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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엽서로 그린 그 진한 사랑 _ 이태성
2. 전포동 만화방의 의로운 투사 _ 박재동 3. 키작은 여성해방주의자 _ 오한숙희 4. 술과 마작보다 더 좋아한 것 _ 신경림 5. 오줌누는 꿈에서 깨어보면 _ 이이화 6. 어머니 비취비녀를 생각하며 _ 박정자 7. 태백산맥 속의 법일스님 _ 조정래 8. 머금은 눈물과 억누른 혈기 _ 윤구병 9. 고등어와 크레파스 _ 이현세 10. 나란히 묻어드린 또 하나의 관 _ 정양완 11. 사나이 대장부 눈물 _ 김영현 12. 그 사나이의 눈물 _ 정진홍 |
Jo, Jung Rae,趙廷來
申庚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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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쁜 딸들 얻느라고 결혼했었다고 생각해라. 애들은 에미가 건강하면 절로 건강해지는 거니까. ‘불쌍하다’는 생각도 할 것 없고 남의 집과 비교해서 기죽을 것도 없어. 이제 너는 너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하면서,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 도와주면서 한번 멋지게 살아봐. 그러다 또 너의 진짜 짝을 만날 수도 있는 거구.”남들은 이혼 얘기가 나오면 친정어머니가 먼저 절반은 죽여놓는다는데 나의 어머니는 일상생활 면에서나 정신적으로 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셨다. 생물학적인 모녀관계를 넘어서 같은 여자로서의 유대를 느끼게 하는 어머니가 얼마나 계실까? 어머니께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요년아, 에미가 육신이 멀쩡해서 애라도 봐주니까 오래 살라고 하지, 병들어서 누워봐라. 그때, ‘저 늙은이 왜 안 죽나’ 소리나 하지 말아라.”웃는 얼굴로 다가올 날의 상황에 미리부터 쐐기를 박으시는 우리 어머니 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pp. 5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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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마터면 승려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 아니, 불행하게도 그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자 아버지는 심각하게 나를 불문으로 보낼 작정을 했다. “부처님의 가피로 여덟 자식을 두었는데 한 자식만은 부처님 앞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장남을 보낼 수도 없고 차남을 보내야 되겠다.”어머니는 반대했고, 나는 완강히 저항했다. 죽어도 문학을 해야 되겠다는 것이 내가 내세운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 솔직히 말하건대, 남자로 태어나 사랑 한번 못해보고 일생을 마쳐야 한다는 사실의 억울함을 나는 견딜 수도, 참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 그때의 세상 물정 몰랐던 순진무구했음이여. 지금처럼 환히 알 수 있었다면 어찌 그 길을 마닸을까. 여러 말로 설득을 하던 끝에 “만해 선사처럼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문학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을 아버지는 했고, “그런 분은 몇백 년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분이잖아요?” 하는 내 대꾸에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고는 그 일을 단념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때 그 길을 가지 않았음이 문득문득 생각남은 무슨 연고일까.
---pp. 132-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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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편의 글이 각기 다른 빛깔로 뿜어내는 삶의 모습을 만나는 재미가 가득한 이 책의 제목『엽서로 그린 그 진한 사랑』은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떠나온 후 일주일에도 몇 번씩 엽서를 띄워 사랑을 전했던 아버지 이중섭을 추억하는 이태성의 글제목이기도 하다.
화가 이중섭의 아들 이태성의 글에서는 이중섭이 일본에 건너가 있던 그의 아내 이남덕과 그의 두 아들에게 띄웠던 사랑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미술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하여 문화학원이라는 곳에서 공부하다가 그의 어머니인 이남덕(일본명 : 야마모토 마사코)을 만나 신분의 차이와 민족의 다름을 극복하여 사랑을 이루었다. 전쟁의 와중에 어머니가 심한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리는 상황에 이르자 아버지 이중섭은 그의 가족을 일본으로 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편지와 엽서를 통한 그리움과 절절한 사랑이 일주일에도 몇 번씩 일본으로 향하게 된 것. 이태성은 아버지 이중섭이 어머니와 자신에게 띄웠던 편지의 내용을 소상하게 옮겨 적어놓았다. 소설가 조정래의 아버지는 열여섯의 나이로 순천 선암사에 출가하여 불경공부와 신식공부를 하던 끝에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법사가 되어 대중을 상대로 설법할 자격을 갖추었던 철운스님. 그는 일제의 종교황국화정책에 따라 스물여덟에 대법당에서 혼례를 올린 선암사 최초의 승려가 되었다. 조정래는 자식으로 넷째, 아들로 둘째로 쌍암면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실천불교사상과 함께 사회개혁의지를 가지고 있어 해방이 되자 그 실현을 행동화하고자 했던 그의 아버지는 여순반란사건의 회오리에 말리게 되면서 일 년이 넘도록 피가 마르는 모진 고초를 겪었는데 그 충격과 아픔으로부터 조정래의 문학의 인식이 비롯되었으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법일스님의 모습으로 그려 넣기로 했던 사연을 전한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아버지인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선생은 몰락한 양반집안의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주역』에 몰두하며 생애를 보냈던 분으로,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시대에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서양의 사조나 물질문명은 야멸차게 물리친 인물이었다. 