 다스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중에 여럿은 두루마기 안자락을 헤쳐 무언가 열심히 적기도 했다. 미처 익히지 못한 내용을 훔쳐보기 위하여 적는 글씨는 쉬이 번지고 뭉개져서 오히려 해독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과거가 선비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부정행위도 만만치 않았다. 과거장까지 하인을 불러들여 쪽지를 전하는 자도 있고 붓 뚜껑 속에 쪽지를 말아 넣기 위해 애쓰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다. 아예 답안지의 이름을 바꿔치기하거나 시험관을 매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첫 시험은 경서 문제로서 논어에서 시제를 뽑아 현판에 높이 내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박문수는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발휘하여 빼곡하게 답안지를 채웠다.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고 소론의 영수인 운곡 이광좌의 문하에서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이광좌는 박문수의 증조부인 박장원의 외손으로서 박문수의 아버지와는 외종사촌 간이었다.

다음으로 시나 글을 짓는 제술 시험이 이어졌다. 드디어 현판 높이 걸려있던 두루마리가 드르륵 펼쳐지자 시제가 큼직하게 드러났다. 제목은 ‘낙조’, 운은 ‘산’자였다.

박문수는 시제가 펼쳐지자마자 기겁했다. 며칠 전, 경기도로 들어서는 길목인 계남리 산길에서 만난 초동이 전해준 시의 제목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운까지 일치하다니 이 어찌 기괴한 일이 아닐까. 한시에서는, 특히 일곱 글자씩 8행의 시를 짓는 ‘7언 율시’에서는 첫째 행의 끝과 기, 승, 전, 결에 해당하는 둘째 행 끝에 각각 같은 계열의 운을 띄는 글자를 넣어서 써야만 한다. 시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운을 맞추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가 되는 것이다.
--- pp.11-12

벼슬자리에 앉은 지 불과 1년 만에 삭탈관직 삭탈관직: 죄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는 일.

당했던 박문수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당파 싸움(정미환국)으로 인해 다시 조정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노론이 쫓겨난 자리에는 자연스레 소론들이 다시 올라앉았다. 소론의 영수이면서 박문수 아버지와 외종사촌 간인 이광좌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이광좌는 평소 아끼던 박문수를 다시 불러들여 사서로 등용했다. 박문수는 낭인 생활 3년 만에 조정으로 들었는데 이번에는 권력의 핵심인 영조 주변에 머물면서 왕세자를 가르치게 되었으니 어쩌면 출세 가도의 시작점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었다.

영조 또한 박문수를 남달리 아껴주었다. 이듬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전쟁에 맞서 군무를 맡아보는 사로도순문사 사로도순문사: 왕의 친위군대에 속한 군직.

오명항의 종사관으로 출전시켜 전공을 세우도록 했다. 이후 경상도관찰사로 발탁했고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고 영성군에 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의 친족인 해흥군 ‘강’이 대신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하는 빈청에 들어오더니 아무 거리낌도 없이 대뜸 대신의 자리에 걸터앉았다. 해흥군의 품계는 2품에 해당되지만 대신들의 품계에는 미치지 못하는 종2품이었으므로 곧바로 소란이 벌어졌다.

“대신의 지위는 문무백관들의 가장 윗자리에 있는 것이오. 아무리 임금과 성이 같고 본이 같은 일가라 해도 대뜸 대신의 자리에 앉아서 옳거니 그르거니 할 수는 없는 일이오. 해흥군이 나서서 그렇게 하시면 대신들이 다른 관리들 앞에서 어떻게 체통을 세울 수 있단 말입니까?”
--- pp.34-35

이인좌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자 박문수의 명성이 사방으로 높아지게 되었다. 영조는 이번 난리가 진압된 이후로 적극적인 탕평책을 실시해 나갔다. 영조는 이번 난리 통에 경기지역과 영남 일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박문수를 각별히 신임하기 시작했다. 그를 특진관 또는 도승지 등으로 임명하여 늘 내직에 머물러있도록 했으며 군신지간이 마치 부자지간이나 된 것처럼 아끼고 보살폈다. 특히 지방의 사정이 궁금할 땐 박문수를 특파어사로 내세워 순회하도록 했다.

