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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큰 놈
소문 양희의 빨간 에나멜 구두 뜨겁고 달콤한 여름날 어디까지 왔다요? 귀신의 일 눈 내린 날 간첩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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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할아버지, 아부지로부터 배운 거란다. 비록 베어내고 쓰러진 나무지만 그것에도 영이 깃들어 있다고 하셨제. 그래서 부정한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단다. 별 것 아닌 그릇일 뿐이다, 요렇게 하찮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셨제.”
봉숙이와 판수는 또래 친구로 마을 아래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지내는 서로 ‘내외’하는 한편으로 단짝인 친구 사이랍니다. 봉숙이가 ‘똥통에 빠진 사건’이 소문으로 퍼지고 그 진원지로 판수가 봉숙에게 지목되면서 서로 관계에 긴장이 흐르기도 해요. 깊깊은 산과 계곡은 이 또래 친구들에게 멋드러진 놀이터이며 배움터죠. 난로에서 타고난 재를 교실 나무바닥 사이로 버리다가 작은 화재가 난 사연, 새알을 빼먹고 그 자리에 나무로 깎은 가짜 새알을 넣어 구렁이를 잡은 이야기며, 뱀을 팔고 라면을 사서 계곡에서 몰래 끓여 먹는 맛스런 이야기하며 지금은 기억에 날락말락 누에 치는 이야기에 얽힌 빨간 애나멜 구두 이야기, 담배밭의 타는 목마름과 삼을 수확하고 찌는 고역의 현장이 고스란해요. 그 일과 일 사이에 산골 아이들은 계곡 낚시며 물고기 꼬치, 전깃불 밝히는 날의 풍경과 텔레비전 켜지는 에피소드가 그득하답니다. 산골마을에 죽음을 바라보는 상여 나가는 풍경이며 곶감 말리는, 토끼몰이하는 풍경이 사는 일과 죽어가는 일 사이를 꼼꼼 채우고 있어요. 봉숙이네가 떠나지 않게 도우려 뱀잡이를 하다 판수는 간첩으로 오인돼 지서에 갇히며 남과 북으로 싸우며 마을 사람들이 이편도 저편도 아니며 이편이기도 저편이기도 했던 뼈아픈 역사가 마을 사람들 기억으로 소환되기도 해요. 봉속이 네는 결국 국립공원 지정 이후 벌채가 금지되면서 목기 일을 그만두고 마을을 떠나게 되고 겨울 지나 봄 소식이 피어나는 무렵, 이사 가는 봉숙을 친구 판수가 쫓아가면서 동화는 마무리되어요. 주인공 소년소녀 봉숙이는, 판수는 50여 년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우리 마음 아련하게 한켠을 차지하고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 안으로 안으로 땅울림 울리고 있겠죠? 첫사랑, 하고 떠올리면 가슴설레는 기억을 가진 모두를 이 이야기로 초대해요. 사랑 밖에서 우리들의 분투는 여전하겠지만요. [펴내는 글]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깊은 산속 마을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없습니다.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도 없고 색색깔 조명을 켠 멋진 카페, 레스토랑도 없습니다. 놀이동산 같은 건 꿈도 꾸지 마세요. 그 옛날에는 더 했답니다. 아스팔트 도로 같은 게 없으니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건 당연하고요. 학교 갈 때 한두 시간 걷는 건 가벼운 몸풀기죠. 생선이랑 신발, 가방을 사러 장에 가거나 물건을 팔러 큰 도시로 나갈 때는 하루종일 산길을 걸을 때도 있으니까요. 자기 몸보다도 더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말입니다. 한밤중에 산속에서 길을 잃는 건 얘깃거리도 못 돼요. 침낭이 다 뭐랍니까? 마침 동굴이라도 있으면 하늘이 도우신 것이고, 날씨만 춥지 않다면 나뭇잎 이불 삼아 몸을 누이는 거지요. 이제나저제나 장에 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칠흑 같은 먼 산만 바라보다가 잠이 들겠지요. 먼 데서 호랑이 울음소리라도 들리면 그날 잠은 다 잔 거랍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냐고요? 아니요. 겨우 4, 50년 전, 지리산 산골마을 이야기랍니다. 그 시절, 산골마을은 문명의 편리함을 누릴 수 없었고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넘치도록 풍요로운 게 있었습니다. 그건 자연의 신비와 인정입니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별과 달과 바람이 전하는 말을 이해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나눌수록 따뜻해지는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뭐 대단히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그냥 살다 보니 그렇구나 할 뿐입니다. 그냥 살다 보니, 그곳이 명당자리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그것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변치 않는 것은 보석이 됩니다. 산골 소년소녀들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든 풋풋한 첫사랑의 예감도 변치 않았겠죠. 이 글을 세상 모든 산골 소년소녀들에게 바칩니다. - 이성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