아들의 이름까지도 주역의 괘를 던져 지어 ‘이이(離)화’되었던 사연, 아버지 앞에서 전날 배운 글을 다 외우지 못하면 그분의 ‘대꼬바리(담뱃대)’가 이마에 떨어지는 꼴을 당하면서 생긴, 야뇨증과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더듬는 버릇이 붙게 된 사연, 절대 학교를 보내줄 것 같지 않아 가출을 하여 고학을 해야 했던 사연 등 야산 이달 선생의 생활 면면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위당 정인보 선생의 삼녀인 정양완은, 위당의 아내로서, 팔남매의 어머니로서 조그맣고 소리없는 그림자처럼 살다가 가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적고 있다. 남편을 기쁘게 하는 일이 곧 자신의 기쁨이었기에, 음식 만드는 일에서부터 옷 짓는 일, 책을 찾고 먹을 갈아 드리는 일까지 세심하고 깊은 마음을 평생 드러내었던 그의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신심 깊은 신도의, 교조에 대한 귀의와도 같았는데, 우기는 일도, 투덜거리는 일도 없었거니와 야속해 하거나 섭섭해 하는 눈치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가 전하는 어머니의 생애도 아름답거니와, 정이 담뿍 담긴 묘사와 감칠맛 나는 문체로 어머니를 회상하는 그의 글은 마치 예술소설을 대하는 듯하다. 오늘날 여성학자로서 사회적으로도 활발히 활동중인 오한숙희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여성해방주의자적 사고를 물려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신부가 신랑의 팔짱을 낀다는 것이 그만 손목을 끼고 있는 모습으로 박혀있는 부모의 혼례사진을 보며 낄낄거리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시작으로, 이혼한 상태로 어머니와 함께 두 딸을 키우며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굴곡이 있을 때마다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어머니의‘키작은 여성해방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전한다. “이놈은 이제 죽이던 살리던 형수님 자식입니다.” 만화가 이현세는 큰아버지가 딸 둘만 남기고 돌아가셔서 태어나자마자 큰집에서 양자로 자랐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방학을 맞아 들른 고향에서,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 직장인 철도수리공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신‘작은아버지’가 사실은‘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사고로 몰고 간 어린 시절의 ‘크레파스’와 ‘고등어’사건을 아픈 마음으로 회상한다. 결국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잠적하여 만화 그리기를 직업으로 선택하였으며,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가족을 위해 웃음을 던질 수 있었던 아버지를, 아들과 같이 흙구덩이 속에서 전쟁놀이를 할 수 있는 아버지를 그리고자 노력했던 세월을 회상한다. 말 한마디 틀리게 하는 일 없고, 행동거지 하나 흠 잡을 데 없던 전형적인 선비, 영락없는 딸각발이 샌님이던 만화가 박재동의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로 있던 중 무리하게 보충 수업하느라 결국 병이 생겨 학교를 그만두고 전포동 책방에 세를 얻어 만화가게 주인이 되었다. 만화책을 배달원이 자전거에 싣고 만화방마다 다니면서 가게에서 원하는 인기작을 골라 사게 하던 그 시절, 한 출판사가 그 지역의 모든 출판사를 통합하여 완전 독점하게 되면서 거기서 내는 모든 책을 무조건 다 사지 않으면 공급을 끊겠다는 불합리한 횡포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버티어 칠개월 만에 항복을 받아낸 고난을 겪기도 했던 ‘전포동 만화방’. 박재동은 그 만화방 덕분에 ‘배부르게 배부르게’만화를 보았고 오늘날 그 덕에 만화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삼십대 초반의 한창 젊은 나이에 병으로 꿈이 꺾여버린 그의 아버지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했고, 농장을 만들어 식물을 키우고 싶어했던 꿈을 못 다 이룬 채 그가 한겨레그림판에 실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서울로 떠나온 사이 죽음의 문턱을 넘고 말았던 아픈 사연을 담아냈다. 그 외 어머니의 감수성과 서정, 집요함, 동물적인 후각, 때로 사람들을 구석으로 모는 듯한 강한 목소리, 삼십 년이 넘도록 독한 분장을 해도 트러블 한번 일으키지 않는 도화지 같은 피부, 기쁠 때 기뻐할 줄 알고 슬플 때 슬퍼할 줄 아는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감수성까지,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특별함을 물려받은 연극인 박정자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소설가 김영현, 서울대 명예교수 정진홍, 변산공동체를 이끄는 윤구병, 시인 신경림의 글 또한 각기 다른 애잔한 사연 속에서 아들과 딸의 눈으로 바라본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생과 사랑과 꿈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을 열면 때로는 강인한 나무처럼, 때로는 질박한 들꽃처럼 모질지만 행복한‘인생’이란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나’와 형제자매를 낳은 일, 오늘날의‘내’가 있기까지의 크고 작은 일련의 사건들, 시간이 갈수록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내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애틋함의 기억들, 가족 모두가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1930~1960년대의 일련의 모진 시련들과 그 당시의 애잔한 풍경들도 대면할 수 있다. 이들의 글이 그 어떤 소설과 영화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것은 자칫‘아름답게만’포장될 수 있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절망과 슬픔과 부끄러움마저도 진실되게 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러한 그들의 솔직한 고백 속에서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신경림이 서문에서 일렀듯이,‘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자식을 위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자신을 버리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그 속에 숨겨진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오뇌와 갈등도 심도 있게 그려져 있는 탓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필자들의 노력과 세상을 보는 넓은 그 통찰력의 소산일 터이다. 그 결과 이 책에서는 다른 책에서 보지 못했던 정말로 살아 있는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책에서 나 자신과 내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