그러나 영조가 박문수를 아낄수록 그의 세력을 시기하는 자들도 늘어갔다. 잠시 동안 잠잠했던 노론 소론의 싸움이 또다시 치열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조는 그럴수록 적극적으로 탕평책을 펼쳤는데 정치계를 지배하는 노론 이외에 정치적 싸움에서 패하여 지위를 잃고 조정을 원망하는 세력을 다독이기 위한 노력도 또한 아끼지 않았다.

박문수는 워낙 성격이 강직하고 고집 또한 세었기 때문에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특히 당시 세력을 지니고 있던 노론의 대신들에겐 눈에 박힌 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박문수를 헐뜯었고 파직시켜 궐에서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
--- pp.55-56

암행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남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게 행동하고 처신하려면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해야 할 경우가 많았다. 만일에 대비해서 주먹 단련도 해야 했고 전염병도 조심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삼시 세끼를 탈 없이 찾아 먹는 일이었다. 백수의 왕 호랑이도 하루를 굶으면 사냥이 힘들어지고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새도 눈밭을 헤매다가 굶어 죽는 일이 허다하지 않은가. 어려서도 호의호식한 기억이 없고 등과해서도 암행 외직을 자주 맡다 보니 박문수에게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박문수는 호서지방의 민정을 두루 살핀 뒤에 한양으로 올라왔다. 임금께 그동안의 일을 아뢰기 위해서는 우선 초췌해진 몸을 정결히 다듬고 깨끗하게 말려 다린 관복으로 갈아입어야 하기에 발걸음을 급히 하여 집으로 찾아갔다. 어명을 받들어 집을 떠난 지 근 1년 만이었다. 인걸은 간 곳 없어도 산천은 유구하더라는 말처럼 집으로 찾아가는 길은 전부 낯익고 반가웠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집이라고 찾아가 보니 웬 낯선 이가 문을 열고 나와서 허리 굽혀 반절을 한다.
--- pp.106-107

박문수가 전라감영과 광주감영에 들러 감사들을 만나보니 호남 백성들은 계속 이어진 흉년의 여파로 인해 군포, 대동미 등 나라에 낼 세금을 잔뜩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민가를 둘러보아도 과연 호남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심하게 낙후되어 있었다. 광주감사와 협의한 박문수는 임금을 대신한 재량으로 우선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탕감해 주고 현지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여 영조 임금께 장계로 올렸다. 그렇게 두 달이 넘는 기간을 보내고 섣달이 되어서야 그는 다시 김제읍으로 들어섰다.

김제 백성들도 살림살이가 궁핍하긴 매일반이었다. 예년에는 잡곡으로나마 보릿고개까지는 버틸 수 있었는데 연속된 흉년의 뒤끝이라 겨울이 오기도 전에 식량이 바닥난 것이다. 먹고 살 재간이 없는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여기저기 약탈하기 시작했다. 약탈이라야 기껏 보리쌀 한 됫박을 빼앗는 정도였지만 뺏는 사람이나 빼앗기는 사람이나 심사가 사나워지긴 마찬가지였다.
박문수는 군수의 도움을 받아 가며 그들을 잡아 다독였다. 먹을 것이 없어 도둑질을 시작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는 벌을 주는 대신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어떻게 하든 살아 나갈 방도를 열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중에 만경벌에서 의적 노릇을 한다고 소문 난 ‘김석삼’이 잡혀 들어왔다. 그는 당장 먹고사는 일도 힘들었으나 근동 양반들의 횡포에 진저리가 나서 스스로 도둑 떼의 소굴로 들어간 작자였다. 기운도 좋고 언변도 좋고 머리도 영특한 젊은이였다.

--- pp.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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